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96화 (1,095/1,239)

1096화

12. 혈수병 (1)

다종족 연합은 ‘게릴라 전쟁’에 빠르게 적응했다. 다시 일상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테라의 마수는 못 잡지만, 기생충처럼 숨어서 테라의 행성 자원을 훔쳐먹는 마수는 잡을 수 있었다.

그 덕에 관련 직업이 수십만 개가 탄생했다. 세금이 그곳으로 몰린 탓에 상상 이상의 파급력을 보여줬다.

말 그대로 돈이 되니까, 땅을 파는 것에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 덕에 마수 기생충들은 덩치가 커지고, 극독의 가스를 보유하기도 전에 잡히기 시작했다.

너무 깊은 땅에서 살지 않았는데, 워낙 나약해서다. 강한 놈 중에서도 더 깊이 내려가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었다.

거기에 드낙이 제대로 업(業)을 소모해서 구리 만티코어를 권속 악마로 삼았다. 상위 권속 악마가 된 아머드 만티코어는 막강한 방어력을 지니게 됐다. 그런 놈이 1,800마리였다.

그런 놈들이 전 대륙의 하늘을 날며 테라의 마수를 잡아먹고, 괴물도 때려잡고, 일백야수도 우연찮게 잡아와서 마을에 두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니 일상으로 서서히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 형편이 좋아졌다. 그만큼 재미를 많이 보고 있었다.

‘거기에 북부의 참전설까지.’

북부 불모지의 땅은 마법으로 인하여 변질하여서 대단히 그 토질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조그마한 마수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게릴라 전쟁 자체가 차원 이동해도 큰 힘이 들지 않는 작은놈들을 보내서 테라의 행성 자원을 훔쳐먹어 덩치를 키우며 더 많은 행성 자원을 마신에게 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림자 편린으로 탄생하는 테라의 마수 외에도 직접 차원 이동시켜서 보내는 마수 기생충들의 침공을 서서히 물리치고 있었다.

즉, 적의 공세를 막는 것이 더 강해졌다는 뜻이며 기간이 길어질 뿐, 나중에는 완벽하게 차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덕에 드낙은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파동으로 이동해서 전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게 그였다. 그는 오늘도 가족들과 함께 제빵을 하면서 추억 쌓기를 했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간 서로 뭐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는지도 듣는 맛이 있었다.

‘내 자식이니까.’

그들이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은 드낙의 마음을 이상하게 흔들어 놓았다. 더 일하고 싶어지고, 게임보다는 더 현실에 시간을 쓰고 싶어졌다. 옛날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옛날에는 조금 더…….

‘이럴 때가 아니지.’

드낙은 다시 한번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인어들.’

마신의 권속인 마수. 나가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권속 악마였다.

그간 거의 방치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분쟁.’

불꽃이 바다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션 오크와 인어들의 생태계가 겹쳐 있었기에 생기는 문제는 이제 점점 본격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게릴라 전쟁을 빌미로 지하 연합은 인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고, 엘프 또한 관여하고 있었다.

모두 다종족 연합을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불만이 생기고 불화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결국 양식이 성공해야 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양식장을 통해서 모두 걱정을 들 수 있어야 했다.

‘아무리 농업과 목축 골렘을 만들어도 끝이 없는 게 식량이지.’

마법을 사용하고, 필요하다면 항생제를 사용해서 양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자원경쟁이다.

오션 오크는 더 많은 항구를 원하고, 인어는 더 많은 갯벌을 원했다.

그들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널린 것이 먹을 것이었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식량 생산 수준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만신전(萬神殿) 소속이었던 용병 지구인들은 정착했고, 그들은 전기를 생산했으며 수많은 사업을 시작했다. 그 덕을 많이 보고 있었다.

* * *

드낙은 인어들에게로 향했다. 하는 김에 오션 오크들에게 하나의 선물을 줘야 했다.

‘뭘 줘야 할지가 문제지. 그냥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오션 오크들은 드낙에게 신앙을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결국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어야만 했다.

‘무식하게 동서로 나눠놓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지금은 함께 해야 한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져야 오션 오크들의 가치가 낮아진다. 그때까지는 참아야 했다. 샴페인을 일찍 터트릴 수는 없다.

‘세상을 속인다.’

그것은 무려 중립신으로부터 고용되어 이 세상에 흘러들어온 한 명의 인간이 지닌 극한의 재능으로 꽃피운 기술이었다.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겪어본다고 대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조차도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세상을 속인다는 말은 문과 감성이나 다를 바 없었다. 현실을 관측하는 객체로서 세상을 속인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파동으로 변한 드낙은 그대로 대륙의 끝에 있는 바다로 향했다.

‘가장 먼저 항구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곳은 오크들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고, 이곳에서 엘프 선박 기술이 오크들에게 전해졌다. 그 빚은 확실하게 오크들에게 새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오크들은 어지간해서는 엘프들을 우대해 주고 있었다.

그런 곳에 가장 먼저 가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드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단 인어들부터 챙기는 게 먼저지.’

오크들은 지금도 제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충분한 역량을 지닌 세력이었다.

당장 게릴라 전쟁이 벌어지자 대륙 곳곳에 흩어진 열여덟 곳의 엘프 서클 도시에 오크 군대가 파병되었다. 엘프들의 요청 때문이다.

엘프 종족만으로도 충분히 대응 가능하지만 그래서야 비효율적이다. 엘프는 대부분이 엘리트라 불릴 만하기에, 그들을 전쟁에 쓰는 건 정말 비효율적인 일이다.

‘오크는 멸망시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전쟁에 쓸 만하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존재 가치가 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세상에서 가장 가기 싫은 것이 군대니까.

그렇기에 여러모로 필수적인 종족이다.

전쟁은 항상 있어왔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전쟁은 일어난다. 원하지 않으면 침공당할 것이고, 원하면 침략할 것이다.

마신이 침략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도 그러했다. 차원 세력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계속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평화가 오기까지…….’

평화는 무수한 시체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성장만이 해답이다.

세파리아스의 침공을 드낙이 지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립신이 손을 털었고, 테라는 더는 성장하지 않는다.

부피가 제한된 행성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다른 행성을 침략하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세력을 팽창해야 했다. 동시에 내실도 다져야 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그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멈추면 죽을 수밖에 없다.

마신은 계속 달리고 있을 테니까, 드낙 또한 달려야 한다.

‘지독한 세상이다.’

마신이 있는 차원이 멀리 있음에도 게릴라 전쟁을 일으켰는데 가까이 있었다면?

아마 드낙은 마신이란 놈을 두 눈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나 하나는 도망쳐도 여기는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겠지.’

천만다행이었다.

드낙은 단번에 인어들이 있는 해안가에 도착했다. 제법 번영하고 있는 인어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키고 있는 이들이 인어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너희들 뭐냐?”

드낙이 뒤를 점하며 말하자 그들은 단번에 검을 뽑았다. 이제는 양산되어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신 갑주였다. 얼마나 잘 양산이 되었느냐 하면 중갑을 입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오크들도 종종 입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틀딱 냄새 풀풀 풍기는 오크들은 결코 전신 갑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강철 배를 이끌고 개방을 요구하는 서양의 강력한 제국주의를 향해도 쇄국 정치를 하는 꼴이었다.

‘자기보다 어린 오크 전사한테 두들겨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물론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크에게는 타투가 있기 때문이다. 대전사쯤 되면 오크 전사가 전신 갑주를 입던, 골렘을 타던, 아무 상관 없이 부숴버릴 수 있었다.

‘차근차근 바뀌겠지.’

명필은 붓을 가리지만, 승패에 민감한 무인들은 장비를 최고 수준으로 마련한다. 그런 풍토가 오크에게도 곧 퍼질 것이다.

‘소비성향을 서서히 심고 있으니까.’

돈 없이는 못 살게 될 정도가 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게 바로 드낙이 원하는 세상의 모습이었다. 오크들도 돈으로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했다. 물약부터 시작해서 소고기까지.

모든 것이 오고 가며 그들의 가치관을 좀먹을 것이다.

“느리다.”

방어 마법이 먼저 이루어지고, 강화 마법이 그다음에 이루어졌으며 적의 공세 또한 강화 마법이 신체에 녹여 드는 순간을 노렸다. 훌륭한 한 수다. 하지만 부족했다.

드낙에게 닿지 않았다.

“누구냐!”

“나다.”

그 말에 상대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서서히 표정이 굳어졌다. 전신 갑주는 아무리 양산화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비싸다. 어중이떠중이가 쓸 만한 물건은 아니다.

게다가 여기에 신의 얼굴조차 모르는 놈은 없었다.

“초, 초월자를 뵙습니다.”

“그래, 이놈들아. 너희가 모시는 신의 얼굴을 보니 그나마 다행이다. 전신 갑주를 입은 놈들이 이런 해안가에는 무슨 일이냐?”

“다이앤타 불파겐(Diantha Bulpagen) 공주님을 따라서 오게 되었습니다. 게릴라 전쟁이 터지고 나서 몇몇 전선에서 활약하셨는데 며칠 휴가를 보내고 계십니다.”

사태가 진정되었으니, 잠시 쉬는 듯했다. 탓할 정도는 아니었다.

‘크레시미르 덕에 열심히 달렸으니.’

“여기서 뭘 한다고 하더냐?”

“해산물을 상위국으로 보내는 사업을 궁리 중이라고 합니다. 오션 오크들의 해산물은 제법 비싸니까, 인어를 뚫어보자고 하셨습니다.”

게릴라 전쟁 덕분에 전공을 획득한 다이앤타는 전신 갑주를 입은 부하도 여럿 얻었다. 돈도 많았으니 사업을 한번 해볼 만했다.

‘똑똑하다.’

방향성은 그럴듯했다. 장사한단 소리였다.

돈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으니 그 돈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요리 대회는 매번 열리고 있으니까.’

가장 먼저 먹을 것이 눈에 들어왔을 터였다. 궁리에 궁리해서 도달한 곳이 인어들인 듯했다.

‘나쁘지 않지.’

드낙이 무엇을 원하는지, 현재 정세가 어떤지도 잘 알고 있었다.

“안내해라. 뭘 하고 있는지 보러 가자.”

한 명은 남았고, 한 명은 드낙을 안내했다.

그들은 마을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다이앤타가 있었다. 그녀는 전과 다르게 인어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옷도 요즘 유행하는 것이 아닌 인어들이 좋아하는 색을 입고 있었다. 대단히 전략적이다.

‘크레시미르 덕을 잘 봤어. 역시 사람은 밑에서 일을 해봐야 해.’

그래야 보이는 게 있다. 가난을 훔치라고 말했던 부자의 말처럼. 밑에서 배울 건 분명 존재했다.

먼저 나아갔던 호위 병사가 다이앤타에게 귓속말로 말하자 그녀의 눈이 똥그랗게 변했다.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이내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빠르게 드낙을 찾아냈고, 그곳으로 달려가서 그를 껴안았다.

“아빠!”

“그래, 내 딸. 사업 준비한다며?”

“응!”

다이앤타가 볼을 마구 비볐다. 드낙은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이렇게 아버지를 좋아하는 딸이라니,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제대로 된 것이라면 나도 투자해 보겠다.”

“정말?”

“물론 국가의 돈은 아니다. 나도 월급을 받거든.”

남들이 보기에 적법한 돈이었다. 맨날 대접을 받아서 쓸 데가 없어서 당연히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종종 아래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챙겨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드낙 개인의 돈이라고 해도 사업 몇 개는 할 수 있는 돈이 있었다.

“이거야. 어패류들! 여기서는 엄청나게 싸게 팔린다고 하더라고. 이걸 꽁꽁 얼려서 내륙으로 보낸 다음에 산처럼 쌓아서 삶아 먹는 거야! 아빠도 한번 먹어 봐. 엄청나.”

다이앤타가 호들갑을 떨었다.

“상위국에서는 고급 요리잖아. 근데 여기는 그냥 솥에다가 넣고 삶아서 먹어버린다니까? 황당해서 정말!”

그녀가 열을 냈다. 인어들이 먹는 어패류들. 그걸 냉동시켜서 가져오면 어마어마한 물량이 될 것이다. 이는 큰돈이 될 것이 틀림없다.

드낙도 인정하는 바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십만 원이지만 한국에서는 솥에 넣고 먹지.’

이 또한 현지에 가서 먹어야지 그렇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이앤타 정도 되면 능히 상위국까지 가는 먼 길을 효율적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어 보였다.

“너무 욕심을 내면 안 된다.”

“응.”

다이앤타가 웃었다. 드낙은 자신의 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더는 싸움에 재미를 못 느끼는 듯했다. 되레 권력에 눈을 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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