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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97화 (1,096/1,239)

1097화

“그래서 사업해서 뭘 하고 싶은 거냐? 그냥 그렇게 사업하려고?”

“나만의 세력을 만들어 보려고. 날 믿어주는 사람들을 이끌고 싶어.”

“크레시미르처럼?”

“오빠 얘기는 왜 꺼내? 뭐, 덕분에 눈이 많이 뜨였긴 했지만.”

다이앤타로서는 정말 백번 절해도 모자라긴 했다. 크레시미르에게 경쟁심을 가졌었던 옛날의 자신에게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그 덕에 눈이 뜨였으니까.

“남한테 배울 점이 많긴 많아. 그렇지?”

똑똑한 놈일수록 더욱 그러기 마련이다. 자신을 드높이니 나머지는 죄다 벽을 치고 보지 않으니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주니까, 내 마음이 편하다.’

모두 부모를 부르기보다는 알아서 자기 할 일을 찾고 있었다. 그건 큰 의미가 있다.

‘벌써 독립했다고 봐야지.’

“그런데 아빠가 어쩐 일이야? 지금 게릴라 전쟁도 조금 잠잠해졌다더니, 놀러 온 거야?”

다이앤타의 물음에 드낙은 간략하게 말해 줬다.

“혈수병?”

“못 들었어?”

“전혀……. 여기서 사업 이야기할 때도 못 들었는데.”

“속인 거네. 그러기에 잘 알고 들어왔어야지.”

큰 돈벌이가 될 것 같으니, 입 싹 닫은 듯했다. 거기에 깜빡 속아간 것이 다이앤타였다.

“아무리 똑똑해도 먹을 것 앞에서는 쥐약이지.”

그렇게 공부 잘하는 대학생들도 먹거리를 제공하면 강의에 대한 평가가 높아진다. 인간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먹을 때 가장 방심한다. 인어들은 정말 단순하게 다이엔타에게 어패류의 맛을 보여주며 그녀를 속인 것이다.

“하하하하!”

드낙이 크게 웃었다. 세상 웃기게 당했다.

다이앤타는 벌써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그래서 복수할 거냐?”

“속은 게 잘못이지. 창피해서 복수도 못 해. 누가 알까 봐 무서워.”

그녀가 쾌활하게 웃었다. 어릴 때와는 성격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그 말에 드낙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한 잔 마셨다.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예전에는 저만 봤는데, 이제는 좀 달라졌지~ 나도 옛날 생각하면 나한테 화가 난다니까.”

이제껏 다이앤타가 어떻게 커왔는지 성장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최대한 자중하며 살아왔다. 크레시미르가 조용히 성장하고 있으니, 자신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지극히 단순한 전략이지만 그만큼 좋은 전략도 없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이앤타는 자신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겪을 수 있었다.

“힘이 있다고 그저 휘두른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이고.”

힘은 중요할 때 휘둘러야 한다. 100번 힘을 휘두르면 그런 힘은 그리 무섭지 않다. 한 번 휘둘러지는 힘이 가장 무섭다.

“내 앞에서는 그런 걸 보여주지 않더니.”

“가족끼리 지내는 화목한 시간에 이런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아.”

“크레시미르가 그랬으니까?”

“뭐, 따라 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실로 크레시미르 바라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호감보다는 호승심이 가득했다.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남매의 모습이 정확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만 처세술과 출세에 대해서는 크레시미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우월한 악마의 피를 지녔지만, 그뿐이지.’

그녀 이후에 태어난 드낙의 자식 중에서도 다이앤타만큼 악마의 피를 머금고 태어난 이는 없었다.

드낙이 잉태하는 것도 아니고 부인들이 잉태하기에 변수가 상상 이상으로 심했다.

“지금처럼만 해라. 그럼 넌 성공할 것이다.”

“지금처럼만 하면 크레시미르 오라버니를 꺾을 수 있을까?”

“흠.”

드낙이 고민했다.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지. 게릴라 전쟁에서 모두 활약하고 있지만 혁혁한 공을 세우지는 않았다. 조금 더 세월이 흘러야겠지.”

크레시미르나 다이앤타나 아직은 여물지 않은 봉우리다. 그러니 꽃잎을 흐트러지게 피우기 전에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세월은 너의 편이 아니냐.”

“결국, 크레시미르 오라버니도 신격에 도전할걸.”

그럼 결국 똑같아진다.

“아니지. 크레시미르는 주변인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아이다. 그런 아이는 신이 될 것이다. 그런데 넌 벌써 악마의 힘을 제법 다룰 줄 안다.”

초월체로서의 강함은 다이앤타가 훨씬 더 강할 것이다. 그건 분명 그녀만의 재능이었다.

“말이 너무 길어졌네. 히히.”

다이앤타는 웃으며 코를 비볐다. 경박한 모습이다. 밑에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자연 그 품행이 물들어 버렸다.

“혈수병은 어떻게 처리할 거야?”

“인어들을 이용한다. 그들은 나의 권속 악마이니, 혈수병에 대항하도록 만들면 그만이다. 그게 힘들면 오션 오크의 힘을 빌려도 좋고.”

드낙이 일어섰다.

“벌써 가려고? 조금만 더 있다가 가. 아빠.”

“나중에 다시 보자.”

다이앤타가 힘껏 드낙을 껴안았다.

“힘내. 우리 아빠.”

“고맙다.”

드낙은 다이앤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왔다.

인어들은 아직 건재해 보였다. 혈수병은 위험하지만 결국 병은 치료 마법을 비롯해 다양한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냥 해독 물약을 바다에 뿌려 버려도 상관없다.’

마법으로 만든 것이니 분명 효용이 있을 것이다.

‘마력 가공? 어렵겠지.’

혈수병은 그런 식으로 접근할 수는 없어 보였다.

‘최악의 수다. 일단은 혈수병을 제대로 조사해 본다.’

악마의 권좌에 오른 자신이라면 분명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신이 직접 나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드낙은 일단 그 마을은 무시하고 다른 마을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대단히 조용했다. 지키는 이들도 없었다.

인어들은 잠을 잘 때 육지에서 잠을 청하지 않는다. 그들은 완벽한 해양생물체다. 그런데도 마법을 배워서 육지로 올라와 불로 삶은 어패류를 즐겨 먹는다.

‘괴상한 문화를 가지게 됐어.’

생각을 하던 중에도 이 마을은 너무 조용해서 폐가들만 있는 것 같았다.

드낙은 집을 한번 들여다봤다. 창문도 없었기에 문을 열어야 했다. 문도 밖에서 당겨서 여는 식이었다.

내부는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여기서 안 사니까 당연한 건데.’

식기류를 모아놓은 집도 있었다.

드낙은 이를 둘러봤다. 혹시나 먹을 것에 마수병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수병은 평범한 질병이 아니다. 차원을 이동해서 온 것이니 분명 초월의 힘으로 만들어진 놈일 터였다.

다행히도 먹을 것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걸 노리는 건 어렵다는 건가?’

제약이 많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 다른 곳에 퍼져나가지는 않았다.

‘오직 바다에 사는 놈들만 노리고 있다. 그래도 사기적이다.’

어찌 사기라고 할 수 없을까? 생명체를 위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악독한 질병이 바로 혈수병이었다.

‘인어만 노리지 않는다. 그리고 오크만 노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해양생물체 전체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바다.’

생선이 헤엄치는 식량의 보고.

인간이라면 강과 바다, 호수가 지닌 위대함을 모를 수가 없다.

태초의 인간이 정착했던 곳이 강이다. 수많은 식량이 내륙으로 공격하듯이 수송된 것이 바다였다.

인간은 바다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더 쉽게 많은 양의 식량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성공했다.

다른 동물들을 죽이고 생존경쟁에서 승리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총이 나오고 나서는 호랑이조차 밀어냈다. 코끼리도 상대는 되지 않았다.

총기가 나오기 전에는 프랑스의 파리조차도 늑대 무리에 점령당해서 벌벌 떨어야 했다.

‘도시와 성.’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잉여 식량이 대단히 중요했다.

‘혈수병은 그것을 노린 질병이다.’

인어나 오크는 잘 걸리지 않는 질병이다. 그래도 걸렸다는 건 그만큼 혈수병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는 뜻이다.

‘게릴라 전쟁 때문에 이제야 바다에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마신의 흉수는 섬뜩할 정도로 간사했다. 드낙은 그 계획이 마신이 아니라 미노타우르스에 의해서 실행되고 있다는 건 몰랐다.

“후우…….”

드낙이 심호흡했다. 혈수병이 두려운 건 아니다. 주술로 충분히 밀어냈으며 치유 마법 또한 듣는다는 걸 봤다.

하지만 진짜로 혈수병을 마주해야 한다.

‘보고서만으로는 부족해.’

직접 드낙이 판단을 내려야 했다.

드낙은 차가운 바닷속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인간의 몸은 헤엄치는 데 그리 좋은 몸이 아니었다. 당장 육상달리기와 수영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드낙은 자신의 추진력을 높일 것들을 신체에서 뽑아냈다.

수륙항해용 날개였다. 그것은 대단히 길었고, 발을 박차듯이 나아가며 드낙의 수영 속도를 높였다.

눈에는 투명한 껍데기 같은 것이 씌워졌다. 조금 더 바다를 안전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다는 그야말로 깨끗했다. 타이어 같은 쓰레기도 없었고, 낚싯대나 그물도 없었다.

오크들은 대체로 그런 쓰레기를 수거하는 편이었다. 그들은 소비성향이 아직 제대로 뿌리박혀 있지 않았기에 1998년에 있었던 아나바다 운동을 하듯이 물건을 아껴 쓰는 놈들이었다.

‘옛날 현대인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드낙은 바닥에 잠기듯이 내려앉아서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자는 인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몸 곳곳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있었다. 각질을 먹는 놈들이다.

가끔 비늘을 세게 물면 인어가 움찔하는데 어찌나 혼이 빠지게 도망가는지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드낙은 조용히 움직였다. 그의 속력도 대단히 느려지고, 인기척도 사라졌다.

그 누구도 드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혈수병에 걸린 인어들은 따로 모여서 자고 있었고, 그들은 손에 해독제를 쥐고 있었다. 자다가 고통스러우면 일어나 마시는 듯했다.

‘완화하면서 경중을 다스리고, 때가 오면 치료한다.’

인어 전체에 해독제를 보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어들 또한 마법 사용자들이다. 그들은 해독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최대한 현재 상황을 유지하고, 죽는 이들을 적게 하며 다른 세력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혈수병에 대처하고 있었다.

드낙이 혈수병에 걸린 인어에 손을 대 보았다. 차가운 감촉이 먼저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따뜻해졌다. 피부의 표면만 차갑고, 그 내부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그것이 인어들이 바다에서 살 수 있는 이유였다.

확실하게 나누어진 온도의 층이 존재했다.

드낙이 인어의 몸을 훑었다. 강렬한 힘에 인어의 볼이 잔뜩 붉게 변했다.

일종의 쾌락이나 다름없기에 야한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성장했다.’

인언들은 하급 권속 악마에 불과했는데, 조금은 성장해 있었다. 바로 드낙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피가 인어들에게도 향하고 있었네.’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업(業)과 신앙을 드낙에게 주고 있었다. 연결되어 있으니 자연 드낙의 피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잠을 잘 때만 그런 과정이 일어난다.

‘무의식적으로 강해지고 싶다는 것이겠지.’

현실은 녹록지 않으니, 꿈에 기댄다. 그리고 드낙은 그들의 신이다. 그 바람에 자연히 반응했다.

‘내가 거부할 리가 없으니.’

그는 한때 인간이었다. 가장 나약한 생명체였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인어들은 그리 많은 걸 받아 가지 않았다. 미미했다.

‘내가 너무 신경 쓰지 못했구나.’

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나가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놓고는 그대로 저버렸다.

드낙은 그들에게서 부채감을 느꼈다. 이제 그들은 혈수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문화를 융성하지도 못했는데 게릴라 전쟁의 여파에서 가장 노출된 이들이기도 했다.

“으읏…….”

드낙은 인어의 신음 소리를 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인어의 몸에 들러붙어 있는 혈수병에 접촉했다. 그리고 이를 해석했다.

‘질이 나쁜 병이다.’

혈수병과 접촉하자마자 드낙이 인상을 찌푸렸다.

‘구조는 테라의 마수와 똑같다.’

작은 질병이 생명체를 마주하며 수를 늘린다. 그리고 이내 그 생명체를 죽이고, 분산되어서 퍼져나간다. 또 하나의 생명체에 들어가서 똑같은 것을 되풀이한다.

적은 자원으로 더 큰 손실을 끼치는 일이다. 실로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신은 이런 전쟁을 벌이는구나.’

이전에는 그저 전투였다. 빼앗고 죽이는 싸움이다. 그렇기에 더욱 거세게 부딪혔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질병이었기에 더욱 소름 돋았다.

끝까지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마신이 죽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다.

드낙은 혈수병의 근원으로 더욱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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