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화
돌파 가능 여부는 기병에게 묻는 게 아니라, 그들을 보조하는 다른 병과에게 물어야 함이 옳다.
“중기병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돌파력은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었지.”
그 말에 쿤칸이 고개를 숙였다. 유목민의 왕이라는 예명과는 반대되는 평가가 이루어져서 더욱 움츠러들었다.
‘기병은 분명 나의 것이었는데……!’
그의 눈에 자괴감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강한 장작으로 동기라는 이름의 불꽃을 활활 태울 것이다.
부족하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집어넣을 수 있단 뜻이다. 돈이 부족하다면, 앞으로 돈이 쌓일 날만 있고. 나이가 부족하다면, 앞으로 나이가 쌓일 날만 있다.
쿤칸이 기병 운영에 도가 텄다고 해서 기병에 대한 지식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현실은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범위 공격을 넣는 것도 좋겠지. 돌파에 성공했다면, 좌우로 병사들이 많을 것이고, 그 전체에 마법 공격을 쏟아붓는다면, 적은 큰 혼란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교수가 먼저 운을 뗐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에게 질문했다.
“저는 관통 공격 마법에 힘을 쓸 것 같습니다. 기병의 가장 큰 약점은 중형 및 대형 괴물입니다. 그들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더 넣고 싶습니다.”
“저라면 적의 행동을 방해하는 점액질 같은 방해 마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무력화되는 병사들이 많을수록 병목현상이 심해질 것이고,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골머리를 썩일 겁니다.”
이런 의견에 대해서 교수는 수긍하기도 하고, 조언하기도 했다.
“악마 전쟁에서는 악마 병졸들이 다쳤다고 해서 데려가지는 않을 거다. 병목현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가장 예정된 전쟁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애초에 강철 인형 프로젝트인 ‘강철의 비’ 자체가 악마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들은 그걸 알 자격이 있었다.
“방어력을 높이는 데 치중하겠습니다.”
“정답이다.”
누군가의 말에 교수가 손을 튕겼다. 그러고는 현재의 중기병에 대해서 소개했다.
“절대적인 건 없다. 현재가 이렇다는 것이고, 나중에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전쟁은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업은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갔다.
“강철마를 잃게 되면 기동성이 사라진다. 기수를 잃게 되면 강철마를 이끌고, 그 위에서 공격력을 토해내지 못한다.”
기수의 있고 없고의 차이. 강철마를 잃었을 때의 상황.
“전력 누수가 일어나지 않으면 전쟁을 지속할 수 있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 아무리 등자가 발전해도, 기병의 경험치는 하루 이틀로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덩치는 작고, 방어력은 높은. 그런 것이 현재의 중기병이 가지고 있는 방향성이다.”
조금 큰 오토바이가 장갑을 두르고 탱크로 쓰이는 것과 비슷했다.
우주 낙원을 통해서 총기와 다목적 이족 보행 로봇을 획득했음에도 기병을 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우습긴 했지만, 결코 포기를 못 하고 있었다. ‘와해’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적을 양단하면 분열과 와해가 일어난다. 후방에 적이 있을 때 전방에 신경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기병은 중요하다. 시대가 변해도 기병은 여전할 것이다. 나중에는 비행을 통해서 후방에 침투하는 기병이 생길지도 모르지.”
마력 자원과 마법 기술의 발전이 어느 정도에 따라 변하게 될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기는 어려웠다. 지금은 베끼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탓이다.
교수는 막바지에 공지를 했다.
“반년 전투(Half a year battle)에 대한 공지를 하겠다. 각 기숙사의 입구에 있는 게시판에도 벽보가 붙을 테니. 기억이 나지 않으면 그것을 읽도록 해라. 반년 전투는 6월까지 이어진다. 최대한 많이 싸움을 붙이기 위해서다. 전적에 따라서는 로우 랭크가 로열 랭크와도 싸울 기회를 얻게 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가진 지위와는 완벽하게 별개의 전투가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그런 전투가 더욱 빈번할 터다.”
군대 포인트(Army point)는 1만.
1포인트짜리 민병을 선택했을 때, 1만 개의 강철 인형을 사용할 수 있단 소리다.
마력 코팅이 매우 얇은 민병 강철 인형은 정말 한순간에 처리되기에 사용되지는 않는다. 똑같은 방패병이라도 수준에 따라서 현격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군대는 개인 연병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 기숙사의 지하에 존재한다. 관리하는 이들도 많지만, 오늘이 첫날이니 대기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모두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로우 랭크는 오후 수업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저녁 수업은 없다. 6월까지 일시적인 것이지만 알아서 잘하리라 본다. 만약 일탈하는 랭커가 있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받게 되니까, 스스로 조심하도록.”
관련된 책자도 받았다. 저급한 종이로 만들어졌고, 10페이지에 달했다. 이것 말고도 기숙사 앞에 붙여 뒀을 터니. 충분히 공을 들였다 볼 수 있다.
“야!”
옆에 있는 소베니르가 페이커의 팔뚝을 쳤다. 같이 고민하자는 뜻이다.
문제는 과제도 있다는 점이었다.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 협력은 필수다.
페이커는 나이가 어려서 다른 이들과 썩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소녀와 함께하는 게 가장 편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과제를 정리하고, 조금 늦은 오후에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가서 지하로 향했다.
사람들로 가득하지는 않았다. 조금은 널널했다.
로비는 넓었고, 다른 곳은 5천 명이었지만 로열 랭커는 1천 명에 불과했다.
테이블도 존재했으며 간식을 만드는 음식점도 여럿 존재했다. 음료도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돈을 지급해야 했다. 대부분 가불이고, 서명만 하면 되었다.
테이블 하나를 두고 삼삼오오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었는데, 행동 하나하나가 컸다. 다만 테이블마다 소리를 차단해 주는 막이 씌워져 있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바람 마법이다.
“뭐 먹고 시작할까?”
“일단 데스크에 가서 뭘 해야 하는지 보자.”
데스크 대기열은 제법 길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예전이었다면 종이를 낭비한다며 깜짝 놀랐겠지만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다.
자신의 차례가 오자 페이커가 창구에 들어가서 앉았다.
예명을 밝혔다.
“TOP100은 바로 개인 연병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요?”
“관리자분들의 여유에 따라 대기 시간이 달라집니다. 지금 이용하시겠습니까?”
페이커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베니르 또한 바로 갈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개인 연병장은 부유석을 통해 내려가야 했다. 한 층을 내려가는 데도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이, 벽의 두께가 대단해 보였다.
통로 또한 좁았다. 벽 위에는 뭉툭하게 튀어나온 지지대가 보였는데, 색깔이 불그스름해서 물약 처리를 한 것처럼 보였다. 마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첫 갈림길을 두고, 의자에 앉아있던 관리인이 몸을 일으켰다. 책상에는 책이 쌓여있었는데 마법서로 보였다.
또 특이해 보이는 아티팩트도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페이커 님. 이쪽으로 오시죠.”
견습 마법사가 그를 인도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마법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중요한 일터였다. 하여 공손히 페이커를 안내했다.
스르륵.
기름칠이 어찌나 잘 되어있는지 문이 쓱 열렸다.
앞에는 흙으로 가득한 넓은 공터가 있었다. 딱 봐도 연병장이었다.
입구 옆에는 기기가 존재했는데, 전자기기였다. 오늘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되었으나 하는 것에 비해서 지나치게 비대했고, 소음도 컸다.
“들어와서 이곳의 발판을 꾹 밟으면 전원이 들어옵니다. 나오실 때 발판을 꼭 다시 밟아주세요.”
간단한 사용 방법부터 들었다.
원시적이지만 무식하게 큰 컴퓨터가 구동됐다.
군대 포인트 1만이 있었고, 다양한 아이콘을 통해서 추가, 제거가 가능했다. 아주 편한 UI였으며 터치식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
모니터는 대단히 컸다. 사람 상체만 했고, 옆으로는 추가적인 정보창이 다른 모니터로 구분되어 존재했다.
‘반년 전투(Half a year battle)는 이미 승패가 결정 난 싸움이야.’
1만 포인트라는 제한 때문이다.
즉, 소위 말하는 답안지가 존재했다.
‘지형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 완벽한 군대는 없지. 그것에 맞게 들고 와야 해.’
한 명이 하나의 군대만 사용 가능하지만, 그 구성은 매번 다르게 할 수 있었다.
전쟁은 상대적이고, 그런 상대적인 전쟁터에서 항상 똑같은 조합으로 나서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소베니르와 연구해서 내놓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힘만으로도 하고 싶어졌다.
페이커는 순식간에 ‘평야전투’를 생각한 군대 구성을 만들었다.
보병 6천. 궁병 1천. 기병 1천. (중기병 300, 경기병 700)
숫자로는 기병의 비율이 대단히 낮았지만, 군대 포인트로는 5 : 2 : 3이었다.
궁병의 비율이 가장 하찮았는데, 결국 냉병기의 싸움은 밀고 들어가는 것에 있었다. 혹은 포위를 하거나.
‘활은 한계가 명확하니까.’
다양한 마법 화살이 사용된다고는 하지만 결국 화살의 크기를 생각하면 강대한 마법은 결코 화살에 스며들어 갈 수 없다.
마법은 무형의 힘으로 여겨지지만, 그 또한 받아들일 그릇이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 마법이 담기지 않은 궁병을 쓴다고 해도 화살이란 것은 결국 큰 부상을 입히지는 못한다. 갈비뼈조차도 부러뜨리지 못하고, 막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티팩트 역량이 높아질수록 사라질 병종이지만, 그래도 마력 코팅을 벗기기에는 나쁜 선택이 아니다.’
적 기병을 견제하는 데도 용이하다. 다만, 너무 정석적이라서 되레 호되게 당할 수 있다.
만약 적 기병이 페이커의 궁병을 노려서 빨리 리타이어 시킨다면 그만큼 포인트를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평야니까, 이런 선택이 가능하지.’
페이커는 일단 이렇게 저장을 해두고, 로비로 되돌아가서 소베니르를 기다렸다.
기숙사가 달랐기에 귀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건 모두 하이랭커들뿐이다.
몇몇 이들의 시선을 느꼈지만 페이커는 애써 무시했다.
기다리면서 다양한 구상을 공부했다.
그사이에 소베니르가 인형을 품에 안은 채 페이커의 맞은편에 앉았다. 서로 약속된 것도 아닌데 용케도 찾아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벌써 다 정했어?”
“아니. 마법사 강철 인형이 새로 나왔더라. 이전까지는 죄다 병사들뿐이었잖아. 차근차근 패치가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게 추가된대. 그것 때문에 이것저것 시험했어.”
“그래? 난 거기까지는 몰랐는데.”
“반년 전투 시험이랑 관련 없이 대련도 가능해. 그걸로 서로 맞춰보지 않을래?”
“그거 때문에 이렇게 늦게 왔구나?”
자신을 대련으로 이길 생각인 것 같았다.
페이커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눈에는 벌써 호승심이 가득했다.
“예약은 해놨어. 내일 가능하대. 밀려있지만 나는 우대가 된다고 하더라고.”
상대도 페이커다. 랭킹 1위였기에 당연히 우대를 받았지만 그래도 오늘 당장은 할 수 없는 듯했다.
“전장은?”
“언덕이 많은 곳. 지도도 받아왔어. 반년 전투 표준 전장 중 한 곳이야. 이거 말고도 여러 개가 있어.”
전장의 이름은 ‘기백 구릉’이다. 크고 작은 언덕이 수백 개인 지형다운 이름이었다.
“군대 포인트는 1만으로?”
“실전처럼 해야지.”
“좋아.”
페이커가 바로 일어섰다. 싸우고 난 뒤에 반년 전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건 소베니르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그대로 헤어졌다. 페이커는 페이커대로 움직였고, 소베니르는 소베니르대로 움직였다.
다만 둘 다 연병장으로 향하는 것은 똑같았다.
‘구릉 진형은 굉장히 힘든 전쟁터다.’
연병장은 마법을 통해서 진형도 변형시킬 수 있었다.
그 기능을 사전에 말해 주지 않은 견습 마법사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굳이 그렇게 사과를 안 해도 용서해 줬을 것이다.
기백 구릉에 병사를 배치시키고, 진형을 훑어봤다.
‘작은 언덕이 적다.’
해발 30m는 될 법한 중형 언덕과 50~100m쯤의 대형 언덕이 많은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궁병을 사용할 수 없어.’
적이 보여야 쏘는 게 궁수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화살을 백날 당겨봤자 큰 피해를 줄 수는 없다.
‘궁수들이 쓰이지 않는 곳이니까, 되레 경보병을 많이 쓸 수 있다.’
언덕을 넘고 넘어서 갑자기 확 튀어나오는 경보병과 궁수가 싸우면 궁수는 속절없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적을 색적하는 게 힘들기에 궁수의 지옥이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보병과 기병을 얼마나 잘 쓰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기습을 잘하느냐가 문제였다.
‘워-퀘스트 때와는 달라.’
손쉽게 하늘에서 내려다보듯이 지휘를 할 수 없었다. 작은 방에 들어가서 드론이 보여주는 화면과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지휘가 가능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실전적으로 변했고, 더욱더 불편해졌다.
‘빠르게 익숙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