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화
광부를 하고 싶은 이들은 없다. 거친 겨울 파도를 맞으며 대게를 잡고 싶은 이들은 없다.
모두 돈 때문에 하는 일이다. 내 자식 잘되라고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헌신적인 부모를 험한 곳으로 내모는 것은 드낙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돈이 없다고, 벌이가 시원찮다고.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사람이 혹사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형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중범죄자가 목숨을 유예받고 광산 징역형에 처해지는 건 이런 판단이 있어서다.
반면 강철 인형 공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세상이 좋아져도 못 말리는 잡것들이 있지.’
도박. 패가망신. 빚.
인생을 쉽게 아는 것들이 저지르는 최악의 짓거리다. 돈을 한 번에 벌 수 있다는 꿈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잊고, 망상 속으로 자신을 투신해 버리는 자들이다.
그런 빚쟁이들은 결국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들이 가는 곳이 강철 인형 공장이다. 급여가 세기 때문에 금방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큰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내뱉었다. 철을 녹이고, 강철 인형을 만드는 곳은 다른 곳보다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단열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구식 공장이라서 더더욱 그러했다.
그 속에서 5시간을 땀을 뻘뻘 흘리다가 교대를 하고 나온 이들의 온몸은 땀과 철가루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작업복을 벗고, 샤워실로 직행했다.
몸이 미치도록 달구어졌을 때, 찬물로 한 번 싹 훑어주면 그것만큼 시원한 것이 없었다. 사우나에 있다가 나와서 사이다를 마시는 것과 같은 청량감을 선사해 준다.
분명 그들은 그 행위에 중독되어 있었다.
“으따, 씨벌. 이게 천국이제.”
열기를 시원하게 털어냈다. 몸이 단번에 나른해진다. 하루에 5시간만 일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은화 5닢이라는 돈이 벌린다. 그중에서 4닢이 빚 청산으로 사라진다.
남은 은화 1닢은 그대로 저금 당한다.
그건 그들이 원하는 저금이 아니지만, 강제적으로 저금이 되고 있었다. 그 대신 모든 것이 제공된다.
다만 간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루에 3끼만 제공될 뿐이다. 그래도 불만을 가진 이는 없었다.
“닭맥 세트로.”
“예!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927번 고객님!”
번호표를 뽑아 들고, 자리를 잡았다. 그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테이블에 함께 앉는다.
“넌 또 닭맥이냐? 치맥이 진리거늘.”
“치맥이나 닭맥이나 결국 똑같은 닭이지. 진짜는 소다. 소.”
서로 먹을 것으로 싸웠다.
가장 먼저 주문을 했던 빚쟁이의 번호가 뜨자 냉큼 달려가서 받아왔다. 닭꼬치는 30개 정도였고, 맥주잔도 사람 머리통만큼 컸다.
닭꼬치라고 해도 모두 제각각이다.
먼저 가장 두툼한 것은 당연히 닭의 가슴살과 다리 살을 이용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두툼한 것을 더 두툼하게 만드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
특히 요리는 더욱 그래야 한다. 소금 간을 비롯해서 야채 다진 것을 섞은 밀가루 반죽과 함께 튀겨낸 닭꼬치의 위용은 마왕을 죽이는 용사의 검처럼 두툼했다.
칼집까지 낸 뒤에 소스를 발랐는데 절로 군침이 돋았다.
닭가슴살의 가장 큰 단점은 퍽퍽하다는 점이다. 이를 중화하려면 소스의 수분이 닭가슴살에 깊게 들어가야 한다. 튀김과 함께 칼집을 내고 소스를 바른 것은 이러한 이유다.
‘하지만 너무 뜨겁지.’
문제는 너무 뜨겁다는 점이다.
그래서 빚쟁이는 다른 곳으로 눈을 향했다.
작고 앙증맞다.
‘결코 쉬운 놈이 아니지.’
갈색의 잘 구워진 닭꼬치다.
허나,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닭 껍질의 노릇노릇 바삭바삭한 부분이 있고, 그 아래에 통통한 살이 붙어 있었다. 바짝 구워진 닭 껍질 위로는 새하얀 소금이 소폭하게 앉아있었다. 천일염을 갈고, 또 빻아서 눈처럼 작은 입자가 된 빻은 소금이 뿌려져 있다.
‘꿀꺽.’
바삭!
한 입을 베어 물자마자 짠맛과 함께 불 맛이 입 안에 휘몰아쳤다. 단숨에 닭 껍질 꼬치를 쓸어버리고, 맥주로 마무리한다.
똑같은 것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먹는다. 바로, 참기름이라 불리는 것이다.
현대에는 식용유와 섞어서 팔지만, 이 세계는 달랐다. 순도 100% 볶은 깨에서 추출한다. 참기름은 굉장히 비싸지만, 빚쟁이 참기름은 싸게 유통되고 있었다. 특히 일이 힘든 곳에서는 공짜나 다름없었다.
빚도 갚고, 목돈도 가진 채로 출소하는 것이 빚쟁이들의 목표였고, 쌓이는 돈은 그들을 더욱 희망적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 여유가 그들 주변의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있다.
주르륵!
참기름을 바르고, 단숨에 쭉 닭 껍질과 속살이 있는 닭꼬치를 집어넣는다.
농밀한 참기름은 새로운 풍미를 자극한다. 기름이지만, 향이 강하다.
다른 이들도 먹거리들을 가져와서 마음껏 먹었다.
배가 터져도 마지막 한 조각까지 먹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맥주도 마셨다.
그다음에는 공부를 하거나 사회에서 나가서 할 일을 배웠다.
직업 교육인 셈이다. 다만 거기에도 우대를 받는 직종이 있었다. 모든 빚쟁이들은 조금이라도 우대를 받으며 돈을 주는 교육을 받았다. ‘교육 지원비’라는 명목으로 주는 돈도 쏠쏠했다.
그 직종은 당연히 농업 골렘을 정비하는 골렘 정비사다.
앞으로는 농사를 짓는 이들이 적어질 것이다.
빚쟁이들을 농사꾼으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한 번 실패했고,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기에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물론 그들 중에 다시 빚쟁이가 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빚쟁이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범죄자들보다는 갱생 가능성이 존재했다.
이런 대접을 받는 것도 국가적인 입장에서 제대로 된 사회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더 많은 지원을 받기도 했다. 기숙사의 좋은 방에 배정을 받거나, 가족들의 형편에 따라서는 돈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악용하면 그것대로 좋았다. 그 죄를 통하여 더욱 올가미를 씌우면 될 일이었다.
죽는 것보다는 살아서 다종족 연합과 드낙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이득이다.
이런 곳에도 ‘전술가’의 재능이 있을 수 있었기에 워-퀘스트에 대한 참가가 이루어졌다.
“제가요? 워-퀘스트요? 강철의 인형 그거 말입니까?”
“그래. 너.”
“전 그냥 농사 골렘 정비병이 되고 싶은데요.”
강철의 비니 강철 인형이니 뭐니, 그런 곳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건 빛의 길이며, 붉은 양탄자를 깐 곳을 걷는 일이다. 힘들고 고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강제로 참가해야 했다.
열정과 관계없이 실력과 운이 따라주면 사람은 성공한다. 전술가 또한 마찬가지다. 의욕이 없어도 하게 되어있다. 물론 이렇게 반대만 하는 상대에게는 어느 정도 화폐를 쥐여주는 것도 가능했다.
“플레이 시간 1시간에 동화 10닢. 10시간이면 은화 1닢이지.”
“헉!”
‘적지 않다!’
“구미가 당기지? 너 같은 놈들은 다 그렇다니까.”
“크윽…….”
빚쟁이가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관리는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반박할 수가… 없어!’
빚에 시달리고 있는 빚쟁이다. 또한, 여기서는 식욕은 마음껏 누릴 수 있어도 성욕은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
철저하게 감시를 받고 있었기에 그런 일은 권장되지도 않고 시도 도중에 발각된다. 폭행조차도 허용이 되지 않는 곳이다.
성욕이 강한 남자는 특히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
그런 그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루에 5시간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 강철 인형 선별 작업이었다.
여자를 만나고 싶어서 미쳐 버릴 것 같은 22살의 이 빚쟁이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했다.
“하겠습니다!”
그렇게 또 한 명이 전술가가 되기 위한 선별에 포함됐다.
강철 인형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중범죄자 혹은 누범죄자가 아니라면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인재라는 것은 하늘에서 점지해 주는 것이라 어디서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 경향은 신제국의 슬럼가에도 들이닥쳤다.
악마 침공이 예고되어 있었음에도 차원 다리를 건설하여 다른 차원의 신을 죽이려 했던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그 준비 때문에 신제국에는 슬럼가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인간의 가치가 가장 낮은 나라가 어디라고 묻는다면 모든 이들이 ‘신제국’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싼값에 사람의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었다.
다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 그들은 ‘선별의 기회’를 얻었다.
평생 없는 기회다. 원래였다면 나이가 조금 들고 바로 건설 현장으로 투입되어서 차원 다리를 만드는 데 젊은 이팔청춘을 싹 다 쏟아부었을 터였다.
그들은 실로 운이 좋았다.
다만, 그 방식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상위국이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강철의 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실력대로 랭커들을 기숙사에 집어넣었다면, 신제국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특히 거지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몽둥이를 들고 진압했다.
“무슨 일이지? 무슨 발소리가……. 헉.”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군대가 들이닥쳤다.
쾅!
바로 발로 판잣집 문을 부쉈다. 문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대충 천으로 가려놓은 곳을 잡아당겼는데, 벽 한쪽이 기울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형편없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벼, 병사?”
체인메일을 입은 병사가 그대로 들이밀고 들어왔다.
“엎드려. 새끼야.”
폭력적인 언행이 병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보통 시민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것은 경찰이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신제국은 가장 폭력적인 기질을 지닌 곳이다.
드낙 때문에 경찰이 있기는 했지만 그냥 표면적으로만 있을 뿐이지, 사회제도는 아직도 중세 시대 분위기를 풍긴다.
신제국의 경찰은 ‘훈련병’조차도 되지 못한 이들이 하는 일이었다.
시민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이지만 신제국에 그런 존재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업(業)을 탐하며 인간을 죽이는 초월체의 말살이다.
“엎드려, 새끼야!”
몽둥이에 맞은 남자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끔찍한 비명조차도 못 질렀다. 한순간에 두들겨 맞았고, 바로 팔이 뒤로 꺾이며 밧줄이 묶였다. 강제로 집 밖으로 내던져졌다.
병사들이 움직이고 있는 탓에 흙먼지가 입에 들어왔다. 흙냄새를 진하게 맡으며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악! 사람, 사람이 여기 있다! 이놈들아악!”
종종 그를 못 보고 밟고 지나가는 병사도 있었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슬럼가의 인간들을 사로잡았다.
무자비했다.
종종 거칠게 반항하는 이들도 있었다. 눈 위쪽이 찢어져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발악했다.
‘무슨 꼴을 당하려고!’
“놔! 놔, 이 새끼들아! 놔아아아아~!!”
술에 취한 남자는 악다구니를 썼다. 몸이 워낙 무뎌서 그런지, 아내와 딸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족족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그는 상황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멈춰! 멈춰! 멈추라고!”
퍽! 퍽! 퍽!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도 악다구니를 쓰는 남자에게 병사들은 몽둥이찜질을 선사해 줬다.
남자는 처음에는 반항하며 버둥거렸지만 나중에는 살려고 버둥거렸다. 가만히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였다.
다만, 그게 더 그의 명줄을 짧게 만들었다.
결국 피떡이 되어서 끌려갔다. 죽이지는 못하고 그 머리 위로 하급 회복 물약이 주르륵 떨어져 내렸다.
“허으…….”
술 취한 남자는 상처가 치유되는 감각에 긴 숨을 내뱉었다.
이처럼 신제국은 시민 아래에 군인이 있지 않았다. 시민 위에 군인이 있었다.
이곳의 군인은 시민의 목을 베라고 하면 목을 벨 정도로 세파리아스에게 충성하고 있었다.
슬럼가의 인간은 그렇게 또 한 번 정복당했다.
짓밟혔다. 패배했다.
누군가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패배한다. 신제국은 그 경향이 더욱 심했다.
차원 다리를 건설하는 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원 탓이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마력이 소모되는 일이며,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그렇기에 알게 모르게 희생되는 이들이 많았다.
끌려간 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워-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했다.
재능이란 것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었기에 충분한 시간을 들일 생각을 하는 게 세파리아스였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한 이유.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던 슬럼의 인간에게 기회를 준 까닭.
그건 단순했다.
‘앞으로는 재능이 있으면 반신(半神)이 되거나 반마(半魔)가 되니까.’
수명이 매우 길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