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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22화 (1,121/1,239)

1122화

* * *

페이커와 소베니르의 대련은 두 사람만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도렌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양측의 시야를 모두 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벽기둥의 그림자가 득실거리며 조용히 드낙이 모습을 드러냈다.

게릴라 전쟁이 끝났고, 종전식도 알차게 마무리됐다. 드낙은 다시 자유로운 영혼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만, 그 의도가 자유롭지는 못했다.

‘신제국이 크게 움직였다.’

상위국은 신제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을 홀로 대적하는 건 어불성설이었기에 네 명의 상위국왕을 뒀다.

상위국은 그 네 명의 국왕을 통해서 분열되었지만,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을 뿐이지, 가장 제국의 황제를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겉으로는 분열되었음이 부각되어 보이지만, 그건 항상 경쟁심을 불태운다. 당장 강철 인형 아카데미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한 명이 독박을 먹었지만 그래도 온전하게 기능했다.

“오랜만이다.”

드낙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이에 도렌이 움찔하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괴이하게도 드낙의 목소리는 어느 방향에서 들려왔는지 잘 알 수 없어 등골이 서늘했다.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마법의 전조도 느끼지 못했다. 도렌 또한 반마로 거듭나며, 준초월의 권좌에 앉았다. 마법의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재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거겠지.”

드낙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치, 하수구에 끼어있는 머리카락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처럼 가벼웠고, 하찮아했다.

‘드낙 님이 마지막에 도달할 위치는 대체 어디일까?’

그는 권능이 아닌 기술로 초월적인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분명 기적이라고 할 만했다. 지금이라면 그 어떤 신도 드낙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건 도렌의 추측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자식들이 잘하는지 보러온 김에 너도 보러왔다. 지금 보고 있는 건 뭐지?”

드낙도 전지전능하지 않았다.

“워-퀘스트에 1위와 2위로 마무리한 이들이 대련하고 있습니다.”

“상위국의 미래 국방력인가.”

“예.”

강철 인형은 전쟁용이다.

다종족 연합은 강철 인형으로 전쟁놀이를 하면서 전술 역량이 있는 이들을 발굴하고 이들을 전쟁에 써먹으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나중에는 생명체까지 지휘하게 될 것이다. 싫어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모두 가족이 있는 이들이겠지?”

“예.”

애초에 가족이 없는 놈들은 적당히 가지치기했다. 제어할 수 없고, 재능만 많다면 결국 자연인이 되거나 하기 싫다고 다른 일로 도망칠 수 있다. 그것까지 강제로 막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애초에 잘라낸 것이다.

“악마침공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권리를 누리고 싶은 놈은 다른 곳에 종사하라고 해. 의무를 이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뒷짐을 지고 지휘를 하더라도, 가볍지 않은 의무다. 위험 또한 존재했다.

통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기에 결국 전쟁터에 있어야 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 리스크가 낮아질 뿐. 없는 건 아니었다.

‘군인이라고 모두 헌신적이지는 않지.’

모두 용감하지도 않다. 인간은 다채롭기에 아름답지만, 그렇기에 선별이 필요했다.

가족을 인질로 삼는다면, 분명 전쟁터로 향할 것이다. 굳이 협박할 필요도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전쟁터로 나아갈 터였다.

“빨리 결혼을 시켜야 하는데.”

결혼을 당해 버리면 더는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들은, 과거 역사를 부지런하게 훑는 습관이 없었다.

자신의 과거를 반추할 여유가 있다면, 쉽게 결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걸 깨닫기 전에 서둘러 결혼 당해야 했다.

그게 이 아카데미가 있는 이유였다.

“공무원 결혼이 최강이지.”

공무원이 아니었을 때는 1억 대출은 자시고, 신용카드도 못 만들지만, 공무원이 되는 순간 대출은 껌이다. 금융 관련 종사자들이 가장 좋아하고, 믿음을 주는 것이 공무원이었다.

빚을 져도 30년 꾸준히 갚을 노예가 바로 공무원이기에 사기꾼들도 공무원들을 크게 대우해 준다.

큰 재미를 보지 못하지만, 꾸준히 돈을 생산해 내는 노예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서로 잘 어울리게 수업도 조정하고. 조별 과제를 특히 많이 내야 해.”

“예. 짝이 맞춰지면 그들에게만 과제를 낼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 당하게 만드는 작업은 물밑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은 결혼하게 될 것이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후후후! 후하하하하!”

드낙과 도렌이 크게 웃었다. 역시, 남자는 결혼을 해야만 했다. 나만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 *

경보병 200마리를 버리듯이 사용한 페이커는 정보에서 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무조건 적을 먼저 찾아낸다는 건 또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페이커는 적을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멈춰!”

경보병이 멈췄고, 엎드렸다.

그 위에 대가리가 큰 드론이 바짝 붙으며 내려앉았다. 최대한 도와주려는 모습이다.

“…….”

페이커가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지금은 집중할 때였다.

‘제기랄.’

바로 욕지거리를 날렸다.

붉은 요새 정예병(Red fortress elite).

군대 포인트도 많이 들어가지만, 가장 단단한 모루였다. 얼마나 단단하냐면 사기가 높아서 죽지 않는 이상 밀리지 않는다.

가장 밀어내기 힘든 중보병을 들고 왔다.

‘체력도 좋지.’

항상 무거운 걸 들고 다니기에 체력 자체가 좋다. 구릉지대였기에 체력 소모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다른 중보병에 비해서 확실한 걸 들고 왔다.

‘군대 포인트를 보병에 너무 쓴 기분인데…….’

보병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보이는 보병은 적어 보였다.

‘알 수가 없지.’

정확한 규모는 알지 못했다. 언덕 아래에 있으면 손쉽게 숨길 수 있었기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페이커는 상대가 보병으로 승부를 띄울 수 있을 거라 여겼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붉은 요새 정예병이 워낙 적어 보여서였다.

‘나보다 중보병이 적어 보인다.’

페이커의 군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전략을 시작했다. 마치 회전을 할 것처럼 꾸몄다.

보병으로 진을 치고 적을 기다렸다. 보병이라고 해도 헤르바 아르쿰 중보병(Herba arcum Heavy infantry)은 궁수처럼 보이는 놈들이라, 적을 간사하게 속일 수 있었다.

전쟁은 기만이다. 페이커는 이를 잘 보여줬다.

이에 상대가 먼저 자신의 패를 드러냈다. 궁수가 있다는 건 진을 쳤다는 뜻이다. 그건 소베니르가 가장 원하는 그림이었다.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녀도 경기병은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 또한 페이커를 기만하려고 했다. 언덕 밑은 결코 보이지 않았기에 그런 은폐가 아주 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보병과 경보병이 넓게 진을 펼쳤다.

‘한 방에 끝낸다.’

진지를 꾸린 궁수들 외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언덕 아래에 있다고 여겼다. 아마 기병도 어디에 숨어있을 것이다.

창병을 진형 좌우에 놓고, 기습에 대비하며 경기병은 좌측으로 움직였다.

적의 우측이다. 기병이 놀기 좋을 때, 이를 칠 생각을 가졌다.

그러자 적 중보병이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전황을 조금 바꾸려는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쫓아가 본다.’

처음에는 천천히 쫓아갔지만, 곧 보병과 보병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서로의 체력이 빠르게 소진됐다. 기병도 마찬가지로 소모가 이루어졌다.

적당히 빼지를 못했는데, 페이커가 나중에 가서는 중보병의 위장을 스스로 뜯어내고 자신이 중보병이라는 걸 그녀에게 보여준 까닭이었다.

그만큼 중보병 2천은 먹고 싶은 놈이다.

‘기병 대처는 충분히 하고 있어.’

살짝살짝 보이며 마치 돌격 각을 재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마저도 중기병이라서 더욱 그런 생각이 잡혔다. 몇 번이나 돌격을 포기하는 중기병의 모습을 보는 건 짜릿했다.

그런 생각은 나중에 후회로 변했다.

‘아뿔싸.’

강철 인형들의 체력 디버프가 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 소베니르가 페이커의 노림수를 알 수 있었다.

중보병 2천으로 9천의 체력을 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기병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경기병은 페이커의 경기병에게 죽임을 당했고, 페이커의 중보병은 포위당해서 천천히 죽어갔지만 ‘충분한 시간’을 벌어줬다.

기병을 정리하고 난 경기병과 대기하며 체력을 조금 회복한 중기병에 의하여 완전히 병사들이 와해됐다.

경기병이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중기병이 들어가는 걸 허락했을 때, 소베니르는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틈을 만들지 못하도록 경기병이 살았으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창병은 느리고, 기병은 빠르다. 기병의 기동력을 죽이고 창병과 합류시킨다면, 적 경기병은 페이커의 중기병과 합류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체력 손실이 커서 그 유동성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런 싸움은 불가능한 일이다. 와해가 되면서 헤르바 아르쿰 중보병(Herba arcum Heavy infantry)을 보존할 수 있었고, 후퇴하여 전열을 재정비한 뒤 화살을 쏘며 기병이 보병을 쓸어 담는 데 일조했다.

단검 방패병 3천을 썼던 것도 패인이 되었다. 기병에게 별다른 짓을 하지 못했다.

대련이 끝나고 둘은 과자를 쌓아두고 온갖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구릉 전투는 기병 잡는 보병을 많이 쓰면 될 것 같은데.”

단검 방패병을 썼다가 죽을 쑨 소베니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페이커는 그녀가 모르는 것도 하나 정도는 말해 줬다.

“바람이 강해.”

“바람이 강하다고?”

“그래. 흙먼지가 강하게 끼더라고. 바람 방향에 따라서 전황을 알 수 없었던 적이 많았어. 의외로 변수가 많은 전쟁터야.”

흙먼지에 뒤덮이면 제대로 전황을 알기 어렵다. 그런 순간에 기병이 들이닥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다만 이번 경우에는 기병을 운용하는 페이커가 그 피해를 봤다.

“그런데도 성공적으로 날 와해시키다니.”

“체력이 많이 떨어진 탓이 컸지.”

위장하던 풀떼기를 뜯어서 자신이 중보병이라는 것을 과시했다.

“흙먼지를 이용해서 어떻게 병력 운영을 잘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거야?”

“아마 그게 ‘기백 구릉’의 승리 확률을 높일 수단이야.”

“그걸 연습하면 승리할 수 있어. 난전에 능한 병과를 쓰는 것도 좋겠지.”

1:1에 강한 놈을 써야 했다. 아니면 숫자가 많거나.

그런 의미에서 소베니르의 전략도 나쁜 건 아니었다. 결과만 보고 따지면 물량을 챙겨왔기 때문이다.

“체력 때문에 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수많은 이들이 반년 전투를 준비했고, 페이커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선택을 받으며 대련을 해야 했다. 그건 페이커에게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하나같이 빈틈이 보였고, 빈틈이 없어도 기만하여 빈틈을 만드는 건 페이커에게 큰 경험을 줬다.

가장 육각형에 가까운 능력치를 지닌 페이커는 수많은 이들 속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행위 속에서 신제국에서도 변화가 거세게 불어왔다.

신제국은 정말 무식하게 일을 진행했다.

“신성한 의무를!”

“위대한 권리를!”

“인류의 소망을!”

이데올로기(Ideologie)에 미쳐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신제국이다.

그들은 상위국과는 다르게 가족이니 뭐니, 의무를 이행하니, 안 하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같이 그들은 이념의 괴물이 되어있었다.

그 이념을 따르지 않는 이들은 빨갱이로 몰아가서 죽여버렸다. 손쉬운 일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이념의 괴물이 되었다. 그들은 그것을 자랑하며, 자신들의 삶을 아낌없이 갈아 넣었다.

다른 이들을 감시하고, 시험하고, 재촉했다. 자신과 똑같은 괴물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래야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저 끔찍했지만, 그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국가의 탄생 자체가 세파리아스라는 개인의 이념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더욱더 효율적으로 지휘관들을 받았고, 그들은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제국 전신 갑주를 입고 강철 인형과 함께 다니며 전투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그저 난전에 난전을 이어나가며 싸움에 익숙해졌다.

하나, 둘, 셋.

전술을 배우면서 난전에 하나씩 전술의 가닥이 잡혀갔다.

끝없는 전쟁과 전투는 상위국과는 전혀 달랐다. 시작부터 실전 같은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쪽이 정답일지는 결과가 모두 알려줄 것이다.

그 결과는 당장 나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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