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7화
* * *
일백야수(一百野獸).
사람을 100명 죽인 야수가 붉은 털을 지니게 되며, 변모하는 것을 말해 준다. 인간이 지닌 카르마의 특성이 야수에게 독특하게 작용한 결과다. 오직 인간을 죽이고 식인을 한 야수만이 일백야수로 변모한다.
오크가 사람 100명 죽인다고 머리카락이 붉게 변하지는 않는다.
무언가의 요인. 인간 종족이 지닌 변수와 야수의 구성성분에 존재하는 어떠한 것.
그 근거를 쫓은 것이 지하 연합의 뿔 쥐들이다.
지하 연합의 종족은 일백야수처럼 붉은 털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확신이 이미 존재했다. 지금은 뿔 쥐, 검은 쥐라고 불리지만, 처음에는 그들은 붉은 쥐였다.
붉은 털을 지닌 쥐.
그들은 동족을 잡아먹은 성흔을 지녔었다. 그 동족 포식의 문화를 통해서 더욱 드낙에게 쉽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수 있었다. 종족 내에서 목숨이 그렇게 가치가 높지 않은 탓이다.
‘지금은 아니지.’
지금은 인구수 증가를 위해서 동족 포식은 금지되었다. 태어나면서 중급 권속 악마 수준을 지닌 뿔 쥐들이 서로 잡아먹는 행위를 드낙이 용인할 리가 없었다.
전에는 중립신에게 시달렸고, 역사의 거센 파도 속에서 살려고 버둥거리느라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종족 연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간략하게나마 기록하여 데이터 갱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만큼 뿔 쥐들의 수는 늘어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뿔 쥐들은 업무를 더욱 분화하기 시작했다.
‘뿔 쥐 혼자만으로 지하 연합을 논할 수 없다.’
드낙이 요구한 것은 지하 연합이 연합체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대한 많은 수를 이용하려면 뿔 쥐를 넘어서서 다양한 지하 종족을 요긴하게 써먹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써먹는 만큼 뿔 쥐들은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 여유를 통해서 다른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대기업은 주 80시간 일하지만, 독일의 대기업은 주 56시간 일한다. 그 비밀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우였다. 얼마나 남에게 맡길 수 있느냐의 차이다.
뿔 쥐들은 이를 두고 자신들이 더 여유롭고, 더 많은 것을 하기 위해서 지하 종족을 업그레이드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 하는 일이다. 두더지 종족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프로젝트.
일백적계획(One hundred Red project).
의도적으로 지하 종족을 붉은 털을 지닌 전투 인력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기에, 최근에 예산이 80배나 증가되었다.
검은 돔의 옆에 굴을 뚫어서 조용히 프로젝트를 행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 대륙에서 일백적계획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막대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다.
최대한 많은 두더지 종족에게 인간의 업(業)을 욱여넣고 있었다. 그로 인하여 일백적계획은 순식간에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효력을 발휘한 것은 뿔 쥐의 피와 연금술의 결합이다.
촤아악!
거무튀튀한 연금 물약이 두더지의 몸에 쏟아졌다. 바닥이 흥건할 정도로 튀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만큼 인간의 업을 취한 두더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를 억제해 주는 것이 연금 물약의 역할이다.
피부로 흡수만 되어도 괜찮았다.
“흐억! 허억!”
인간 두더지가 헐떡거렸다. 그는 눈을 길게 감았다가 뜨며 아찔해 했다. 머리가 핑 돌았다. 벌써 272명에 달하는 인간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100명을 넘어가는 순간 고난이 시작됐다.
끝없이 피어오르는 혈력. 모든 걸 파괴하고 싶은 파괴 충동.
‘이 길이 잘못된 건가?’
그런 걱정마저 들었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정신을 찢어발기려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큰 두려움을 만들어냈지만, 두더지 인간은 버텨내고 또 버텨냈다.
그들은 더는 아카타베루의 권속 악마가 아니다. 그들은 드낙의 권속 악마였다. 드낙을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서슴없이 내놓아야 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심장을 꺼낼 정도로 담력은 없지만, 수동적으로 이 실험에 참가하여 버티는 건 가능했다.
“괜찮나? 연금 물약이 아직도 효과가 있나?”
“예. 괜찮습니다.”
두더지 병사가 자신의 털을 둘러보았다. 확실하게 붉은 털이 되어있었다.
“273번째에 비로소…….”
성공이다. 그저 붉은 기운이 담긴 것이 아니라, 완벽한 붉은 털의 레드몰(Red mole)이 모습을 드러냈다. 뿔 쥐 연구원이 기쁨에 찬 소리를 냈다.
“제가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보통은 붉은 기운만 감돈다고 하던데. 피처럼 붉은 털로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힘! 아아아!”
레드몰이 된 두더지 인간 또한 희열을 느꼈다.
‘확실하게 다르다!’
온몸에서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단순한 신체 능력의 강화일 뿐이기에 더욱 체감되었다.
제자리 뛰기만 해도 평소보다 2배는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었다.
평범한 지하 종족, 그마저도 목숨을 걸고 호위로 사용되는 용병질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두더지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확실한 전투 지하 종족으로 불릴 만큼 되었다. 물론, 그 대가는 상당하다. 들끓는 피의 힘. 카르마의 업을 감당하려면 연금 물약을 꾸준히 마셔야 했다. 악마의 힘으로 카르마의 변질성을 억누르는 것이다.
뿔 쥐들의 피와 몸을 진정시키는 연금 물약의 혼합물을 마셔야 했다. 그러나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충분히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오오옥!”
레드몰이 거침없이 할버드를 휘둘렀다.
이 속도. 이 힘!
그 모든 것을 측정한 뿔 쥐는 비릿하게 웃었다.
‘기술로는 기사급이 와야지 레드몰을 처리할 수 있다.’
신체 스펙이 뛰어났다. 충분히 게릴라 전투에 투입할 수 있었다. 그들이 대신 싸워준다면 더 많은 뿔 쥐들이 다른 일에 매달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은 두더지 인간들은 레드몰이라는 새로운 전투 종족으로 지하 연합을 위해서 헌신할 것이며, 드낙에게 봉헌하며 살아갈 것이다.
일백적계획의 성공 소식은 전 종족에게 알려졌다.
뿔 쥐들이 일부러 그 소식을 전한 것이다.
‘이를 이용해야지.’
게릴라 전투가 지하 연합에게 더욱 큰 이득이 될 것이라고 미리 말해 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로 인하여 더 많은 걱정거리를 짊어지게 될 것이고 게릴라 전투에 더 진지하게 임할 것이다.
‘더 많은 힘을 소모해야 한다. 그런 결정을 내려야 지하 연합이 편하고, 드낙 님께서 흡족해하신다.’
공적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 끝없이 밀려날 뿐이다.
드낙을 위해서 그렇게 정보를 적극적으로 유출했다. 뿔 쥐는 예나 지금이나 드낙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목숨을 얼마든지 바칠 수 있었다. 그들은 드낙과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에 인간이 필요하니까.’
범죄자들은 넘쳐난다. 세상이 변해도 범죄자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찌를 수 있는 이들이었다.
문제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는 건 역설적으로 착한 사람이 등쳐먹는 세상을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었다. 경범죄조차도 피해자가 존재한다.
그것만 봐도 충분히 인간 경범죄자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으로도 사회에서 격리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결단력을 지닌 이들은 적었다.
뿔 쥐들은 그런 경범죄자들에게까지 손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만큼 인간 사회는 어지럽게 변하고 있었다.
“찍찍. 촌장, 충분히 들었겠지? 인간들을 보내준다면 이 마을에 레드몰의 군대가 들어서서 그대들의 생명을 대신해서 이 일대를 지켜줄 것이다.”
뿔 쥐가 주둥이 옆에 난 길쭉한 털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앉아있었는데 테이블 위로 토실토실한 털로 뒤덮인 뚱뚱한 뱃살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어린아이가 이를 봤다면 분명 만지려고 했을 것이다. 고양이 뱃살을 한 번이라도 만진 사람이 있다면 이 광경에 군침을 흘릴 터였다.
“정확히 몇 명이 오는 겁니까?”
뿔 쥐들의 앞에서 레드몰의 병사를 ‘마리’로 표현할 대가리에 화살 꽂힌 놈은 없었다. 지하 연합은 마을의 촌장에게 있어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강자였다.
“얼마나 줄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
양피지가 건네졌다.
지하 연합이 사용하는 양피지는 모두 조잡한 금속 손잡이가 달려있었다. 울퉁불퉁한 그것을 잡아서 양피지를 살폈다.
[레드몰 용병 군대]
―인간 100명 레드몰 1명, 두더지 용병 100명
―인간 50명 레드몰 1명, 두더지 용병 50명
―인간 30명 미만, 레드몰 1명, 두더지 용병 30명
간단했다. 거기에 대단히 인간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일백적계획을 통해서 레드몰을 만들려면 237명에 달하는 인간을 죽여야 한다. 인간 개체마다 지닌 업(業)이 다르다고 쳐도 237명에서 50명 안팎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무조건 손해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뿔 쥐들은 그런 걸 영업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큰 재화를 들이지 않고, 레드몰 군대를 통해서 인간을 죽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마을에는 광산이 없지. 안 그런가? 그런데 범죄자가 생겨서 광산 노동형을 해도 받는 돈이 적어.”
모두 공평하게 나눠서 받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공산주의가 망하듯이 망한다. 뿔 쥐들이 노린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을 내규로써 처벌해. 우리한테 적법한 절차를 가지고 위탁하는 거지. 범죄자 인도를 하는 거야.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될 것이다.”
“초월자께서 허락을 하셨습니까?”
“아무렴. 드낙 님께서는 범죄자에 대해서는 그 어떤 타협도 가지고 있지 않아. 이제 인구도 증가하고 있으니 더는 범법자들이 사회에서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아도 경제에 타격이 없어.”
자기가 사는 집 위층에 무장 강도로 출소한 사람이 월세로 들어왔다. 그 주변에 사는 이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만약에 안다면? 그런 인간과 함께 이웃으로 살고 싶을까? 없다. 하물며 도둑질한 도둑놈과도 이웃이 되기 싫을 것이다.
드낙은 힘없는 이들을 위해서 작은 범죄자라도 사회에서 격리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를 뿔 쥐들이 해결해주는데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인구 증가에 대한 문제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검은돈으로 크게 떼돈을 번 스위스와는 다르게 테라에는 범죄자가 필요 없었다. 인간의 출산율만 5를 넘어섰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89라는 걸 생각했을 때, 압도적인 수치였다.
그것마저도 통계에 구멍이 있었다. 전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게릴라 전쟁이 시작된 탓이다.
“좋습니다. 당장은 30명을 내어드리겠습니다. 며칠 전에 범죄자들을 호송해서……. 남은 게 그것뿐입니다.”
3,000명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었다. 테라 이전의 세상이 아니었다. 마을에는 골렘도 여럿이다.
“레드몰은 자유 기사급의 무력을 지니고 있고, 중형급 몬스터도 처리할 수 있다. 아주 좋은 선택이다.”
“혹시 꾸준히 보낸다면 용병을 더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지하 연합은 언제나 인간의 편이다.”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께서 인간들을 중히 여기실 때까지.’
적어도 뿔 쥐는 인간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지는 않을 것이다.
뿔 쥐들은 신제국의 마을은 건들지 않았다. 그 외의 세력에 침투했다.
신제국이 대피령을 내린 까닭이다. 뿔 쥐는 떠났다. 마을은 지하 연합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어서 너무 쉽고 간단했다.
10. 게릴라 전쟁 (2)
일주일 뒤에 레드몰의 용병단이 마을을 찾아왔다. 레드몰이 이끄는 두더지 용병 삼십 마리가 마을 입구에 찾아왔다. 이들은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레드몰 한 마리와 두더지 용병 다섯만 마을 내부로 들어와서 촌장과 마주했다.
촌장은 레드몰을 보고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을 풀기 위해서 차를 마셨다. 필수 식량의 값이 싸지자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찻잎이다. 찻잎만으로도 경제의 성장을 볼 수 있었다.
반면 레드몰은 품에서 술병을 꺼내서 올려놓았다.
“잔을 하나 부탁하지.”
술잔을 기다리는 사이에 촌장이 술병에 관심을 가졌다.
“혹시…….”
“후후, 알아보시는가?”
“산딸기 주……!”
“그것도 이스핀 산딸기 주다. 최근에 다시 생산해서 지급받을 수 있었지.”
“허어……. 금화 수십 닢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촌장이 절로 군침을 꼴딱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