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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80화 (1,079/1,239)

1080화

8. 주변

마신(魔神)이 다스리는 차원, 마계(魔界).

그것은 수많은 차원이 합쳐진 세상이었다. 마신이 얼마나 강대한지, 얼마나 많은 차원을 정복하고 그 차원을 잡아먹었는지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드넓었다.

마계는 상위 차원과 하위 차원으로 나뉜다. 상위 차원으로 갈수록 마신과 가까이 있었고 번영도도 높다. 수많은 마수들이 살아가며 특히 지능적인 마수일수록 상위 차원에 속한다.

하위 차원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카르보른 행성에서는 때아닌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땅이 파헤쳐지고, 운석을 막을 수 있는 깊은 굴에 거주지가 마련되었으며 마신이 만든 법을 어긴 마수들이 그 거주지에 들어섰다.

그들은 광부들이다.

카르보른 행성은 광산 행성이었다. 테라가 있는 차원을 노리고 있지만, 겉으로는 광산업의 재개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수많은 범죄자가 이곳에서 노동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가장 중앙에서는 칠흑의 후작과 열두 마리의 미노타우르스가 마주하고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로노베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긴급회의였다.

이곳에서의 회의는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모든 회의가 긴급회의인 셈이다.

처음에는 안면을 트고, 계획의 전체적인 구성안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만났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권력을 자랑하고 싶어도 이 자리에 있는 미노타우르스나 로노베나 모두 한가락 하는 인간들이다. 자연히 필요할 때만 마주하게 됐다.

“업(業)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렇게 회의를 소집하게 되었다.”

“그대의 그림자 마수가 들켰다고?”

“믿을 수 없다. 사실이라면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미노타우르스들이 들썩거렸다.

수많은 마수 종족 사이에서 오직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로노베다. 마수의 종이 곧 그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후작의 작위도 받을 정도로 마신 또한 그를 대우해 주고 있었다.

그림자를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복잡한 일도 손쉽게 해내는 것이 로노베 후작이었다. 그의 그림자 편린에서 태어난 그림자 마수는 압도적인 환경 적응률을 보인다. 마수지만 마수가 아니다.

들키지 않고, 적을 흔들 수 있는 훌륭한 견제 도구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충분히 성장하면 자폭하듯이 사멸하여 로노베 후작이 아니라 마신에게로 쌓은 업(業)이 향한다.

미노타우르스 하나가 입을 열었다.

“테라의 마수 프로젝트는 오늘부로 파기(破棄)다. 더는 노출해 봤자 우리의 카드만 노출된다.”

“다르게 변형해서 보내면 된다. 그림자 편린(片鱗)은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지 않은가.”

미노타우르스들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만큼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로노베 후작의 위명을 더럽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맡긴 일을 훌륭히 해내 왔기 때문이다.

“파기하는 건 이르다. 그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림자 편린은 나의 힘! 얼마든지 그 기준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마수 공세’를 말하는 것이군.”

마수를 통해서 오벨리스크를 세워서 마신께 업(業)을 보내는 일이다. 물론 마수 군단을 보내서 ‘검은 돔’을 세워 업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외의 방법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마신과 마계, 나아가 마수들을 더욱 번영케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방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로노베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 편린을 통해서 오벨리스크를 세우고, 그곳에서 마수를 쏟아내서 전쟁을 벌인다. 그 계획을 대거 수정해야 한다. 이곳과 테라는 아주 머니까.”

오벨리스크는 일방통행이다. 그렇기에 그림자 편린을 통해서 마수를 불러들인다면, 또 하나의 오벨리스크를 건설하여 업을 보내야 했다.

불편한 일이었지만 엄청난 자원이 소모되는 차원 다리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차원 항해와는 다르게 아주 적은 자원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게 마신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였다.

오벨리스크는 ‘침략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강의 기물이나 다름없다. 드낙은 제대로 된 해석을 하지 못해서 가볍게 여겼을 뿐이다.

“그림자 편린이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죽는다면, 적들의 감지력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노타우르스 박동택의 이마가 깊어졌다. 마신으로부터 이름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미노타우르스였지만, 이번 경우엔 쉽게 해답을 낼 수 없었다.

“결국에는 성과를 내야 한다. 중립신이 죽고, 부활했었던 차원이다. 거리가 멀다고는 하나, 발은 놓아야 한다. 그게 마신님의 의중이다.”

피로 쌓더라도 마수가 지닌 독특한 초월의 힘을 테라 차원에 누적시켜 놓아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마신이 그곳에서 활동하기가 편하다.

마나도.

마력도.

주력도.

그 무엇과도 성질이 크게 다른 것이 마수가 지닌 초월의 힘이다. 그들을 지배력을 통해서 꽉 잡고 있는 마신이 지닌 초월의 힘 또한 독특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드낙은 주변을 면밀히 살피기보다는 기감을 통해서 순찰을 했다.

상식적으로 육체를 지닌 악마가 테라 행성을 모두 둘러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정신체라고 해도 힘든 일이었다.

현대조차도 지구 행성 전체를 개발하지 못했다. 오지는 언제나 존재하고, 인적이 드문 곳은 언제나 존재한다.

“조금 더 은밀하게 준비를 해야겠군.”

미노타우르스들은 이번 정보 갱신을 통해서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었다.

“은밀한 마수라면, 아가수라(Agasura)겠지.”

그 말을 들은 로노베 후작이 물었다.

“벌써 미궁의 환경을 마련했나? 보통은 이렇게 단기간 내에 하지 못하는데.”

“우린 마신께 이름 석 자를 받은 미노타우르스다. 평범함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걸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군? 흐흐흐.”

열두 마리의 미노타우르스가 웃었다.

로노베 후작은 그들의 웃음 속에 깃든 분노를 느꼈다. 뜨거운 불꽃이 아니라 차가운 얼음 호수와 같이 냉정했다.

“내 사과하도록 하지. 사실 미노타우르스와 함께 작전을 해본 적이 드물다.”

로노베 후작은 걸어 다니는 군단이다. 굳이 미노타우르스와 합작을 할 이유가 없었다.

이에 미노타우르스들도 이해하고 지나갔다.

“그럼 결정이 났군. 더욱 은밀하게 행동하고, 업을 모아서 마신에게 주기보다는 오벨리스크를 작성한다.”

본격적인 마수 게릴라의 시작이었다. 아직 마신은 테라의 차원에서 재미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으며 혹시 모를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꺼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훌륭했다.

미노타우르스 열두 마리가 만든 열두 개의 미궁 환경이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마수가 곧 쏟아져 나올 것이다.

“테라는 불타오르리라.”

미국인들이 베트남전에 끌려가서 베트콩들에게 끝도 없이 괴롭힘을 당한 것처럼, 마수들의 게릴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테라의 성장은 무뎌질 것이고, 인과에 따라 그들은 적정 수준으로 몰락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이를 몰락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신이 신경을 쓴다는 것부터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신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미노타우르스들에게나 ‘몰락’일 뿐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키가 작은 수준에 머물 터였다.

* * *

아기의 피를 빨아먹고, 아기의 살을 씹어먹고, 아기의 뼈를 간식으로 틈틈이 챙겨 먹는 대악마(大惡魔) 아카타베루가 그의 악마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하급 권속 악마인 소아귀(小兒鬼)를 집어서 입에 씹어 삼켰다.

그 이빨 곳곳에 아기와 같은 작은 권속 악마의 찌꺼기가 남아있었다.

보면 볼수록 죽이고 싶어지고, 혐오감이 드는 것이 아카타베루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토벌하지 못했다.

중립신이 죽은 별을 잡아먹어 또 한 번의 성공을 하려는 것이 아카타베루였다. 그와 함께 수많은 악마가 이에 참가했고, 그들의 개수만큼 악마 세계가 함께 들러붙어서 테라로 향하고 있었다.

차원 항해는 언제나 지겹다. 그런 지겨운 상황에 놓인 악마들이 할 짓은 뻔했다.

초월자라고 해서 모두 똑똑하고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거짓의 고발자. 유황의 대악마.

아스모데(Asmode)는 아카타베루를 찾았다.

“무슨 일이냐.”

“심심해서.”

미친년이었다. 하지만 그런 용무로 올 리가 없었다.

누런색의 미녀에 뼈로 이루어진 날개. 그 날개에서는 유황이 흩뿌려진다. 검은 불꽃이 날개의 끝마다 장식처럼 달려있었으며, 매캐한 유황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유황 가스는 유해하고, 그녀가 전투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군세는 몰락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해라.”

“넌 안 심심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녀의 말에 아카타베루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에 아스모데가 속삭였다. 진실로 악마의 속삭임이다.

“열 마리의 악마는 너무 많다고 생각 안 해? 중립신의 시체는 결국 하나인데. 그걸 10등분 했다고 해봐. 정말 개 같은 일이잖아?”

“크크크.”

그 말에 아카타베루가 비릿하게 웃었다. 아스모데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네가 가장 먼저 죽을 거야. 이미 다른 악마 놈들도 움직이기 시작했거든. 생각해 봐, 네가 가진 악마 세계의 소아귀의 숫자만 해도 500억이야. 양분으로 쓰기 좋지.”

다른 악마들은 소아귀 같은 대단히 효율적인 토양을 만들지 못했다. 아카타베루의 근원에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는 소아귀는 대단히 훌륭한 악마의 기본 자원이었다. 아카타베루는 이를 통해서 막대한 악마 권속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 아스모데만 해도 고작 열다섯 마리에 불과한 상위 권속 악마를 거느리고 있었다. 반면 아카타베루는 100마리의 데몬 나이트와 100마리의 붉은 마룡을 거느리고 있었다.

척 봐도 권속 악마의 머릿수 차이가 심하다.

“…그리고 아카타베루. 넌 대인 전투력이 약하지.”

“뭐라고? 감히……!”

아카타베루가 분노했지만 거세게 반박하지는 못했다.

초월자가 되어도 무재(武才)는 중요하다. 악마였기에 대단하지만, 악마들 사이에서는 평이한 수준이다. 악마들에게 둘러싸여 다굴을 당하면 거기서 끝이다.

“내가 세 마리를 더 끌어들일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다섯이지. 반반 싸움이야. 살아남고 몸을 추스른 뒤에 나머지 세 마리를 조지고, 나랑 반반하자고.”

거대한 덩치를 지닌 아카타베루와는 다르게 아스모데는 체구가 작고, 소수정예였다. 서로 다른 점이 있기에 둘이서 싸우면 누가 이길지 모른다. 그렇기에 서로 협력하기 좋았다.

전혀 다른 분야의 회사는 경쟁조차 하지 않는다. 이와 비슷했다.

“그 세 마리의 악마는 누구누구냐?”

“아지 다하카(Azi Dahaka).”

그는 악마이면서도 악마의 몸 안에 악마 세계를 집어넣은 놈이다. 몸속에 권속 악마가 득실거리는 놈이라 죽이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무엇이 악마 세계의 구성품인지 무엇이 아지 다하카의 진짜 육신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독과 관련된 권속 악마를 두르고, 마법을 사용하는 드레이크를 상위 권속 악마로 두고 있는 놈이다.

어찌 되었든 악마 내전을 하고 난 다음에 잡아먹을 놈이다.

“우투쿠(Utuku).”

사자와 질병을 사랑하는 악마였다. 그리 대단치 않았지만, 포섭하는 의미가 있다.

“마지막은 티티빌루스(Titivilus).”

문자를 잡아먹고, 문명을 파괴하는 무형의 악마였다. ‘보이지 않는 서기관(Invisible Secretary)’이라고 불렸던 적이 있었다. 전투력은 전무하지만 악마 내전을 빌미로 가장 먼저 죽여야 할 놈이며 아주 간사했다.

“가지치기나 다름없군.”

악마들은 하나같이 어중이떠중이다. 그러니 아카타베루의 일에 다리를 걸쳤다. 보통은 스스로 나아가서 별을 파괴하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방심은 할 수 없었다. 악마는 태어날 때부터 초월체다.

그들과 싸운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를 짊어지는 일이었지만 아카타베루나 아스모데나 모두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만연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차원 항해는 앞으로도 40년은 계속된다. 악마 내전을 통해서 그 지루함도 덜고, 힘도 강하게 만들고, 더 많은 시체를 만들어서 이를 자원으로 사용해 악마를 더 많이 키울 수 있었다.

쿠구구구……!

아카타베루가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 전해라. 서로 죽이고 죽이자고.”

“기대가 되네~”

아스모데가 뼈로만 이루어진 날개를 펼쳤다. 유황 불꽃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소아귀들이 고통스러워하며 버둥거렸다.

이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쾌감이 줄줄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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