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화
* * *
시민들이 워-퀘스트(War-quest)를 통해서 차근차근 배우는 것과는 다르게, 귀족들은 철저하게 대련을 하고 있었다.
작은 강철 인형을 서로 마주 보고, 싸우는 것이다.
회전(會戰)에 대한 경험치를 올리는 데 아주 유효한 방법이었다.
결국, 예선전이나 본선에서 회전을 할 것이 분명하다. 강을 두고 싸우고, 평야를 두고 싸우고, 계곡을 두고 싸우게 될 터였다.
그 속에서 승리하려면 꾸준히 회전을 공부해야 했다. 조금만 어긋나도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강철 인형은 워낙 다양한 종족과 병과가 존재했다. 이를 통해서 아주 다양한 전략 수립을 할 수 있었다.
그 가짓수를 줄이기에는 다종족 연합은 너무 다양한 종족이 살아가고 있었다.
지휘관이 된다면, 많은 종족과 합을 맞춰야 한다.
회전에서는 마법부터 아티팩트,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와 ‘탑’ 같은 것도 동원되었으며 용병 지구인으로부터 얻은 과학 기술을 통한 박격포 진지도 존재했다.
그런 수많은 것들을 ‘지휘’하려면 어지간히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했다.
‘경쟁률도 높다.’
무엇보다 현 다종족 연합에는 성공한 귀족들이 많았다. 수많은 곳에서 공을 세울 수 있고, 그 공을 세우면서 많은 이권을 가져가는 자격을 얻는다. 성씨를 받고, 가문을 받는다.
가문의 깃발은 각 국가의 문장가가 세심하게 만들어서 준다.
그것을 통해서 기득권의 반열에 올라 본격적인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된다.
누구보다도 빨리 귀족에 올라설 수 있지만 그 덕에 귀족끼리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놈들은 견제도 못 할 정도로 귀족들은 숫자가 많아졌고, 서로가 경쟁자가 되고 말았다.
드낙을 비롯한 수많은 왕이 귀족들의 숫자를 늘림과 동시에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평민들을 귀족으로 만들고 있는 탓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철의 비’는 대단히 중요한 이벤트였다.
전쟁이 예정되어 있는 세상에서 군적에 올라 성과를 내는 것은 출세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전쟁이 없을 때는 세금 처먹는 벌레 취급받는 게 군대라서 끝없이 군축 되지만 전쟁이 터지면 전쟁영웅에게 열광한다.
지금도 그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게릴라 전쟁으로 수많은 이들이 대피해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했다. 꽃다운 청년과 처녀는 서로 손을 맞잡고 아름다운 꽃밭에서 데이트를 즐기지 못했다.
거기에 대한 두려움은 강철의 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지배자가 노골적으로 악마 침공을 언급해서다.
‘이목이 모이면 명예와 명성을 드높일 수 있지.’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골프 선수.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의 주역이며 월드컵에 여러 번 참가하는 모습을 보여준 축구 선수의 인지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때는 전 국민이 붉은 옷을 입었고, 나라가 들썩였었다.
이처럼, 민중의 관심이 극도로 높아진 강철의 비에 참가하지 않는 건 귀족에게 불명예나 다름없었다. 겁을 먹고 뒤로 내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블린 방패병은 겹을 치기에 확실히 좋다.”
귀족, 상위국, 도렌 상위국왕 파.
네이선 러스티(Nathan Rusty).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방패벽을 바라보았다.
키가 작은 고블린은 서로 겹치기 좋았다. 여러 겹의 고블린 방패병은 체중도 체중이지만 그 밀집도가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조밀했다. 체중의 무력함은 머릿수와 밀도로 극복할 수 있었다.
방패벽(Shield wall)은 고블린 방패병이 최고였다.
다종족 연합의 군사 개혁에 가장 유명한 것이 고블린 방패병의 등장이다. 체구가 작고, 체중이 적은 고블린을 방패병으로 추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은 아었다.
러스티 가문은 신흥 가문 중 하나였다. 가문명 그대로 쓰레기 처리 회사를 차렸다. 도렌 상위국왕이 지배하는 땅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모두 러스티 가문이 처리하고 있다.
일 처리도 좋고, 단가도 싸다. 그러나 군공을 쌓은 적이 없다.
러스티 가문에서 그나마 싸움에 재능이 있는 네이선이 강철의 비에 뛰어드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다만, 강철 인형의 싸움 속에서 네이선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바로 실제로 고블린 방패병을 쓰는 순간을 상상했다.
‘고블린은 죽어도 빨리 충원된다.’
그렇기에 방패막이로 쓰기에 정말 좋았다.
귀족들은 자기 가문원끼리 강철의 비를 연습하기도 했지만, 다른 귀족 가문과 협력을 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서 예선전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예선전은 회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예선전에서 평민들을 모두 꺾어놓는다? 웃기는 소리지. 놈들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
성공했기에, 성공했으므로, 선민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러스티 가문 또한 그러했다. 신분제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드낙은 그런 급진적인 정책은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의 생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기에 세대가 세대를 교체하며 자연스럽게, 천천히 바뀌어나가야 했다.
틀딱은 틀딱대로, 꼰대는 꼰대대로 그 시대에 계속 나타난다.
‘젊은 꼰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꼰대 절대 법칙의 존재에 따라 늙은 꼰대가 뒈지면 젊은 꼰대가 나타나 설친다.
그래도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었다. 그 변화가 결코 파도처럼 높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피해를 보는 이들이 너무 많다.
그건 드낙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점진적으로 변해야 했다. 나중에 충분히 ‘경제’와 ‘자유’와 ‘지식’이 모든 이들에게 꽃을 피운다면 그때 서서히 귀족의 숫자를 줄이면 될 일이었다.
소수는 언제나 소수로 남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귀족이 귀족이라고 해서 우대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때는 귀족보다는 돈이 더 중요해질 터였다.
황금으로 교환해 주지 않아도 귀중한 대접을 받는 달러 같은 화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는 변해야 했다.
“우리 귀족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금도 많은 귀족이 생기고 있지 않습니까? 이럴수록 신흥귀족은 신흥귀족답게 뭉쳐야 하는 법입니다. 하하하.”
“천한 평민들이 치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예선 돌파에 몰린 이들은 상상할 수조차도 없다고 합니다.”
워-퀘스트는 시작에 불과하다.
예선전은 토너먼트식이 아니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자격만 되면 본선에 올라갈 수 있단 소리다.
회전의 기본 보병은 고블린 방패병이 대세가 됐다.
궁수부터 공병까지 종류가 매우 많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확실하게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은 궁수에 관한 판단을 고민해 봐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궁수 병종은 현재까지만 해도 21종류가 넘습니다.”
“현실에 그만큼 많습니까?”
“그렇다고 하는데,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많이 구분한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복장만 다르다고 하기에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연막입니다. 연막! 그걸 믿습니까!”
어느새 음모론으로 빠졌다.
귀족들로서는 당연하다. 귀족들은 이 세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금 ‘강철의 비’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음모론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워-퀘스트는 말 그대로 못 배운 놈들을 위한 것이다.
“드낙 님께서는 귀족들이 승리하는 걸 원하지 않고, 예선전에 많은 아랫것이 성공하기를 바라십니다.”
“허어. 그럴 리가! 적어도 승리는 귀족이 해야지. 왕족들 또한 열심히 강철의 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던데.”
“선왕의 싹이라 불리는 크레시미르 불파겐(Kresimir Bulpagen) 조차도 강철의 비에 목숨을 걸었다고 합니다.”
“악마 전쟁이 40년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선정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지.”
카우엔드(CowEnd) 가문과 러스티(Rusty) 가문은 서로 신나게 떠들었다.
러스티 가문이 쓰레기 처리로 압도적인 명성을 얻었다면, 카우엔드 가문은 소 가격 인하에 혁명적이고 위대한 업적을 남겨서 인기가 많아 귀족이 되었다.
상위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왕족은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였다. 그 사이에 아메리코, 아니발, 테미스가 있었지만 인지도는 크게 떨어졌다.
아메리코 불파겐은 레이시아의 가업을 배우고 있었고, 아니발은 외지에서 킹슬레이 가문을 돕고 있다. 테미스는 아직 어렸다.
그보다 더 어린 다이앤타는 쿼터 데몬이라 일컬어지며 벌써 성인이지만 넷째인 테미스는 어리다.
“크레시미르 왕자가 강철의 비에서 크게 활약하면 상위국왕이 되는 건 떼놓은 당상이 아닌가?”
“다른 상위국의 자식들은 아직 장성하지 않았어.”
“상위국왕이 다섯 명이 될지도 모르지. 다이앤타 공주는 무재는 타고났다던데.”
“무재를 타고나면 뭐 해? 직접 참전하지 못하잖아. 전략과 전술이 중요하다고.”
신나게 떠들고 난 뒤에 다시 궁병에 집중했다.
“역시 인간이 가장 궁병에 어울린다니까.”
당기는 힘은 종족마다 달랐다. 그게 고스란히 강철의 비에 반영되어 있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기만술을 쓰기 좋지. 종족이 많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라니까.”
궁수였는데 사실은 대검병이나 창병이라면 상대가 깜짝 놀랄 터다. 멀리서는 그게 그놈이기에 훌륭한 기만책이 될 수 있다.
상대의 전력을 모두 알기에는 현실 세계의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거기에 강철의 비는 마법은 개성을 뚜렷하게 만들 뿐, 전술 미사일처럼 크게 타격하는 경우가 없었다.
지휘관의 면모를 키우는 곳이 ‘강철의 비’였다.
공성 장비는 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동원 가능한 개수가 정해져 있었고 그마저도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런 것까지 제한하지 않는다.
작은 소형 강철 인형은 팔면 팔수록 돈이 되고, 그 돈은 다시 세상에 뿌려져서 경제를 듬뿍 끌어 올린다.
“인간 궁수는 힘도 좋지. 창병으로 쓰기도 나쁘지 않아.”
“그런 병종이 있었던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강철의 비는 생각보다 자유도가 크다. 거기에 전쟁에서의 창병은 ‘창술’이 필요 없었다. 서로 조밀하게 모여서 진형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팔을 크게 휘두를 공간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게 창병 진형이다. 두려움만 없으면 누구나 훌륭한 창병이 될 수 있었다.
강철 인형은 용기가 없지만 두려움도 없기에 충분히 가능한 전술이다.
“신청서를 넣어놓을까.”
허가가 떨어지면 예선이나 본선 때 쓸 수 있는 훌륭한 전술이 된다. 하지만 그걸 쓰는 귀족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될 리가 없지.’
궁수는 엄청난 고가치 인력이다.
장력을 키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장력이 큰 궁수는 그 자체로 대우받기에 쉽게 죽게 놔둘 수는 없다.
다양한 마법 주문이 담긴 마법 화살은 실전에서도 그 화력이 뛰어나다.
악마와의 전쟁에서 투사체가 지니는 힘은 상당하다. 때문에 그런 것을 허락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처럼 귀족은 강철의 비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
‘평민 따위에게 질 자신이 없다.’
본래는 평민이었음에도, 귀족이 되자마자 자신을 뼛속까지 바꾸어 버렸다.
괜히 영국이 귀족의 숫자를 줄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신분이 바뀌고 삶이 개선된 사람은 예전에 힘들게 살았던 시절을 잊는 경우가 많았다.
* * *
쿵!
쿵!
쿵!
거대한 망치가 기계적으로 내려쳐졌다.
이곳은 거대한 공장이며, 강철 인형을 찍어내는 곳이다. 망치에 의해 박살이 난 철광석은 길쭉한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그 아래에는 끔찍한 용광로가 가동되어 있다.
이글거리는 화염에 철이 빠르게 녹기 시작한다. 충분한 철광석이 떨어지고, 영광로가 기울어지며 펄펄 끓는 쇠를 쏟아냈다.
쏟아낸 곳에는 강철 인형의 거푸집이 가득 있었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용병 지구인을 모두 투입할 수는 없다. 그들은 지금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철 인형 공장은 오로지 테라의 기술로만 이루어져 있다. 제련기술의 개편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존의 공장은 무식하게 계속 가동되고 있다.
그저 새로운 공장을 지을 때만 새로운 기술이 사용됐다.
오래된 공장 속에서 작은 강철 인형이 쏟아져 나왔다.
작업자들이 강철 인형을 하나씩 옮겼다. 상태를 확인하고, 금이 간 것이나 하자가 있는 강철 인형은 재활용하는 곳에 집어넣었다.
분류 작업은 정말 힘들고 고되다.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의 산을 정리하는 것과 비슷했다.
쇳가루가 온몸에 묻어있었다.
“허억! 허억!”
그들의 입과 코에는 초록색의 불투명한 덩어리가 들러붙어 있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간단한 마법 장치다.
이런 철가루가 많은 곳에서 일하려면 마스크라든가, 마법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