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화
화폐 경제의 가장 강렬한 유혹은 무엇인가.
“바로 돈이다. 찍찍.”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뿔 쥐의 그림자가 크게 일렁거렸다. 워낙 잘 먹어서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통통한 쥐의 입 주변이 꿀렁거렸다.
뿔 쥐들은 돈맛을 안다.
모든 지성 종족은 돈벼락을 맞고 싶어서 환장한다. 당연하게도 돈벼락을 맞을 기회는 사회계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된다.
모든 땅이 어느 공사의 것인 것처럼 공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는 애매한 놈들은 감히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밑에 사람들에게도 일확천금의 맛을 보여주는 건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었다.
지구에는 그런 것이 하나 있었다.
“이 복권이란 것이 아주 사악하다.”
대장 쥐가 백과사전에서 복권이란 것에 대한 것을 읽자마자 목소리를 냈다. 이에 기민하게 다른 뿔 쥐들도 복권이란 것을 찾아봤다.
“돈을 몰아주는 게임이라…….”
“세금을 아낄 수 있다.”
“지하 연합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 많다! 이 복권은 국세를 낭비할 수가 없다!”
복권 시스템은 척 봐도 돈 없는 국가가 시행하기에 좋았다. 복권을 구매하는 이들의 돈으로 하는 돈놀이였다. 국가는 카지노 딜러 같은 입장이다.
다만, 그 세세한 적용 사례를 본 대장 쥐는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예를 들면, 동화 100닢을 냈는데 몰아서 받는 돈에는 50닢을 주고, 나머지 50닢은 나라가 가져가는 식이다.’
정신을 놓았나 싶을 정도의 분배금이었다. 그냥 세금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복권을 통해서 궁전도 짓고, 성도 짓고, 여러 가지 일을 한 역사 사례 또한 읽었다.
“사악하다!”
대장 쥐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이 일갈했다.
“사악하면 우리 뿔 쥐의 것이다!”
“욕을 먹을 정도로 간사해져야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모실 수 있다!”
더러운 짓도 서슴없이 하는 것이 뿔 쥐들이다.
그런 뿔 쥐들에게 복권이란 것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특히 ‘복표발행죄’도 배울 만했다.
국가쯤 되는 세력 외에는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두는 법이다. 간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돈을 벌지.”
“지하 연합에는 멍청한 이들이 많다. 찍찍, 복표발행죄는 반드시 배울 점이다.”
그게 없으면 지하 연합은 복권에 점령당할 것이고, 국력마저도 복권에 의하여 전복될 공산이 크다.
복권은 아주 위험한 도구다.
‘쓰고 싶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복권은 크게 돌아올 것이다.
“수근수근!”
뿔 쥐들은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복권이란 놈은 아주 악독하고 사악한 것이었지만 개인이 보기에는 큰 유혹이 될 수 있었다.
“해볼 만하다!”
“이름은 우상 복권이라고 하면 되겠다.”
하느님을 우상숭배 한다면 큰 경을 칠 것이다. 불상의 귓불이 떨어졌다고 해서 크게 난리를 치는 스님은 없다. 불교에서 부처란 것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드낙은 그런 우상숭배를 원했다. 그러니, 그 이슈몰이에 쓸 복권 또한 우상 복권이라는 이름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뿔 쥐들의 중론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권을 오해할 이들이 있다.”
우상을 위한 제단을 위해서 만든 복권이다. 그 목적을 잃어버리는 이들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들어라!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께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준 제단이다! 이 제단을 기념하기 위해서 복권을 만들었다! 그러니 이 복권의 이름은 우상 복권이 되어야 한다!”
찍찍!
너도나도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찬성표를 내던졌다.
“우상을 위한 제단은 그 누구보다 빨리 반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위대한 것을 우리는 하사받았다. 그러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무생물인 우상을 위한 제단에 업(業)을 쌓는 건 업 전도율이 높았다. 효율성이 뛰어나니 우상숭배가 이득이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들의 업(業)이 드낙 님께 향하고, 드낙 님께서 다시 반마가 될 이에게 업(業)을 전달한다. 그건 실로 비효율적인 일이다.’
생명체에서 생명체로 향하는 일이다. 드낙의 업 제어력이 아무리 높아도 한계가 명확했다. 하지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통해서라면 능히 이를 쉽게 제어할 수 있었다.
신앙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었으나,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우상을 위한 제단에 있는 드낙의 모습은 실제 드낙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우상을 위한 제단이라고 한 까닭은 공교롭게도 드낙이 현대인이라서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상을 만들면서 자꾸 연봉 10억 목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시급 이상의 노동 가치를 받았던 적이 대단히 드물었기에 초월자가 되었음에도 마음에 열등감이 남아있었다.
“우상 복권은 지하 연합의 모든 이들이 참가할 수 있다! 찍찍!”
“매달 추첨을 하고, 그간 모았던 모든 돈을 100명이 가져간다!”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그냥 추첨식이었다. 제비뽑기였고 수도 100명으로 많았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충분한 이슈몰이를 하기 위해서였고, 그 지속력도 높이기 위함이다.
“우상 복권 구매 수를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블린들이 잔뜩 살 것이다!”
고블린들과 제법 어울린 뿔 쥐가 또 하나의 의견을 냈다.
“1매당 은화 닢이며 1인당 10매 이상 사지 못하도록 해두겠다!”
대장 쥐는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너무 사도 문제였다.
결국은 종이 쪼가리고, 당첨되지 않으면 개인의 손해로 그대로 이어진다. 손해가 생기면 그 개인은 경제 활동을 못 하게 된다.
한 명의 소비력이 사라지면 화폐 유동성도 낮아진다.
지폐가 도는 건 엘프 도시뿐이었다. 동전 화폐 경제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에 한 명, 한 명이 중요했다. 그들이 빚을 지거나 딴짓으로 허망하게 한 달 쓸 화폐를 쓰지 않는다면… 알게 모르게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모인 돈의 3할은 지하 연합의 국고로 넣고 나머지 7할을 배분하도록 하겠다.”
아주 인도적인 행위였다.
“지금부터 곳곳에 정보를 퍼뜨려라! 지하 연합을 넘어 지상에도 이 소문을 반드시 퍼트려야 한다.”
드낙이 뿔 쥐에게 우상을 위한 제단을 먼저 준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인구수가 많았기에 충분히 우상을 위한 제단을 바로바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모이는 업이 다른 세력에 비해서 많았다.
‘우상을 위한 제단은 제작 기간이 비교적 길고 그 효력을 받기 위해서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반마를 만드는 건 그만큼 많은 업(業)과 과정이 필요하기에 지하 연합만이 100% 활용할 수 있었다.
‘우상을 위한 제단과 우상 복권을 통해서 효과를 입증받기 전에 먼저 휘몰아친다.’
그게 대장 쥐의 계략이었다.
“복권에 대해서는 조금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필멸자를 반마로 올라서는 우상을 위한 제단에 대해서 말해라.”
“열 번이라고 치면 세 번은 복권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아니! 아니다! 복권은 정말이지, 무서운 놈이다. 복권은 한 번만 말해도 이목을 확 끌 것이고, 절대 잊어먹을 수가 없다. 아홉 번은 반마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빈도로 이야기하는지도 격론의 대상이었다.
그건 대장 쥐도 조금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두 번은 복권에 대해서 말하는 게 좋다.”
“우상을 위한 제단은 말하는 것도 힘든데, 금방 잊어먹거나 다르게 알아먹을 것이 분명하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제단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다 쓸데없는 일이다! 복권으로 시선을 모으고, 제단을 끼워 넣어야 하니 복권을 다섯 번쯤은 말하고…….”
“찍찍!”
뭣이 그렇게 중한지 이 논쟁만으로도 일주일을 허비해야 했다. 결국, 개인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 * *
곧 우상 복권의 존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구나 카드놀이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지하 연합의 술집에 뿔 쥐 한 마리가 들어섰다. 몇몇 이들이 뿔 쥐에게 관심을 가졌다.
‘여기는 그리 좋은 술을 안 파는데 뿔 쥐가?’
중급 권속 악마까지 격상한 뿔 쥐들은 못 하는 일이 없었다. 확실히 엘리트에 속한 이들이다.
모두의 눈이 뿔 쥐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눈을 거뒀다.
이런 뿔 쥐가 있다면 저런 뿔 쥐도 있다. 뿔 쥐라고 모두 대단한 건 아니라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자격지심 탓이다. 열등감 덕분에 뿔 쥐는 납득받을 수 있었다.
“복권?”
당첨자는 돈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행복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공을 세운 이들을 반마로 만드는 일이 진행된다는 것은 큰 이슈였다.
“들었어? 복권이래.”
“너도? 나도!”
“그뿐만이 아니라던데, 지금 반마를 만들 수 있는 제단이라고… 물망이 올라온다던데…….”
“반마 제단? 설마 뿔 쥐만 받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크놀 쪽에서도…….”
“고블린이 빠질 수야 없지.”
우상을 위한 제단은 반마 제단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서 퍼져나갔다. 아무래도 그게 부르기 편했다.
“그간 지하 연합에 공적자가 많았잖아. 돈도 돈이지만 결국 영생을 얻는 게 뭣보다 중요하지.”
“그걸 이번에 해소하는 건가? 그럼 왜 복권을?”
“찍찍! 밑에 사람들의 불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지.”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다.
이 소식은 다른 이들에게 금방 퍼져나갔다. 안 퍼져나갈 수가 없었다.
모두 우상 복권 때문이다. 큰돈을 얻을 수 있는 이벤트와 함께 시작된 반마 탄생이다. 소문은 그 누구도 막지 못했고, 막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지상은 난리가 났다. 특히 기득권층의 웅성거림이 가장 컸다.
그들의 하수인은 더 열정적으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더, 더 말해 보게!”
“여기 동화 3닢이다. 어서 맥주를 이 사람에게!”
“여기! 공짜 술이다!!”
술도 잘 팔렸다.
옛날에는 매년 봄마다 금주령이 내려져서 술이 지독하게 그리웠는데 이제는 식량이 넘쳐나서 술도 넘쳐났다. 충분히 공짜 술을 먹을 요건이 됐다.
“니미럴. 어떻게 밀 한 포대보다 술이 더 싸? 이게 말이 되냐고!!”
“아. 킥킥. 밀이 넘쳐나는데 어쩌라고! 이렇게 싸게 술을 마시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지!”
정말 행복한 시대였다.
금주령이 없는 시대라니. 꿈만 같았다.
매년 식량 문제로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 추수할 때도 금주령이 내려져서 정말 개 같았던 적이 많았던 중장년층은 옛날 생각을 했다.
“워-퀘스트에서 무조건 성과를 내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던데…….”
헛소문도 제법 퍼지긴 했다. 오히려 그게 사람들을 더 부추겼다.
“분명 악마 전쟁 때… 마신과 싸울지도 모르지…….”
야망이 있는 자들에게 위기는 큰 기회였다.
어찌 되었든 ‘강철의 비’는 더욱 이슈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우상을 위한 제단은 지급에 차등은 있겠지만, 전쟁에 참여할 전술가들이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내 자식은 그래도 관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 전술가가 되면 월급도 나라에서 받는 거야. 안정된 삶이지.”
혹시 모를 혼란을 막기 위해서 미리 소문을 조성한 것도 있었다. 철저한 세계라 보기에는 완벽하지 않은 첩보망 때문에 미리 선수를 치는 것에 불과했다.
산업화 때문에 많은 역량이 생산과 소비에 집중되어 있었고, 지배하는 것에 투입된 인원은 극히 드물었다.
재물이 많이 생산되고, 많은 이들이 이를 누리고 있었기에 치안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범죄자도 매년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덕에 범죄자 출신 노동자를 통해서 시민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
범죄자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것을 팔아서 매달 배당금처럼 시민들에게 돈이 들어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있었다. 공짜로 남을 위해서 일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내가 일해서 번 돈인데, 남한테 가는 것만큼 화가 나는 일도 없었다.
특히 범죄자들은 대단히 이기적인 놈들이었다. 그게 자신보다 찐따 같은 놈들에게 공짜로 돌아간다? 분노할 만하다.
강약약강의 존재가 바로 범죄자들이다.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서로 고꾸라뜨리기 바쁘다. 약자들에게 자신의 돈이 간다는 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생을 얻는 제단이 나타났다. 그것도 다른 종족들에게는 주어지지 않고, 지하 연합에게 먼저 돌아갔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소!”
“지금 당장에라도 여론을 뒤집어야 합니다!”
각 세력의 기득권들은 불안감에 떨며 큰 소리를 냈다. 물지 못하는 개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펄쩍 뛰었다. 가볍게 볼 수가 없었다.
드낙의 통치 아래, 개인은 다른 나라로 이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성장과 이슈에서 밀리면 인구를 자신들의 나라에 붙잡아둘 수가 없었다. 이주민들로 인하여 인구수가 낮아지면 그걸로 끝이다.
그 소란과 동시에 드낙의 명령서가 각 세력에게 전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