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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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인형 아카데미의 하루는 새벽 6시에 시작된다.
이 때문에라도 보통 저녁 9시 전에 모두 취침에 들어간다.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았기에 억지로 깨어 있어지고 싶어도 그럴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불사른 하루였기에, 침대에 눕자마자 모두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든다.
인간이 하루에 쏟아부을 수 있는 열정을 마지막 한 톨까지 쓰게 만드는 곳이 강철 인형 아카데미였다. 신제국과 대적할 미래 군사력이다.
한 번 씻고, 뜨거운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페이커가 들어갔다. 그러곤 밖으로 나와서 차가운 물로 세수하고 밖으로 나와서 물기를 대충 닦았다.
미리 다림질되어 있는 제복을 입고,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고블린 메이드가 있었는데, 페이커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페이커 님.”
“오늘도 수고하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덕담을 주고받았다.
방을 청소하는 건 고블린 메이드의 일이었다. 지하 연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고블린들의 일자리 창출이다. 그들의 출산율이 너무 높아서 아주,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사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피해를 입게 된다. 치안이 낮아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자도 배가 고프면 남의 담을 넘는다.
주체하지 못하는 실업자는 노숙자가 될 뿐이다. 정부 지원금의 절반을 뚝 떼어서 칸막이로 구성된 1평 남짓한 쪽방에 25만 원을 내어주는 나랏돈 뽑는 기계로 기능한다.
실업자 고블린들을 위한 지하 연합의 지원이 계속될수록 그것은 암버섯처럼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값싼 노동력을 대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게 바로 청소업체 테스설레그(Tsetserleg)라 불리는 고블린 메이드 집단이다. 고블린 언어를 직역하자면, 깨끗한 수녀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었으나 완벽한 번역은 아니었다.
녹색 피부에 그나마 잘 어울리는 검은색의 제복을 입고 서둘러 청소를 시작했다. 먼지 한 톨도 용납할 수 없고, 어질러 놓은 곳을 다시 말끔하게 만드는 것도 빠질 수 없다.
특히 창문 틈. 벽 틈. 가구의 사이사이. 먼지가 모이기 좋은 곳은 하루도 빠짐없이 닦아야 했다. 일종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간식을 챙겨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장기의 인간은 정말이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먹는다. 식당도 뷔페지만 그것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매점도 있지만 그런 곳에 로열 랭커들이 향하게 해서 시간을 허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랭커들과 비교해서 약 2.5배의 넓이를 지닌 방을 받는 것이 로열 랭커였다.
식당으로 향한 페이커의 옷깃을 누군가가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에 페이커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소녀가 웃고 있었다. 머리카락 색도, 눈동자도 페이커와 똑 닮았다. 다만 미모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서 남매 사이라는 오해를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기념품(Souvenir) 어서 오고.”
“사기꾼(Faker) 안녕하고.”
예명이 소베니르인 소녀가 라임을 맞춰줬다. 이에 페이커의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둘은 커플처럼 다녔는데, 그녀가 실력 2위인 탓도 있었다.
둘은 식사를 시작하며 로열 랭크에게만 주어지는 과제에 대해서 떠들었다.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 다 했어?”
“어렵지. 이론은 쉬운데,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야 하잖아. 평범하지 않아.”
주관식이라는 게 다 그렇다. 아무리 해도 결국 상대평가라 노력에 노력을 해야 했다. 또 너무 길게 할 수도 없었다.
잔혹하게도 분량까지 짧게 제한을 두고 이를 넘으면 감점을 당한다.
무엇보다도 과제 자체가 ‘피로스의 승리가 무엇인가?’ 같은 일차원적인 과제가 아니었다. 피로스의 승리가 일어날 전투 상황을 상상하여 서술하라는 것이 진짜 과제였다.
즉, 실사례를 통해서 어떤 것인지 배우고 그다음에는 자신이 직접 조건을 내걸어서 그런 사례를 또 하나를 창조해야 했다.
“너무 많이 베끼면 좋은 점수를 못 받고.”
“너무 창의적이면 피로스의 승리 이론에서 벗어나 버리지.”
그 중도를 지키는 것이 어려웠다.
이건 현장 지휘관이 지녀야 할 가장 중대한 이슈이기도 했다. 사도(邪道)를 걷는 현장 지휘관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리가 없었다.
대군(大軍)을 이끌수록 정석에 가까운 행동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 여겨진다.
성을 지니고 있는데 굳이 나가서 싸우는 놈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은 군주의 마음이다. 잘되면 좋지만 안 되면 큰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다섯 명이 모이면 반드시 한 명은 쓰레기라는 소리가 있듯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는 아군의 트롤짓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도 승리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중도를 지키는 건 현장 지휘관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겨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승리라…….”
“다섯 번 싸워 승부를 결정지은 나라는 재앙에 휩싸여 멸망하고. 네 번 싸워 승부를 결정지은 나라는 피폐해지고, 세 번 싸워 이긴 나라는 반드시 패하고, 두 번 싸워 이긴 나라는 왕자(王者)가 되고, 한 번 싸워 승리를 거머쥔 나라는 제자(帝者)가 된다.”
둘이 동시에 이론을 띄웠다.
몇십 번, 몇백 번이나 곱씹었지만, 아직 완벽한 ‘상상 속 사례’를 만들지 못했다. 전쟁의 구도를 상상만으로 만드는 건 그만큼 고된 일이었다.
물론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이미 과제를 완성했지만 계속 수정하고 있을 뿐이다.
고쳐도 고쳐도 끝이 없으니, 불평불만이 입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제는 뭘 고쳤어?”
“보급.”
“나랑 똑같네. 어떻게 된 게.”
그중에서도 서로 의견이 딱 들어맞은 건 당연히 보급이다.
무엇으로 운반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 변수는 상상 이상이라, 사실 보급이 전투보다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런 의심마저도 들 정도였다.
“근데 보급이 중심이 되면 안 돼. 과제는 어디까지나 파로스의 승리에 대한 실사례를 상상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페이커가 훈수를 뒀다.
“나도 알아.”
뜨끔한 소베니르는 냉큼 답했지만, 마음속에 불안함이 생겼다. 주제를 벗어나면 감점이다.
“오후에 나랑 같이 과제 좀 보지 않을래?”
“나야 좋지.”
소베니르의 시각은 독특했기에 페이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사도의 길을 걷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식사에 집중했다. 뷔페식이라 마음껏 가져올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햄버거를 세 개나 가져왔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모두를 얻기 좋은 것이 햄버거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분이 적어서 아주 건강식이었다.
소베니르는 먹기 전에 토마토를 빼내고 먹었다. 그녀에게 토마토는 살인이다. 물컹거리는 식감을 싫어해서 신선도가 낮아진 채소는 입에 담지도 않는다.
그 이후에는 검술을 배운다.
페이커는 소베니르의 등에 짊어진 곰돌이 인형을 발견했다.
“나이가 몇인데 곰돌이야.”
“신경 쓰지 마.”
격하지 않은 자세를 배웠기에 식후에 하기 좋았다. 검술이란 것은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까지 자세만 가르치는 일도 있다.
이 때문에 어려도 검술에 입문할 수 있었고, 귀족은 마스터급 검사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조금만 자세가 달라져도 나는 죽고, 상대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것이 검술이라는 잔혹한 놈이다.
전술에 재능이 있는 이들이었기에 당연히 검술 또한 배워야 했다.
나중에 반마의 권좌에 앉을지도 몰랐다. 반마의 좌에 올라섰음에도 무력이 형편없다면 준초월의 힘을 제대로 못 다루기 때문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검술을 배운다.
가장 재미가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강해진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하게 그들은 강해지고 있었다. 아마 첫 실전에 그들은 상식 이상으로 강한 자신을 보며 얼떨결 해할 것이다.
9시에는 당연히 수업에 들어간다.
“오늘은 최근에 강철 인형으로 급물살을 탄 ‘고블린 방패병’과 그에 따른 아티팩트의 분업화에 대해서 강의하겠다.”
강의 자료가 배포됐다. 고블린 시종이 건네줬고, 차갑게 냉장된 커피가 놓였다. 설탕은 기호에 맞게 넣을 수 있었다.
페이커의 옆에 있는 소베니르는 커피를 쓰게 마셨다. 반면 페이커는 사각 설탕을 넣어 녹인 뒤 마셨다.
“고블린 방패병은 전에 말했으니 넘어가고, 모르는 사람 있으면 나중에 따로 찾아와라. 강의 내용은 언제든지 마법 크리스털로 복기할 수 있으니까. 그걸 참고하고.”
꼬장꼬장한 말이 이어나갔다.
낙오하면 도와주지 않는다. 나중에 자신의 시간을 사용해서 바짝 따라붙어야 한다. 그를 위한 배려가 곳곳에 존재했다.
“전투마는 계속 계량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철마(鐵馬)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강철로 만들어진 말이다.
“그 덕에 기병의 전력은 한층 더 강화됐다.”
중기병, 궁기병 막론하고, 자주 말을 바꿔줘야 한다. 한 번 전력 질주하면 말이 지치기 마련이다. 아무리 곡기를 때려 박아도 한계는 명확하다.
이 기병의 단점을 해소시킨 것이 강철마였다. 마력만 유지된다면, 계속해서 내달릴 수 있다. 그 덕에 기수 안장의 뒤쪽에 묵직한 마력 보관 통이 부착되어 있다.
끝없이 내달리는 중기병의 완성이다. 기동력을 위해서 마력 보관 통을 작게 하거나, 일회용 캡슐 형식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기병의 세부 병과에 따라서 모두 다르다.
“과도기 상황이라 자료를 뒤져보면 끝도 없다. 상위국의 경우에도 자치령마다 다르다. 해마다 바뀌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강철의 비’라 여겨지는 문화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하는 것이기도 했다.
강철 인형의 전투를 통해서 가장 완벽한 지점을 찾는 것이 다종족 연합의 목표였다. 수많은 전투 속에서 뚜렷한 방향성을 찾고, 가장 범용성이 높은 것을 손에 잡아야 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가장 큰 이슈라고 한다면 아티팩트 분업이다. 고블린 방패병에게는 생존력보다는 방호력을 강하게 제공하는 아티팩트가 지급된다.”
교수가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면 중기병에게 가장 중요한 아티팩트는 뭘까?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 오늘이 며칠이지?”
“23일입니다.”
“23… 빼기 1은 22니까. 2,222위 말해 봐.”
어펄 랭크에 속한 자가 일어섰다.
젊고, 혈기가 충만했다. 그는 쿤칸이라는 이명을 썼는데, 유목민들의 왕이란 뜻이었다.
땅을 보유하지 않는 유목민들의 왕은 대단히 모순적이고, 현실에서 만들기 어려웠기에 실로 위대한 이름이었으나, 이곳에서는 그저 어펄 랭크의 허세를 위해서 사용됐다.
“돌진력을 높이고 속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을 것 같습니다. 중기병의 본 목적이 돌파입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다. 중기병의 목적은 결국 돌파를 통한 적의 와해를 유발시키는 것에 있다. 정규병을 상대로 돌파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
경보병의 군세라 할지라도 ‘구멍’ 내지는 ‘빈틈’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으면 떼 몰살을 당할 뿐이다.
기병은 생각보다 그리 쉽게 보병 군세를 돌파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아티팩트의 힘으로 강화한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어째서인지 이유를 말해 볼 사람.”
그 말에 페이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귀족들의 시선마저도 모였다. 오전 수업은 다 같이 듣기 때문이다.
“말해 봐.”
“돌파를 위해서 기병이 돌파력을 높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기병은 다른 자들이 만들어 놓은 판에 끼어들어서 쓸어 담으면 됩니다.”
“조금 자극적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핵심을 꿰뚫었다.”
교수가 검지로 페이커를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모루와 망치 전술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빈틈은 기병들이 스스로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돌파력을 높여서 ‘돌파 가능’하게 만든다는 건 애초에 중기병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할 수 있다.”
탱커가 판을 깔아주고, 서포터가 지켜주며 적에게 딜을 꽂는 딜러의 위상이 기병이다. 남이 깔아준 판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억지로 아무 상황에서나 돌파력을 높이는 아티팩트? 필요가 없다.”
“기병을 위해서 존재하는 다른 병과들의 목숨으로 만들어지는 빈틈으로 들어가는 것이 기병이다. 그들에게 돌파력 증가 아티팩트는 무의미하다.”
교수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