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92화 (1,091/1,239)

1092화

11. 게릴라 전쟁 (3)

마력 가공.

만신전(萬神殿)의 우주 낙원이 가지고 있던 신성력 가공 기술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었다. 창조는 어렵지만, 모방은 쉽다. 남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심하다.’

드낙은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찾아낸다면 능히 자신을 더욱 드높일 수 있어 보였다.

‘악마의 피.’

그걸 만약 가공할 수 있다면? 더 강력한 권속 악마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이나 다름없다.’

본래 악마의 피가 지닌 특성. 거기에 악마의 피를 가공해서 또 하나의 특질을 지니게 한다. 훌륭했다. 만약 똑같은 초월의 힘을 받은 권속 악마끼리 싸운다면 드낙의 권속 악마가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그만큼 초월의 힘 자체를 가공하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효율이 100% 증가한다는 소리나 진배없다. 시간을 내서 보긴 봐야 했다.

‘엘프 서클 도시 중 하나.’

여덟 번째 도시 하트라(Hatra).

그곳이 드낙의 목적지였다. 하트라는 산에 지어진 도시였고, 이를 통해서 다양한 기술을 확보하도록 유도된 곳이기도 했다.

‘내가 원한 건 마력 가공 기술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의문이었다. 산악 도시 하트라는 운송 개발을 위한 연구가 주류였다. 경사가 높은 곳이 많고 험한 곳이었다.

‘종족 부흥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지.’

지성 종족이 크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운송업이 발달하여야 한다. 더 좋은 것. 더 효율적인 것이 필요하다.

테라는 아직도 교통이 불편한 곳이 많았다. 그런 곳을 모두 토목 공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험지도 거침없이 내달릴 줄 알아야 한다.

‘화석 연료도 도입해야겠지.’

인구수가 늘어나면 마력 공급량이 소비량을 못 따라갈 것이 분명했다. 차근차근 확실하게 모든 분야가 올라가야 더 큰 기술을 획득할 수 있었고, 세상에 적용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마력 가공 기술이 개발되었다? 그것도 단시간 만에?

어려운 일이었고, 드낙이 모르는 인재가 숨어있을 수 있었다.

“테라의 지배자이자 초월자이신 드낙 님을 뵙습니다.”

찬란한 지우베르투(Gilberto)가 드낙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 엘프 도시를 위해서 헌신하면서도 이 도시를 지배하는 강력한 엘프였다. 벨룸 퓨에르의 일원이었기에 전공 또한 확실했다.

‘그렇게 눈에 띄던 이는 아니었는데…….’

이자가 마력 가공 기술을 만들어낸 엘프일까?

“네가 마력 가공 기술을 만들었나?”

“아닙니다. 그저 협력의 결과입니다.”

“협력? 다른 종족과 협력했었나…….”

“보고는 올렸습니다.”

워낙 세상에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중요한 것도 많았기에 사실 드낙은 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일을 죽도록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지배자가 된 삶을 영유하고 싶어서다. 가족과 브런치를 먹는 것도 게릴라 전쟁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끝이 없다. 그러니까 적정 수준은 손에서 그냥 놓아줘야 했다.

‘제국도 혼자 돌아가는 일이 없다.’

하물며 대륙일통을 한 지배자의 삶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쓰러질 정도로 일하면 몰라.’

보고만 받아도 하루를 다 보낼 터였다. 줄이고 또 줄여서 듣는 실정이다.

대신 드낙은 확실하게 세력을 나누었고 권력을 양도했다. 적어도 왕이라 불리는 이들, 황제라 불리는 이를 만들었다.

그들이 대신 지배하게 한 것은 드낙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드낙은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다.

“누구랑 협력하고 있지?”

“지하 연합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뿔 쥐들인가…….”

지우베르투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어디에든지 끼고 있구나. 좋다. 아주 좋아.’

세력의 윤활유로서 지하 연합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이쪽입니다.”

지우베르투가 안내를 도맡았다.

“연구소는 이쪽이 아닌데?”

방향을 가늠한 드낙이 의문을 표했다.

“다른 연구소입니다. 본래 연구소에서는 마력 가공 기술을 연구할 수가 없어서…….”

그가 궁색한 변명을 했다. 확연히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가서 보면 알겠지.’

마력 가공 연구소는 도시의 중심부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성문 쪽에 있었다.

“연구소라고 되어있지만, 마력 가공을 위해서 만들어진 연구소라서 현재는 새로 개조하고 있습니다. 마력 가공 공장이 되는 셈입니다.”

“연구 인력은 그럼 다 빠져나갔나?”

“절반은 빠져나갔습니다. 지금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

드낙이 말하자 지우베르트가 이에 호응했다.

“지금도 충분히 마신의 기운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닙니까? 마신은 방심할 수 없는 존재이지요.”

“그렇지.”

충분히 효과가 있을 정도로 퀄리티를 올렸으니, 이제는 양으로 승부할 때였다.

‘마신의 눈길은 여기에 있지 않다. 그 사실을 말해 주지는 말아야지.’

게릴라 전쟁에 전면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테라의 행성 자원을 지키느냐 마냐의 가로에 서 있을 뿐이다. 사상자는 꾸준히 나왔지만, 패배는 없었다.

그 끔찍한 결과물을 보기 위해서는 넓게 보고 깊게 들여다봐야 했다.

모든 결산을 보는 드낙은 하루에 3,800명의 크고 작은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본다면 그만한 이들이 매일 피를 뿌리고 있단 소리였다.

거기에 그들을 치료하는 값. 그들을 대신할 인력들. 치료하는 인적자원.

전쟁을 진행하며 소모되는 자원들은 계속해서 소모되고 새로 받아야 했다. 그런 것까지 모두 따진다면 지우베르투의 생각은 정말 잘못된 것이었다.

다종족 연합의 소모는 확실하게 대륙에 새겨지고 있었다.

‘마력 가공 기술은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건 이제야 마신의 노림수 중 가장 음흉한 것을 틀어막은 것에 불과하다.’

마신의 기운.

그것은 독특하며, 다른 초월자는 어떻게 해서도 사용할 수 없는 유니크한 힘이다. 그게 행성에 축적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만히 두면 망한다는 것이지.’

제대로 망할 수 있다. 허를 찔리는 게 아니라, 혀가 잘릴 것이 분명하다.

그건 드낙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적어도 테라만큼은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안전한 곳이 되었으면 했다.

‘완벽해야 한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반드시 완벽해져야만 한다.’

그래야 오래오래 놀고먹을 수 있었다.

“여긴가?”

“예. 아래로 내려가면 됩니다. 지하 1층은 로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식당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뿔 쥐들은 이곳을 백화점이라고 부릅니다.”

그곳은 드낙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말 그대로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

보기 좋게 빨간색의 굵은 양탄자를 바닥에 깔고, 자리를 잡은 이들도 있었고, 고풍스럽게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흡족하다.”

뿔 쥐들과 엘프들이 서로 어울리고 있었다.

“뜨나아아악! 여기서 금화 3닢을 태우다니! 뿔 쥐의 수치다!”

“저 엘프가 잘하는 것이지, 뿔 쥐의 수치는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 말이 된다! 이건 뿔 쥐의 수치가 아니라. 거친 발톱의 수치다!”

“난 개명했다! 데리아나우스다!”

“이번이 세 번째 개명인가?”

오크에게 한 번 물들고 그다음에는 엘프에게 물이 든 뿔 쥐처럼 보였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잖아!”

카드놀이에 제법 돈을 쓰는 듯했다. 즐길 거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만

‘빨리 전기를 보급해야 하는데…….’

노는 데 전기를 쓸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했다. 세파리아스는 우주 전쟁 컴퓨터 게임까지 제법 즐겼으나,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내려가지.”

더 볼 필요는 없었다. 엘프들과 뿔 쥐들은 충분히 서로 함께하는 것 같았다. 다만 걷던 드낙이 살짝 멈춰 섰다.

“뿔 쥐들이 조금 살이 많이 쪄 보이지 않나?”

“예? 아… 아마 연구원이라서 그런 걸 겁니다.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도 조금은 움직이도록 전하라. 최소한 하루에 1시간은 몸을 움직이도록 해.”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지하 연구소는 대단히 그럴싸했다. 특히 치밀할 정도로 깨끗했다.

‘쓰레기 하나 없고. 냄새도 심하지 않아. 습도 조절 또한 잘 되어있어.’

지하에서는 습도를 잡기 어렵다. 이것을 잡은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습도 관리는 어떻게 하지?”

“마법 파이프를 통해서 습기를 제거합니다.”

“쓰레기는?”

“고블린들을 쓰고 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깜짝 놀랐다.

“고블린들을?”

“예. 청소에 재능이 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은 이해했지만, 의문은 지울 수 없었다.

“보안이라든가 중요하지 않나? 고블린들은 그런 쪽으로는 조금 믿음이 안 가는데.”

“보통 고블린이라면 그렇습니다.”

“그럼?”

이에 그가 웃으며 드낙에게 말했다.

“콥 고블린입니다. 아주 고급 인력이고, 요즘에는 콥 고블린의 혈통이 많은 종족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상상치도 못한 소리였다.

“콥 고블린이라니!”

드낙이 까무러치듯이 놀라워했다.

‘고블린 사회에서도 실패한 놈들인데…….’

그런 패배자들이 갑자기 인기라니 ‘놀랄 노’자였다.

“얼마나 잘하길래? 청소에 재능이 있나?”

“워낙 소심한 이들이라 함부로 할 짓을 하지 않고 맞고 자라서 그런지 눈치를 자주 봅니다. 그러니 걱정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청소부가 바로 콥 고블린이었다. 고분고분해서 부려 먹기도 좋았다. 물론 여기서 부려 먹는다는 말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노동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콥 고블린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숙식할 수 있고 휴식 시간도 있어서 취미도 가능합니다.”

“콥 고블린이 좋아할 만하겠어. 무엇보다 재산을 가져도 괜찮지 않은가.”

고블린 사회에서의 콥 고블린은 재산조차도 가지지 못한 계층이었다. 다종족 연합이 대륙에 출범하면서 콥 고블린의 처우 또한 상상 이상으로 좋아진 상태였다.

‘음지에 있는 야만 고블린 부락을 처리하라고 해야겠어.’

고통받는 생명체를 더욱 줄이면 테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인간을 동원하는 것보다는 지하 연합을 움직이는 게 좋았다.

‘내가 여럿이 되어서 마수들을 처리하고, 세파리아스 또한 둘로 쪼개져서 활동하고 있으니 여유가 생겨있겠지.’

패배자들도 쓸 만했다.

“콥 고블린들에 대한 처우는 야만적이어서는 안 된다. 엘프니까, 잘하고 있겠지?”

“예. 백색 빛 엘프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가 크게 웃어 보였다.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그게 드낙이 원하는 빛의 세계였다.

‘모두가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면 된 거지.’

콥 고블린 또한 어떻게든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드낙은 지하 연구소의 심처로 계속 나아갔다.

그가 만든 세계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더 좋아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콥 고블린 또한 그저 죽여야 할 생명체에 불과했다.

“여기입니다.”

산지의 깊은 곳. 지하에 있는 심처에서는 마력 가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다.”

드낙이 감탄했다.

“지하 연합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들의 땅 파는 기술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거대한 공간은 하나가 아니었다. 문만 해도 여럿이다.

“이곳에서는 1차 공정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강철로 만든 마법진을 통해서 강대한 마력을 붙잡고, 그다음에 위를 보시면 백금으로 만든 양각(陽刻) 마법진이 있습니다. 그 백금 마법진을 통해서 마력의 성질을 변화시킵니다.”

첫 번째 힘의 변환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아래로는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마법 구조물이 있었다. 드낙이 눈을 좁히며 강철로 이루어진 양각 마법진의 틈을 바라보았다.

‘깊이가 상당하다.’

강철 마법진의 높이는 족히 2m는 넘어 보였다. 평수만 해도 천 평이 넘는 공간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마력이 모이는지 알 수 있었다.

반면 위에는 백금을 썼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설비에 들어가는 돈이 대단했다.

“백금 마법진을 통해서 마력 성질을 변형시켰지?”

가장 중요한 물음이 드낙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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