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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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국에서 밖을 돌아다니는 군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주공은 도시와 성으로 피신한 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드낙이 신제국의 영토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테라의 초월자가 직접 나설 정도였으니, 사태가 무엇보다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점점 마수들이 발견되는 지점이 더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수들은 이미 테라의 좌표를 알고 있었고, 그림자 마수인 로노베 후작은 편린(片鱗)을 곳곳에 뿌리고 있었고, 수많은 곳에 마수 벌레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테라의 세상에 뿌려진 마기(魔氣)로부터 태어나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행성 자체를 정화시켜야 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일개 개인 혹은 집단의 힘으로 일부 지역을 정화시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국가적으로 미세먼지가 덮쳐오는 것을 모두 해결하는 것도 어려운데, 보이지 않는 마기를 처리하는 건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런 마도 지식을 쌓는 것도 아직은 어려웠다. 마신과 마주한 것도 최근이고, 엘프들이 자리를 잡는 것도 이제야 겨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개발도상국과 다름없었다. 바쁘고, 언제나 인력 부족인 상황인데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개설된다.
그렇기에 마수 카운터를 치는 마법의 개발은 늦어졌다. 만신적은 단순하게 인신의 숫자를 늘려서 신성력으로 지구 전체를 작은 막으로 덮어버렸다.
그 덕에 종종 환경이 맞아떨어지면 황금빛의 막을 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
반면 테라의 경우는 다르다.
행성 전체를 마력 층으로 둘러싸기에는 마도 지식이 부족했다. 어찌어찌 비효율을 감당하며 만들어도 이를 유지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였으며, 그로 인하여 생기는 손실률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당장 사회에서 소모되는 마력량만 해도 대단하다.
그게 한순간에 반 토막이 난다면 거대한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물 부족 국가가 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드낙의 명령하에 엘프들은 두 번의 이주를 감행했다. 그 끔찍한 활동 속에서 마수들의 카운터 마도 기술을 드높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드낙이 자신의 업(業)을 소모해서 테라를 우뚝 방어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악마의 격은 움켜쥐었지만, 신의 격은 쥐지 못했다.
아직도 개화를 기다리는 봉우리가 드낙이었다.
그 속에서 홍역을 앓는 건 첫 번째로 로노베 후작에게 침공당한 신제국이었다.
제국의 쌍창(雙槍)이라 불리는 청기사왕(Blue Knight king)과 적기사왕(Red Knight king)도 오랜만에 막대한 마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슈아아아아―!
구름을 가르고, 청기사왕이 아래로 내려온다.
무지막지한 속력으로 껑충껑충 토끼처럼 뛰고 있는 테라의 마수가 보였다.
로노베 후작의 그림자 편린으로 이곳에 도착해서 테라의 구성 물질을 훔쳐먹고 그것으로 육신을 이루어 행성 자원을 좀먹는 암세포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죽여야만 멈추는 마신의 괴물이다.
게릴라 전쟁의 가장 큰 주역이기도 했다. 저것을 사전에 틀어막지 못한다면, 테라는 끝없는 게릴라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테라의 마수에게 흔들리는 만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는 마수들의 좁쌀 같은 벌레들이 마신을 위해서 일하게 된다.
‘잘 싸인 전쟁이다.’
청기사왕은 그 전쟁의 판도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테라의 마수를 토벌한다고 해도 다음 테라의 마수가 기다리고 있다.’
저들에게 엮이면 엮일수록 마수를 잡는 것도 느려진다.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고 있지만 전 세계를 연결하지 못했다.
현대에 흔히 말하는 ‘지구촌’이라는 말은 엄청난 노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으며, 막대한 돈과 경제가 탄탄해야 한다. 그 기반이 없으면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현하는 건 어렵다.
테라도 아직은 멀었다.
마법을 모르는 것이 기사왕이다. 그들은 4성(星) 오버로드급의 인조 생명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테라에서 마법을 배우면서 현격히 성장했고 강력한 범용성을 지니게 되었다.
전에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기동력을 높였다면, 이제는 스스로의 마법을 통해서 허공을 비행하며 테라의 마수를 쫓을 수 있었다. 막대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시에 구름을 뚫고 반대편에서 적기사왕이 내려왔다. 양측에 사이드로 맞물리자 테라의 마수가 멈춰 섰다.
마구 뒤엉킨 존재. 끝없이 육체가 변형되기를 반복하며 흔적을 지우는 존재.
그것이 로노베 후작이 만든 테라의 마수였다.
“그아아아아!”
놈의 목이 쩍 갈라지며 성대가 훤히 드러나 크게 떨렸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서 폐암이 걸렸는데도 담배를 피우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 구멍 난 성대로 검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촤라라락!
무지막지한 촉수가 사방을 휘저었다.
그 공격에 절륜한 기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위협적인 것은 위협적이다.
도망 다니면서 최대한 많이 테라의 자원을 약탈하고 부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테라의 마수다. 그런데 전투력마저 높다면 말이 안 된다. 놈들은 벌레를 싹 다 골라잡으면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관리하지 않으면 사막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문제였다. 때문에 신제국에서는 밀 포대를 쏟아붓고 벌레를 키우는 데 집중할 정도였다.
혹은 잘 자란 나무를 억지로 베어내서 썩게 하여 벌레를 양산시키고, 황폐화된 곳에 옮겨놓는다.
벌레는 그만큼 중요했다. 그리고 벌레를 육성하는 것만으로도 신제국의 역량은 감소한다. 벌레의 수송에도 군대가 필요한 까닭이다. 싸우지도 못하고, 기습에 대한 대처가 미비한 이들을 수송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시민은 싸우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생산자였다.
그저 파괴만 일삼는 게 병사는 아니지만 병사는, 군대는 비생산적이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살과 뼈로 평화를 드높이는 존재들이었다.
이번에는 그들이 받은 만큼 헌신해야 할 때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병사를 살리기 위해서 쌍창의 기사왕이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최대한 빨리 테라의 마수를 죽이는 것이다.
신제국의 순찰자들이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마법사들이 메시지 마법으로 전송했고 쌍창의 기사왕에게 닿았다.
태엽이 빠르게 맞물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저 테라의 마수를 죽이는 것뿐이다. 저 마수는 행성 테라의 자원을 좀먹는 놈이었다.
“크게게게게게게겍!”
테라의 마수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촉수의 길이는 최소 10m에서 최대 30m에 달했다. 얼마나 덩치를 키웠는지 촉수가 휘둘러질 때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그 흙구름 속으로 청기사왕과 적기사왕이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태풍을 누리소서.”
“폭풍을 부르소서.”
“무쇠 기둥을 부수소서.”
“꽃이 피는 여름에 비바람을 보여주소서.”
“사람들이 누워서 기도를 드리니…….”
“그 밖의 억만(億萬) 괴물이 휩쓸리도다.”
“바람의 추종자들이 바라고 또 바란다.”
“태풍이여! 만세를 누리소서!”
“폭풍이여! 무더운 더위를 비껴치소서!”
“…….”
주문이 읊어졌다.
열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풀코스트 바람의 주문이 두 기사왕의 몸에서 발현했다.
압도적인 마력량을 마주한 테라의 마수가 가늘게 떨었다. 겁을 집어먹었다.
두 기사왕은 작은 몸에 비해서 막대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쌍창의 기사왕들의 주변의 바람이 시야 거리가 25m가 넘는 정도의 흙먼지를 밀어내고 있었다.
거대한 촉수가 휘둘러진다.
계속해서 육체가 변형되는 테라의 마수는 이미 그 덩치가 아까와 비해서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총 길이만 해도 100m를 넘어섰다. 더욱 커지고 있었다.
전투 상황이 왔고, 더는 도망칠 수 없으니 덩치를 크게 해서 압도하고자 했다.
추락하는 적기사왕을 향해 촉수가 펜싱처럼 찔렀고, 그 속에서 적기사왕이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오러 블레이드(Aura Blade).
오직 체내에 인간을 초월한 마력을 지닌 이들만이 사용 가능한 기술이 토해졌다. 막대한 마력을 그저 무기에 응축하는 단순한 마법이었다. 아니, 마법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변변찮은 술식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끔찍한 집중력과 막대한 마력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오러 블레이드는 촉수를 가르고, 그대로 적기사왕과 함께 추락했다.
테라의 마수를 그대로 가르고 바닥에 크게 충돌하듯이 떨어져 내렸다.
반대로 청기사왕은 내달려 깊게 베고 지나갔다. 서로 교차하고 지나갔다.
4분할이 된 테라의 마수는 여전히 건재했다.
오러 블레이드에게 베이고 또 베였다.
촉수는 결코 쌍창의 기사왕에게 닿을 수 없었다. 수많은 마법이 그때그때 토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오러 블레이드만 가지고 있는 4성 오버로드가 아니다. 수많은 마법을 익혔고 감히 반신급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압도적이다.
오러 블레이드와 마법은 확실하게 테라의 마수를 요격하고 있었고, 승리로 향하게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깊은 늪을 사용한다!”
청기사왕에게서 벼락같은 마력이 뻗어나가 적기사왕의 뇌리를 뚫고 지나갔다. 메시지 마법의 난폭한 사용이었다.
두 명 모두 비슷하지만 다른 주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통의 늪.”
“망각의 늪.”
“썩은 감정의 늪.”
간결한 주문이 이어졌다. 이전에 사용했던 폭풍과 태풍의 주문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마법의 완성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나도 길기에 마법의 단어가 줄어든 것이다. 효율성과 위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주문’ 자체의 완성도를 빠르게 올리기 위함이다.
단순 무식하게 완성시키면 된다는 식이다.
부륵! 부르륵!
땅에서 거품이 피어올랐다. 땅이 융해되면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초록빛을 띠면서 걸쭉해졌다.
이도 저도 아닌 늪은 두 가지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물과 불의 마법이 가미된 ‘늪’은 쌍창의 기사왕이 합심하여 마법을 사용해야만 가능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전 시간이 길다.
“크아아아아!”
테라의 마수가 펄쩍 뛰었다. 체중이 무거울수록 늪에 잘 빨려 들어가기 마련이다.
“덩치를 더욱 키워봐라! 멍청한 놈아!”
적기사왕이 크게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이 테라의 마수라는 놈은 정말 끔찍한 놈이었다. 가만히 둔다면 모든 자원이 소멸될 것이다. 심지어 흙이나 물까지도 사라지고 종국에는 먼지만 가득한 황무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먼지마저도 힘으로 변환시켜서 마신에게 보낼 놈이다.’
그런 놈을 처단하는 것은 생명체로써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두 명의 인조 생명체는 열의가 가득했다.
세파리아스의 ‘세상을 베는 검’을 통해서 만신전에 대한 제약이 모두 사라진 그들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행하고 싶은 것을 행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
테라의 마수가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 몸은 확실하게 늪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질량을 포기해야 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로노베 후작이 설계한 ‘그림자 편린’은 그런 구성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양의 자원을 약탈하려면 덩치가 당연히 커져야 한다. 그걸 모두 버릴 수 없었다. 태생 자체가 그러했다.
드낙은 이미 테라의 마수와 조우한 적이 있고, 전투까지 이어나갔으며 끝장을 냈다. 그 보고서는 모든 세력에게 전달되었고, 그들마다 해결 방법을 내놓았다.
청기사왕과 적기사왕의 방법은 거대한 늪 주문을 통해서 테라의 마수를 완전히 끝장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벽하게 테라의 마수를 카운터 치는 데 성공했다. 두 명은 테라의 마수가 지닌 육체 변이와 회피에 대해서 깊게 고민했다.
죽어가는 테라의 마수는 뒤늦게 도망치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녹여지고, 녹색 독가스를 뿜어내며 달구어져 매캐한 검은 연기와 함께 탄내가 자욱한 늪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지도 않는다.
긴 창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죽 길어지며 도망치는 테라의 마수를 죽였다.
전투는 장장 3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압도적인 소모를 일으켜 냈지만, 테라의 마수는 그만큼 많은 걸 집어먹은 상태였다.
“제기랄.”
테라의 마수를 재 가루로 만들어버린 뒤에 적기사왕이 욕지거리를 날렸다.
그들이 3시간 동안 불태우고, 녹이고, 벨 정도로 테라의 마수는 행성의 에너지와 자원을 훔쳤다. 그 막대한 자원이 아까웠다.
“근처에 있는 마을로 향한다. 그곳에서 새롭게 정보를 갱신받거나 근처 성으로 이동하며 빠르게 정보를 다시 얻어야 한다.”
“테라의 마수가 대체 몇 마리야?”
“처음에는 전초전이었을 뿐이다. 이제 점점 그 숫자가 증가할 것이다. 바다에도 있을 수 있지.”
그 말에 적기사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전선이 그저 신제국에만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전선은 행성 단위인가……!’
마신의 흉수는 차원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