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9화
* * *
“시시하군.”
드낙은 마법을 퍼뜨렸다. 수많은 정보가 그의 뇌로 들어왔다.
마법은 사용하면 할수록 대단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차원이 달라진다.
‘열두 문장 풀 캐스팅 마법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
더 큰 힘이 필요했다. 더 많은 마력을 소모하는 주문을 깨우쳐야 했다.
‘판타지 소설에서 으레 보이는 서클 마법?’
모른다. 해봐야 할 것이다.
일단 당장은 게릴라 전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해서 상대가 다시는 덤벼들지 못 하게 해야 했다.
게릴라전에 의미가 없으면 상대도 멈출 것이다. 문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마신이 테라를 관측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전쟁은 만성적으로 계속될 여지가 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믿고 대처해나가야 한다.
“개새끼들.”
드낙이 흙에 붙들리고 파묻혀서 머리만 나온 놈들의 면면을 살폈다. 하나같이 제대로 된 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관상부터가 글러 먹었네.”
관상은 실패할 확률도 높지만 성공할 확률도 높다. 주식과 같은 것이다. 믿고 안 믿고는 그때그때 다르다. 맹신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당장 찢어 죽이고 싶지만, 죽이는 것보다 살아서 노동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기 마련이지.’
괜히 제국주의가 득세한 것이 아니다. 노예들을 통해서 부당이익을 챙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었다. 오죽하면 일을 못 하면 손을 잘라버릴까? 노예가 남아돌면 인간은 마치 자신이 황제가 된 착각에 휩싸여 권력을 휘두르기 마련이다.
‘나는 다르다.’
죽이지 않겠다. 손을 베지도 않겠다. 다만 그 인적자원이 가진 가치를 송두리째 뽑아먹을 생각을 가졌다.
“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인이시여!”
무지렁이들은 드낙이 누구인지를 못 알아봤다.
이는 지극히 당연했다. 상태창처럼 상대를 객관화하여 보여주는 건 그 자체로도 사기적인 능력이고, 그런 능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250m 밖에 있는 점 찍힌 적이 적이라는 걸 색적해 주는 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괜찮다. 다친 이들은 나와라. 치료해 줄 테니.”
다행스럽게도 부상자는 없었다. 드낙이 빨리 개입한 덕분이었다.
‘적의를 그렇게 풀풀 날리고 있으니, 내가 여기에 안 올 수가 없었지.’
드낙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쉬워했다.
자신의 기감은 거리와 반비례한다. 거리가 멀수록 기감이 떨어지게 된다. 생명체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정신체가 될 수도 없었다.
‘나는 악마.’
육체의 힘을 다루는 초월체. 신과는 달랐다. 그는 악마로서 개화(開花)했지만 신으로서 신격(神格)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테라의 수준도 개화(開化)의 물결을 탔을 뿐. 마수들과 싸울 이들은 적다.’
반면 방어해야 할 면적은 넓었다. 마수들의 목적은 다종족 연합이 아니다. 테라 그 자체였다. 행성을 공격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번 전쟁은 그렇기에 피해가 적었다.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다종족 연합은 아직 마수와 전쟁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지.’
어쩌면 세파리아스가 만든 차원 다리를 타고 더 먼 곳으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가장 생각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드낙은 테라에 미련이 없었다.
이 땅은 더는 중립신이 꿈꾸는 낙원이 아니다. 행성은 더 커지지 않고 있었고 중립신이 죽어버린 곳이었다. 더 이상의 발전 가능성은 사라졌다.
“살…….”
드낙이 다가오자 무장 강도가 목소리를 내려다 입을 다물었다. 칠흑과도 같은 그림자가 그의 시야를 살포시 덮어서다.
“그 입 하나 뻥긋하지 마라. 무장 강도죄는 중범죄다. 시민들을 위해서 끝없이 세월을 보태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드낙은 주문을 외며 놈들을 끄집어냈다. 마치 쇠사슬처럼 그들은 흙으로 똘똘 뭉쳐진 채 드낙과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멈칫.
그 모습에 드낙이 행동을 멈췄다.
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머리를 타고 짜릿함이 등골을 지나갔다. 소름이 쭈뼛 솟았다.
‘내가 왜 이걸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모든 것이 부족하다.
확실하다. 하지만 단 하나, 부족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나.’
드낙이라 불리는 개체의 힘이다. 그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당장 드낙의 몸에는 여물지 않은 신격의 봉우리가 꽃을 피우려고 준비 중이다. 그걸 보유하고 있는 악마는 무시무시하다.
‘북부 불모지의 권속 악마들을 대거 투입해도 결국 망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넓은 대륙을 커버할 수 없었다. 그것만은 명확하다. 그러니 애초에 접근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드낙은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된 마력을 한곳으로 모았다. 그리고 단번에 놈들을 포승했고, 바위에 척 앉았다.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엄청난 집중력이 발휘되었다.
‘다종족 연합은 알아서 총력전을 펼치라고 한다면…….’
딴생각하는 놈이 분명 있을 것이다.
‘보고서를 쓰도록 해서 나중에 논공행상을 벌인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모두 전심전력을 쏟아부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안 되는 놈은 뿔 쥐들에게 기대야 하는데…….’
쉐도우 위스퍼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뿔 쥐들이 게릴라 전쟁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국력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막대한 손실을 보더라도 드낙이 반드시 지하의 권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런 상황인데 쉐도우 위스퍼의 동원은 힘들겠지.’
말한다면 능히 응하겠지만 그렇게까지 지하 연합을 압박하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잘하는 아들에게 매를 드는 일이다.
‘불모지로 가지 않는다.’
드낙은 자신의 힘으로 게릴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돌고 돌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놈은 드낙뿐이다. 세파리아스는 반쪽짜리 인신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신성력을 타인에게 자주 사용하지 않는 괴짜였다.
‘내가 나서서 매듭을 지어야 한다.’
“후우…….”
생각을 마무리한 드낙은 단숨에 범죄자들을 띄워서 인근 마을에 넘겨줬다.
그리고 바로 신제국으로 향했다.
찰나의 순간.
드낙은 세상을 속이고 파동의 세상에서 순식간에 이동해서 멈춰 섰다. 밖으로 삐져나오자 신제국의 수도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전히 바쁘구나.’
신제국은 게릴라 전쟁의 중심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많은 테라의 마수가 나타나는 곳이었다.
“싸웁시다!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땅을 또 한 번 지켜냅시다!”
선동가가 활동하고 있었으며 수많은 이들이 그걸 듣고 있었다.
“이번에도 신제국의 위대한 나라님께서 돈을 풀었습니다! 모두 그분의 은혜를 드높이시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세!”
그 광신도적인 면모야말로 실로 인간 같았다.
드낙은 그림자로 변해 세파리아스를 찾아다녔다. 수도에는 신제국의 가장 핵심적인 인적자원이 대피해 있었고, 이를 지키는 건 세파리아스가 해야 할 일이다.
제국의 쌍창이라 불리는 대마법사, 적기사왕과 청기사왕이 밖으로 다닐 수 있는 이유였다.
“무슨 일로 왔느냐? 북부 불모지의 권속 악마들에게로 향한다며?”
“도중에 생각을 바꿨다. 색다른 방법을 써야 할 것 같아서.”
그 시작은 신제국이 될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세파리아스가 들을 생각을 가졌다. 제국의 수도를 지키는 일은 지겨운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도 하면 안 되고, 훈련 또한 최소한으로 가져야 한다.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를 타개할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면 능히 들을 만했다.
이에 드낙이 빙긋 웃으며 말을 툭 내뱉었다. 강에 돌을 던지듯이.
“내가 여럿이 되는 것이다.”
“…….”
세파리아스는 순간 멈칫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드낙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곳에 너의 정신체 또한 떼어낸다면 게릴라를 벌이는 마수를 척결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렇다면 제국의 수도는 누가 지키나?”
“네가 남는 거잖아? 무슨 걱정이야.”
그런 말에도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돌렸다.
“들을 가치조차 없다. 하려면 너 혼자서 해라!”
“그래서는 박멸하기 힘들어. 세상을 벨 수 있는 네 독특한 힘이 필요해.”
육체를 나누면 자연히 드낙의 힘은 약해진다. 하지만 더 많은 범위를 제어할 수 있었다. 거기에 세파리아스의 정신체를 나눠서 배분한다면 능히 테라의 마수를 처리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너는 더 많은 곳에서 활동할 수 있다.”
“싫다. 난 여럿으로 쪼개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인간에 대한 뚝심이 있는 세파리아스로서는 내키지 않는 방법이었다. 반면 드낙은 거침없다.
“야, 그럼 반만이라도 떼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싫다!”
이에 드낙이 혀를 끌끌 찼다. 실로 아저씨 같은 반응이었다.
“못하면 못한다고 미리 말하지. 아직 네 실력이 그 정도라면 어쩔 수 없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계속 여기서 수비하고 있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끝없이 변화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공세로 전환했다.”
이에 드낙이 세파리아스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너. 너는 변하지 않았잖아. 인마.”
“…흠.”
세파리아스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도 변해야지. 넌 어떻게 할 건데, 그러면? 정신체로 싸우기라도 해야지.”
신격을 획득한 세파리아스는 확실히 정신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육신의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인간의 신체가 정신체를 담기에는 부족한 탓이다.
“그러지 말고 저렇게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만 떼라니까. 잠깐 빌리는 거라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난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세파리아스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어차피 드낙이 여럿으로 쪼개진다면 능히 게릴라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런 판단이 있었다. 더욱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서 세파리아스가 필요할 뿐이다. 그런 것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어휴. 너 그러다가 나중에 정말 큰일이 난다. 조금 사람이 부드러워야지. 남의 부탁도 잘 들어주고. 그래야 네가 오랫동안 가는 거야. 인마.”
드낙이 친근하게 조언해 줬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갑자기 돌이 된 것처럼 딱딱해졌다.
“…그렇군. 확실히 그러는 편이 좋겠어.”
너무 완벽한 사람은 되레 반대에 부딪히기 마련이었다. 너무 깨끗한 우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햇볕을 너무 많이 쬐는 못은 결코 맑아질 수 없었다. 광합성 때문에 녹조가 어마어마하게 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못에는 그늘이 아주 중요했다. 억지로 햇빛을 막을 식물을 못에 둥둥 띄우는 까닭은 녹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곳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드낙이 이를 건드리자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해주는 거냐?”
“아니. 나는 나대로 움직이겠다.”
단번에 정신체가 뚝 떨어져 나갔다. 세파리아스의 육체는 이곳에 남았고, 정신체만이 드낙의 곁을 머물며 드낙에게 말을 전했다.
[마신의 목적은 명백하다. 이 테라의 행성 자원을 가져가는 것이다. 이를 막아낸다면 그도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나 행성을 파동으로 돌았지만, 마신의 낌새는 없었다. 이곳에 온 마수들과 연결이 되어있지 않다.”
[마신이 아니라 마수가 보낸 것일 수도 있지. 넌 싸울 때 직접 나서지만, 보통은 기사를 내보내기 마련이다.]
“마수가 마수를 보낸다고?”
드낙이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밖의 차원’의 상태는 상상 이상으로 말도 아니게 망가져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세력도 마신을 막지 못할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지. 마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최악을 상정하고 최선을 다해야겠지.]
“그래서 이제야 움직이시겠다?”
[이 전쟁마저도 신제국의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피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실전 경험이니까.]
지독한 말이었다.
10만 명의 시민이 죽어도 군대가 실전 경험을 크게 얻는다면 용인할 것처럼 여겨졌다.
독재자의 생각이다. 권력자의 말이며, 황제의 그릇이 만들어 낸 핏물이다.
드낙은 절로 욕지거리가 나왔지만 참았다. 세파리아스는 필요한 인물이었다.
“넌 어떻게 할 거냐?”
[테라의 마수는 내가 맡겠다. 넌 행성 자원을 빼먹는 마수를 정리해라. 그 속력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공세는 더욱 소극적으로 변할 것이다.]
“좋아.”
[마신의 기운이 이 행성에 점점 퍼뜨려지고 있다. 이를 정화할 수단을 만들어 놓는 것도 빼먹지 마라.]
“너는 안 도와주고?”
[난 다른 세상의 신을 죽이겠다.]
세파리아스가 단언했다. 신제국이 노려지고 있는 이 상황은 그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 외에는 나서고 싶지 않았다.
하루빨리 이 손으로 신이라는 족속들을 베어 죽이고 싶었다. 드낙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아직 드낙을 죽일 수 없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