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14화 (1,113/1,239)

1114화

‘자식 때문이지.’

드낙의 말은 심플했다.

‘자식이 잘나가도 문제야!’

악마 침공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속에서 드낙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초월자로서의 길을 걸을 것이다. 물론 그러지 못한 자식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반마의 격에 올라서서 영생을 살아갈 터였다.

자주는 못 만나지만 그래도 혈육의 정이 있다.

드낙은 거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 시작이 현대의 천한 노예 계급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는 은근히 혈육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그건 그가 악마가 되어 오롯한 초월자로 거듭났음에도 벗어나지 못한 굴레였다.

전지전능하지 않기에 존재가 변화했어도 그는 그였다.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세파리아스가 초월자가 되었음에도 다른 차원을 침공해서 신을 죽이고, 인간을 해방하겠다는 목표를 바꾸지 않는 것과 같았다.

드낙은 지금에 와서야 겨우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누리게 됐다.

커리어. 결혼. 자식. 권력.

그런 것을 죽은 후 전생하여 이뤄냈다.

그 욕심은 악마의 권좌에 올랐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원대한 세상을 펼쳐냈지만 결국 그 속에는 자식들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한 아비의 모습이 깃들어 있었다.

다만, 조금 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잘 살게 하겠다는 것에 덧칠해져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실로 간사했다. 그것이 드낙이다. 이 대륙을 지배하고, 이 행성을 운영하려면 ‘선(善)’하게 보여야 하니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드낙이 혼잣말을 했다.

“강철의 비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며 문화다.”

강철 인형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많은 노동력과 자원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그것을 즐기면 즐길수록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 일자리가 된다.

대중이 얻는 것은 문화와 일자리다.

강철은 끝없이 채광될 것이고, 그만큼 사람들의 땀이 필요하다.

그 굴레를 드낙은 강철의 비를 통해서 만들어 냈다. 강철 인형과 강철 인형이 서로 부딪치는 싸움 속에는 삶이 있었다.

그건 광부의 삶이기도 하고, 공장 노동자의 삶이기도 했다.

‘일하면 대우받는 세상의 완성이 머지않았다.’

허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중립신이 사라지고, 이 테라라 불리는 행성은 성장을 멈추게 됐다. 다시 이 행성이 성장하려면 드낙이 인신으로서 꽃을 피워야 했다.

그 꽃은 지금 봉우리가 된 채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마의 권좌에 오른 초월자가 인신(人神)의 성배를 들어 올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업(業)이 필요했다.

그 업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 테라라 불리는 정원을 잘 가꾸며 생명체들이 그에게 신앙을 바치고, 업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도록 만들어야 했다.

악마가 정원을 가꾸는 모습은 우습기 그지없겠지만, 들어오는 업을 생각한다면 악마들도 생각을 바꿀 터였다.

‘신의 성배를 들어 올려 인신이 된다.’

그다음에 할 일은 인신의 권능으로 실뜨기를 하듯이 테라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채광하고 사라진 철광석을 다시 채우고, 광부가 할 일이 영원토록 있게 만들 것이다. 증가하는 인구수만큼 땅이 넓어지며 또 집을 지을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갈등 없는 낙원이 완성될 것이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드낙은 자신의 탐욕을 채운다.

온종일 부인과 함께 뒹굴면서 해가 지는 모습을 해변에서 구경하는 사치를 부린다. 그건 분명 그의 탐욕이다.

자식을 반마로 만들어서 영생을 살게 만드는 것 또한 훌륭한 탐욕이었다. 내 자식이 부모보다 일찍 죽는 것을 용납할 드낙이 아니다. 그리고 그 탐욕을 위해서 ‘워-퀘스트’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뜬금없지만 진실로 그렇다.

‘우수한 전술적 재량을 지닌 현장 지휘관 및 부사관을 모조리 반마로 만든다.’

그 이슈몰이 속에서 자식들을 반마급으로 자연히 성장시킨다.

완벽한 계략이었다.

“흐흐흐.”

드낙이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완성한 것을 올려다봤다.

그건 우상(偶像)을 위한 제단이었다. 자신을 본뜬 것이다. 만티코어에 올라타 있고, 그 주위로 드낙을 따르는 이들이 잔뜩 형상화되어 있었다.

그의 조각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런지 엉망이긴 했다.

눈의 크기가 다르고, 삐뚤삐뚤했다.

이빨이 옆의 사람 입술보다 큼지막하게 옆으로 넓적한 것도 있었다. 재료 또한 복잡했다.

나무, 돌, 쇠붙이, 흙 따위로 만들어져 있었다.

혼돈(混沌)을 주제로 삼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반마를 만드는 우상을 위한 제단이었다.

‘스마트~하게 하는 거지.’

우상을 섬기지 마라!

참종교인들이 입에 담고 사는 말이다.

우상을 섬기지 마라! 하느님을 믿지 않고, 목사를 믿는 자들아! 우상을 섬기지 마라!

다만, 연봉 10억 목사를 보고 자란 대한의 건아, 드낙에게 있어서 우상이란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라면 그렇게 돈을 벌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 아닌가? 허나 현실은 다른 법이다.

드낙은 억대 연봉 목사를 꿈꾼다. 그런 발상으로 만든 것이 이것. 우상을 위한 제단이었다. 여기에 업(業)을 쌓는다.

‘큰 차이가 있지.’

드낙은 악마다. 거기에 생명체다.

반대로 우상을 위한 제단은 무생물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업(業)을 더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드낙으로 흘러들어 오는 업의 효율은 그렇게 높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을 만들었다.

‘이걸 도시마다 흩트려 놓고, 그 도시에서 발생하는 업을 전달받아서 저장한다.’

충분히 저장되면 사용자를 반마로 만들 수 있었다.

“후후후! 후하하하하!!”

드낙이 크게 웃었다.

물론 말이 도시지, 가장 나중에 특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 이것은 특혜다.’

필멸자에게 내리는 상이다. 그 상의 목적은 명백히 대국적이나 동시에 개인적인 것이다.

“준비된 시간이 되었는데.”

드낙이 시간을 확인했다. 그는 대국적으로 상을 받아 마땅한 전술가를 반마로 만드는 연막을 치고 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더 간사한 계획을 세웠다.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가야 하지.’

막노동하면 한 번 허리가 삐끗하면 그만큼 손해가 막대하다. 몸 다치지 않고, 하루하루 막노동을 해야 한다.

드낙이 그와 같았다.

‘어떻게 얻은 일자리냐.’

무려 한 차원을 지배했다. 행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영생은 물론이고 어지간해서는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초월의 격이다.

‘여기서 고꾸라지면 안 되겠지.’

비유할 수 있는 건 그저 일용자의 삶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현실에서 살아갔기에 일용자의 경험도 훌륭한 지표가 될 수 있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차이다.

“뜨나아아아악!”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을 뵙습니다!”

뿔 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음침한 지하 공간에 홀로 있는 드낙의 주위로 많은 뿔 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가 가히 만(萬)을 넘어서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드낙의 호출에도 응한 이들이 이만큼이나 많았다. 거기에 심지어 대장 쥐까지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일이 보통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안 것이다.

입 주변에 길쭉하게 튀어나와 있는 긴 더듬이 같은 굵은 털이 위아래로 꿈실거렸다.

“대장 쥐. 일이 바쁠 텐데 용케도 왔구나. 다른 이를 보내도 상관없다고 했을 텐데.”

“부름에 응했을 뿐입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입니다. 물론, 지하 연합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통치자가 하루를 떠난다 한들 변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고작 뿔 쥐 한 마리가 빠졌다고 해서 몰락할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기뻐하소서!”

“기뻐하소서!”

그들의 외침에 쩡쩡 울려 퍼졌다. 지하 공간에 잔뜩 퍼져나가고 있었다.

드낙은 이를 둘러보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 켠이 웅웅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감정에 젖은 기분이다.

파이고, 파이고, 또 파인 삭막한 남자의 가슴이 느낄 수 없는 기분이다.

‘나도 이제는 많이 편해졌다는 거겠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할 사람은 변한다.

우리는 모두 관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비이성적인 존재다.

하지만 비이성적이기에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드낙도 많이 변했다. 현대 사회의 삭막한 노동자로 살며 짓밟혔던 마음이란 것이 제법 새살이 돋고, 상처가 회복되고, 흉터만 남게 됐다.

“많이 변했다. 자랑스럽다.”

그 말에 뿔 쥐들의 눈시울이 붉게 변하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누가 지금 상황에 일만의 군세를 아무 이유 없이 보내겠는가. 그것도 지배자가 되는 이가 땀을 흘리며 나를 찾아오겠는가.”

뿔 쥐들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저 충성은 진심이다.

“내 자식들을 반마로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따르겠나이다!”

“지상의 놈들은 그걸 용인하지 않겠지. 미술관의 일을 배우는 이가 왜 준초월의 존재가 된단 말인가?”

“그들을 가르치소서! 우둔한 자들입니다!”

뿔 쥐들이 하나 되어 외쳤다.

드낙이 ‘해줘’라고 말하면 ‘해줄게’라고 답해 주는 것이 작금의 뿔 쥐들이다.

뿔 쥐의 탄생에 드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로의 피가 진하게 섞여 있기에 그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6살 난 귀여운 아들을 몰래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빼돌려서 스키장에 가서 신나게 놀고 점심으로는 돈가스를 먹이는 것.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그런 헌신이 뿔 쥐에게 있었다.

“너희가 대신 여론을 형성해 줘야겠다.”

턱! 턱!

드낙이 우상을 위한 제단을 툭툭 쳤다. 그 높이는 5m를 넘어서고 있었다. 재료는 잡다했지만 그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은 당연히 드낙의 피다.

악마의 피를 잔뜩 머금은 것이다. 막대한 업(業)을 보관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나에게 매일 같이 바쳤던 피의 봉헌을 오늘부터 여기에 대신하도록 해라. 그리고 때가 된다면 이 우상을 위한 제단 아래에 있는 피를 받아 마셔라. 그렇게 한다면 누구나 반마의 격을 얻을 수 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우리가 따르겠나이다아악!”

“오로지 높게 솟으소서! 우리의 시체로 산을 만들어 드높이겠나이다!”

뿔 쥐들이 광신도처럼 그를 찬양했다. 그 선두에는 대장 쥐가 있었다. 그는 가장 열정적이었다.

우상을 위한 제단이 가장 먼저 뿔 쥐들의 손에 들어왔다.

뿔 쥐들은 이것을 이슈 거리로 만들고, 탐욕의 소용돌이 중심에 놓는 임무를 맡게 됐다. 그렇게 ‘상업화’를 시켜야 했다.

“찍찍. 돈도 돈이지만, 기쁨이 되어야 한다! 기쁨이 있어야 한다! 기쁨조를 만들어서 우상을 위한 제단과 함께 묶어서 행동한다면 분명 큰 호응이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기쁘게 한다는 거지?”

거기에 대해서 답하는 뿔 쥐는 적었다.

그것이 실로 마음에 들지 않는지 대장 쥐가 몸을 바로 했다. 투둥투둥한 뱃살이 출렁거렸다. 극상의 출렁거림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단명할 위험이 있음에도 10kg까지 찐 돼냥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쥐는 조금만 먹어도 살이 포동포동 찔 수 있었기에 과식한 건 아니었다. 그저 예전과는 달리 움직일 일이 적어서 생기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돈! 돈을 주는 게 역시 좋다!”

결론은 돈이었다. 지성 종족의 이목을 가장 잘 빨아들일 수 있는 게 돈이다.

“반마로 만들어주는데 돈을 준다고? …아주 좋은 생각이다!”

화폐 경제가 제대로 자리 잡았고, 통화 생산량도 좋았고 통화 유동량도 유의미한 수준으로 올라갔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돈으로 불행을 막는 것마저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돈이라는 요소를 넣는 게 좋아 보였다.

“다만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재미가 없으면 유행하기 힘들었다.

“지구의 지식을 사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우주 낙원을 나포했고, 용병 지구인으로부터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

“좋다! 백과사전을 보며 여기에 쓸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그중에서도 백과사전은 아이디어를 얻기 가장 좋았다.

묵직한 강철 노트북을 열었다. 지구의 문물과 지식은 분명 우주 낙원에 새겨져 있었지만 그걸 실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아무리 지구인을 많이 잡았다고 해서 모든 걸 재현할 수는 없었다.

강철 노트북은 그 프로토타입인 셈이다. 여기에는 백과사전이 담겨 있었다.

이를 훑어보며 뿔 쥐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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