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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86화 (1,085/1,239)

1086화

“흠? 이게 무슨 경우지? 오크 주술사의 말을 보통 듣지 않나?”

외부협상관 도르덩탄의 말에 오크 전사가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가까이 있었다면 이마를 부비적거리며 힘 싸움을 했을 것이다.

물론 늙은 고블린 도르덩탄은 오크 전사와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아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크 전사는 자연스럽게 두더지 병사에게 머리를 들이댔다. 강철과 맨살이 부딪쳤지만, 오크 전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정도의 충돌, 우습다.

‘이놈이?’

다만 놀라운 건 두더지 병사였다. 오크 전사와 체급 차이가 있었음에도 버텨냈다. 괴이한 일이었다.

“…이놈, 털이 조금 붉은데?”

가까이서 알 수 있을 정도로 두더지 병사의 털은 조금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건 일백야수(一百野獸)를 떠올리게 하였다.

산맥을 뛰고 다녔던 오크 전사는 단번에 그 핵심에 도달했지만, 더 진행할 수 없었다. 오크 주술사가 닦달했기 때문이다.

오크들은 기어코 불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주술사의 명령을 진짜로 거부할 오크 전사가 있었다면 모르겠으나, 그런 오크 전사는 대해(大海)로 향하기 바쁘다. 실력이 있는 만큼 할 일도 많았고, 쉬고 있는 오크 전사는 오크 주술사와 마주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건 오크 주술사의 잔소리였다.

“빨리 안 와?”

“갑니다!”

피가 바짝 말라붙은 주술 지팡이를 추켜올린 주술사를 보고 오크 전사가 성을 내며 따라갔다.

“흥. 큰소리만 떵떵 치면서 실속 하나 없구만. 안 그런가? 바란.”

도르덩탄은 붉은 기운이 감도는 털을 지닌 두더지에게 친근하게 굴었지만, 병사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하 연합에게만 안 좋은 것 아닙니까. 일백야수를 찍어내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들을까 봐, 겁이 나는군. 자네는 겁도 없나?”

“실언이었습니다.”

그들은 인어 마을에 들어섰다. 수북이 쌓여있는 조개껍데기가 그들을 반겼다. 인어들은 양이 많다. 거기에 최근에는 식량 혁명이 세금을 등에 업고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또한, 인어들에게까지 향신료가 보급되고 있었다. 다진 마늘을 살짝 얹어서 먹거나 삶는 물에다가 넣어서 먹으면 조개의 풍미는 확연하게 또 달라지는 법이다. 그만큼 향신료의 힘은 강하다.

요리의 발전은 다종족 연합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요리 대회는 일어날 정도였다. 그 이유는 당연히 먹거리 혁명을 통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식재료를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사 먹는 것이 당연한 시대.

그게 드낙이 원하는 시대였다. 거기서 나오는 효율성은 또 한 번 테라를 드높일 것이다.

“혈수병은 더는 막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냥 바다에만 들어가면 그 진행도가 높아지고 있어서…….”

인어들은 오크들에게 욕을 날리던 태도와는 다르게 지하 연합에게는 고분고분했으며, 애걸하기도 했다.

지하 연합은 지하의 종족은 바다와는 연이 없었다. 지하의 영토를 넓히는 데 힘에 부치기 때문에 바다까지 신경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인어와의 커넥션은 오션 오크를 견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서로에게 먼 국가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가까운 국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침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침공하기 어렵고, 번거로워야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일단 식량 지원부터 해드리겠습니다. 동시에 혈수병을 중화시킬 수 있는 물약과 마법사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여기를 거점으로 삼아서 바다 곳곳에서 살아가는 인어들을 구해 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알고 계시지요?”

“오션 오크들과 친하게 지내지 말란 소리 아닙니까.”

그 말에 도르덩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의 주인이 오크가 된다면 인어 종족은 결국 그 아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위치를 잘 상기하고 옳은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도르덩탄은 매우 정중히 말했다.

오크들과 대화할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 존중은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도르덩탄은 약하면 약할수록 존중해 주는 편이었다.

강자는 자신에 대한 존중을 자신이 강해서라고 그렇게 하는 거라 여기지만, 약자는 그 존중을 진짜 존중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약할수록 존중해 주는 것이 지하 연합의 간사한 매뉴얼이었다.

실제로 이는 인어 종족에게 가장 알맞은 행동이었다. 약소국에게 계속 지원을 해줘서 호감을 얻고, 오션 오크를 견제한다.

‘인어 종족은 바다에서 더 활약해 줘야 한다.’

바다에 오래 접촉해 있는 인어들의 혈수병은 지하 연합입장에서는 반드시 척결해야 하는 임무였다. 그렇기에 이례적으로 외부협상관까지 인어 종족에게 보냈다.

보통은 현지 지하 연합 소속 인원을 대충 보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게릴라 전쟁이 한창이다.’

본궤도에 올랐고, 수많은 손해가 나고 있었다. 인어 종족을 확실하게 서포트할 인력이 필요했고, 그에 도르덩탄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거처를 구해 주십시오. 내가 지내면서 계속 지하 연합과 인어들의 다리 역할을 해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시겠습니다.”

도르덩탄은 인어들의 족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그들의 상태가 훨씬 좋지 않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들은 돈이 부족했다.

‘수익성이 적다.’

오션 오크와 물고기 자원을 두고 자원경쟁? 규모에서 압도적으로 밀린다.

“마법을 배우고 있으니, 지하 연합에서 아티팩트를 구매하도록 진행해 보겠습니다.”

바다에 살면서 아티팩트를 만들어서 파는 게 더 이득으로 보였다.

인어들은 내륙에서 조개를 삶아 먹기 위해서 바람 마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마법사가 많았다.

드낙으로부터 잉태되어 나왔기에 마력의 재능은 말할 것도 없이 평균 이상이다. 충분히 종족의 운명을 걸 수 있는 사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도르덩탄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이미 디테일한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가 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양피지의 테두리에는 울퉁불퉁한 검은색의 금속의 손잡이가 자리 잡혀 있었다. 이를 당기자 둘둘 말린 양피지가 보기 좋게 펴졌다. 수준이 낮은 이들에게 일감을 주기 위해서 만든 양피지 손잡이다.

양피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이를 인어 마을의 족장에게 건넸다.

족장 위에는 대족장이 있었다. 인어들은 오크들의 사회 계급과 비슷했는데, 오크들과 인접하고 있어서 이는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문화를 받아들였음에도 적대하고 있으니, 인어 종족에 대한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

족장이 이를 훑었다. 그리고 절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이것은 금방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개껍데기를 써도 이 정도의 효율을 보입니까?”

“해양 생물의 척추뼈를 사용한다면 더 좋을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아티팩트. 사용하면 빠르게 가루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티팩트입니다. 오래 쓰지 않습니다. 생필품이니까요.”

양피지에는 조개껍데기를 재로 만들고, 이를 갯벌과 섞어서 구워 적당한 구조물을 만드는 방법이 쓰여 있었다.

물론 구조물을 만들기 전에 물고기의 척추뼈를 중심이나 곁가지로 두어서 구조력을 올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 증축물에 물의 마법을 아티팩트하는 것이 인어들의 무역상품이 될 것이다.

“수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물이 많은 곳에서 사는 이들은 잘 못 느끼지만, 물이 없는 곳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자신의 가족들이 묻힌 묘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수원지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자원이 부족한 곳은 대륙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물이 없기에 사람이 살지 않고, 지성 종족이 발을 못 붙이는 곳이다. 그런 곳에 싼 가격으로 물을 토해내는 아티팩트가 주어진다면, 능히 사람이 자리 잡을 것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지하 연합 또한 수원지가 부족하다.

‘지하수는 한정되어 있다.’

빗물이 내려와야 지하수가 들어찬다. 지하수라고 해서 무한은 아니다. 그렇기에 지하 연합도 충분히 구매처가 될 수 있었다.

물은 그만큼 필수적인 자원이다.

이미 권속 악마인 인어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무궁무진했다. 그저 그들을 이끌어줄 드낙이 그들에게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나가를 때려잡고 난 뒤에는 어떻게 살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한 탓이다.

“이거라면……!”

인어족 족장이 희열에 차서 감탄했다. 지하 연합이라는 뒷배가 생긴다. 그곳으로 들어오는 돈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르덩탄은 손쉽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사실 그가 나선 것부터 이미 끝난 게임이나 다름없었다.

오크 전사들은 대전사를 보내지 않았고, 주술사를 보냈다.

‘혈수병에 대한 공적도 오크들에게 질 수는 없지.’

몸을 일으킨 도르덩탄의 눈에 좁쌀 같은 벌레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를 밟아 죽였다. 그 벌레에게선 주술을 부리는 사악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정말 작은 힘이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테라의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기분 더럽구나. 어디에서나 보이기 시작했다.’

특단의 대처가 필요했다.

‘지하 연합에서도 준비하고 있지만, 그게 시일에 맞을지…….’

도르덩탄의 눈에 두더지 병사가 담겼다.

* * *

검은 돔.

레플리카 마수 군단이 이곳에서 토해졌고, 세상을 한 번 훑고 물러간 흔적이다. 그곳은 뿔 쥐들이 점거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지하 연합의 수도와 다름없었다.

그곳에 캐러반이 도착했다. 평범한 캐러반은 아니었다. 그것은 대단히 원시적으로 우마(牛馬)를 쓰고 있었다.

이들은 검은 돔에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옆에 마련된 지하 굴의 앞에 멈춰 섰다. 무려 뿔 쥐가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독특한 것은 우뚝 솟은 돌들이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림자의 힘을 다루는 뿔 쥐들이 조금 더 잘 싸우도록 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내려라! 벌레 같은 놈들!”

뿔 쥐들이 닦달하자 안에서 인기척이 났고, 손이 묶인 이들이 내려왔다. 달려서 도망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도망치지 않았다.

지하 연합의 위세에 기가 눌린 모습이다.

뿔 쥐가 나서서 저급한 종이로 만들어진 책을 펼쳤다.

“리보르! 나이 36! 강간!”

“예!”

이름과 죄명이 맞으면 우측으로 분류되었다. 종종 다른 이가 오기도 했기에 빠짐없이 확인해야 한다.

전기와 통신의 보급은 아직도 미숙한 상태였다. 사실 게릴라 전쟁이 터졌기에 기술 발전이 마비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더욱 빠짐없이 확인해서 부족한 행정력을 높여야 했다.

“에르킨! 나이 21! 영아 살해!”

“예!”

실수 한 번에 엉뚱한 사람이 죽을 수 있었다.

명단을 확인한 뿔 쥐가 으르렁거렸다. 적의를 드러냈다.

“쓰레기 같은 놈들. 다종족 연합은 거대한 전쟁에 예정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 인구를 줄이고, 남의 재산을 손괴하고, 테라의 내부를 뒤흔드는 반란 분자 놈들! 신앙을 거꾸로 처먹은 모독자들!”

뿔 쥐가 그들의 면면을 살피며 온갖 욕을 해대었다. 그 누구도 반항하지 않았다. 모두 살고 싶을 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해당 지역의 광산에서 징역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먼 곳까지 와버렸다. 그렇기에 모두 몸을 사리기 바빴다.

“…….”

침묵하는 이들을 본 뿔 쥐 감독관은 더는 미련을 가지지 않고 몸을 돌렸다. 인솔은 굴에서 나온 미리 온 이들이 있기에 상관없었다. 단지 명단이 적힌 서류만 넘겼다.

죄수들은 굴 내부로 들어갔다.

그들은 당연히 불법 거래가 된 이들이었다. 돈을 주고 지하 연합에게 팔려 온 것이다. 죄수들은 몇 년을 광산에서 일해서 벌 돈을 얹어주면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직접 산적이나 도적을 토벌해서 데려오기도 했다.

지하 연합에는 인간이 필요했다.

그건 그 피를 통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였다.

굴의 깊은 곳의 감옥에 한 명씩 가두어졌다. 먹을 것은 물뿐이었고, 그 외의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쫄쫄 굶어야 했다.

“리보르!”

남자가 일어섰다. 뿔 쥐들에 의해서 눈가리개까지 씌워진 채 이동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제기랄. 알려는 줘야죠.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겁니까?”

뿔 쥐들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답답했고, 두려웠다.

철컹! 철컹!

거친 철창이 열리고, 그곳으로 끌려간 남자는 그대로 무릎이 꿇려졌다.

달칵.

웅웅……. 우웅…….

마력이 빛을 발하며 소리를 냈다.

“일백적계획(One hundred Red project). 최종 실험 단계, 237번째.”

뿔 쥐 연구원이 녹음하며 남자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그 옆으로 눈이 움직였다. 온몸이 붉게 변한 두더지가 단칼에 남자의 목을 쳤다.

“꺽. 꺽.”

남자의 목에서 피가 줄줄 흘리며 숨을 쉬지 못한 채 그대로 옆으로 픽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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