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화
17. 페이커
본격적으로 강철 인형 전쟁에 많은 자원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외적인 부분이 가장 컸다.
“신제국 놈들, 미쳐 버린 건가!”
쾅!
도렌 상위국왕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그는 오래 살기 위해 이미 반마로 격이 높아진 상태였기에 책상이 두 쪽이 나 버렸다.
“첩보로 들어온 정보로는 경매로 얻는 돈을 그냥 싹 다 강철 인형 쪽으로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강철 인형 공장도 하나 신설했고, 지하 연합으로부터 마법사도 초빙하여…….”
수많은 정보가 파도처럼 쏟아졌다.
하나같이 흉험한 것이다.
‘신제국에게 질 수 없다.’
신제국과 상위왕국은 서로 같은 점이 많았다. 그들 모두 인간이 지배하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런 국가에서 군비 증가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국왕 회의를 열어야 한다!”
도렌이 빠르게 움직였다.
회의는 금방 소집됐다. 민간 교통은 크게 발달하지 못했지만, 국가 간 이동 교통은 빠르게 발달한 상태였다.
“맞불을 놓아야 한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관계처럼 서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사이다.
상위국왕 네 명이 모인 회의에서 도렌이 단언했다. 다른 이들 또한 이에 동조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난감한 표정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세리안이 그러했다.
“신제국과 맞불을 놓으면 그 부담이 크지 않나.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이권을 들어 올렸다. 네 명은 이제 서로 절대 권력을 수립한 상태였기에 서로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상위인간을 만들어 내는 데 많은 마력 자원이 들어가는데, 이 이상으로 강철 인형 쪽에 역량을 투입한다면 상위 인간의 발생 비율이 크게 낮아질 것이다.”
상위왕국은 ‘마력’을 품은 상위인간(上位人間)을 추구하는 국가였다.
세파리아스는 그것을 인간을 포기하는 일이라 했으나, 상위국에 살아가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성력 혹은 마력을 과다 복용하듯이 체내에 장기간 보유하고 있으면 그릇이 만들어진다.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상위왕국이었다.
그 근본을 거스르는 행위가 필요했다.
“상위국의 백년대계가 있거늘, 어찌 이리 쉽게 바꾼단 말인가?”
자원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당겨쓰는 것이 아니다.
“도렌 상위국왕은 너무 급진적이다. 교육조차도 백 년을 쓰고, 새로 바꾸는 것인데, 상위인간을 적게 만들고, 당장 군비에 쓴다? 이건 아니 될 말이다.”
신제국처럼 할 수는 없었다.
상위국(Superior Country)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건 ‘마력 자원’이다. 마력을 지니지 않은 인간의 체내에 강제로 많은 마력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나라의 국기(國基)나 다름없었다. 상위국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게 필요하다. 신제국은 닥치는 대로 전력을 추켜올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악마 침공 때 공적이 크게 갈릴 것이다. 이를 가만히 두자는 소리인가!”
명예!
그 명예를 포기한다면, 국격이 낮아질 터다.
“모든 이들이 상위국을 신제국 아래로 볼 미래를 오늘 결정하는 것이다.”
도렌이 주먹을 흔들어대었다. 그 주먹은 권력이며, 이권이며, 명예였다. 그것을 어찌할지는 여기에 있는 네 명이서 결정해야 한다.
다만, 네 명 중 두 명은 그렇게까지 의욕적이지 않았다.
드낙이 ‘악마’의 권좌에 앉아 완벽한 초월자에 올라섰을 때 그들은 이미 영생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생을 얻었으니 힘든 길을 갈 이유는 없었다.
“너무 신제국과 각을 세우는 것 아닌가? 우리가 굳이 그들의 라이벌이 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잘 생각해 봐야 해.”
길게이가 신중론을 내비쳤다. 이를 아크온이 냉큼 받았다.
“신제국은 결국 다른 차원으로 침공하러 가는 국가 아닌가. 나중에 가면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이들은 우리 상위국으로 올 것이다.”
서로 이야기가 된 것이 틀림없었다.
상위국왕은 고작 네 명이어서 담합하기 쉬운 구조였다. 다만 다행스러운 일은 자치령을 통해서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 땅에서 나오는 세수는 오롯이 그 땅을 지배하는 상위국왕에게로 향한다. 다른 상위국왕은 다른 상위국왕의 자치령에 대한 권한이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하아…….”
도렌이 고개를 떨궜다. 저들의 생각이 너무나도 표상적이며, 간사한 탓이다.
그 속에서 세리안의 목소리가 송곳처럼 그들의 귀를 쑤셨다.
“기사에게 덤비는 문인들이 생각나는군.”
찬물이 끼얹어진 것 같았다.
“싸움이 진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가?”
그녀의 싸늘한 눈이 길게이와 아크온을 훑었다. 마지막에는 도렌으로 향했다. 그 또한 옳은 소리를 했지만 그건 싸우고 싶어서 한 소리가 아니었다.
“겁쟁이 같은 놈들.”
전쟁을 똑같은 수준으로 준비해서 상대가 덤비지 못 하게 하려는 겁쟁이의 생각이 깔려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는다.”
도렌의 말에 길게이가 손사래를 치며 딱 잘라 말했다.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 드낙 님께서 계시는데 어찌 내전이 일어나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지금 이렇게 자꾸 신제국을 신경 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만 하면 된다. 이미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더 이상의 경쟁은 없었다. 길게이와 아크온은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괜히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신제국은 결국 하위 인간일 뿐이며, 마력을 지닌 채 태어나지 못한 이들이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마력 자원을 지닌 상위인간을 꾸준히 만들어나간다.”
마력 차원의 차이를 통해서 서서히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그 말에 세리안은 그럴듯한 표정을 지었다.
“뛰는 토끼와 느린 거북이의 싸움인가.”
“거북이보다는 천천히 굴러가는 눈덩이와 같다. 나중에 가면 상위국의 덩치는 태산보다 커질 터다.”
모두 확신이 있었다.
“어찌 그리 확신하는가? 마력 한 줌 없는 인간들이 많이 살아가는 신제국은 그 끝에 그대들의 적수가 도지 못할 것이라고 진정으로 생각하는가?”
“그들은 반마의 격을 받아들였지만, 그것마저도 소수 아닌가?”
극소수의 인간들만 반마의 권좌에 올라 영생을 누릴 것이다. 마력도 지니게 되겠지만, 지배계층 혹은 기득권이라 할 만한 이들이나 반마의 권좌에 오를 것이다. 여전히 마력 없는 인간들이 가장 많을 터였다.
도렌은 ‘신제국 소수론’을 깨부수지 못했다. 뭘 해도 결국 신제국은 초월의 힘 보유자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위국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치령 한 곳이라도 신제국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나?”
실로 간사한 말이었다. 도렌 보고 하라는 뜻이나 진배없다. 지금까지 도렌이 그렇게 하자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독박을 쓰는 일이다.
여기서 도렌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도렌 자치령은 순식간에 몰락하게 될 것이다.
건 말 그대로의 ‘몰락’은 아닐 것이다. 상대적 빈곤이라 할 수 있었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인간은 언제나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이라는 것은 그것을 고통이라 여기기에 생기는 것이다.
도렌이 다스리는 자치령이 신제국의 군사 개혁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한다면 자연 다른 이들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상위국왕을 드높이는 일이 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경제이며, 그것은 자기 밥벌이다. 식량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지만, 여전히 식량을 돈을 주고 사야 하며,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을 자신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이 해봤으면, 나도 해봐야 하고, 내 자식도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마음이 마음속에 들어 있었다.
‘잘 짜인 덫이다.’
도렌이 아차 싶었다.
세파리아스의 위대함과 하나 된 신제국의 극단적인 행동에 이들이 바로 협력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결코 그렇게 될 수가 없었다.
‘안 할 수도 없다.’
공교롭다. 신념을 부러뜨려야 하는 일이다. 오물을 뒤집어써서 제법 정치인답게 만들려는 속셈이기도 했다.
하면 상위국의 인간들이 고통받을 것이고, 하지 않으면 도렌은 예전만 못하게 될 것이다.
한 번 더러운 물이 얼굴에 튀면, 결국 똑같은 놈이 된다.
신념 있는 놈을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집어넣는 일은 손쉽다. 이제 제법 살 만하니, 이런 헛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면 하겠습니다.”
써도 받아먹어야 했다. 도렌에게 세파리아스가 다스리는 신제국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도 넘으려고 노력은 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상위국은 신제국에게 잠식당할지도 모른다.
세파리아스의 정복욕은 전혀 가볍지 않다.
꼭 피를 뿌리고 살을 도려내야 다른 국가를 점령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른 방법도 많았다.
“결정 났다.”
“신제국의 파도가 아무리 험해도 도렌 상위국왕께서 맡아주신다니 크게 안심이다. 안 그런가? 세리안 상위국왕.”
그 말에 세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실로 그러하다. 그렇다면 해마다 그에게 지원금을 줘야 하지 않겠나? 그대는 얼마나 생각하고 있나?”
“뭐라?”
“지원금?”
“뭘 놀라고 그러나? 우리는 모두 상위국왕이다. 한 사람이 대계를 맡았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거면 왜 상위국의 틀에 있나? 서로 따로 건국해야지.”
너무나도 노골적인 말이었다. 세리안은 두 사람을 대놓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건 길게이와 아크온에게 조금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의 허락하게 일을 벌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균형을 맞추려는 것일 뿐이다. 최소한 돈이라도 쥐여줘야 하지 않겠나.”
“음.”
타협이고, 양보다.
그걸 깨달은 아크온은 고민에 빠졌다. 반면 길게이는 분노를 삭이느라 힘들어 보였다. 플래티넘 가문과 불파겐 가문의 불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인재가 없어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매년 금화 1만 닢이라면 넉넉할 것 같은데. 어떻나?”
“우린 아직 ‘우상을 위한 제단’조차도 받지 못했다! 금화 1만 닢이라니! 합치면 3만 닢을 받게 된다! 매년 3만 닢이다!”
반발이 일어났다.
“떼를 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명확하게 선택해라. 결국 신제국의 뒤를 따라가는 건 상위국에게도 이익으로 돌아온다. 악마 침공은 예정되어 있고 우리는 군사력이 많아야 한다.”
“…….”
결국, 그들은 금화를 내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도렌의 성장을 방해했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그 대신 자신들은 인력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성장시키면 된다고 여겼다. 동시에 세리안은 자신들의 완전한 아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 * *
도렌은 막대한 돈을 통해서 강철 인형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수많은 이들이 도렌의 자치령으로 향했고, 새로운 기숙사에 들어섰다.
상위국의 랭킹에 든 이들만 옮겨갔는데, 확실하게 최정예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중에는 페이커라는 이명을 쓰고 있는 소년도 끼어있었다.
‘여기가 내가 새롭게 지내야 할 곳…….’
전에 살던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다. 받는 돈은 족족 부모님에게 내어줬는데 이렇게까지 먼 곳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열심히 해야 해.’
전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었다. 종이 화폐를 쓰지 않고 구리가 동화에 쓰이는 탓이다. 전깃줄을 만들기 위한 고무도 많이 부족했고, 석회는 운반하는 것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국가라고 해도 거리가 먼 상황에서는 부모님께 돈을 보내드리기 힘들었다.
도렌이 ‘관리의 재교육(Re-education)’을 위해서 지은 건물은 대지만 해도 1만 평이 넘는다.
말 그대로 30대 후반의 관리들이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용도로 건설한 곳이었다.
도렌은 청렴을 중요시하고, 항상 베풂을 으뜸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도렌의 인재풀이 항상 부족하다.
실력만 좋으면 비리도, 심지어 사위가 살인해도 숨겨주는 관리를 사용하는 다른 곳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 탓에 부족한 인재를 채워 넣기 위해서 꾸준히 재교육을 시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곳을 도렌은 포기했다.
[강철 인형 아카데미]
그곳은 강철 인형을 위한 교육소가 됐다.
‘벼랑 끝에 섰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신제국이 닥치는 대로 전술가를 만드는 데 돈을 쏟아붓고 있는 탓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새로 짓는다면 그 시간만큼 허비하게 된다.
그럴 수는 없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가벼운 사내가 아니다. 그는 한다면 하는 인간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예제도라도 부활시킬 정도로 피해를 도외시한 공세를 취하는 것이 신제국의 황제라는 놈이었다.
‘나도 손해를 생각하며 움직여야 한다.’
그게 강철 인형 아카데미를 출범시킨 이유였다. 적어도 세파리아스보다 한발 앞섰다고 할 수 있었다.
‘드낙 님께서는 강철 인형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전쟁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미 늦는다. 지금부터 확실하게 전쟁에 임해야 한다.
소년조차도 전쟁의 도구로 키울 마음으로 나서야 했다.
상위국은 네 명의 상위국왕으로 국력이 분열되어 있었다. 그 분열을 안고 세파리아스에 준하려면 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