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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98화 (1,097/1,239)

1098화

‘역시.’

드낙은 혈수병이야말로 ‘진짜’임을 확인했다.

‘게릴라 전쟁의 표면은 이걸 숨기기 위해서였다.’

확신했다. 이 질병은 그만큼 싹수가 누렇다. 악독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혈수병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드낙은 이 질병이 마치 ‘바다의 멸망’이나 다름없음을 알 수 있었다. 문명사회를 가장 빠르게 파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식량 자원 하나가 사라진다면? 대륙의 땅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바다만큼은 아니다.

‘그런 바다가 쓸모가 없어진다면.’

어지간한 문명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적어도 용병 지구인들의 지식이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은 테라는 명확하게 그 기세가 기울어질 것이다.

‘인어가 혈수병에 걸린 건 우연의 일치다.’

해양생물로 기능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하반신은 물고기와 같았다. 그렇기에 혈수병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 인어들이 감염되자 자연스럽게 오크들도 감염되었다.

인어는 해양생물임과 동시에 지성 종족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인어에 침투한 혈수병은 자연스럽게 오크에게도 전염되었다. 그 외에 다른 지성 종족에게도 옮길 수 있다.

‘그래서 알아차렸다.’

만약 인어들이 아니었다면 못 알아차렸을 터였다. 대단히 간사한 요소가 있어서다.

‘지성 종족은 감염이 되지 않는다.’

반어반인(半魚半人)인 인어들이 아니었다면 경계조차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해양생물로 퍼져나갈 테니, 그리 위협적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예산부터 시작해서 관심까지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다를 터였다.

‘될 놈은 된다더니.’

인어 덕분에 혈수병은 지성 종족에게 들어올 수 있었고, 자연히 오크에게까지 전염되며 그 위협성을 증명했다. 결과로 따지면 좋은 일이 되었다.

‘개꿀이란 소리지.’

드낙은 이 질병이 해양생물에게 특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 외에는 별 볼 일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도 혈수병과 싸우고 있는 까닭은 테라의 마수나, 마수 기생충이 더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로소 마신의 흉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율했다.

‘이런 식의 전쟁이라니.’

대단히 은밀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조금 돌고 돌아서 도착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처리하면 된다.

혈수병의 목적은 해양생물의 멸종이다. 지성 종족은 거기에 해당이 되지 않지만, 인어 때문에 그렇게 변질되어 버렸다.

‘혈수병만 막으면 게릴라 전쟁은 일단락된다.’

자신을 여럿 두고, 세파리아스의 정신체가 마수의 정신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다니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다시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혈수병이 마지막 타깃이다.

‘빨리 끝내 버려야지.’

마신은 테라가 이미 완벽한 대처를 하게 됐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역량을 쏟아부을 것이다. 얼마나 손해를 볼지 모르지만, 일단은 계속 그렇게 깎아 먹는 게 중요한 일이다.

‘마력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병균은 작은 놈이기에 가능했다. 끝없이 밀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드낙은 동시에 해양생물들의 상처 또한 돌볼 생각을 가졌다.

‘바다 자체를 양식장으로 삼는다.’

병균으로 죽는 물고기들이 사라진다면 엄청난 숫자로 물고기들이 불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오션 오크들과 인어들이 크게 재미를 볼 수 있게 된다. 질병으로 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해양생물들은 능히 그 덩치를 불릴 것이다.

‘작은놈부터 큰놈까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의 머릿수가 증가하는 셈이다.

‘나쁘지 않다.’

거대한 프로젝트로 삼을 만했다. 어차피 양식장은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스케일을 키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드낙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생각하면 할수록 좋은 생각 같았다.

‘바다 그 자체의 생명력을 높이는 일이라……. 오션 오크에게 너무 큰 힘을 실어주는 것이겠지만 악마 전쟁에서 그 값을 치르게 하면 될 일이다.’

생각을 정리한 드낙은 단번에 새로운 주문을 만들었다.

열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주문이다.

「봄바람이 들어온 산에 겨울눈이 사라져 간다.

잠깐 빌려다가 고드름이 내려앉은 동굴 속에 놓고 싶구나.

귀밑에 서린 백발 또한 녹일 수 있는 봄바람이 불어온다.

한 손에 꽃을 들고 다른 손에 유골을 들고…….

늙은 길 속에서…….」

주문은 대단히 길었다. 또한, 추상적이기도 했다. 드낙은 지속 시간을 늘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단순한 주문은 의미가 없지.’

혈수병에 대처를 해야 하는 주문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무식한 해결 방법을 쓰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분간 바다에서 지내야 한다.’

게릴라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건 마신의 세력이다. 그들이 멈춰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끝없이 싸워야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평범한 주문으로는 혈수병을 처리할 수 없었다.

게릴라 전쟁은 너무나도 긴 싸움이며 혈수병은 바다의 깊은 심해까지 내려앉고 있었다. 그 까마득한 범위를 모두 감당해야 하려면 특단의 대처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있다.’

드낙의 눈에 날카로운 현명함이 깃들었다.

‘아티팩트를 만든다.’

기존에 있던 것에서 조금 틀었다. 손바닥 뒤집듯이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평범한 사람은 할 수 없다.

‘내 피를 이용한 아티팩트다.’

주문을 현실의 물질에 담아내는 것이 아티팩트였다. 그렇다면 드낙의 피 또한 아티팩트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피는 금방 마르고 사라진다.

‘하지만 바다는 아니다.’

희석되지만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악마의 피는 희석되어도 강하다.’

그저 혈수병과 싸울 수 있으면 충분했다.

혈수병 하나하나는 병균에 불과하고, 그 힘은 대단하지 못했다. 그저 뭉치고 모여서 많아지는 게 문제였다.

생명체 내에서의 싸움이다. 그곳에 드낙이 참전하는 꼴이다.

‘내 피에 담은 마법 주문은 끝도 없이 바다로 향할 것이다.’

혈수병과 싸우는 데 온 힘을 쏟아붓고 사라질 터였다.

하지만 발데마르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악마의 피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그 자체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피를 쏟아낸다고 해서 드낙이 지닌 업(業)이 소모되는 건 아니었다. 악마는 초월체이며 초월의 힘이 깃든 육신을 가지고 있다.

육체를 따로 놓고 악마를 설명할 수는 없다. 육체는 곧 악마다. 그렇기에 드낙의 피는 그 자체로 생명체를 더 강하게 만든다. 더 거대하게 만든다. 동시에 드낙을 칭송하게 된다.

‘생명은 아름답지. 거기에 한 번 걸어 볼 가치는 있다.’

겸사겸사다. 혈수병도 처리하고 해양생물을 진화시킨다. 악마의 피. 더 정확히는 드낙이라 불리는 악마 개체의 피를 먹으며 해양생물들은 서서히 권속 악마로 진화할 것이다.

‘지성 종족이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100종 중 1종(種)이 지성 종족이 될까 말까 싶었다. 악마의 피는 뇌의 발달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래도 그런 쪽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존재했다.

‘그게 바로 진화니까.’

인간만 해도 먹는 게 넘어가는 곳과 숨 쉬는 곳이 같은 곳에 있었다. 먹다가 목에 걸려서 죽을 정도로 멍청한 진화라 할 수 있었다.

인간의 눈 또한 상상 이상으로 잘못된 진화를 한 신체 부위 중 하나다.

물론 드낙은 그 정도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초월체가 되면서 육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악마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히 높았기에 그런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악마는 커져야 강하다.’

아무리 보유 마력이 높아도 육체의 표면적이 좁으면 한 번에 토해낼 수 있는 마력 출력이 낮기 때문에 마력이 많이 봤자 힘에서 밀린다. 그 이후는 죽음뿐이다.

중립신처럼 방심해서 죽는 게 아니라면 보통은 힘과 힘의 부딪힘이 초월체들의 싸움이었다. 인간의 탈을 쓴 드낙이지만 그가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거대해질 수 있었다.

‘악마의 피를 이어받은 놈들은 모두 강해지는 것이 먼저지.’

만티코어는 지성을 얻었지만 그건 드낙이 유도를 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는 그저 드낙의 피가 바다에 스며드는 것이기에 조율할 수 없다.

‘해양생물이 강해지면 그들은 나를 따를 것이다.’

나중엔 지능은 나쁘지만, 덩치가 큰 물고기를 단번에 휘어잡아서 식량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겨우 ‘식량’을 얻는 일에 드낙이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바다를 나의 것으로 만든다.’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분명 대업(大業)이라 불릴 만한 일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바다에서 나고 죽은 것들은 모두 드낙에게 업(業)을 바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의 순환 고리에서 드낙은 어마어마한 업을 소유하게 될 터다.

그건 곧 테라를 가장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드낙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드낙의 피에는 주문이 깃들어 있었고, 바다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드낙은 서서히 이 일에 대해서 체감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뚱어리로는 불가능하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했다. 드낙의 몸이 찢기며 붉은 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로 악마적인 피부 색깔이었다. 지방도 있고 근육도 있는 적당한 몸이 모습을 드러내며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 크기가 50m를 넘고 나서야 인어들은 드낙의 존재감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으며 100m를 넘어섰을 때 비로소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암살 재능 덕분에 거대한 힘이 퍼져나가는데도 인어들은 알아차리지 못했고, 뒤늦게 이를 느꼈다.

“헉.”

“이게 무슨 일이야?”

“일어나!”

그들은 물속에서도 말이 통했다. 괴이한 일이었지만 권속 악마였기에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악마가 두 눈으로 보였다. 서둘러 수면 위로 올라가 그 거대한 몸을 올려다보는 이들도 많았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 인어들이 머리만 쏙 내놓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경외감이 잔뜩 있었다.

‘피가…….’

‘내 몸이…….’

드낙에게 빨려 들어가듯이 매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려움조차도 느끼지 않았다.

강대한 친밀감. 압도적인 호감이 몸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신은 경악했고 두려워했지만, 육체를 이길 수 있는 종족은 대단히 적었다.

인어들은 이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리들의 신이다!”

“혈수병을 없애러 오셨도다아아!!”

이를 내려다본 드낙이 흉험하게 웃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렇다! 오래 기다렸도다! 나의 혈육들아! 내 아들과 내 딸들아!”

드낙이 립서비스를 마음껏 쏟아냈다.

이미 태어난 이상 바닥까지 긁어서 써먹어야 했다. 오션 오크들의 해양 자원을 최대한 빨아들여서 견제를 해줘야 하는 것도 인어들이었다. 당장 어패류만 해도 그랬다.

‘다이앤타가 여기까지 와서 상품을 볼 정도니까.’

내륙은 해산물을 원하고 있었다. 요리대회의 순기능이다.

요리는 못 먹는 게 없을 때까지 개발될 것이고 발전할 것이다. 독이 든 것도 ‘식재료’로 쓸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드낙이 원하는 것이다.

모든 자원을 100% 먹을 수 있는 식문화!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인어들을 크게 지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더 열심히 혈수병을 처리해야 했다.

“오늘! 혈수병은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인어들은 지금보다 더 위대해질 것이다! 나 드낙의 이름으로 맹세하겠다!”

“와아아아!”

“오크들을 이겨보자!”

“오크들을 이겨보자!”

드낙의 선창에 인어들이 따라 외쳤다. 그리고 드낙의 전신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 피로 바다를 정화할 것이다! 이 피를 받아 마셔라! 혈수병은 조용한 습격이지만 들킨 이상 결코 우리를 약탈하지 못할 것이다!”

지성 종족이 아니라 해양 자원을 박멸하기 위해서 퍼뜨려진 것이 혈수병이었다. 그렇기에 들킨 이상 아무 소용없었다. 확실하게 밀어낼 수 있었다.

인어들은 악마를 향해 헤엄쳤다. 그리고 드낙의 피부에 손을 대며 뜨끈할 정도로 따뜻한 드낙의 피를 손으로 받아 마셨다.

드낙의 피는 억수처럼 쏟아져 내리기까지 했다.

“아아아!”

인어들이 환희했다.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듯이 쾌감으로 절여졌다.

드낙의 피는 인어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리고 새롭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자신들의 신, 드낙에 대한 모든 것들이 변했다.

새로 덧칠해졌다.

그들은 말 그대로 처음으로 드낙을 통해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악마. 우리는 악마다!’

“우아아아아!!”

인어들이 그들의 모든 것을 깨닫고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오션 오크들의 웅장한 문화에 밀려 알게 모르게 패배감에 절어 있던 그들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막강한 존재가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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