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화
15. 강철의 비 (1)
“용병술이란 속임술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쟁했고, 앞으로도 전쟁할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광장에 설치된 마법 크리스털을 보고 있었다. 술집에서도 틀어 놨다.
종전식 이후, 세상은 진정으로 평화로워졌다.
모든 이들에게 전쟁이 끝났음을 명확하게 알렸다. 그에 경제는 빠르게 호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개인이 빚을 지고 자기 집을 사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었고, 그 구매력은 자연스럽게 소비로 이어졌다.
땅이 워낙 넓었고, 도시도 많았다. 어디에서나 활력으로 가득 찼다.
그게 드낙이 만든 세상이었다.
한순간에 전쟁이 사라졌다.
꽃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시대다.
그 속에서 강철이 부딪치려 하고 있었다.
“세계강철 대전쟁은 2년 뒤에 열린다! 모두가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각자의 지역에서 승리를 쟁취해라!”
“호우!”
준비는 이미 모두 되어있었다. 누구나 강철의 비를 즐길 수 있다.
모든 시민이 즐겨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군략에 능한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것은 노력한다고 해서 닿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일은 재능이 필요하다. 공부조차도 재능이고, 스포츠는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 전쟁은 끝없이 예약되어 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 전쟁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는 다른 차원으로 수없이 원정을 떠날 것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청년은 전쟁을 원한다. 그런 이들은 언제까지나 병사가 되려고 문을 두드릴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어리석은 청년의 말로는 불구가 되는 것이며 금화 한 닢의 보상뿐이다. 그것은 평생을 살아가기에는 부족한 돈이다.
‘살아만 남으면 신성력으로 치료하면 되니까, 불구까지는 안 되나.’
초월의 힘은 여러모로 위대하다. 다만 그것에 온전히 기대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이 죽는 건 드낙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그렇기에 강철 인형을 도입한 것이다.
옛 제국이 하려던 것을 지금 하려는 것이다.
지금은 마력 코팅으로 HP가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전쟁터에서는 터미네이터처럼 싸울 것이다.
강철 인형의 내부에 있는 마력 보석이 부서지거나 그 힘이 다하기 전까지 싸울 터다.
‘병사는 강철 인형으로 때운다.’
전술가는 재능 있는 이들로 채운다. 그게 강철의 비 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이었다.
선민의식에 휩싸인 귀족들은 탐탁지 않아 하겠지만, 그들이 그러하면 오히려 다른 세력에서 실력 있는 이들을 데려간다. 그건 장기적으로 보면 좋지 않은 일이다.
상위국왕이나 엘프들 또한 자신의 동족이 다른 곳으로 영입되는 건 보기에 좋지 않을 것이다.
‘종족경쟁이나 다름없지.’
종족이 다르다는 건 크다. 심지어 신제국과 상위국조차도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력을 품은 상위인간의 비율이 높아지는 상위국과 마력이 없는 하위 인간이 많은 신제국은 서로 함께할 수가 없다.
이미 다른 종족이나 다름없었다.
‘마력의 유무는 의외로 크니까.’
괜히 신제국에서 막대한 양의 물약을 사들이는 게 아니다. 마력이 없으니 물약 수입이 클 수밖에 없다. 차원 전쟁을 준비하니 끝도 없이 쌓아놓아야 하는 것이다.
“세계강철 대전쟁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워-퀘스트(War-quest)’를 완수해야 한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등급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랭크를 받도록 노력하도록!”
워-퀘스트는 전술의 ‘ㅈ’자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실전 교육이다. 이를 통해서 전술서를 보지 않아도 전술에 대해서 알게 된다.
“도전해 보겠어!”
작은 강철 인형을 통해서 워-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다.
강철 인형은 크면 클수록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작은 것만 쓰인다.
드낙은 몰래 시민들이 하는 워-퀘스트를 바라보았다.
‘세파리아스를 비롯한 수많은 실전을 겪은 이들이 만들었다.’
드낙 또한 참가했다. 혹시 세파리아스가 독주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드낙은 딱히 전술적 재능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세파리아스의 독주만 막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의 독주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경지에 닿은 이들이라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은 곳에 닿았다.
“시작한다!”
강철의 비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마을에도 설치되어 있다. 돔과도 같은 곳이었고, 개인실이 존재했다. 대전룸도 있었고, 다채롭게 먹을 수 있는 식당도 마련되어 있다.
수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나이가 많은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었다. 치고받고 싸우지만, 자신은 안전하기에 여성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예명을 선택하세요.”
“예명이요?”
“네. 무엇이든지요. 별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될 수 있다면 멋진 것으로 하는 게 좋아요.”
“그럼… 페이커요.”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가 그 이름을 논했다. 강철로 된 카드가 그 아이 앞에 놓였다.
“강철의 비 회원권입니다. 모든 기록이 저장되어 있으니, 절대로 잃어버리지 마세요. 매달 기록 수집을 위해서 갱신을 해야 합니다.”
“아, 네!”
페이커라는 예명이 적혀진 강철 카드를 꼭 쥔 아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영상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었고, 사람들이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워-퀘스트는 훌륭한 전술가가 되기 위한 이정표입니다. 놀라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번 달에만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이야기를 겪어보세요.]
워-퀘스트에는 스토리도 있었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마수들의 앞에 ‘사과 마을’은 큰 위기를 겪는다.]
영상에 등장한 마수들은 온갖 종류였다. 그들은 군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죽음과 피만 가득했다.
[근처 마을 사람과 함께 붉은 깃발을 들고 의용군이 창설되었지만…….]
그 깃발은 꺾이고 말았다.
붉은색 깃발은 시민의 깃발이다.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듣고 뽕에 차 있었는데 마수에 의해서 짓밟히는 것을 보니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살아남은 사과 마을 사람들은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마수는 지척까지 닿아있다. 지금 도망칠 수는 없다. 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워-퀘스트의 첫 번째는 ‘퇴각 준비’였다.
마수로부터 위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사용하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술과 관련된 명언이다. 상대를 기만하는 것이 ‘기본’이기에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걸 몰라도 ‘퇴각 준비’ 퀘스트를 통해서 알게 될 것이다.
드낙은 그런 것을 모두 지켜봤다.
‘하는 짓이 귀엽다.’
위장은 고사하고, 말을 해줬음에도 마을 사람들을 조종해서 도망친 이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물론 바로 도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바로 A+등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적적인 평가를 받는 건 힘든 일이다.
‘수십 번, 수백 번 연습을 해야 하지.’
한 번 딱 맞아떨어졌을 때, 기쁨을 누리는 자가 나타난다면 키워볼 만할 터였다.
[전술가 페이커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개인실에 소년이 들어갔다. 나이는 12세. 굉장히 어린 나이였지만 소년의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예선전만 돌파해도 금화 천 닢.’
그것만 있으면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도울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재능이 있었다. 작은 강철 인형들의 싸움에 대한 재능이다. 동네 애들끼리 싸우는 것에 불과한 싸움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 속에 핀 작디작은 재능을 알아줬다.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도 소년에게는 감사할 일이다.
다만 그런 전투와 워-퀘스트의 임무 목표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싸운다!”
그렇기에 페이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바로 싸우는 것이다. 마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장애물을 쌓았다.
‘스토리를 보여줄 때 봤다.’
그건 단순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마수들의 모습까지 담겨 있었다.
마수 무리는 기병의 돌격 같은 무서움을 지녔다. 사족 보행으로 달리며 모든 것을 휩쓸고 다닌다.
빠르지만, 장애물이 있다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뚝! 딱! 뚝! 딱!
마을은 마을이 갖출 수 있는 최고의 방비를 만들어 냈다. 어리지만, 어리기에 모든 것을 올인할 수 있었다.
두두두두!
마수의 군대가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마을에 도착했다.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보다는 많았다.
장애물은 순식간에 마수 떼에 휩쓸려서 박살이 났다. 하지만 장애물에 죽은 마수도 많았다.
빠르게 달려오는 바람에 나무창에 푹 찔렸다. 어찌나 빠르게 달려왔는지, 나무창에 마수의 몸이 그대로 관통당할 정도였다.
‘젠장!’
순식간에 끝이 났다. 마수의 돌격을 막지 못했다. 저걸 막으려면 더 훌륭한 성벽이 필요하다. 퀘스트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F! 강대한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전술가!]
등급은 수준 미달을 받았다. 그야, 싸우지 말랬는데 싸웠으니……. 그런 등급을 맞을 만했다.
페이커는 단순히 도망치는 선택을 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결국 꼬리가 잡혔다. 마수들은 타고난 사냥꾼이었고,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저 멀리만 가려고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E! 계획 없이 움직이는 전술가!]
그다음에는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셋으로 나눠서 도망치게 했다. 흔적이 많으면 흔적을 적게 만들면 된다.
인원수를 줄이는 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어린애가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현실적인 조건을 가장 확실하게 제어하는 방법이었다.
세 개의 그룹 중에 한 그룹이 마수에게 걸렸다. 방향이 갈라졌기에 누군가는 걸릴 만했다.
[B!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다. 전술사의 소양 중 하나!]
소년은 빠르게 자신의 실수를 흡수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드낙이 바라보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천재적이야.’
스스로 자기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서운 재능이다.
드낙은 소년의 예명을 확인했다.
‘페이커…….’
팔뚝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그건 분명 자신의 피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가 끓어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본선까지 올라올 수 있을까.’
이토록 어린아이가 도달할 수 있을까?
귀족들은 전쟁을 배운다. 그런 귀족을 단시간에 이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이름’을 별명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싹을 보였다.
드낙은 모습을 감췄다.
소년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강철의 비에 심취했다.
되풀이하고, 고민하고, 되풀이했다. 조건을 조금만 달리해도 상황이 변했다. 그게 재밌었다.
귀족들 또한 움직였다.
“금화 천 닢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은 보상은 딱히 원하지 않았다. 이미 이권을 가지고 있었고 기득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명성이다.
“강철 인형은 문화 놀이로 보이지만, 그 본질은 전쟁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귀족 된 자로서 평민보다 역량이 낮다면 그건 블루 블러드라 할 수 없다.”
세계강철 대전쟁은 나이 제한이 없다.
나이는 중요한 척도로 여겨지지만, 적어도 전술 역량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체스는 적을 죽이고, 바둑은 집을 짓는다. 신동은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프로급의 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뇌에 피가 차기 전에 그에 걸맞은 뇌를 가지게 된다.’
강철의 비는 생각 이상으로 끔찍한 노림수를 가지고 있다. 전술가로서의 재능이 있는 자들을 솎아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그런 뇌를 가지게 하도록 유도한다.
그게 강철의 비에 숨겨진 기능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드낙은 이내 하나의 문제를 발견하게 됐다.
그토록 검토하고 또 검토했지만, 부족했다.
이 세계의 행정력은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아직도 부족했다.
‘의외로 가난한 자들이 많다.’
어째서 그런 것인가. 그건 그들의 소비성향 때문이다.
이건 드낙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충분한 돈을 쥐여주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언제나 가난했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못된 부모들을 어떻게 해야겠는데…….’
문제는 어떤 부모가 못된 부모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산업화 이후로 뿔 쥐들의 정보 단체는 전복됐다. 이를 다시 기동하려면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간다. 전과 다르게 뿔 쥐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였다.
“…….”
드낙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못된 부모도 결국 부모. 일단은 푼돈으로라도 틀어막아 볼까.’
“강철의 비를 플레이할 때마다 동화 5닢을 주는 정책을 펼쳐라.”
그런 명령이 내려왔다.
푼돈이나 다름없지만 적어도 그 작은 푼돈을 위해서라도 가난한 이들은 자식들을 그곳에 보낼 것이다. 이기적인 부모는 더욱 그들을 그곳에 집어넣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단기적이지만 아이들은 강철의 비를 돈을 얻기 위해서라도 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학대받는 것보다는 문화를 즐길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