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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78화 (1,077/1,239)

1078화

듣기만 해도 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정확히 어떤 것인가?”

그 흥미에 상위국의 국왕들이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흡혈귀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다. 반마급의 존재와 상위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지닌 흡혈귀를 이용하여 상위국의 방위를 강화시키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흡혈귀들이 싫어할 선물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군인들은 시민을 지키는 이들이다. 생산적이지 않지. 그런 이들의 피를 싼값에 가져가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이니, 불만도 적고 최대한 뽑아먹을 수 있지.”

“거기에 체력도 좋다.”

평범한 사람보다 더 여러 번 피를 뽑아도 괜찮다.

그것이 바로 군인 헌혈세 정책이었다.

“근데 그것이 어째서 세금과 연관이 되는 거지?”

“군인에게 직접 돈을 주지는 않으니까. 한 번 국가에 귀속되고, 그다음에 수당 개념으로 매달 지급될 것이다.”

아스톨포가 눈을 빛냈다. 피는 군인들의 피를 뽑고, 돈은 서로 적당히 분배하겠다는 뜻이다.

건방지지만 상위국의 화폐 유동성을 생각하면 저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라 탓할 수는 없었다. 탓한다면 화폐 개혁 없이 미친 광신도처럼 경제를 끌어 올리려는 드낙의 잘못이다.

종이 화폐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세상에서 경제 성장을 으뜸으로 삼았다. 거기서 나오는 폐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지하 연합에서는 많은 고블린들을 희생시키며 구리 만티코어의 구리를 통해서 매일 같이 동화를 찍고 있을 정도였다.

천천히 수표를 도입시켜서 큰 거래는 어음으로 일단 해결하고, 마법이 깃든 종이 화폐를 유통시키고 있었지만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를 일이다.

그전에 최대한 모든 분야의 기술을 끌어 올려야 했다.

모든 기술은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하나가 멈추면 다른 것도 이내 멈추게 된다. 이 때문에 압도적인 기술력의 발현은 아직 테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당장 필요한 것만 마법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있을 뿐이었다.

효율이 낮은 발전기로는 많은 곳을 밝히지 못하는 법이다.

“좋다.”

샤를로트 선조가 이를 받아들였다. 아스톨포 왕자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선조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손해가 아니다. 되레 혈액 대비 더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흡혈귀의 숫자를 늘리고, 생존을 위해서 피가 필요한 것도 있었지만, 흡혈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피는 필요했다.

강력한 흡혈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월’도 필요하지만 40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그전에 강력한 흡혈귀를 만들려면 압도적인 피의 양이 필요했다.

‘내 살아생전 이렇게 많은 피를 얻는 건 처음이다.’

뱀파이어가 지배한 세계와는 확실하게 달랐다. 인간이 지배한 세상에서 양지로 활동하는 건 뱀파이어에게 충격적일 정도로 이득이 컸다.

‘가축과 노예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히려 우리 일족에게 좋을 줄이야.’

마주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그걸 안 이상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인간들이 최대한 많이 번성하는 것이 샤를로트 가문에게 좋았고, 그 아래에 속한 흡혈귀 방계, 옵시디안 가문에게도 좋았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만남이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샤를로트가 아스톨포를 팔로 휘감았다. 바로 마검의 형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 슬슬 직계도 봐야 하지 않겠느냐? 이번 일이 끝나면, 군인 헌혈세가 도입될 테니까. 미리 생각은 해두고 있어라.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고, 특히 지하 연합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샤를로트 가문은 ‘혈액’보다는 ‘어둠’ 계통이 조금 더 발달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 직계의 탄생은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하의 어둠에 닿아있는 지하 연합의 도움이 필요했다.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지하에 대한 권리를 지하 연합이 가져갔으니, 드낙 님에게 부탁을 드려야 한다.’

어떻게든 조율을 해달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으로 거래하는 것보다 드낙을 통해서 하는 것이 훨씬 합당할 거라 여겼다.

“나중의 일입니다.”

“지금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하 연합 놈들은 결코 만만한 놈들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드낙에게서 얻은 지하의 권리를 남에게 줄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지. 최대한 많은 카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하 연합이 원하는 것이라……. 혈주술(Blood Witchcraft)로 만든 아티팩트라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둠의 힘을 원하겠지만, 혈주술로도 해결할 수 있겠지.”

그 말을 끝으로 샤를로트 시조는 검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아스톨포 왕자는 그 검을 가볍게 잡아서 조심스럽게 혁대에 걸었다.

아스톨포는 상위국 수도에 마련된 옵시디안 가문의 대저택으로 향했다. 말이 대저택이지 사실상 작은 성이나 다름없었다. 모두 마법의 힘으로 층수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집들에 비해서 현격히 높았고, 지금도 증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법 큰돈을 쏟아부어서 선진 건축학을 가장 최신식으로 적용받는 곳이 옵시디안 가문의 대저택이었다.

밤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창문으로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문인들의 가문이며, 흡혈귀 또한 문인 출신이 많았다. 불멸의 삶에 대한 기이할 정도의 열의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끝없는 지식에 관한 탐구 때문에 흡혈귀에 대한 무서운 전설은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문인은 문제를 잘 일으키지 않는다. 호수와 같았고, 불같은 성격의 학자는 애초에 들이지 않는다.

햇빛이 들어오면 물러가고, 햇빛이 사라지면 다시 자연스럽게 들이차는 어둠 같은 성정을 지닌 이들이 중요했다. 혹은 적어도 호수처럼 잔잔한 성정이 좋았다.

흡혈귀는 ‘고인 물’과 같았다.

아스톨포 왕자가 핏물이 되어서 아래로 흘러 들어갔다. 대저택의 지하에서는 이제 막 흡혈귀가 된 이들이 열심히 전투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캉캉!

롱소드를 휘두르는 이들이 많았다. 어디에서나 쉽게 휘두를 수 있고, 멋도 나는 것이 롱소드다. 대검 같은 중병기는 들고 다니기 불편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무기는 아니었다. 전쟁에서나 볼 법하다.

“흐으읍! 흐으으읍!”

온몸을 위아래로 흔들며 혈주술(Blood Witchcraft)을 연마하는 이들도 있었다.

핏물이 된 아스톨포의 핏덩이에서 눈알이 튀어나와서 이를 지켜보더니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대저택의 위층으로 향했다.

대문이 자연스럽게 열리고 사용인들이 고개를 숙이며 그를 맞이했다.

“지금 바로 달의 소집령을 내리겠다. 모든 가문원들을 모아라. 시간은 내일 동이 트기 전까지다.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소모하라.”

“예.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집사가 다급히 움직였다. 혼자만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한 명의 사용인을 제외하고 모두 움직였다. 수많은 사업을 하기 때문에 더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싸울지 안 싸울지는 모른다. 하지만 신제국처럼 모른 채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을 처리한다면 큰 공을 세울 것이다. 초월자조차도 못 잡은 놈들 아닌가?

아스톨포 왕자의 마음속에 탐욕이 피어올랐다. 그냥 도와주기만 해도 이득이고, 성과까지 내면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온다. 이런 기회를 잡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가문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 * *

‘이상하다.’

드낙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놈’을 추적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닿지 못했지만 드낙은 확실하게 닿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의문은 점점 커져갔다.

이토록 추적했지만, 놈이 어떤 놈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추적이 가능하다는 건 적의 발자취를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낙 정도면 발자국으로도 상대의 신장, 체중,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도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매번 발자국이 다르다.’

발자국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항상 마력이 감지됐다. 마수들의 탁한 마력은 아니었다. 그냥 테라에 있는 어느 평범한 대기에서 추출하든 똑같이 나오는 그런 마력이다. 그리고 그건 ‘괴이한 일’이다.

사람의 체내에 있는 마력은 조금씩 다르다.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나와 비슷한 마력이 산재하여 있다는 건 그만큼 대기 중의 마나와 놈의 마력이 닮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놈을 쫓는 건 가히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드낙은 그런 차이점을 깨달았을 정도로 명확하게 놈을 추적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단서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아직 놈을 잡지 못했다.

드낙은 놈에게 닿지 못했다. 그건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다. 방향을 끝도 없이 변경하는 놈이었다.

그렇기에 파동 이동술은 사용할 수 없었다. 파동 이동술의 본질은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밖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추적술 같은 세밀한 활동은 하지 못한다.

그림자 이동으로 바짝 쫓으면서도 턱에 걸린 자동차처럼 멈칫멈칫 가려야 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놈은 내가 쫓아온다는 걸 알고 있다.’

실로 모순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하하.”

드낙이 웃었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놈과 자신은 서로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싸우고 있었다.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다.’

추적은 드낙의 분야다. 그리고 추적당하는 놈이 자신을 알아차렸던 적은 없었다. 이미 지나갔는데 어떻게 드낙을 알아차리겠는가.

하지만 이놈은 드낙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끝도 없이 모습을 변형시키며 마법을 사용하여 멀리 이동한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직선으로 이동하지도 않는다. 또 아주 독하게 도시와 성, 인간이 있는 곳으로도 가지 않고 오지로 이동한다.

테라의 행성은 넓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많았다. 놈은 드낙이 다른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어떨 때는 마치 그렇게 하라는 식으로 마을을 지나치기도 하지.’

적당한 크기의 마을이다. 대피령이 내려와 있지만 마법사와 기사, 소수의 병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거기에 시간을 할애한다면 놈을 놓칠 것이 틀림없다.

샤샥!

그림자가 된 드낙은 답답함마저 들었다.

‘느려서 답답한 게 아니다.’

주변의 흔적을 세밀하게 보기 위해서는 멈춰야 했다. 그게 답답했다. 그림자 이동술 또한 충분히 빠르다. 게다가 사용하면 할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그림자의 입자.’

그림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탓이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것이 느껴졌다.

그림자 또한 밀도를 지니고 있었고, 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진다. 속력을 높이는 것 또한 가능했다.

하지만 그 밖의 정보를 취득해야 했기에 멈춰서 주변을 확인해야 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답답했다.

드낙의 재능이 뛰어나서 ‘놈’을 추적할 수 있었지만, 그 효율성은 낮았다.

‘신격을 얻었다면 정신체를 사용해서 주변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난 악마다. 권능을 하나 만든다면 이 문제를 타개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드낙은 자신의 앞에 체스판이 놓인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누군가가 자꾸 업(業)의 소모를 강요하는 듯했다. 신좌와 악마의 좌에 동시에 앉게는 하지 않겠다는 술수로 여겨졌다.

‘중립신처럼.’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끝없이 드낙이 능력을 선택해서 업(業)을 소모하기를 노린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다.

추적할 수 있다. 꼬리를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인내심이 없었다면 금방 권능을 만들어서 대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뜨낙짓을 하는 것보다는 드낙짓을 하는 게 낫다.

‘인내심을 가져야 할 때다.’

드낙이 추적을 이어나갔다.

프로와 프로의 싸움이다. 누가 잘하냐의 싸움은 아마추어들의 세계에서나 통한다.

일류의 세계에서는 모든 이들이 잘 알고 있다. 지금은 기다릴 때라는 것을. 그리고 기회가 오면 반드시 움켜쥘 수 있는 실력이 있다.

어떤 홍수가 쏟아져도 이를 받아낼 그릇을 준비한 것이 프로들이다. 그렇기에 프로의 세계에서는 누가 잘하느냐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모두 잘하기 때문이다.

대신 프로의 세계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변수로 작용한다.

드낙은 ‘놈’이 실수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류 티를 벗은 일류의 면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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