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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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해안가에는 오션 오크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성장은 최근에 두드러지게 감소하고 있었는데, 바로 드낙 때문이다. 정확히는 드낙이 만든 인어(Mermaid) 때문이었다.
오크들은 물고기의 압도적인 물량 덕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산이나 평야를 지배하는 것보다 바다를 지배하는 것이 더 큰 이득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수백kg의 사슴? 우습다.
이곳에서는 그물이 수t에서 수십t의 무게를 버텨야 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크들은 바다에 종족의 미래를 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어들과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당연히 인어들이 패배하는 싸움이다. 인어 종족은 신생 종족이고,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하다. 오션 오크들이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크가 그런 분쟁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오크는 드낙이 아니라 녹색 도끼를 신앙으로 삼는 이종족이다. 다종족 연합에서 오크만 다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표적이 되었다.
세파리아스는 같은 인간이니 피해갈 수 있는 화살을 오크들은 피해갈 수 없었다.
그 덕에 인어 종족은 오크들과 당당하게 바다를 두고 경쟁할 수 있었다. 오션 오크에게는 정말 개 같은 일이다.
그렇기에 오크와 인어는 서로 사이가 매우 나빴다. 인어는 특히 상반신이 인간과 비슷했기에 더더욱 오크들에게서 배척받고 있었다.
“비켜!”
배에서 돌아온 오크들이 인어들을 들것에 실어서 옮기고 있었다. 이에 다른 오크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솥뚜껑 같은 손으로 오크의 어깨를 움켜잡아 제지하기도 했다.
“뭐야? 이런 곳에 왜 인어를 데리고 와? 여기는 항구야.”
“주술사의 명령이다. 인어들 사이에서 요즘 괴이한 일이 벌어진다고 했고, 그게 우리에게도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 말에 앞을 가로막았던 오크의 표정이 싹 변했다.
그가 말없이 비켜서자 오크들이 움직였다. 오크 주술사는 마중까지 나와 있었다. 한 도시를 지배하는 오크 주술사는 아니지만 이 항구에 있는 오크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오크 주술사였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인가?”
“그렇다! 주술사! 이건 놈들의 대장이 주는 전언이다!”
거북이 등껍질에 새겨진 글귀를 오크 주술사가 더듬거리며 읽어나갔다. 아무리 잘 써도 악필일 수밖에 없었다. 거북이 등껍질에 글자를 새기는 건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음…….”
이를 모두 읽은 오크 주술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인상까지 찌푸렸다.
“증상이 똑같나? 응? 진짜?”
“녹색 도끼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게 맞아? 인어들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잖아.”
“이놈들이? 다종족 연합에서 인어와 적대해서 안 좋은 건 우리 오크들이다!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해?”
“참나. 그럼 오크 주술사가 놈들을 물리치고 항구를 더 짓게 해주든가. 자기도 못 하면서.”
주술사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지팡이의 뭉툭한 부분에는 오크들의 피가 스며들어 검은색이었다. 얼마나 많은 오크가 주술사에게 꿀밤을 맞고 다녔는지, 새까맣다.
“혈수병(血水病). 아주 개 같은 것이야.”
오크들은 주기적으로 주력을 소모해서 녹색 도끼를 위해서 제사를 올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예언을 점친다.
자주 하는 일은 아니다. 주력은 어디에서나 소모되기 좋은 힘이기에 생산적인 일에 소비하는 것도 부족할 지경이니 예언을 자주 시행할 수는 없었다.
‘물에 들어가거나 해풍을 마주하면 점점 체온이 저하된다.’
그 질병이 오래되면 이내 밖으로 못 나갈 정도로 추워 이불을 둘둘 말고 생활하게 된다. 인어들은 특히나 신종 질병에 무력했다.
‘종국에는 빈혈이 심해지고 이내 정신을 잃는다.’
괴이한 것은 죽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뭘 해도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신을 잃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건 끔찍한 일이다. 20대 청년이 매일 같이 오한에 시달리며 80대 노인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그 무서운 병을 녹색 도끼가 알렸다.
‘마신.’
간사한 신이다.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테라를 뜯어먹고 싶어 했다. 삶아서 먹고, 끓여서 마시고, 말려서 찢어 먹고…….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동시에 전면전은 벌이지 않는다. 서로 간의 체력 소비만 유도하고 있었다.
이제 갓 행성 하나를 먹고, 그 행성의 모든 것을 지배하지도 못한 세력을 상대로 하는 짓이 치사하다.
그러나 확실하다. 건곤일척의 싸움보다는 이런 아웃복서 스타일이 마신의 스타일인 것이다.
결국 업(業)을 많이 처먹고, 이제 곧 상장해서 날개를 펼 놈들의 성장 포텐셜을 꺾어놓으면 그만이다. 실로 대기업 마인드였다. 말려 죽이면 된다는 식이다.
“으으으으으으으음!!”
주술사의 신음 소리가 리듬감을 타며 그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마치 산맥에 불어오는 바람과도 비슷했다.
이리 휘고, 저리 휘고, 위아래로 장단을 오간다. 하지만 무거운 중저음 때문에 무게감이 있다.
곧 주변으로 연두색의 주력이 퍼져나가고, 인어의 몸에서 짙은 갈색의 줄기가 쏟아져 나오며 검붉은색의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이 질병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주술사는 그 검붉은 것을 준비한 강철 통에 담고, 단단히 밀봉했다. 그리고 토템의 기둥이 바퀴의 축 위에 박힌 수레에다가 이를 담았다.
다른 인어들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초월의 힘을 지닌 질병을 추출하여 잘 봉(封)했다.
그 짐수레들은 주술사가 많은 동쪽의 끝에 있는 중앙 항구로 향할 것이다.
오션 오크들의 첫 번째 항구이자, 가장 오래된 항구에서 모든 것이 결정이 날 것이다.
마신은 멍청이가 아니다. 그는 지구의 우월한 문명은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초월의 힘으로 바이오 테러를 감행할 머리는 있었다. 그게 바로 혈수병이다.
이미 나가를 통해서 행성의 정보를 획득했다.
혈수병은 본디 바다에 사는 종족을 노린 것이지, 인어를 노린 것은 아니다. 보다 범주가 넓었다. 아마 주술로 보호를 받는 오크들도 서서히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더 많은 표본을 확보해야 한다.”
“그럼 주변에 있는 인어 마을에 가는 게 어때?”
신속하게 오크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리 신속해도 그들은 이루는 바를 얻을 수 없었다.
“꺼져라!”
큰 냄비에 조개를 한가득 집어넣고, 삶아서 무식하게 까먹는 인어들이 들고 일어섰다. 그들의 마을은 당연히 물속에 있었다. 하지만 화기를 쏟아내서 만드는 요리에 눈을 뜬 뒤로는 물 밖에도 거주하게 됐다. 물론 오크들처럼 항구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들이 막아섰다. 이들은 드낙에게 받은 선천적인 재능으로 마법을 부릴 수 있었고, 하나같이 살짝 둥둥 떠 있었다. 부유 마법이다.
물 밖에 나와서 요리를 해 먹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으로 마법을 단련했기에 인어 중에는 젊은 인어도 마법 실력이 제법이다. 너도나도 삶은 조개 맛을 보면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인어들은 항구를 짓는 데 크게 반대하고 있었다. 갯벌은 무조건 지켜야 했다. 바다 아래에 있는 자원을 두고 오크와 경쟁하고 있었기에 항구의 무분별한 건설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꺼져! 오크 새끼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우리를 밀어내고 항구를 지으려고? 어림도 없지!”
격렬한 반대 때문에 오크들은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연합이 여기에 있다! 모두 물러서라!”
반복되는 목소리에 소란이 줄어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제3세력인 지하 연합에게로 향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호위병들이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하나같이 전신 갑주를 입고 있었다. 만들기 어려운 갑옷은 아니었다. 드낙이 다종족 연합을 천명하며 전신 갑주에 대한 지식을 엘프들로부터 풀라고 지시한 탓이다.
전 종족이 전체적으로 강해져야만, 이 행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게릴라 전쟁’이 터졌다. 총공세로 서로 맞붙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전신 갑주는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다.
두더지 머리에 맞도록 제작된 강철 투구만 봐도 독특했다. 무기는 할버드로 통일해 있었으나, 혁대에 숏소드나 한 손 도끼가 걸려있다.
“비켜! 내가 안 보이잖아!”
호위병들이 비켜서자 그곳에서 작은 체구의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글자글한 피부에 왜소한 체구. 하지만 그 눈만큼은 매섭다.
척 봐도 쉬워 보이지 않은 고블린이다. 늙어도 그 분위기와 판단만으로도 천수를 누릴 수 있어 보였다.
다리는 멀쩡하지만 패션 지팡이까지 하고 있었다. 늙은 티를 내는 것이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든 이용하는 고블린, 도르덩탄의 등장이다.
“그대는 뭐 하는 고블린인가?”
“나는 지하 연합 소속 외부협상관 도르덩탄이다. 인어들에게 음모가 퍼지고 있었고, 인어들의 요청으로 이곳에 왔다.”
그가 앞서나갔지만, 오크들은 비켜주지 않았다.
쿵.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오크 전사의 피부에 들러붙었다. 하지만 오크 전사의 눈에는 두려움 하나 없이 오히려 호승심이 잔뜩 피어오른다.
죽을 때, 자기 묫자리 하나는 자기가 정할 수 있는 상남자다운 기개가 있었다.
오크들에겐 나라를 지킨다면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는 기상이 있었다. 보통은 자기 살겠다고 도망가는 게 일반적이다. 해병대조차도 전쟁이 발생하자 빤스 입고 도망쳤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오크 전사의 기개는 실로 놀랍다고 할 수 있었다.
“물러서라!”
인어들의 말에도 오크들은 목석처럼 단단해졌다.
“흐음…….”
도르덩탄이 인상을 썼다. 이에 그가 지팡이로 땅을 두 번 찍었다.
금속 지팡이는 두 개를 연결한 모양새였는데, 그 연결 부위가 헐렁해서 그곳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을 두드려서 소리가 아는 게 아니라, 지팡이의 연결 부위끼리 부딪쳐서 소리가 크게 났다.
이에 호위병이 한 걸음 물러섰다.
“아무래도 먼저 오크 주술사와 대화를 해봐야겠는데?”
그 말에 오크 주술사가 그제야 나섰다. 그는 바로 분노를 토해냈다.
“뭐 하는 놈들이냐! 지하 연합이 왜 바다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냐!”
드낙은 지하 연합에게 지하의 권리를 줬다. 하지만 지하 종족이 밖으로 나와서는 인어들과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눈 뜨고도 못 봐줄 일이었다. 너무 화가 났다.
‘이 바다는 오크들의 것이다. 그런데 오크들과 이야기하지 않고, 인어들과 이야기를 하다니?’
순서부터 시작해서 상대까지 모두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었다.
“넌 뭔데 화를 내는 거냐? 지하 연합은 지금까지 오크들을 위해서 많은 걸 지원해 주고 있다! 교역이 끊기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지하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끊기게 되면 골치 아플걸?”
“돈을 못 버는데 그런 걸 선택할 리가.”
“우리가 오크들의 편의를 봐주고 너희들과 어울려주고 있는 건 물론 이득이 되지만, 돈은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무례는 범하지 마라.”
“너에게 그런 역량이 있는가?”
오크 주술사가 언성을 낮췄다.
이에 늙은 고블린이자 외부협상관 도르덩탄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니, 케케케. 오크도 별것 아니구만. 협박하니까 목소리를 낮추는 것 보게. 이런 주술사와 어떻게 진지한 대화를 나누겠는가! 대전사가 오지 않으면 오크들과 대화하지 않겠다!”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그리고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떵떵거렸다.
이에 오크 주술사가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오션 오크는 다종족 연합에서 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종족이 되었다.
‘산맥에 있을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그냥 오크들이 할 일은 무식한 육체의 힘과 녹색 도끼로부터 받는 타투의 힘 그리고 주술의 힘이 전부였다. 전투원으로서만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오션 오크라고 불리게 되면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물고기 자원은 문명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대부분의 문명이 강 근처에서 발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한 이들이라면 깊게 체감하고 있을 터였다.
사냥을 하루 하는 것보다 어부질을 하루 하는 것이 더 낫다. 훨씬 압도적이기에 더 좋다.
오션 오크들이 가져와서 염장해서 내륙으로 보내는 식량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멀리까지 나가서 마라토너 고래까지 사냥하는 것이 오크들이었다.
그 덕은 다른 종족들이 많이 보고 있었다.
고블린에 주술사가 당한 것은 정말 아차 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빌어먹을 놈이.”
“케케케.”
욕을 먹어도 고블린은 비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오크 주술사가 물러갔다. 결국 대전사를 데려와야 한다. 이 이상 지하 연합의 인력을 막아둘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물러간다!”
“퉤! 주술사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야? 이대로 안 들어간다고? 나는 그렇게 못해!”
오크 전사 하나가 경박하게 굴면서 냉큼 앞으로 나와서 팔짱을 꼈다. 들여보내 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보겠단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