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7화
* * *
검은 돔에서의 종전식은 준비부터 화려했다.
무엇을 말하리.
칠흑과도 같은 ‘검은 돔’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대단히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빛을 빨아먹는 검은색은 괴이할 정도로 비자연적이다.
“마신의 흔적이다. 훌륭한 훈장이지.”
“찍찍.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역시 대장 쥐십니다. 이런 곳이 아니라면 그 어느 누가 종전식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수를 정복한 증거가 바로 검은 돔입니다. 찍찍!”
대장 쥐와 함께 뿔 쥐들이 시시덕거렸다. 물론 이 자리에 뿔 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고블린과 크놀, 두더지 인간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지하 연합의 훌륭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마법 크리스털을 통해서 종전식을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검은 돔! 검은 돔의 밖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여기를 조금 더 멋들어지게 꾸며야 한다!”
종전식은 지하 연합의 이미지를 개선시킬 중요한 이벤트다. 그렇기에 성대해야 했고, 상대에게서 감탄을 이끌어 내야 했다.
“단순히 지배자들만 오는 게 아니다! 수많은 기득권층이 몰려올 것이다!”
역사의 한 장면이다.
거기에 속하기 위해서 너도나도 찾아올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법 크리스털을 가져와서 개인적으로 영상을 기록할 터였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다.
“아름다운 정원은 고블린들이 맡아라!”
“뜨나아악!”
가장 클래식한 포토존이 정원이다. 가장 인위적이고, 가장 공을 들여야 한다.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꽃과 나무들을 강제로 재단하는 것이 정원이다. 손이 많이 가고,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력이라는 확실한 손. 그 손이 있어야 정원을 유지 가능하다. 대규모 정원은 사람 30명이 관리하기도 한다. 기술과 과학이 발전한 현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손재주가 좋은 고블린은 능히 거대한 정원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지하에는 그러한 ‘온실’이 존재했다. 겨울에도 적정 온도가 유지되는 지하는 원예 또한 훌륭한 수익 수단이다.
‘겨울에도 장미꽃을 선물하고 싶은 지성 종족이 많지.’
보기와는 다르게 오션 오크 또한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꽃이 마르면 그걸로 꽃차를 해 먹는다. 꽃과 오크들의 약재를 교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엘프든 인간이든 겨울에 맛있는 야채, 과일을 원하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따뜻하게 해서 생산할 수 있긴 하지만 단가가 비싸다. 엘프들조차도 마력이 필요한 부분이 워낙 많아서 돈으로 구매할 수 있다면 구매하는 편이다.
지하 연합의 보이지 않는 손은 꽃부터 시작해서 과일까지 뻗어있다.
‘공산품에도 우리들의 마수가 뻗어있지.’
공산품은 크놀들의 작품이다. 크놀들은 훌륭한 대장장이들이다. 신체가 작아서 길쭉한 망치를 쓰기 때문에 생산력이 더딜 뿐이었다.
지하 연합은 그걸 머릿수로 극복했다.
‘임금도 낮다.’
경기가 나빠지면 인건비부터 건드리는 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다.
반면 지하 연합은 일부러 지하 연합 소속의 지성 종족의 임금을 낮췄다. 그리고 물건을 싸게 쏟아냈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결정한 일이지.’
지하 연합은 오직 드낙을 위해서 세상의 공장을 자처하게 됐다.
그 포지션은 현대의 중국과 같았다. 세계 경제 2위의 대국이지만, 중국의 농민은 처참한 수준의 임금을 받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세상 어디에서든지 ‘Made in China’다.
다종족 연합의 경제 성장은 역설적으로 지하 연합의 헌신으로 이룩해 낸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싼 물건이기에 소비한다. 비싼 물건은 소비하기 쉽지 않았다.
신용카드도 없는 시대였다. 부채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살 만하면 빚을 택하는 이들은 없었다.
‘자본 = 자산 + 부채’라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에 빚을 무서워하는 탓이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현대인들이라면 빠삭하게 알고 있는 금융 지식을 전혀 몰랐다.
“크놀들을 이용해서 게릴라 전쟁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기록하겠다. 조각상으로! 그것도 철로 된 것으로!”
대장 쥐의 눈에 열망이 타올랐다.
“최대한 많은 크놀을 작업에 투입할 것이다.”
이에 크놀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불나칵스가 크게 답했다.
“50만의 크놀이 준비하면 금방 끝날 것입니다. 게릴라 전쟁의 모든 것은 기록되었으며, 이를 열람하여 멋진 광경을 새기는 건 쉬운 일입니다!!”
“믿고 있겠다! 불나칵스! 나의 붕우여!!”
밖은 그 정도로 해두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관광이 될 터였다.
검은 돔 내부의 회의장에 대장 쥐가 들어섰다.
본래는 오직 뿔 쥐들의 지배자만이 모였던 의원실에는 다른 종족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드높였고, 의원직을 얻을 수 있었다.
뿔 쥐는 종족 차별을 하지 않는다.
오직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위해서 봉사와 헌신을 하고, 실력과 실적이 있다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검은 돔의 지상층은 귀빈 객들을 모시는 곳이다. 모두 한 나라의 지배자들이니 철저히 화려하게 만들어야 한다.”
“찍. 검은 돔의 외형은 담백함이다. 하지만 내부를 화려하게 하면 조금 어울리지 않은 것 아닌가?”
“검은색과 화려함은 어울리지 않은데……. 지금까지는 대장 쥐, 그대의 의견을 따랐지만, 이번은 반대해야겠어. 색의 조화는 중요하다.”
그 말에 대장 쥐의 토실토실한 뱃살이 출렁거렸다. 불쾌감을 표출한 것이지만 남이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운 토실배에 불과했다.
‘저것이 바로 대장 쥐의 뱃살인가…….’
‘훌륭하다. 저 압도적인 출렁거림……. 반질거리는 고운 털.’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바로 대장 쥐의 뱃살이다. 예민해서 우는 아이도 3초 만에 안정시킬 수 있는 최강의 무기다.
극상의 포상이라고까지 여겨질 정도였다.
다만, 아직도 대장 쥐의 뱃살을 만져본 용자는 없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돋지만, 감히 실행하지 않았다.
실행한다고 해도 대장 쥐가 그림자로 도망치면 그만이다. 대장 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대장 쥐는 실전 감각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 하루에 한 번은 실전 같은 싸움을 하고 있다.
“화려한 것은 검은색과 맞지 않는다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하지? 찍찍. 그건 큰 실례되는 말이다.”
“루비색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피처럼 붉은색은 검은색과 잘 어울리지.”
“어둡기에 오히려 붉은 보석은 빛나는 법. 동시에 세련된 검은색은 백금보다도 실현하기 어렵다! 그걸 실현하는 건 불가능해!”
고블린 지배자의 말은 실로 그럴듯했다.
검은색은 세련된 색이다. 그런데 그런 ‘검은색’을 통해서 화려함을 내려고 하고 있었다.
“보라! 저 위를! 검은 돔의 압도적인 검은색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검은색은 저 정도로 검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화려함이 퇴색해 버리는 것이다!”
현대 패션계에서도 검은색은 가장 무난하다고 여겨지지만 비싼 검은 옷과 싼 검은 옷을 같은 곳에 세워놓으면 그 차이가 명백하다.
검은 돔이 있는 한, 검은색의 기둥이나 바닥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루비는 한없이 아름답겠지.”
“그렇다면 바닥은? 루비에 어울리는 것은 검은색이지만 바닥은 무슨 색으로 할 거지?”
“대리석이다!”
“검은 대리석은 없을 텐데…….”
너무 확신에 차 있었기에 고블린 지배자가 입을 다물었다.
“회색은 있지. 그리고 대리석은 훌륭한 세련미를 가지고 있다.”
예술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 천연 대리석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늬를 지닌 것이 천연 대리석이지. 모든 대리석은 다르다. 그러니 그만큼 사치스러운 것도 없지.”
“하, 하지만 천연 대리석은 관리가 어려운데…….”
쉽게 변성이 일어나고, 오염도 순식간이다. 깨지면 그걸로 끝.
“그런 것으로 건물을 짓는다고……?”
“내부는 나무나 돌을 써도 된다. 겉에만 대리석으로 보이게만 하면 된다.”
“음…….”
모두 고민에 빠졌다.
대장 쥐의 의견에 반대하기 위해서 뇌를 쥐어짜는 것은 아니다.
“꿀꺽.”
한 명이 침을 꼴깍 삼켰다.
주룩…….
뺨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문제는 돈이 아닌가…….”
그 말에 크놀 지배자가 웃으며 말했다. 수많은 지배자 중 한 명이다.
“그럴 리가. 우리는 지하 종족. 지하인. 대리석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지.”
“아!”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 식은 죽 먹기다.”
“종전식은 이걸로 끝이군!”
“이스핀 벌꿀 주도 공수해 오고 있다!”
너도나도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잠깐, 이스핀 벌꿀 주라니? 공수는 또 뭐지?”
대장 쥐가 깜짝 놀랐다.
이에 다른 이들의 눈초리가 이스핀 벌꿀 주를 언급한 크놀 지배자에게로 모였다.
크놀은 대장장이의 지하 종족. 지배자만 해도 벌써 세 명이다.
“헉.”
크놀 지배자가 입을 다물었다.
“대장 쥐를 놀라게 하려고 몰래 준비하던 것이었습니다. 약간의 여흥이지요. 구할 수 있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리스크가 있어서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큰소리쳤다가 못 구하면 그것만큼 꼴사나운 것도 없었다.
“흐흠흐. 그렇겠지. 이스핀 벌꿀 주는 얻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스핀 벌꿀 주를 대접할 수 있다면 분명 큰 호평을 얻을 것이다.
권력자조차도 얻기 힘든 것. 그게 바로 이스핀의 손맛으로 만든 벌꿀 주였다.
특히 전국 요리대회 이후 소위 ‘미식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스핀 벌꿀 주를 가장 으뜸으로 쳐준다.
벌꿀 주. 그거 하나만으로도 이미 ‘요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이 못 느끼는 자그마한 맛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거기까지 도달한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벌 꿀맛 속에 담겨 있는 ‘알 수 없는 맛’은 제각각 설명하는 것이 모두 달랐다.
소위 미식가들은 이스핀 벌꿀 주에서 맛보게 되는 그 의문의 맛을 아는 이들을 ‘마스터 오브 이스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 *
종전식은 착실하게 준비됐다.
마법 크리스털을 통해서 새겨진 공사 진행은 지하 연합으로 퍼져나갔다.
종종 목소리도 들려왔다. 영상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수 있어서다.
뉴스 아나운서 같았지만, 전문성은 떨어졌다. 마법 크리스털마다 목소리가 제각각이었고, 설명을 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말을 더듬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허허, 이놈 봐라. 여기를 봐봐, 술을 마시고 있잖아?”
마법 크리스털이 보여주는 영상의 구석진 곳에서 고블린 하나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일하고 있는데 혼자서 술 마시는 모습은 병신 같지만 멋있었다.
자신도 당장 따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술 먹는 고블린이 담겨 있는 마법 크리스털은 서로 돌아가면서 볼 정도가 되었고, 이내 크게 이슈가 됐다.
“이놈 봐라?”
당연히 지하 연합의 기득권의 귀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잡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저 하나의 유흥이라 여겼다.
종전식을 검은 돔에서 열어 낙천적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지하 연합은 검은 돔의 종전식 준비를 마법 크리스털로 지켜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우리도 이제 그럴듯하네. 엘프들과 견줄 수 있는 거 아냐?”
“적어도 인간들은 넘어섰다고 봐야지.”
지하 연합은 다른 종족에게도 조금 하찮게 여겨졌다. 그들이 워낙 야만적으로 살아서다.
고블린과 크놀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지하 연합을 조금 낮게 보고 있었다.
그 개선이 종전식으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이 88 올림픽을 통해서 국민의 의식이 크게 개선된 것과 같았다.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지하 연합의 종전식은 전쟁이 끝난 후 3개월 뒤에 열렸다. 게릴라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충분히 무료해졌을 때, 마법 크리스털을 통해서 종전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검은 돔과 그 인근에 있는 지하 연합의 국민들은 직접 몰려와서 이를 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돈이 있고, 여유가 있는 자는 멀리서도 찾아와서 직접 이를 두 눈으로 봤다.
검은 돔 옆에 그들이 머물 숙소 또한 마련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막대한 돈을 끌어다 모을 수 있다.
반쯤은 벌써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은 돔의 입구로 향하는 입구 앞으로 족히 폭이 3m는 되어 보이는 양탄자가 끝도 없이 길게 늘어졌다.
그 끝에 드낙이 강철마가 이끄는 마차에서 내렸다. 그의 옆에는 그의 부인들이 잔뜩 있었다. 그녀들과 양탄자를 걸었다.
양옆으로 잔뜩 사열한 뿔 쥐들의 덩치는 대단했다.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꽃들이 흐트러지게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