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99화 (1,098/1,239)

1099화

13. 혈수병 (2)

혈수병을 치료하는 주문이 깃든 드낙의 피가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인어들은 환호했고, 그들은 마음껏 드낙의 피를 받아 마셨다. 혈수병에 걸린 이들이 치료되었으며 활력까지 철철 흘러넘쳤다.

“초월자께서 주시는 신의 축복이다!”

“혈수병은 박멸될 것이다! 우리들의 신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 움직이셨다! 찬양하고, 또 찬양하라!”

“드낙! 드낙! 드낙!”

인어들은 드낙의 피를 마시며 피로를 해소하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혈수병이 사라지고, 마을의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피만 마셔도 배가 불렀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아아아아아아악!! 힘이! 힘이이이잇!!”

드낙의 피를 마시던 인어가 고함을 내질렀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막강한 힘이 돌고, 쾌감이 전신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디아볼로스들은 그저 드낙의 피를 맛보기만 해도 끔찍한 쾌감에 몸서리를 쳤지만, 인어들은 그러지는 않았다.

그들 중에 업(業)이 제법 쌓인 이들은 변모(變貌)하며 쾌락에 벌벌 떨었다.

덩치가 커지는 이들은 단번에 2.5m가 넘어서며 중위 권속 악마에 닿았다.

인간의 모습을 지닌 상체까지 피부색이 하늘색으로 아름답게 변하며 곳곳에 비늘이 자리 잡은 인어들은 마력이 터져 나오듯이 개화했다. 그들 또한 중위 권속 악마라 할 수 있었다.

변모하는 인어들은 몸에서 비늘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이 햇빛에 비치며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은하수의 길과 닮았다.

이에 수많은 인어가 두 손을 꼭 모았다.

“아아……!”

그저 광적으로 그를 찬양했던 것이 사라졌다. 그 광기는 경외심으로 바뀌었고, 신앙으로 변했다.

드낙은 확실하면서도 강렬한 신앙심을 느꼈다. 그의 내부로 업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거지.’

하나를 주고 끝내면 안 된다. 둘을 주고 셋을 줘야 한다.

인어들은 혈수병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 너머를 봤고 인어들은 충격과 공포를 느끼며 환희했다. 껍질을 깨버린 것이다.

‘내가 병만 고쳐줄 것이라 여긴 인어들의 패착이다.’

이걸로 인어들은 더욱더 드낙을 위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드낙은 인어들을 위하는 척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인어들의 골수까지 빨아먹을 작정이었다. 그들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드낙은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업(業)이라는 놈을 사탕처럼 핥아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그저 ‘힘’을 사용할 뿐이다. 악마라는 초월체가 지닌 힘일 뿐이지, 업을 소모하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드낙은 실로 간사한 짓을 했다.

‘모든 인어를 진화시키지 않았다.’

실로 잔인했다.

이로 인하여 인어들은 명확한 사회계급의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 그게 바로 드낙이 원하는 바였다.

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이들이 다른 인어들을 이끄는 사회. 그런 사회가 필요했다. 잔인하지만 효율적이다.

인간은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끝없이 계급 갈등을 겪어왔고, 그렇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외의 사회는 모두 멸종했다.

경쟁만이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인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드낙이 만든 콜로세움에서 서로를 향해서 이빨을 드러내며 인어라는 종족을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신이요, 악마로다! 내가 바로 초월체다! 이 테라의 위대하고 위대한 자다!”

“와아아아앙!”

마을 하나를 회복시키고 진화할 수 있는 이들을 진화시킨 드낙이 인어들을 보며 말했다.

“모든 문화를 받아들여라! 악착같이 받아들여라! 오크뿐만 아니라 지하 연합부터 상위국과 제국의 문화까지 받아들여서 너희만의 것으로 삼아라! 그리하여 너희가 그들의 위에 서라!”

“만세! 만세!”

“믿습니다! 믿습니다! 우리들의 신을 믿습니다!”

인어들이 발광하면서 드낙을 드높였다. 실로 간사한 마음이었다.

“성장! 오로지 성장이다! 뒤떨어진 자들을 끌어당겨 주고, 앞서 나가는 이들을 밀어서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게 하라! 그렇게 인어들은 다시 한번 위대한 해양 종족으로 나아갈 것이다아아아!”

드낙이 외쳤다. 인어들이 호응하듯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는 사이에도 드낙의 몸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모두 마법이 깃들어 있는 아티팩트와 같은 피였다.

그 피는 바다로 퍼져나가며 혈수병과 싸우고, 동시에 질병에 걸린 물고기들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기생충에 힘겨워하는 물고기들은 다시 한번 알을 낳을 활력을 얻을 터다.

‘인어들을 통해서 바다에 진출한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인어들이 불로 구워 먹는 요리에 맛이 들렸다는 것이었다.

‘뗏목? 그와 비슷한 거로 멀리 나가서도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으려나…….’

불의 마법을 사용하면 화력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드낙은 그렇게 인어들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혈수병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시작했다.

드낙의 피가 많이 뿌려지고 희석된 바다에는 혈수병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바다의 물길을 따라서 드낙의 피는 서서히 바다 깊은 곳까지, 바다 넓은 곳까지 향하고 있었다.

자연히 마신의 기운과도 부딪힐 것이다.

‘한계는 있지.’

초월체인 드낙이라고 해서 계속 피를 쏟아낼 수는 없다. 삼 일에 한 번은 쉬어줘야 했다. 온전한 악마였지만 마력을 많이 소모하는 탓이며, 악마의 육체는 곧 초월의 힘이나 다름없었기에 그 피를 소모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힘들어도 해야지.’

마신이 테라를 향해서 계속된 견제를 하고 있었다. 빠르게 이를 해결해야만 했다.

‘더 많은 생명체가 나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당연히 오션 오크들이었다. 그들은 바다를 지배하는 오션 오크들이다. 보통 오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더는 산맥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는 평야를 향해 달리는 꿈을 꾸지 않는다. 그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식량이 없으면 오크는 결코 성장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다는 충분히 그들을 감당해 냈다.

바다의 품은 오크들에게 너무나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드낙이 이번에 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땅에서 간사한 짓을 하고 있었다. 혀를 날름거리는 악마와도 같았다.

“우리가 얼마나 그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물고기를 내륙으로 전달하고 있거늘!”

“바다를 악마의 피로 변질시킨다면 우리 또한 악마의 권속이 되는 것 아닌가?”

“조사해 봐야 한다!”

“조사? 아니다! 직접 찾아가서 물어봐야 한다. 그게 더 빠르다!”

초월자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오크도 있었지만 통용되지 않았다.

대족장 규르소모스가 나섰다. 그는 동쪽 해안에서 출발하여 드낙이 있는 곳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많은 배를 출항시킨 것은 당연히 현재 오크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오션 오크들이 가볍게 버릴 수 없는 힘을 지녔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오크들이 함대를 보며 드낙이 빙긋 웃었다.

‘똥꼬가 빠지도록 왔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라고 인어들부터 시작한 것이다.

저들의 죄는 크다. 하지만 저들의 이용 가치는 더 크다. 그렇기에 놔두는 것에 불과했다. 무조건 혼을 낸다고 능사가 아니다.

‘적당히 견제하는 게 최선이지.’

오크들은 딱 3등. 아니면 4등만 해주면 된다. 테라에서 그 이상으로 해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크들은 오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드낙의 거대한 몸을 바라보는 오크들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항상 인간형으로 지냈고, 최근에 와서는 거의 만나보지 못했기에 그들은 드낙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또, 간과하고 있었으며 체감을 하지 못했다.

행성을 파괴하고, 별을 부수는 악마라는 초월체가 지닌 진짜 무서움에 대해서 완벽하게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걸 엿볼 수 있었다.

“무슨 덩치가 저렇게 큰 것이냐.”

가히 100m.

심지어 그마저도 드낙이 자신을 여럿 만들어 ‘그림자의 힘’을 사용 가능한 드낙을 세상에 뿌렸기에 100m인 것이다. 그들을 다시 흡수한다면 300m까지도 몸을 키울 수 있었다.

단순히 악마로서 진짜 모습을 갖추었을 때 드낙은 300m의 거체(巨體)였다.

대악마(大惡魔) 아카타베루의 진체(眞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신생 악마치고는 압도적인 스펙을 지니고 있었다.

그 거대한 몸에서 한 번 뿜어져 나오는 마력 출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마력 출력 때문에 마력량이 아무리 많아도 오래 못 싸우는 게 흠이긴 해도…….’

극딜을 넣고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물량 전투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었다. 덩치가 작은 몸에 깃든 신이라면 한순간에 한 줌의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덩치가 커야 하는 이유는 힘의 방출량이 대단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오크 전사들은 전투광이다. 그들은 주술사와 마법사와 대련을 많이 하고, 그들이 지닌 것에 대한 직감적인 이해도가 존재했다. 까막눈이라 할지라도 수백 번 부딪치면 깨닫게 마련이다.

“무슨 일로 이렇게 많이도 왔느냐.”

드낙이 고개를 숙였다.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거센 파도가 휘몰아쳤다.

그에 배가 휘청거렸고, 함대가 출렁거렸다. 이내 서서히 퍼져나가며 와해가 일어났다.

그야말로 막강한 움직임이었다.

질량이 무거운 물이었기에 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

그 상황에서 드낙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적었다. 다만 오크들 또한 단단히 준비하고 왔다.

“크아아악!”

와이번이 날아올랐다.

규르소모스였다. 대족장이 된 그는 기어코 와이번 라이더가 되었다. 유려한 몸을 지닌 와이번은 단번에 날아올랐다.

바다를 지배한 오션 오크들은 자연히 하늘을 지배하고 싶어졌다. 더 멀리 보려면 고도를 높여야 했는데, 바다에서는 그게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아버지이자 자신들의 신인 녹색 도끼의 힘을 빌려 타투에 새겨 와이번 라이더가 되려는 이들도 많았다.

척 봐도 와이번을 다룰 수 있다면 대단히 멋진 오크가 되기 때문이며, 연봉도 높아졌다. 와이번 라이더는 그 수가 매우 적어서였다.

“그―만―하―시―오!”

규르소모스가 크게 외쳤다. 블랙 스케일 와이번이 아닌 그냥 와이번을 타고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도 간지가 철철 흘렀다.

‘역시 판타지의 끝판왕은 드래곤 라이더지.’

와이번도 훌륭한 아룡(亞龍)이다.

“하하하! 나는 그저 그대들의 말을 더 잘 듣기 위해서 몸을 숙인 것일 뿐이거늘, 이 무슨 호들갑이란 말인가!”

드낙이 크게 웃었다.

그에 충격파처럼 공기가 크게 떨렸고, 그 공기에 맞닿은 피부로까지 떨림이 전해졌다.

‘엄청나다…….’

전율했다.

오크들은 말 그대로 팔뚝부터 시작해서 등골까지 짜릿한 전율감에 떨었다.

단순한 웃음소리마저도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드낙에 대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뽑혔다.

새로운 돌덩어리가 묵직하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크게 흔들리는 표정을 지었다. 알게 모르게 모두 깨닫고 있었다.

녹색 도끼가 단순히 빙의하여 군림하는 것만으로는 드낙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 테라에 살아가는 많은 오크를 핏물로 만들어 완전히 강림시켜야 드낙과 해볼 만할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표정이다.’

드낙은 오크들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보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들을 수 없고.

실로 삼류인생 같은 모습이었다.

‘보이지 않아도 꿰뚫어 보는 식견을 가져야 하거늘.’

드낙은 왜 오션 오크들이 혈수병을 처리하는 데 크게 공을 들이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중립신의 죽음 이후, 드낙과 맞서보지 않아서다. 반면 오션 오크들은 끝도 없이 성장했다. 탐욕이 일어나고 자신감이 넘칠 만했다.

물살이 잔잔해지고 드낙이 규르소모스에게 말했다.

“왜 아직도 혈수병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냐?”

“하고 있었습니다!”

“이노오오오옴!!”

드낙이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이에 규르소모스가 침을 꼴딱 삼켰다. 드낙의 눈에는 그게 자연스럽게 보였다. 확실하게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전쟁이다! 하는 일을 절반으로 줄여서라도 해독 물약을 만들어 바다에 쏟아내야지! 그랬어야지! 그런데 내가 나서자마자 나를 견제하려고 여기까지 함대를 몰고 오다니, 네놈들은 대체 뭐 하는 종족이냐! 뭣 하는 놈들이냔 말이다!!”

드낙의 외침에 오크들이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려고 내가 너희를 지배하지 않고, 자치권을 내어줬다고 생각하느냐!!”

자치권까지 들먹이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지금 이를 의논하는 건 규르소모스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대족장이라고 오션 오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술사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오히려 정치나 처세에 관해서는 주술사들이 더 입김이 세다.

그게 오크들의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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