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94화 (1,093/1,239)

1094화

* * *

드낙은 전(前) 연합 왕국, 현 상위국의 지하에 도착했다. 지상이 상위국의 것이었다면 지하는 지하 연합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구리 만티코어(Copper manticore) 공장이 있는 곳이었다.

‘구리 만티코어는 관리하기 까다로우니까.’

한 달에 한 번씩 구속구를 풀고 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말 그대로 구리를 생산하는 생체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용인하는 까닭은 이 세상은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열한 살짜리 여자아이를 강간한 사람조차도 다시 사회로 돌아오게 해주는 자비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훔치는 것과는 달랐다. 인간도 그러할진대, 만티코어의 권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뵙습니다아아악!!”

고블린이 맨땅에 헤딩하며 말했다.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과잉 충성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 바로 머리를 땅에 찧고 또 찧는다. 그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었다.

드낙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곳은 고블린들이 많이 산다고 하던데.”

“예! 그렇습니다! 구리 만티코어를 관리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고 죽고 다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고블린 작업자들이 더욱 중요합니다!”

몇 번이나 와본 곳이었지만 매번 그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특히 천장 위로 바람 마법이 거세게 지나가고 있었다. 괴이한 것은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 마력을 많이 소모하기 시작하는 모습은 특히나 주의할 만한 변화였다.

‘마력 자원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는 뜻.’

그건 분명 좋아할 만한 일이었다. 마력 소비의 증가는 곧 세력 자체의 증강을 의미한다. 그리고 곧 마력 자원이 감당이 안 될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는 이미 전기가 보급될 터였다.

그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으나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었다.

‘시간!’

테라가 드낙의 손으로 들어오고 바로 마신이 게릴라 전쟁을 일으켰다.

악마들은 차원 항해를 감행하며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녹색 도끼가 예언한 것이니 분명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예언과 완벽하게 맞지도 않는다. 변수가 있는 전쟁은 언제나 위험했다.

‘중립신도 놓쳤지.’

중립신은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는 테라에서는 사라졌지만, 또 어디에서 암약하고 있을지 모른다.

‘세파리아스도 문제다.’

이 상황에서 또 차원 다리를 구축하여 다른 차원을 침공해 그 신을 죽이고 인간을 해방하겠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 광신도들의 집단이 신제국이었다.

얼마나 광적이냐면 신성력을 장기간 보유하여 마력을 지닌 상위 인간으로서의 길을 포기할 정도였다.

이제는 촛불보다는 마력 램프가 대중화되고 있는데 자신의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마력량을 줄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션 오크들도…….’

녹색 도끼를 따르는 그들은 드낙에게 카르마도 주지 않는 골칫덩이들이다. 전쟁에 함께 참여하여 연합할 수 있기에 남겨뒀을 뿐이었다.

‘연합은 중요하지.’

드낙은 제국이 아니다. 이 차원에는 그를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놈들이 존재했다. 최대한 안전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 좋았다.

‘또 하나의 상위 권속 악마.’

지성 종족에 소형체인 디아볼로스와는 다르다.

‘거기에 구리까지 생산해 낸다.’

억압을 멈추고, 지성을 갖추게 해서 스스로 생산하게끔 만들 것이다.

“가지. 만티코어들을 봐야겠다.”

“예!”

드낙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지나치는 고블린들이 입을 쩍 벌리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부글부글 끓는 만티코어의 구리 브레스를 다루는 기술자들의 얼굴은 검댕으로 가득했다.

고블린들 또한 드낙으로부터 악마의 피를 받고 있었다.

강한 종족. 약한 종족 상관없이 악마의 피를 복용하게 하여 그들로부터 카르마를 받고 있었다.

‘이들도 중요한 이들이지.’

“고생이 많다. 너희야말로 다종족 연합의 기둥이다!”

드낙은 이들의 더러운 손을 마주 잡아줬다. 악수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지금까지 열심히 한 것을 보상받은 것처럼 굴었다. 그에게는 그저 악수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드낙을 신으로 믿고 있었다.

그 차이는 대단했다.

“꺄아악!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께서 내 손을 잡아주셨어!”

고블린들은 남녀 구분 없이 만티코어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자라도 원한다면 일을 할 수 있는 개방된 사회였다.

“여기에 있는 이들이 바로 영웅들이다!”

“보라, 이 손은 우리들의 별을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다! 자신감을 가지도록 해라!”

고블린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더욱 열심히 악수하고 다녔다. 한 시간만 악수해도 손이 떨어져 나가는 건 평범한 사람이나 그렇다. 드낙은 아니었다.

그는 온종일 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가서 드낙은 폭탄선언을 했다.

“내 사비를 털어서 오늘 크게 이 만티코어 공장에 다니는 이들을 격려할 것이다!”

“우와아아아!”

고블린 작업자들이 너도나도 좋아했다.

그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발데마르가 이 공장에 온 것은 만티코어들이 드낙의 피를 받아먹고, 권속 악마가 되면 어떤 존재가 되는지 확인하러 왔다는 것을.

만약 드낙을 만족하게 한다면 공장은 폐쇄될 것이다.

“오늘 많은 고블린들이 행복해졌습니다.”

그를 안내하는 고블린의 말에 드낙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가볍게 볼 이들이 아니다. 내 틈틈이 확인은 못하겠지만, 그들의 처우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항상 체크할 것이다.”

“예!”

고블린 공장장이 크게 대답했다. 그의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역사를 배울 때, 항상 고블린들은 제대로 된 역사가 없었다. 이제 시작된 역사일 뿐이다.

‘계속해서 우리 고블린은 다종족 연합에서 승리하는 종족이 될 것이다!’

지금은 공장장이었지만 공장장이 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만티코어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보통 속박해서 지내고 있어서 대단히 엄중한 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드낙은 그의 인도를 따라 깊은 곳에 있는 만티코어 보관소로 향했다. 이름부터 만티코어를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마법이 부여된 강철로 이루어진 속박구는 하나같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만티코어는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힘줄은 강철로 꿰뚫어져 있었는데, 팔다리에 힘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있음에도 전신이 근육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인간이었다면 한 달 내고 근육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는데, 만티코어는 그렇지 않았다.

종족값 때문이다.

‘테라에서 가장 종족값이 높은 놈은 아니다.’

오우거도 있었고, 그 외에 다양한 몬스터가 많았다. 지성 종족의 팽창이 계속 이루어진다면 언젠가는 사라질 놈들이었다.

‘지성이 있는 오우거는 이미 새롭게 조용히 세력을 키우고 있지만…….’

다른 건 아니었다.

‘만티코어는 하늘을 날 수 있지.’

와이번 또한 하늘을 날 수 있지만, 내구력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날렵했지만 생명력이 만티코어보다 좋지는 못하다. 운동하지 않아도 근육질로 도배되어 있는 사자의 몸통을 지닌 것이 만티코어였다.

‘적당하지.’

지상과 공중. 두 가지를 모두 챙길 수 있다. 기동력이 부족하다 할 수 있었지만, 숫자가 많으면 이를 커버할 수 있다. 브레스도 있고 상위 권속 악마로 태어나면 상상 이상의 포텐셜을 보여 줄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보다 종족값이 높은 게 중요한 포인트다. 이제 시험을 해봐야겠지.’

보통 악마 초월체들이 자신만의 권속 악마를 탄생시킨다면, 드낙은 기존의 종족에게 악마의 피를 내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아카타베루 또한 악마 생산 건축물을 짓고 권속 악마를 생산하는 편이었다.

드낙처럼 하는 경우는 단 하나. 현지에서 권속 악마를 조달할 때뿐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 같은 일이야. 이미 만들어진 것을 그냥 권속 악마로 만드는 게 더 편하잖아.’

별을 보면 파괴해야 직성이 풀리는 악마와 드낙의 차이는 컸다.

‘악마가 되어서 권속 악마를 탄생시켰는데 난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디아볼로스를 만들던 때를 떠올려라.’

그는 행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권속 악마를 무(無)에서 만들어서 유(有)로 창조할 필요가 없었다. 종족값이 높은 놈을 권속 악마로 변질시켜서 자신의 부하 종족으로 삼으면 그만이다.

‘테라의 모든 종족을 권속 악마로 만드는 것 또한 가능하겠지.’

물론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고블린같이 대단히 종족값이 낮은 이들은 감히 ‘하위 권속 악마’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였다. 드낙의 피를 통해서 악마적인 능력을 줄 수 없어서다.

그걸 악마라고 칭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권속 악마라 불리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크르르……!”

이글거리는 분노를 지닌 만티코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구리 만티코어.’

구리 브레스를 쏘는 놈들이다. 저들의 구리는 바로 동화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종이 화폐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

그냥 종이 화폐를 만든다면? 대가리 깨지기 십상이다. 아직도 시도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고, 그나마 백색 빛 엘프들이 그들만의 종이 화폐를 쓰고 있었다. 마법이 부여된 것이라 사실 종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니까 구리는 중요하지.’

막대한 동화를 찍어내고 있었기에 구리 만티코어들은 중요했다. 또한 그들 외에도 광산에서 구리를 마구잡이로 캐고 있었다.

은행업을 시작했고, 조금만 더 발전을 이룩한다면, 어음부터 시작해서 화폐를 발행할 수 있을 것이다.

“흉포한 괴물들입니다.”

고블린 공장장은 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야수에 불과했고, 지성이라고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드낙은 놈의 발에 손을 가져갔다.

‘짐승의 눈으로 날 보고 있지.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괴물이며 야수다. 그렇기에 구리 만티코어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 대략 깨닫고 있을 터였다.

‘피를 거부하면 그것으로 끝.’

피를 거부하지 않는 만티코어를 찾을 때까지 그 과정은 되풀이될 것이다. 마신장(魔神將)도 아니면서 지성이 제법 남달랐던 오우거들을 키우는 것과 똑같았다. 혈통은 중요하다.

“크르르!”

신경질을 내는 것 같았지만, 달랐다. 놈은 들어오는 힘을 느끼고 쾌감에 소리를 낸 것이다. 놈은 그대로 그 힘을 받아들였다.

만티코어는 이 끔찍한 삶을 벗어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드낙에게 바칠 수 있었다. 그 생각은 곧 드낙을 위한 충성심으로 변해갔다.

하나의 그릇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만티코어의 육체를 더욱 강화시켰다.

하나의 그릇에 물이 채워지듯이 악마의 피가 채워졌다. 만티코어의 구리 브레스를 내뿜는 장기가 강해졌다. 더 많은 양의 구리 브레스를 더 멀리 쏟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릇을 채우고도 피는 흘러내렸다.

이는 곧 밖으로 삐져나왔고, 전신을 팽팽하게 돌기 시작했다.

혈맥을 넘어서서 근육과 뼈를 지나 피부 밖으로까지 삐져나왔다. 붉은색의 피는 이어서 만티코어의 전신을 두르며 검붉은 빛을 띠게 되었으며 털은 사라지고 시뻘건 갑옷이 만들어졌다.

“크…으…아…아!”

다시 생긴 힘줄이 모든 것을 밀어내고, 굳건하게 섰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드낙이 크게 웃었다. 덩치에 비하면 그리 많은 악마의 피를 쏟아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꼬리라 할 수 있는 뱀은 머리가 셋으로 변해 있었고, 속성마저 지니게 됐다. 불과 얼음 그리고 독을 내뿜는 뱀이 되었다.

검붉은 갑피는 강철보다 단단했으며 그 굵기는 부분마다 최소 15cm에서 최대 40cm까지 달했다. 갈기는 새하얗게 변해서 툭 튀어나와 있었다.

괴물의 눈을 하고 있던 구리 만티코어였으나, 지금은 차분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기세조차도 드러내지 않고 숨길 수 있었다.

지성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너의 신이다.”

“아버지를 뵙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모든 걸 이뤄내 드리겠습니다.”

상위 권속 악마가 되면서 가장 큰 이점은 바로 드낙의 피에 내재한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동시에 드낙이 원한다면 필요한 정보를 내어줄 수도 있었다.

‘디아볼로스에게는 못했던 짓이다.’

덩치가 작았기에 그 반동을 버티지 못해서다. 하지만 만티코어는 덩치가 워낙 컸기에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단번에 상위 권속 악마로 만들어도 전혀 부담이 없다.’

그 정도는 너끈히 버티는 터프함을 지니고 있었다. 악마의 피를 얻은 만티코어가 박쥐 날개를 펼치며 크게 울었다. 처음에는 날개 두 장이 펼쳐졌는데 매우 넓었고, 평범하게 펼쳐졌다.

뒤쪽에 있는 날개는 뒤이어서 펼쳐졌는데 아주 날렵했고, 수평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비행기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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