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화
‘크으윽!’
규르소모스가 크게 당황했다. 드낙이 논리적으로 따질 줄은 몰라서다.
거기에 오크들은 실제로 해독 물약을 적게 만들었다. 그들의 역량은 충분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다른 일보다 급한 것이 혈수병이었지만 참았다.
인어들 때문이다. 항구를 짓는 데 자꾸 방해하는 놈들. 그렇다고 전쟁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혈수병이라는 놈이 찾아온 것이다.
인어들은 쇠퇴할 것이 분명했고, 그사이에 항구 도시를 더 많이 지을 수 있었다.
변명을 위해서 해독 물약을 풀기는 풀었다. 그저, 모두를 만족시킬 정도로 만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게 발목을 잡았다.
“너희가 하지 않은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쳐들어오다니!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 네가 말해 봐라, 규르소모스! 오션 오크들의 대족장아!”
규르소모스가 눈알을 대굴대굴 굴렸다.
뭐라도 말해야 했다. 하지만 무엇을 말하든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드낙에겐 통하지 않을 듯했다.
“…….”
결국 말을 못 하게 되자, 드낙이 웃었다. 실로 잔혹한 미소였다. 덩치가 워낙 커서 멀리서도 그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시간을 얼마나 줬는데, 인어들을 혈수병으로부터 해방시키지도 못하고, 오크들! 너희만 해독했지.”
“그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전수조사를 통해서 알아볼 것이다. 해볼까? 내가 그 정도 힘이 없다고 생각하나? 공정하게 엘프들을 통해서 조사할 텐데. 너희가 그 모든 것을 숨길 수 있을까?”
“…….”
“대족장아. 그저 국력만 봐도, 너희의 무역품이 얼마나 유통되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티팩트 생산량을 생각해 봐라. 주술 아이템의 수요와 공급을 조사해 보면 알 일이다.”
얼마나 많은 해독 물약을 만들 수 있는지, 지극히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규르소모스 대족장은 어떤 말도 못 했다. 말 그대로 제대로 당했다.
“하지만 악마의 피를 바다에 내보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무슨 걱정인가. 바닷물이라도 마시는 건 아니겠지?”
“그걸 마시는 이들을 먹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논하지 마라. 내가 그런 간사한 짓을 벌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바닷물만 마시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너희는 녹색 도끼에 대한 신앙심이 있지 않나.”
물론 거짓말이다. 드낙은 녹색 도끼의 신앙이 있더라도 오크들을 권속 악마로 변질시키고 싶어 했다.
그건 대단히 은밀한 음모였으며, 오크들이 알아차렸을 때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심지어 드낙조차도 그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게 진실일 리가 없었다.
“거기에 이 차원은 나의 것이다. 내 권속이 되기 싫으면 떠나면 된다. 그런데 떠나지 않고 있지. 안 그런가?”
“그건…….”
솔직히 말해서 떠날 수는 없었다.
“세파리아스. 알지?”
“신제국의 황제 아닌가요.”
“놈의 국가는 차원 다리를 건설하고 있다. 다른 차원과 강력한 연결고리를 가진 채로 침공할 생각을 하고 있지. 너희도 그렇게 하는 게 어때?”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그렇게 빠져나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다만, 너의 의도를 알고 싶다. 지금 네가 대족장이지 않나. 수많은 오션 오크들을 아우르는 직책이다.”
드낙의 말에 규르소모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게도, 인간처럼 대단히 중앙집권적인 자리는 아니요.”
“그렇다면 어떻게 대함대를 이끌고 올 수 있었느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했다.
“군대를 다루기는 쉽다. 하지만 정책적인 부분은 주술사들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오크 사회의 특징이었다.
이를 들은 드낙이 속으로 웃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내게 대항하러 온 거겠지.’
인어들의 마을 동태를 살피는 오크가 있다면 자연히 볼 수밖에 없었다. 바다 위에 산처럼 큰 드낙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피부는 빨갛고 악마의 뿔까지 솟아나 있었으며 날개 또한 대단히 길고 넓었기에 아주 멀리서도 볼 수 있었고, 이는 단기간에 오크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소득을 얻기는커녕 협박만 받은 규르소모스에게 드낙이 거침없이 명령했다.
“돌아가라. 아무래도 오늘 그대가 가진 권력은 모래 한 줌도 되지 못하는 것 같구나. 아까 화내서 미안하다. 이토록 권력이 없을 줄이야. 사실상 주술사들이 권력의 중추라고 할 만하군. 대족장이 아니라 주술사 왕을 내세워야겠어. 그러고도 오크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느냐? 판단 하나 제대로 못 내리면서……. 큼큼.”
드낙의 팩트 폭격에 규르소모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하지만 정말로 그는 힘이 없었다. 주술사들과 협업을 통해서 정책을 내놓아야 했다. 오크 종족의 미래에 대한 것이라면 예언까지 들어봐야 했다.
‘어리석긴.’
그들의 대예언은 대부분이 오크들의 종말을 말할 때 여겨진다. 그게 아니라면 작은 예언을 통해서 점쳐야 했는데 그것도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
드낙을 표적으로 내세울 리는 없었다.
드낙은 쥐새끼처럼 숨어서 오크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벼락처럼 다가와서는 이렇게 둔기로 내려찍어 버렸다. 오크 종족은 정신을 못 차렸다.
‘거기에 대비도 해놨으니까.’
녹색 도끼의 예언은 인과율이며 미래 예지였다.
초월자인 드낙은 자신의 미래를 보려는 이를 차단할 수는 없지만 방해는 가능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오크들은 드낙의 공격에 취약했다.
‘업(業)을 소모하는 일이지.’
예언을 방해하는 일은 업을 소모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차단하지 않았다. 그저 수많은 갈림길만 보여줬다.
실로 간사했다.
그 덕에 규르소모스를 함정에 빠뜨릴 수 있었다.
“악마 전쟁이 있으니까, 참고 넘어가는 것이다! 돌아가라! 어서 가서 테라를 위한 일을 하거라. 오크를 위한 일만 하지 말고. 오늘의 빚은 내 두고두고 염두에 둘 것이다.”
끝까지 경고를 날렸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결코 너희를 내치지 않을 테니까.”
마지막에는 약간 누그러지게 말해서 여지를 남겨두었다.
아주 열이 받아서 죽으려고 할 것이다.
“와아아아!”
“오크 녀석들이 물러간다!”
“더러운 뚱돼지 녀석들!”
“바다의 지방 덩어리들!”
인어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
환호하는 인어들을 보며 드낙의 눈이 활처럼 휘었다. 실로 악마 같은, 기분 나쁜 미소였다.
오크들은 결국 성과도 없이 돌아갔다. 그들은 다시 의견을 교환하고 예언을 점쳐서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한 대처를 확실히 한 뒤에 드낙에게 올 것이다.
그사이에 드낙은 인어들에게 손을 뻗었다.
한 번 도와줬으면 응당, 인어들도 드낙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드낙에게는 그게 공평했다.
“너희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말씀만 하시옵소서!”
“제가 곧 따르겠나이다!”
인어들이 아우성쳤다. 그들은 이번에도 달달한 꿀을 마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해변을 떠나라.”
찬물을 얹은 것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인어 중에 구심점 역할을 할 리더는 없었다. 보스라 불릴 만한 자도 없었다. 모두 거기서 거기였고, 고만고만한 놈들이었다.
드낙은 그런 그들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시련을 겪으면 변하겠지.’
시련을 겪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변할 수 있었다. 그 변화가 바로 해변을 떠나는 것이다.
‘오션 오크는 지상 종족이다.’
배를 타고 다니고, 깊은 심해까지 진출할 수 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하지만 인어는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가능했다. 오션 오크보다 더 효율적인 바다 종족이 될 수 있어 보였다.
“바다 깊은 곳으로 향해라. 그것이 너희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드낙이 명령했고, 인어들은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7일의 말미를 주겠다. 7일 이후에는 이곳을 떠나서 새로운 세상을 너희의 손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고, 너희를 위한 것이다. 기대한다. 날 실망시키게 하지 마라.”
이에 인어들이 답하였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혼자만 가지 않는다. 수많은 인어가 바다 깊은 곳으로 향할 것이다.”
드낙의 말에 인어들이 다시금 환호를 내질렀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조금은 맥이 빠져 있었다.
두려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건 언제나 무서운 일이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고, 정든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들어섰을 때, 막연한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많다.
인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 사라졌다.
“가자! 못할 게 뭐가 있느냐!”
덩치 큰 인어가 크게 호통을 쳤다.
“우리는 한 번 더 진화했어요. 이제 그 힘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해요!”
인간의 상체마저 푸르고 비늘이 자라난 인어 또한 다른 인어들을 설득했다.
‘흡족~하다!’
드낙은 이를 지켜보며 웃었다.
구심점이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다. 인어 중에서 업(業)을 차곡차곡 쌓은 인어들은 중위 권속 악마가 되었고, 새롭게 개화했다. 그들이 인어들을 다시 이끌 것이다.
인어들은 그렇게 먼 바다로 갈 준비를 했다. 뗏목을 준비하여 바다 위에서도 요리를 해 먹어야 했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인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연구하여 쟁취하게 될 것이다.
‘디아볼로스를 파견해서 기술을 전해 주는 것도 좋겠지.’
인어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전수하라고 명령하면 그만이다. 그건 엘프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그리고 뿔 쥐들도, 오크들도 결국 서서히 바뀌게 될 것이다.
인어들은 드낙에 의해 강제로 바다 깊은 곳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니 변하고 싶지 않아도 새롭게 변하게 될 것이다.
* * *
규르소모스는 성과도 없이 돌아가게 되었다.
드낙은 훌륭하게 자신의 과업을 이루어냈고, 규르소모스는 그러지 못했다.
대족장의 대망신이다. 그만큼 오크들의 현재 정치 체제는 대단히 불안정했다.
대족장이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쟁과 관련된 권력뿐이었다.
그렇기에 전쟁처럼 달려들었고, 드낙을 마주해서 정치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했다. 실로 형편없이 꼬리를 말고 물러나야 했다.
‘빌어먹을!’
오크 사회의 맹점. 그것을 드낙은 훌륭히 파고들었다.
그는 싸우지 않고 이겼으며,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인어들을 격상시켰다.
반면 오션 오크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모두 주술사들 탓이다!”
당연히 그 책임을 주술사들에게 물었다.
“모든 정책은 그대들의 생각을 듣고 해야 하니,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않나!”
“예언과는 달랐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큰 예언은 오로지 오크들의 ‘전쟁’과 관련된 것뿐이었다. 혹은 강력한 대적자(大敵者)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녹색 오크의 예언은 크면 클수록 전투와 관련이 되어있을 뿐이다.
그게 오크들의 예언이 지닌 단점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작은 예언을 통해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짚어 대처한다.
“잘난 주술사들이 왜 이번에는 틀렸는가?”
“드낙 초월자는 우리들의 예언을 방해했다. 그렇기에 당한 것뿐이다.”
“그래서? 뭘 하자는 건가? 그렇게 보내놓고 인제 와서 책임은 안 지겠다?”
“책임? 책임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실패해도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오크 주술사들이었다. 그게 바로 ‘계급 사회’의 진면목이다.
오크 사회는 사뭇 평등해 보이지만 명확하게 계급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계급은 쉽게 무너뜨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규르소모스 대족장이 ‘책임’을 논하니 주술사들로서는 갑작스러웠다.
“테라의 초월자는 우리가 지닌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대족장은 전투와 관련된 권력만을 가진다. 주술사는 정책과 관련된 권력만을 가진다. 그렇기에 허점이 존재한다.”
“성급하게 나간 것이니,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 오크는 오랜 세월을 이런 사회체제로 살아왔다. 그러니 그것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다.”
“바꾸고 싶지 않은 자들은 이곳에 남아라.”
규르소모스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그 눈에는 권력욕이 그득했다.
드낙을 견제하려고 갔지만, 소득이 없었다. 악마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고, 싸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협상이라도 해야 했다.
굴복이라도 해야 했다. 살을 내어주고, 뼈라도 취해야 했다. 그러나 그건 규르소모스 같은 대족장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니다.
그는 군림하지만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없었다. 그게 오크 전사 계급의 한계였다.
‘이제는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규르소모스가 서로 의견을 빠르게 나누며 시끄러워진 회의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컸다.
“나를 따르는 오크는 서쪽 바다를 지배할 것이고! 나를 따르지 않는 오크는 동쪽 바다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