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81화 (1,080/1,239)

1081화

* * *

대악마 열 마리가 모였다.

그 대악마의 서열을 따진다면 아카타베루가 으뜸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모일 수 있었다. 강력한 한 마리의 대악마가 가지는 제어력 때문이다.

게다가 아카타베루는 다른 아홉 마리의 대악마를 합친 것보다 강하지는 않았다.

그 교묘한 균형이 십 대 악마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아카타베루의 입장에서도 중립신이 죽은 별을 먹는 건 무서워서다.

그리고 차원 항해가 시작됐다. 긴 시간이다. 수십 년에 달하는 시간이다. 그 지루함이 악마들의 본능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였다.

그들의 흉포성. 별을 파괴하는 본능.

그건 자연스럽게 아카타베루가 지닌 거대한 덩치와 거대한 세계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졌다.

‘중립신의 세계라는 떡밥으로는 지킬 수가 없었던 균형이었나.’

아카타베루로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이번 싸움을 통해서 아스모데와 협력한다면, 분명 테라를 잡아먹고, 대악마의 너머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카타베루가 생각한 차선이다.

그나 아스모데나 원하는 것은 똑같았다.

‘더 강해지는 것.’

하루에도 끝없이 초월자들이 탄생하고 죽는다. 그 잔혹한 초월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끝없이 강해지고, 도망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차원계의 중심에서 벗어나 차원 외곽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삼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였다.

‘인간의 신이 대신의 격을 얻었다.’

그 부흥기를 이끌었던 비밀을 얻는다면, 실마리라도 가지게 된다면 아카타베루는 초월자인 악마들을 규합하는 또 다른 악마의 격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 욕심. 그게 아카타베루를 도망치게 하지 않고 악마 내전을 이끌게 됐다.

수많은 악마가 있지만, 이곳에 모인 악마들은 그래도 한 수가 있는 악마들이었다. 그들 스스로 자신을 대악마라고 칭할 정도는 됐다.

‘악마의 싸움.’

아카타베루는 오랜만에 그 싸움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조금은 기뻐했다.

대악마가 된 이후로 아카타베루는 악마와 싸운 적이 드물었다.

수많은 차원이 존재했고, 그 개수만큼 수많은 별이 존재했다. 별을 파괴하고 그 업을 받아먹으며 사는 악마들에게 있어서 다른 악마들은 사실 만나기 힘든 동족이다. 대악마쯤 되니까 여유가 생겨서 이렇게 모일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아.”

아스모데는 아카타베루를 잡아먹고 싶다는 다른 대악마들의 계획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이를 더 비틀었다.

“오히려 좋아.”

아카타베루도 지겹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았다.

중립신이 죽고 부활한 차원으로 향하는 대악마 열 마리. 그들끼리의 내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가장 먼저 계획했지만, 선수는 아카타베루가 쳤다. 아스모데와 다른 대악마들에게 내전에 참가하겠다는 전언도 없이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서로 들러붙어 있던 열 개의 악마 세계.

그중에서도 아카타베루와 접촉해 있던 악마 세계 중에서 적이라 할 수 있는 루살리의 악마 세계를 그대로 침공했다.

별을 파괴하고, 자신만의 권속 악마로 이루어진 악마 세계를 이끄는 것이 대악마였다. 세계를 이끌며 세계를 파괴하는 침공자가 대악마다.

악마 세계의 유무는 악마와 대악마를 나누는 기준이기도 했다.

쯔저저적!

아카타베루가 루살리의 악마 세계를 직접 손으로 찢어발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이어서 아카타베루의 악마 세계가 비집고 들어왔다.

“끼에에엑!”

소아귀(小兒鬼)가 쏟아져 내려왔다. 소나기보다 더 강렬하게 떨어져 내렸다. 그 살덩이와 피의 소나기는 끝을 모를 정도였다.

“들켰다!”

루살리(Rusali)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또한 대악마라 불리는 초월자였다.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 몸 주위로 바짝 메마른 시체가 쏟아져 나왔다. 몸집이 불려지고, 목각인형처럼 바짝 메마른 신체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노오오옴! 아카타베루! 감히 날 죽이려고 했겠다!”

“먼저 작당해서 날 잡아먹으려 했던 놈이! 건방지다!”

쿠웅.

수백m에 다다른 대악마 두 마리가 서로 부딪쳤다. 몸이 부딪치고 서로를 쥐어뜯고, 물어뜯었다.

피가 쏟아져 나오며 서로 뒤엉키며 힘 대결이 시작됐다. 막대한 힘이 소모되기 시작했다. 악마의 육체는 그 자체가 ‘초월의 힘’이다. 그들은 육체 변이가 자유롭고, 얼마든지 덩치를 키우는 것도 가능하다.

악마의 싸움은 평범한 싸움과는 궤를 달리한다. 말 그대로 체급과 체급의 싸움이다. 어떤 놈의 피가 더 진한지, 더 강한지를 겨루는 승부다.

“넌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곱게 죽고, 업이 되어라! 별처럼 부서져라!”

“크하하하하!! 그저 힘만 센 놈이, 까불지 마라! 나 또한 대악마다!”

아카타베루의 장담에 루살리가 크게 웃었다. 그의 미라 같은 몸에 그의 권속 악마들이 쏟아져 들어와서 흡수되었다. 동시에 피부에서 각질 같은 것이 일어나며 독으로 변해 갔고, 가루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아카타베루의 신체를 빠르게 붕괴시키고, 그의 혈액이 썩어 문드러져 기화되었다. 검은 한 줄기의 수증기로 변해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독기(毒氣).

삽시간에 형세가 변한다. 아카타베루는 특징 없는 대악마다. 아기를 먹느니 마느니 하는 병신 괴짜 놈이었다.

반면 루살리는 다르다. 끝도 없는 독기와 바짝 메마른 미라와 같은 육신은 대악마 중에서도 독특한 형질을 지니고 있었다. 악마가 지닌 육신에 기대지 않고 초월체로서 지닌 격을 쌓아 신과 비슷한 권능을 악마답게 재해석하여 만들었다.

그 속에서 아카타베루는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육신을 쏟아부어도 상대는 그 절반에 달하는 육신만 쏟아부으면 그만이다. 거기에 놈은 권속 악마를 자신의 회복 수단을 사용하고 있었다.

까다롭다.

까다로운 적을 상대로는 전술도 전략도 바꿔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만 한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빤스런을 언제든지 칠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아니다. 악마는 갈대가 아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별을 파괴하는 초월 종족이다.

고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간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악마는 악마다.

“부순다!”

아카타베루가 돌진했다. 그 뒤에 있는 그의 악마 세계에 존재하는 권속 악마들이 따라 나왔다.

서로 마구 뒤엉킨다. 붉은 용의 브레스가 토해지고, 수많은 마법이 격돌한다.

그 흉악한 공간에 아카타베루의 거체가 들어섰다. 무지막지한 육체는 단단하고, 마법으로부터도 견딜 수 있었지만 수많은 마법의 충돌 앞에서는 맥없이 터져나갔다.

피가 튀고, 근육이 갈라지고, 뼈가 드러난다. 그러나 일순간에 재생하며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부순다.

쿠구구구……!

밀랍 같은 시체로 이루어진 루살리의 악마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황소에 밀려 나가는 사람처럼 형편없이 루살리는 아카타베루에게 휘둘렸다.

그러나 그마저도 예사롭지 않았다. 패색이 보이지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대악마 루살리의 독은 그만큼 효율적이다. 밀려도 밀린 분만큼 아카타베루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서로 녹고. 서로 상처 주고. 끝없는 대악마들의 전투가 시작됐다.

그 내전은 1년, 2년 따위로는 결코 끝낼 수 없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집어먹은 업(業)의 크기만큼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 속에서 결판이 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대악마들 열 마리가 사라지고, 더 강한 대악마가 탄생한다면 중립신의 테라를 더 확실하고 안전하게 잡아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그렇기에 여기에 있는 대악마들은 서로를 죽이기로 했다.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라 불렸던 인신의 유산은 누가 생각해도 먹음직스러운 것이었다.

“그아아아!”

아카타베루의 입이 쩍 벌려졌다. 그 이빨이 루살리를 물었고, 루살리의 손톱이 아카타베루의 얼굴을 쥐어뜯었다.

폭포수보다 거대한 핏물이 서로 쏟아져 내려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키아악!”

악마들의 괴성이 세상을 향해 울부짖었다.

모든 것이 한데 뒤엉켰다. 소멸을 거듭했다.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악(惡)이 발현된다. 거대한 업(業)의 소용돌이는 전 차원으로 작은 물결이 되어서 퍼져나갔다.

* * *

전술의 신. 전쟁의 신.

카실레안은 조용히 대검을 닦았다. 그와 수많은 격전을 치른 대검이다.

‘병신들.’

영생을 얻고, 불멸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을 때 카실레안은 분명 만신전의 인신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할 결심을 했다.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아니라 영원불멸할 수 있는 신이 되었다.

그 은혜는 대단히 깊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까지 거는 건 잘못된 일이었다. 교통사고의 은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대가로 요구한다면? 그놈이. 바로 욕부터 나갈 것이다.

지금 카실레안이 느끼고 있는 것도 이와 같았다. 하지만 만신전과 척을 질 결단은 내리지 못했다.

처음 결정됐던 것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후발 보급대가 증원되고 있었다.

하루에 한 개. 이틀에 세 개. 일주일, 한 달이 지날수록 충원되는 우주 낙원의 개수는 늘어난다. 곧 1,500대에 달하는 우주 낙원이 카실레안의 지휘권으로 들어온다.

어중이떠중이 인신이 딸려왔기에 초월체 전력은 농밀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신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발키리 시스템을 통해서 반신급의 존재는 물론이고, 인조 생명체를 통해서 머릿수를 채울 수 있다.’

끝없는 전쟁 유지력을 지닌 것이 우주 낙원이다. 전투를 위한 항모가 아니라, 생산을 위한 전진 생산기지였다.

거기에 이미 200억에 달하는 지구의 인류가 만들어내는 업(業)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곳에서 공장에서 물건을 양산하듯 인신들을 탄생시킬 수 있다.

갓 태어난 인신들은 만신전의 화살받이가 되어 우주 낙원을 배정받고 카실레안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보급을 위해서 끝없는 충원을 위해서다.

그 힘을 마주하고도 카실레안이 마신전의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있었다.

‘중립신의 테라 차원은 만신전이 있는 지구로부터 한참 먼 곳에 있다.’

딴 마음이 절로 툭툭 튀어나올 정도는 되었다.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카실레안 님.]

정신체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에 카실레안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회의가 아니라면 인신들과의 교류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이번에 겨우 인신이 된 것이라 몰랐습니다.]

“모르기는. 격에 올라 육신을 버리고 정신체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성을 없앤 것이다. 수천 장에 달하는 책도 한 번 읽으면 줄줄줄 읊을 수 있지.”

카실레안이 다리를 꼬았다.

그는 다른 인신과는 다르게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의 정신체를 전부 다 담지 못해서 그 육신의 뒤로 그림자처럼 정신체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으며, 인간의 육신보다 훨씬 큰 부피를 지니고 있었다.

삑.

미국 드라마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못 들었나? 회의가 아닐 때 외에 인신들의 교류는 없다.”

결국 인신이 되돌아갔다.

‘룰 하나 지키지 못한 저딴 놈들로 전쟁이라니.’

만약 그가 향하는 곳에 신격을 획득한 이가 있다면 우주 낙원은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이다.

전술의 신에게 그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다. 최고의 효율로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하는 것이 카실레안이 원하는 일이었다.

그게 무과금으로 현질러를 때려잡는 노머니의 방식이다.

하지만 초월체는 격이 다르다. 그렇기에 카실레안은 고민했다. 모든 것을 뛰어넘을 확실한 전술을. 그것을 위한 정보를 끝없이 만신전에 요구하고 있었다.

[카실레안 님. 만신전으로부터 온 정보입니다.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인신의 존재감이 사라지자 카실레안이 운용하고 있는 우주 낙원이 말했다.

카실레안이 고개를 까딱이자 홀로그램이 떴다. 그는 손을 빠르게 움직였고, 수많은 창이 떴다.

‘마신.’

카실레안의 눈이 빛났다.

신을 결정하는 시험이 존재했다.

수많은 이들이 그곳에 휩쓸렸고, 단 하나의 적성 변수 인자가 신격을 획득했다. 신이 탄생한 그곳은 신들의 땅이 되었고 초월체조차도 눈독을 들일 정도로 거대한 업을 쏟아내는 무한의 호수가 됐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인신도 아니고, 초월적인 육신을 운용하는 악마도 아니며 그 어떤 초월의 힘도 아닌 마수에 대한 지배력을 힘으로 두는 마신의 탄생이 만들어낸 업의 땅이 바로 신들의 땅이다.

마신은 그 땅을 금방 포기했고, 무주공산이 된 땅을 지배하기 위한 수많은 것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중립신조차도 아주 짧게 그곳을 제패한 이력이 있다.

그 전투에 휩쓸린 카실레안 또한 수많은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자연히 마신에 대해서도 들은 것이 많았다.

‘마신이 테라를 휘젓고 있다.’

그 정도는 귀하다. 하지만 카실레안은 그 흔적을 통해서 그 뒤에 있는 것도 바라볼 수 있었다.

달의 이면. 그림자.

‘마신이 눈독을 들일 정도라면 악마들도 눈독을 들였겠지.’

“지금 당장 계산을 시작해라. 만약 악마가 테라를 침공한다면 언제 도착하는 거지?”

[계산 시작합니다.]

답은 당장 나오지 않았다.

악마들은 독립적 개체다. 그들의 행방을 조사하는 만신전의 데이터베이스에 요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 하나로 모든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카실레안이 빵긋 웃었다.

‘쉽게 쉽게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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