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83화 (1,082/1,239)

1083화

9. 게릴라 전쟁 (1)

마신의 목적은 업(業)을 훔쳐먹는 것이다. 마계의 마수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업이 무엇보다 많이 필요했다. 또 업을 얼마나 축적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의 힘이 바뀐다.

누가 강한가. 누가 약한가.

그에 따라서 거대한 전쟁이 휘몰아친다.

막대한 차원 영토를 지닌 마신에게 있어서 이를 억제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큰 영토를 지닌 만큼 가만히 있어도 업이 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신은 테라에 대한 정복욕은 없었다.

레플리카 마수 군단을 보냈을 때도 업만 호로록 빨아먹고 사라졌다.

테라는 훌륭한 업 수급처였다. 거기에 거리도 멀었고, 침략받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구잡이식으로 난동을 부리기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대대적인 침공은 하지 않는다. 중립신이 부활하고 죽은 땅이니 적당히 해야 했다.

그렇기에 그림자 후작, 마수(魔獸) 로노베의 침공은 조용하면서도 까다로웠다.

“씨발.”

신제국의 병사가 코 밑으로 뚝 떨어지는 땀을 보며 허리를 폈다.

‘진짜 X같다.’

“으그그극.”

극심한 허리 통증!

마치 나이 30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은 인간이 39살이 되었을 때 느끼는 끔찍한 절망처럼 깊은 통증이 병사를 덮쳤다.

30줄이 넘어서고 노화가 시작되는 순간 카운트다운은 시작된다.

멋진 몸매를 위해서 20대에 운동을 한다면, 30대에는 생존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 격언은 수많은 이들이 증명했지만, 솔직히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미 생존을 위해서 하루에 12시간도 넘게 일하고, 글 쓰고, 싸우고, 버텨나간다. 그저 사회에서 불어오는 그 혹독한 풍파 속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몸은 마모된다.

그 통증은 수많은 삽질을 하면서 오는 허리 통증보다도 더 삭막한 고통을 준다.

“언제까지 파야 하는 거야?”

“이 주변에 확실하게 있다. 그냥 파다 보면 나올 거라더군.”

게릴라 전쟁의 시작은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아니다. 그건 너무나도 원시적이다. 필요는 하지만 마신의 방식은 아니었다.

상대에 따라 철저하게 그 방식이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서도 변화하는 침공이 바로 마수의 침공이었다. 그렇기에 마신은 현 차원 세력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이 되었다. 굳이 싸우지 않고도 업을 잔치국수 먹듯이 빠르게 먹을 수 있어서다.

꿈틀! 꿈틀!

땅을 파던 병사의 손이 멈췄다.

땅이 숨 쉬듯이 들썩이고 있었다.

“이, 이건가?”

쉽게 판단하지 못했다. 그런 판단력이 없었을뿐더러 지금 삽질에 동원된 병사는 대부분이 1년 미만의 훈련을 받았을 뿐이다.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태창처럼 바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몰라도 땅이 들썩이는 것으로 판단을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여기 뭔가가 있습니다!”

병사가 이를 알리며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 너도나도 구경을 왔다.

“소름 끼치는데.”

“땅이 왜 들썩거리지?”

“저 땅 아래에 뭔가가 있나 보지.”

“네가 창 한 번 찔러 봐.”

보고가 간부에게 향하는 사이에 병사들이 시답잖은 소리를 해대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그래도 1년 동안 착실하게 훈련을 받은 덕이다.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낫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면 된다. 상관은 그 이상, 그 이하는 바라지도 않는다.

“비켜라!”

전신 갑주로 무장한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간지가 벌써부터 좔좔 흘렀는데, 가슴에서 마력이 슬슬슬 가루처럼 뿌려지고 있었다. 전신 갑주에 동력원이 생긴 탓이다.

아직은 프로토타입이라서 마력의 제어가 풀려서 내부에 있는 마력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용하는 이유는 전투 상황 시에 마력 없는 신제국의 기사들이 큰 도움을 받아서다.

거대한 보석은 인공보석으로 우주 낙원에서 포로로 잡은 기술자들과 우주 낙원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지식과 정보, 기술을 통해서 만든 것이다.

그 덕에 보석의 크기가 상당히 컸다. 사람 주먹보다 더 큰 원형의 보석이 전신 갑주 내부에 들어차 있었다. 밖으로 노출되지는 않았다.

그게 더 멋있긴 하지만 잘못 맞았다가 마력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철저히 숨겨야 한다.

기사는 냉큼 내려갔다. 동시에 그 입에서 시동어가 펼쳐졌다.

“여섯 별의 마법진 기동.”

여섯 개의 마법이 서로 태엽이 감기듯이 함께 상생(上生)하며 더욱 위력을 높이며 기사의 몸을 보호했다. 기사의 인체 깊은 곳에 나뭇가지가 혈액과 함께 퍼져나가며 핏줄을 통해 내구력 자체를 증가시킨다.

피부에 얇게 도포된 푸른색의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이 들러붙었다. 어깨 위로 붉은 화염구가 세차게 회전하며 모습을 드러내 대기한다. 손에는 흙더미가 장갑처럼 그 손과 손목을 휘감는다. 언제든지 투척되어 상대에게 질량탄을 쏠 것이다.

그 외에도 보이지 않는 마법이 기사를 보호했다.

기사의 검이 호흡하듯이 들썩이는 바닥을 롱소드로 깊게 찔렀다.

푸하악!

단번에 분출하듯이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 피는 인간처럼 붉은색이 아니다. 새하얀 백색이고 대기 중에 노출되자마자 검게 변질되며 빠른 속도로 기화되기 시작했다.

액체가 기화되면서 기체가 되면 그 부피가 급격하게 팽창했고, 마치 폭발하듯이 연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독이다!”

“가스! 가스! 가스!”

1년 훈련받은 건 헛되지 않았다. 병사들은 물약을 던졌다. 병사 보급 연금 물약으로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독가스 공격도 당연히 인간을 상대하기 좋았기에 그에 대한 대책이 있었다.

“가스! 가스! 가스!”

상황판단이 안 되는 병사들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판단해서 ‘가스! 가스! 가스!’를 외치면 된다. 멍청한 놈들도 가스를 중화시키는 물약을 던졌다. 물론 그중에는 뚜껑이 안 열린 물약도 있었다.

병신이다. 그런 병신은 세상 어디에나 있었다. 하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물약이 터져 나오며 새하얀 연기가 터져 나왔다.

기체와 기체의 싸움. 그 속에서 수분을 잔뜩 머금은 연기는 독가스와 서로 결합하면서 물방울이 되어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스! 가스! 가스!”

병사들은 상황이 끝났는지 몰랐기에 마구잡이로 물약을 던지기 시작했다. 미친놈들이었다. 한순간에 막대한 돈이 사라진다. 허나, 사람을 구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뿌지지지직!

땅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뭔가를 토해냈다. 그건 썩 좋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악마 같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소리를 듣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었고, 가장 선두에 있었던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는 소름까지 돋았다. 혐오감이 온 얼굴에 튀어나왔다.

“명예에에에에!!”

기사가 더욱 돌진했다. 그리고 단번에 땅을 뚫고 집채만 한 애벌레가 튀어나왔다.

“끼에에에에엑!”

피부는 검은색에다가 독가스를 뿜어내는 놈이었다. 하지만 이미 큰 상처를 입어서 수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일회용처럼 그렇게 독가스를 토해내며 꿈틀거리던 애벌레는 난동을 부렸다.

“물러서라!”

“장궁수! 준비! 발사!”

일반병사를 물리고, 장궁수들이 나섰다. 그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화살을 쏠 수 있단 점에서 석궁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신제국은 석궁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복잡한 구성을 가지고 있어서 생산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5년 이상 화살을 쏘는 장궁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화르르르!

이글거리는 화염이 강철시(鋼鐵矢)에서 쏟아져 나온다. 발사되자마자 하늘에 불꽃이 수를 놓았다. 강철시는 사거리가 짧다. 무게가 무거운 탓이다. 궤도가 특히 쉽게 꺾이는 것이 문제였다.

강철시에 구멍을 뚫고, 매의 깃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강철 화살을 만든 이유가 강철시에 마법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마법 불꽃은 특히나 단점이 없는 속성이다. 불은 일단 어떤 상황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애벌레에게 강철시가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명중률은 가히 90%를 뛰어넘는다.

표적이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난동을 부리는 탓에 예측하기 어려울 텐데, 단번에 맞히는 이들이 많았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놀랄 노’자였지만 장궁수들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화살의 화살에 화살을 박아 넣는 놈들이다.

기득권층이 자본을 계속 축적하는 게 아니라, 밑으로 쏟아내고 다시 불러오고를 반복하며 엄청난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병사들은 대우도 좋고, 그만큼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니 이렇게 대우가 좋은 군대에 남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받은 돈만큼 목숨마저도 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장궁수들은 최소 5년 차부터 작전에 투입된다. 경험이 적을 뿐, 충분히 엘리트라고 불릴 만했다. 유사시에는 군 간부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다.

신제국의 친군사적 태도는 그런 것마저도 가능하다.

사태가 끝나고, 기사가 비틀거리면서 걸어왔다. 열 걸음 이후에 허리가 펴졌다. 비틀거림도 빠르게 사라진다. 전신 갑주에 내장된 회복 마법은 확실하게 기사를 도와주고 있었다.

“이것이 마수.”

뒤돌아 본 기사가 황망하게 거대한 애벌레를 바라보았다.

전투 능력은 전무(全無). 독가스를 뿜어내고 자멸(自滅).

애초에 검으로 찌르지 않았더라도 몸의 모든 것이 짜내어지며 독가스로 변해 죽어버렸다. 체액이 밖으로 삐져나오면 기화하여 독가스가 되는 방식이다.

사망자는 열세 명.

그렇게 물러서라고 말했음에도 엉거주춤 뒷걸음질 몇 번 치고 멍하게 구경하던 놈들이 대부분 죽었다. 혹은 한순간에 흙더미에 파묻혀서 질식된 재수 없는 놈들이었다.

부상자는 많았다. 흙에 휩쓸려 나가떨어진 것만으로도 관절이 꺾이거나 뼈가 부러졌다. 평범한 인간은 덩치가 큰 상대에게 맥없이 고꾸라진다.

그래도 승리했다.

기사는 곧장 마법사를 찾아갔다. 그의 군대는 보급 군까지 생각하면 천 명에 달한다. 마법사는 고작 열 명뿐이었다.

신제국에 얼마나 마법사의 숫자가 적은지 자연히 보여주고 있었다. 마법사들과 기사들은 동등한 입장이다. 숫자가 적었기에 가치가 높아진 마법사.

숫자가 많아도 신제국은 무인(武人)의 국가다. 그렇기에 기사와 마법사는 교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도 주변에 마기가 느껴집니까?”

“예. 하지만 크게 줄었습니다. 저 애벌레는 이상하게 컸던 것이지요. 다른 애벌레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마법사들이 정보를 내어주고, 이를 통해서 작전을 계속 수행해 나간다. 그 사이에 마법사는 애벌레를 해부했다.

“놀랍군.”

“장기 하나 없다. 그저 빈껍데기만 남았다.”

애벌레 마수는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역추적하는 건 간단했다.

엘프들의 마법 지식은 확실하게 신제국의 마법사들에게로 이어졌다.

당연히 마탑 같은 건 없었다. 그런 마법사들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모임을 국가가 허락할 리가 없었다. 도서관에서 지식을 볼 수 있는 게 전부였고, 모임을 한다면 따로 사모임을 만들어야 했다.

왕권이 강하면 다른 것은 견제받기 마련이다. 다른 것이 강하다면 왕권이 견제받기 마련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검사가 세면 경찰이 약하고, 경찰이 세면 검사가 약하다.

세상 똑같다.

“이건……. 이 껍데기 안쪽에 있는 흔적들을 봐라! 거대한 문양이다!”

쭈글쭈글해서 못 알아볼 뻔했지만 명확한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를 본뜨려면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바닥이 매끈해야 했고, 쫙 펼쳐놔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구력이 다한 애벌레 껍질의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사이에 병사들은 삽질을 이어나갔고, 손바닥만 한 마수 애벌레나 제법 덩치가 있는 애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조심해라! 체액이 터지면 그대로 끝이다!”

발견된 애벌레는 결함이 많은지 어떤 애벌레는 자극해도 체액을 토해내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힘이 투여된 마수가 아니었다. 이놈들은 테라의 자원을 마기로 환원하는 데 노력하는 마수에 불과했다.

전투 능력이라고 해봤자, 독가스가 전부였다.

익숙해지면서 사상자가 현격히 줄어들었고, 그 정보 또한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애벌레의 주름을 펴서 본 문양은 ‘오벨리스크’의 형식과 비슷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엘프들의 의견이었기에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즉, 애벌레들은 테라의 것을 마기로 전환함과 동시에 소화시키면서 그 힘을 마신에게로 보내고 있단 겁니다.”

“그런 게 가능하다니…….”

마수(魔獸) 종족이 지니는 압도적인 편리성에 기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런 놈들이 전쟁을 일으켰다. 그건 전면전 따위가 아니다.

인간이 승리하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마수는 테라를 물어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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