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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10화 (1,109/1,239)

1110화

* * *

‘이게 마지막 답이야.’

페이커는 생각한다. 그리고 결론에 닿았다. 오늘로 첫 퀘스트가 마무리되는 날이다. 오늘 S등급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마을 사람들이 숨기 시작했다. 집을 무너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삽으로 흙을 파서 집 곳곳에 뿌렸다.

흙냄새는 의외로 강하기 때문에 인간의 냄새를 지우는 데 효과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집을 부쉈다. 미리 넣어둔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며 마치 몇 년은 된 것 같은 폐허가 완성됐다. 보통은 여기서 끝나겠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마수는 짐승 같은 놈들이다.’

야수 같은 마수들은 인공물에 민감하다. 그렇기에 수풀을 통해서 위장한다. 자연물을 통해서 인공물을 완전히 치웠다.

30일째, 450시간이 넘는 시간을 워-퀘스트에 쏟아부었다.

그는 진정으로 이 게임을 통해서 성공하고 싶었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기에 알 수 있었다.

‘숨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남에게 들키지 않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수가 창출된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결과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운’이라는 요소 때문이다.

그걸 깨달았기에 페이커는 크게 성장했다고 할 수 있었다.

흙냄새로 은폐했고, 마수는 금방 지나갔다. 속력이 워낙 빠른 놈들이었고, 집의 기둥을 부숴서 폐허처럼 만들어놓아서 일부러 부수지도 않았다.

불끈!

‘성공했다.’

[A등급. 마을 사람들은 숨었다. 적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 뛰어난 전술가이나 완벽하지는 않다.]

‘뭐…라고?’

페이커가 절망했다. 하지만 그 절망은 단 1초도 가지 않았다.

도전 욕구가 더욱 샘솟았다. 하지만 그는 바로 워-퀘스트의 첫 번째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았다.

복기하듯이 더듬어 나갔다.

모든 것이 힌트가 될 수 있다.

‘속인다. 속였는데 완벽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부족해.’

마을 사람들을 숨기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면 마수에게 들켰을 터다.

‘운이 좋아서 안 들켰을 수도 있다.’

페이커는 똑같은 것을 다섯 번 해보았다. 모두 숨는 데 성공했다. 운을 뛰어넘어서 실력으로 쟁취해 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한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

‘…부족한 게 아니다. 다른 것이 더 필요하다.’

소년의 눈이 총명하게 빛났다. 완벽한 것이 하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부족하다면 다른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했다.

‘아!’

숨기는 것이 속이는 것이라면, 보이는 것도 속이는 것이다.

“마을 사람 중에서 체격이 큰 강철 인형을 움직여서 숲으로 보낸다.”

시작하자마자 달렸다. 물론 필요한 것을 챙기도록 명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을의 반대편은 아니다. 하지만 마수가 도착하기 전에 마을로 돌아오기엔 아슬아슬할 정도로 멀리 갔다.

“불을 질러라!”

기름이 뿌려지고, 숲에 산불이 피어올랐다.

매캐한 연기는 마수들의 코를 자극시켰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되돌아갔다.

그사이에 마을에 남은 마을 사람들은 최대한 마을을 숨겼다. 자신들 또한 모습을 감췄다.

[S등급! 적을 속이고, 또 속였다. 숲에 불을 질러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만들었고, 마을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다. 전술가란 무릇 그렇게 해야 한다.]

[워-퀘스트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326번째 적합자입니다.]

‘S등급만 오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S등급에 오른 이들의 순위가 쫙 나열되어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페이커는 끌려가다시피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갔다. 높은 담벼락과 아름다운 정원이 끝도 모르게 펼쳐져 있었고, 분수와 함께 아름다운 대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년은 현관 1층의 가장 가까운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인은 그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묵례했다.

너무나도 황송한 대접이었다.

평민과 문인은 확연하게 다른 위치에 있다. 문인은 행정력의 피이며, 중심이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도시가 번영하고, 부패가 적은 것이다. 그들이 모든 것을 기록했기에 비리를 저지르기가 힘들었다.

“래파이얼(Raphael)이라고 한다. 페이커, 맞나?”

“아, 예.”

소년의 이름은 필요하지 않았다. 강철의 비에 등록된 예명, 페이커로만 불릴 뿐이었다. 이를 페이커는 깨닫지 못했다.

대신 소년은 자신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상대의 가치를 눈여겨보았다.

“치유사 문인이라고 불리시는 분 아니신가요?”

“어린아이가 내 이명을 듣다니, 놀라운 일이군.”

“할머니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요.”

“잘 지내시느냐?”

“돌아가셨어요.”

“음…….”

래파이얼은 말을 아꼈다.

“그래도 80살까지는 사셨어요.”

“천수를 누렸으니 만족했을 터다.”

그럴 리가 없다.

돈 없는 집안에서 늙는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소년은 더 말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다.

“넌 오늘부터 랭커다.”

“랭…커요?”

“워-퀘스트에 등록하고, 10,000위 안에 들어간 이들 모두 랭커다.”

물론 지금은 고작 300여 명에 불과했다.

워-퀘스트의 첫 번째 퀘스트는 그리 많은 이들이 통과하지는 못했다. 귀족들이 관심 없어 하는 것도 컸다.

워-퀘스트는 평민을 위한 가이드인 셈이다.

“랭커는 모두 국가 기숙사에 속해서 강철의 비를 클리어하는 데 집중한다.”

부모의 허락도 필요 없었다.

초법적인 행위였다. 전쟁이 앞에 있었고, 이를 위해서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지휘관의 숫자를 끌어 올려야 한다.

재능 있는 지휘관을 얻는 건 모든 지도자가 원하는 것이었다. 경쟁심이 강한 탓에 자기 영토 내에서 꽃을 피운 자를 속박해 두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가만히 놔뒀다가 해외로 유출된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특히 세파리아스를 경계하는 이들이 많았다.

드낙이 절대 내치지 않을 초월자. 드낙과 함께 유이(唯二)한 존재가 세파리아스였다.

그 덕에 다소 과격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 경쟁이 바로 초법적 성격을 지닌 국가 기숙사인 것이다.

“격려금으로 한 달에 은화 50닢이 지급된다.”

“헉!”

페이커가 까무러치듯이 놀랐다. 매번 금화와 은화, 동화의 교환 비율이 달라지긴 해도 보통은 은화 100닢에 금화 한 닢이다. 은화 50닢이면 금화 반 닢이다.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다.

“정말인가요?”

“내가 거짓을 말하는 줄 아느냐.”

치유사라고 불리며 무료로 사람들을 치료함과 동시에 복지에도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게 문인, 래파이얼이다.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나가면 메이드가 방을 안내해 줄 것이다.”

“저, 받은 돈을 부모님께 보내도 될까요?”

“메이드한테 말해라.”

“아, 네!”

소년은 밖으로 나갔다.

‘메이드!’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그곳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곧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검은색 일색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에는 주름 하나 없이 수수한 옷이었다.

칠흑의 옷을 입은 메이드는 고블린이었다.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세요.”

“예…….”

적잖이 실망을 했다.

소년의 로망은 사라졌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른의 사정이라 할 수 있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설거지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이다. 매달 천만 원씩 버는 사람은 사람을 불러서 할 정도로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머릿수가 많고, 여자가 많은 고블린들이 메이드 직종을 점령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노후 복지에 대한 드낙의 강력한 추진력 덕분에 노인이 폐지를 줍거나 허리를 굽힌 채로 청소를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인간 사회에서 고블린 메이드는 대단히 신뢰를 받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범죄를 당할 것 같지 않아서다. 와이프 또한 믿고 고블린 메이드를 집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국가 기숙사라고 다를 건 없었다.

페이커는 다른 사람들과 마주했지만 쉽게 어울릴 수 없었다. 그는 너무 어렸고, 그 또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성인들이거나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소년과 함께 ‘워-퀘스트’를 깨고 싶지 않았다.

‘걸림돌만 될 뿐이지.’

‘애새끼 징징거리는 것만 봐도 신물이 난다.’

‘귀찮아.’

페이커는 결국 혼자서 조용한 싸움을 하게 됐다.

‘상관없어. 하하 호호 떠들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야!’

그가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세상을 움켜쥐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손이다. 그래도 은화 50닢은 쥘 수 있는 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게 내 꿈이야!’

소년의 두 눈동자에 강한 열망이 담겼다.

처음으로 S등급을 달성하고, 국가 기숙사에 오고 나서 곧바로 두 번째 워-퀘스트가 펼쳐졌다.

전 대륙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국가를 뛰어넘은 국제적 행사였다.

퀘스트 명은 ‘세 가지 선택’이었다.

여기서도 S등급을 유지해야 했다. 퀘스트는 한 달 주기로 계속 바뀐다. 페이커는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강철의 비가 행해지의 개인실로 들어갔다.

숲과 언덕이 있었고, 성이 보였다. 성의 수준은 대단치 못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소년의 눈으로도 그게 보였는데, 마을을 부수고, 폐허로 만들면서 얼핏 그에 대한 지식을 얻어서다.

[숲에는 고블린이 있습니다. 언덕에는 크놀이 살고 있습니다. 성에는 인간 도적이 들끓고 있습니다.]

[당신은 토벌군의 지휘관으로서 저들을 토벌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토벌군은 결코 저들보다 많지 않습니다.]

‘골치 아프게 됐는걸!’

세 개의 세력을 토벌해야 하지만, 토벌군의 숫자로는 저들 모두를 상대할 수 없는 듯했다.

토벌군의 면모를 살폈다.

작고 앙증맞은 정규군은 모두 강철로 이루어진 장비를 입고 있었다. 특히 분대장이라 불리는 병과가 있었는데, 다른 병사보다 훨씬 뚱뚱 통통해 보였다.

[뿔 쥐 분대장. 다른 강철 인형보다 잘 싸우고, 그림자로 변하여 움직일 수 있다.]

갑옷 곳곳에 삐쭉삐쭉 털이 삐져나와 있었다.

잘 만든 강철 인형이다.

고블린 방패병도 있었고, 인간 궁병도 있었다.

다종족 혼합 세트였다. 다만 고블린 방패병은 전혀 믿음직하지 못했다. 덩치가 워낙 작아서다.

‘인간 궁병은 덩치가 엄청난데. 왜, 궁병이지?’

페이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일단은 받아들였다.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일단 쭉 빨아들였다.

토벌군은 먼저 인간 도적들을 노렸다.

“와아아아!”

고블린 방패병이 방패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며 사다리를 걸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인간 궁수도 활을 쐈다.

방패병이 운 좋게 올라가자 그곳에 뿔 쥐 분대장을 투입했다. 그림자로 변해 있는 뿔 쥐 분대장은 단번에 성벽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어찌 싸웠지만,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살아남은 토벌군의 숫자는 25%에 불과했다.

그것으로 작은 지형이 검게 암전됐다.

[F! 성을 공격하는 것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가장 피해야 할 선택지입니다.]

‘그렇구나!’

또 하나를 배웠다.

실패했지만 페이커는 순수하게 기뻤다. 동시에 큰 목표를 가늠할 수 있었다.

‘도적들을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게 S등급을 받는 일이다. 그것만은 확실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뭘… 해야 하는 거지.’

숨이 턱 막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막대한 자유도 앞에 소년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첫 번째 퀘스트는 보였다. 길이 보였고, 확실하게 이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초심자를 위한 상냥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갑자기 난이도가 상승해서 마음이 꺾일 것만 같았다.

눈물이 삐쭉 튀어나오는 것을 페이커는 손으로 급하게 닦았다.

“후우우우…….”

뜨거운 열기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한숨을 내뱉고 나서 소년이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몇 번이든 도전해 주겠어.’

첫 번째 퀘스트를 깬 것처럼, 두 번째 퀘스트도 깨면 된다. 남들보다 더 많이. 한 달에 450시간 이상을 투자하면서 할 생각이다. 1년이면 5,400시간이 넘는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부딪쳤다.

고블린을 자극해서 성을 노리게 만들고, 그 소란을 들은 크놀의 군세 절반이 싸움터로 향한다.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간사한 행동이다. 그때를 틈타서 크놀의 빈집을 털고, 마지막으로 성으로 향했다.

쩌적…….

쩍……!

소년은 기어코 계란을 던져서 바위를 깨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단 보름 만에 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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