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2화
* * *
[X같네.]
장인의 신 라이트(Wright)의 정신체가 불길하게 꿈틀거렸다. 그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카실레안 놈. 지가 얼마나 잘 났다고…….’
그는 갓 인신이 된 자였다. 전술의 신 카실레안의 명성은 지구에서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만신전이 의도적으로 그 공적을 숨겼다.
크게 논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많은 인신들이 카실레안의 무서움을 몰랐다.
100명으로 천 명을 붙잡고, 천 명으로 만 명을 겨누며 만 명으로 불패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전술의 신 카실레안이다.
대계(大計)라 불릴 정도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뒤떨어지지만, 전투에서는 패배하지 않는다.
송곳과도 같은 전술관이며, 전차장으로 어울리는 병사였으며 항우의 전신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에는 게임만 하던 새끼가.’
라이트의 생각 이면에는 카실레안의 출신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게임에서 승리한 대가로 인신이 된 것이 카실레안이다.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그는 오직 실력으로 인신이 되었다. 그가 만든 아티팩트는 그야말로 절륜하다. 권능 자체가 아티팩트에 특화가 되어있었다.
‘권능, 마스터 피스(Master piece).’
그 권능을 통해서 만신전에 들어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올라섰으나 부족했다.
라이트는 중립신 복수전에 가담하게 된다. 그것도 강제로.
후방에 있어야 할 인신이 분명하지만, 만신전의 판단은 지엄한 것. 이제 갓 인신이 된 라이트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만큼 만신전은 많은 역량을 쏟아붓고 있었다. 권능이 전투적이지 않더라도 우주 낙원의 지배자로 찍어 카실레안의 함대에 집어넣었다.
당연히 카실레안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비틀린 불만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인간의 악의가 제대로 된 방향성을 지닌 경우는 드물다. 인신이 되었지만 전지전능하지 않고, 생전의 기억도 가지고 있었으며 가족까지 있는 게 라이트였다.
그에 반하여 카실레안은 지금도 게임을 하는 하찮은 인간이다.
‘병신.’
라이트는 제법 카실레안의 사적인 것도 조사를 해두었다. 지구는 그런 것도 쉽게 할 정도로 대단한 곳이다. 돈이면 못 하는 것이 없었고 권능이 깃든 아티팩트는 공격력만 높은 게 아니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많은 재벌들이 라이트의 마스터 피스를 얻고 싶어 했다. 그 덕에 불법적인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다.
‘게임에도 돈을 최소한도로 쓰고 있는 놈.’
인신이란 놈이 쪼잔하다.
카실레안을 조사하며 자연스럽게 게임을 접하게 된 라이트는 소위 게이머란 현실도피자들이 그를 뭐라고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무과금의 왕.’
왕관 없는 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왕관은 비싸니까.
어찌 되었든 카실레안의 기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사치스러운 설비를 통해서 전쟁터에서도 실시간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라이트는 그런 하찮은 놈에게 배속되었다.
이 원정에서 그는 반드시 높은 곳에 올라서야 한다. 그러나 카실레안은 회의도 한 번 열지 않았고, 이번 원정에 대한 정보만 내어줬을 뿐이다. 그건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냥 기본적인 것에 불과했다.
‘날 보고도 꺼지라고 말하다니. 건방진 새끼.’
그의 권능은 능히 우주 낙원까지도 강화시킬 수 있다. 완벽하게 전력 강화를 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카실레안은 그런 자신에게 흥미 하나 없어 보였다. 그건 전술의 신이라고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라이트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전술의 신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움직인다. 카실레안의 명을 거역하고, 다른 주머니를 차기 위해서 행동했다.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그와 비슷한 처지인 인신들과 접촉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전투력이 있는 권능을 지닌 인신에게 접촉했다.
‘전사의 신, 군나르(Gunnar).’
그는 자신의 명성을 익히 들었을 터다.
라이트의 정신체가 군나르의 우주 낙원에 들어서기도 전에 우주 낙원이 이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반응은 없다. 내부로 들어섰다.
군나르를 찾는 건 쉬웠다. 그 또한 정신체이기 때문이다.
인신의 특출난 초월의 힘은 신성력. 그것을 추적하면 그만이었다.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고, 신의 신성력을 숨기는 것 또한 재능의 영역이다.
인신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뛰어나지는 않는다. 세월을 축적하며 하나하나 달성해 나가야 한다.
그들은 지구라는 행성이 지닌 압도적인 신앙심으로 태어난 양산된 인신에 불과했다.
[장인의 신, 라이트가 아닌가!]
군나르가 그를 크게 반겼다.
이번 원정이 끝나고 가장 친해져야 할 사람이 장인의 신이었다. 그는 지구에서도 큰 부호였으며, 이제 인신까지 되었다. 그리고 그 권능마저도 대단히 가치가 높았다.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후방에서 안전하게 지냈을 그대가 이곳에 투입되다니, 만신전의 실수다!]
군나르가 그의 편을 들어줬다. 이에 라이트 또한 그를 칭찬했다.
[쟁쟁한 전투 권능을 지닌 인신들이 즐비한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무엇인가? 말만 해보게!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신 아니겠는가! 언제 우리 함께 만신전에 들어설지도 모르지! 하하하하!]
군나르가 크게 웃어 보였다. 그는 진정으로 라이트가 자신과 함께하기를 원했다.
군나르의 노골적인 호감에 라이트가 웃으며 자신의 본론을 꺼냈다.
[카실레안 말입니다. 너무한 것 아닙니까?]
[음? 전술의 신을 말하는 건가?]
[예. 그는 우주 낙원의 막대한 동력원을 이용해서 지구와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 불만을 들은 군나르가 크게 분노했다. 싸움만 잘하지 그 외의 것은 젬병이라 ‘여포’라고 놀림당하는 것이 군나르였다. 킹포갓포X포라고 리듬감 있게 지랄하는 놈도 있었다. 당연히 그 대가를 치렀다.
군나르는 제법 공을 세운 중견 인신이고, 라이트는 이번에 새로 인신이 된 신입 인신이다. 거기에 둘은 으뜸으로 삼는 힘도 달랐다. 군나르가 무력이라면 라이트는 돈이었다.
서로 어깨동무하기에 좋았다.
라이트는 사업 파트너를 찾듯이 목록을 검색했고, 군나르에 닿았다.
무력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놈이 군나르다. 라이트의 객장 노릇을 하기에 좋았으며 라이트는 군나르를 존중해 줬다. 자신에게 없는 것이 있기에 이번 원정에서 쓸 만했다.
[카실레안은 안 돼! 그래서는 안 돼!]
[맞는 말씀입니다. 하하하하!]
둘은 카실레안을 떡 주무르듯이 뭉개고, 욕했다. 신나게 떠드는 두 인신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카실레안이 라이트를 최전선에 세우리라는 것을…….
‘말 안 듣는 놈은 그냥 아웃.’
쓰리 아웃제를 사용하는 건 야구다. 현실에서는 한 번 잘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자신의 실수를 덮어주는 건 친한 친구 아니면 가족뿐이다. 나머지는 언제든지 잘라낼 수 있다.
큰 그림을 못 그리는 만큼 카실레안은 무자비하게 재빠른 결정을 하게 됐다. 상대가 큰 그림을 그리기 전에 벼락처럼 잘라내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전술의 신 앞에서 제대로 된 전략을 성공한 자가 드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라이트의 운명은 결정됐다. 최선두에 설 것이고, 그와 결탁한 군나르는 싫더라도 지구의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며 그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이며 그들이 내뱉는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긴 다른 인신들만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카실레안에게 그런 인신들은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
앞에 서는 걸 거부한다면 죽이면 된다.
정신체끼리의 싸움은 모든 이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실력 빨’을 받는다. 그걸 아는 건 현재 카실레안뿐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암략하는 이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카실레안은 서서히 이 지긋지긋한 항해 속에서 꿈틀거리는 악의를 느꼈다.
차원 항해를 시작하면 이런 일은 언제나 일어난다. 초월자에 도달했는데도 상관이 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뿐.’
카실레안에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싸우고, 또 싸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건 카실레안에게 맞지 않는다.
누구는 10시간 공부할 수 있지만, 누구는 1시간만 공부해도 머리가 터져버린다. 그만큼 개성이 다르고, 할 수 있는 게 다르다.
‘난 내가 하는 것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카실레안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토록 만신전을 위해서 헌신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끝없는 전투뿐이다. 물론 그건 재밌다.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게임을 못 한다.’
가상현실게임은 꿈도 못 꾸고 저열하게 다운그레이드 된 패키지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밖에 하지 못한다. 막대한 데이터 송신이 필요한 것이 게임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불만이었다.
때가 되면 언제든지 큰불이 날 수 있는 불만이었지만 고작 게임. 고작 취미다. 만신전의 그 어떤 인신도 카실레안의 불만스러운 말을 농담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 * *
“전쟁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떠들어댔다.
모두가 그 말에 귀를 움찔했다.
그들은 서로 아는 인맥을 이용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정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지 않았다.
적과 싸울 수 없는 겁쟁이들에게 정보를 줄 정도로 지배자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싸울 수 있는 힘을 지니고, 굳건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이들에게만 완벽한 정보가 들어갔다. 그리고 전투에 대단한 포텐셜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외적인 부분은 부족한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마신의 간사함이 만들어낸 전쟁이 시작됐다.”
“군대는 없다. 마신의 군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
“괴이한 것. 변형된 것. 우리 테라의 것으로 짜깁기된 괴물이 우리의 상대다.”
“평범한 인간은 범접할 수 없고, 그저 잡아먹힐 뿐이다.”
온갖 말속에 다른 이들의 음모론이 스며들어서 괴이한 것으로 변해갔다. 이내 신제국은 패배할 것이라는 뜬소문까지 퍼져나갔다.
음모론은 누구나 떠들기 좋았다.
누가 망했다더라. 어느 곳이 지금 큰일 났다더라.
그런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적었다. 오히려 열광했다. 세파리아스의 불파겐을 목도한 이들은 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서 있는 것이 세파리아스다.
반란을 획책했던 수괴조차도 그 발아래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산군을 자처한다.
가족이 죽고, 그 복수를 하며 큰 피해를 안겨주었던 퇴역 기사가 하루아침에 병사를 훈련하는 훈련장의 책임자가 된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악마와도 같은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적조차도 그 발아래에 두게 된다. 무엇보다 기득권이나 호족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신제국의 황제였다.
적도 많았지만, 아군도 많았다. 그리고 백성 위에 군림한다.
그 덕에 그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기대하는 실력 없는 쭉정이들이 많았다.
“이제 신제국은 망했어.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가야 해.”
“야, 너 상위 인간이라고 알아? 신제국에서는 소수밖에 없지만 상위국에서는 실력이 있으면 강제로라도 상위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던데. 마력을 품은 상위 인간이 되면 일할 필요가 없다고.”
“그건 어디서 들은 소리야? 어떻게 사람이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어?”
온갖 헛소문 속에서도 신제국의 판단은 재빨랐다. 어차피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는 놈들은 모두 사회에 그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반푼이뿐이다.
그런 놈들을 신경 쓰는 건 의미가 없었다. 요란할 뿐, 내실이 없었다. 진짜로 기득권층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는 무른 것들이었다.
깡! 깡!
대장장이들이 망치질을 시작했다.
‘테라의 마수’에 대한 정보는 드낙을 통해서 모든 세력에 전해졌고, 모두 자신들이 가진 것을 빗대어 그에 대한 대처를 하기 시작했다.
신제국은 아티팩트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대장장이들은 매일 같이 불꽃 앞에 섰다. 그들은 마갑을 만들고 배출하기를 반복했다.
또 어떤 곳에서는 흉갑이 만들어졌다. 마법사를 위해서 양피지를 잔뜩 짜깁기한 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미 가공된 보석이 수북하게 쌓여있었고, 스태프에 이를 장착하는 작업을 수많은 여자가 작업소 안에서 분업을 하며 생산하기도 했다.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돈이 된다.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게릴라를 하는 테라의 마수는 훌륭한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