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6화
요즘 시대로 치면 지적장애인인 사내가 급히 창고에서 벗어나 사라졌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오늘 번 돈을 가져다주며 크게 자랑을 하고 싶었다. 아마 그가 가장 좋아하는 꿀을 사줄지도 몰랐다.
그만큼 두둑하게 돈을 챙겨주는 것이 ‘쉐도우 위스퍼’였다.
신제국은 특히나 조심해야 했기에 이런 수단을 쓰고 있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머저리들을 회유하여 그들의 생활을 돕고, 그 육신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마차처럼 타고 다니는 것이다.
‘신제국의 정보 단체가 보통이 아니다.’
‘캐슬 에로우(Castle Arrow)’.
백설 산맥에서 쫓기듯이 신제국으로 내려온 순찰자들에게서 지원자를 받아서 건설한 정보 단체였다.
인간 외의 종족에게 대단히 적대적인 정보 조직이었고, 신제국의 사상과도 딱 떨어지는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인적자원이 가지는 가치가 워낙 높아서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순찰자들의 로브에 마법사들의 마법이 깃들어서 한층 더 강화된 전투 로브를 사용하는 자들이었으며, 길잡이 노릇을 하는 가벼운 차림새의 순찰자는 캐슬 에로우에 없었다.
모두 전투 로브와 수많은 아티팩트로 무장한 이들이다.
다양한 독과 함정을 사용하는 순찰자는 ‘도구 사용자’라고 칭해도 좋을 만큼 손이 재빠르다. 그런 이들에게 아티팩트까지 보급했으니 그 위험도는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었다.
대놓고 방해는 안 해도 뿔 쥐들도 조심해야 했다.
녹색 도끼의 타투에 따라서는 신체 능력이 3배에서 10배 이상도 나는 것이 인간과 오크였다.
그들과의 전쟁터에서 가장 선봉에 선 순찰자들이며, 드낙이 초월자가 되고 나서라도 광활한 백설 산맥에서 뛰어놀며 끝없이 인간의 산군 노릇을 한 자들이었다.
그런 놈들과 자주 마주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뿔 쥐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보가 되는 탓이다.
그렇기에 신제국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쉐도우 위스퍼들은 매우 조용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대단히 은밀하기도 했다.
“찍찍. 이제 어찌할 거냐? 복―수를 해야겠지? 응?”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정보를 보내고,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신제국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 신제국 또한 다종족 연합 소속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찍찍!”
살아있는 우리들의 신께서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이 실망해서는 안 된다.
그분을 위해서라도 죽을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일이었다.
뿔 쥐들은 그의 마음을 헤아려서 스스로 움직이는 완벽한 자손이 되어야 한다.
아비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실천한다면 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뿔 쥐들의 욕망이다. 지금도 그들의 몸과 정신으로 드낙의 카르마가 일부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뿔 쥐들의 종족값을 중급 악마 권속 수준으로 끌어올리고도 아직도 들어오고 있었다.
종국에 가서는 모든 뿔 쥐들도 반마급으로 성장할 것이다. 먼 미래였지만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드낙의 카르마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신제국이 너무 건방지지 않아? 찍찍!”
“그럼? 킁킁, 뭔가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치즈 냄새를 맡듯이 뿔 쥐가 흥미로워했다.
“전에 세금으로 논란이 있었으니, 세금 혜택을 받는 이에 대해서 소문을 퍼뜨리면 어때? 재미날 것 같은데?”
“한 번 그렇게 흔들면 재밌을 것 같은데, 누가 되지 않을까? 놈들에 대한 정보가 없잖아.”
지금 신제국을 흔드는 놈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광산을 크게 털어먹고,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놈이다. 필시, 평범한 놈은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신제국에 대한 복수를 하는 건 껄끄러운 일이었다.
“찍찍.”
결국 쥐새끼 소리를 내며 복수심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은 드낙을 위해서 뭐라도 하고 싶어 한다. 자신들의 기분에 따라서 일을 그르칠 정도는 아니었다.
종족값이 발전한 현재 뿔 쥐들의 현명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은 아래의 지하로 정보를 흘려보냈다. 그 정보를 통해서 지하 세계는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고블린들이다.
“전쟁은 아니겠지? 응? 응? 응? 응? 응?”
지하 세계에서 안전하게 배를 두들기며 노동하며 살아가는 고블린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광산에서 일하던 이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신제국에서 발생한 큰 사건이었다. 게다가 아직 그 흉수를 찾지 못했다.
말 그대로 의문의 떼죽음이다.
“인간이 그렇게 죽으면 고블린도 그렇게 죽는단 소리 아닌가아아아아악!”
“끼에에에에엑!”
고블린들이 껑충 뛰며 발악했다. 지하 연합에 소속되며 고블린들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죽을지도 모른다니……. 너무나도 불합리했다.
“찍찍. 신제국에 있는 위협이 어찌 고블린에게 갈까?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난리를 칠 때가 아니다. 최대한 많은 식량을 모아야 한다! 고블린들이 관리하는 식량, 오늘부터 뿔 쥐 감독원들이 차출되어 전시체제로 돌릴 것이다!”
“끼엑?”
양 볼에 두툼하게 살이 오르다 못하여 축 늘어진 고블린 부족장이 깜짝 놀랐다.
“매, 매일매일 고기는 나오겠지? 곤충 가루라도…….”
육고기는 물론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지하 연합은 요리 대회 이후에 요리학에 대단히 공을 들이고 있었다.
드낙을 위하여, 뿔 쥐들의 위엄을 위해서 빡빡이가 된 뿔 쥐 요리사에 대한 동상과 그와 관련된 역사 교육 또한 있었다.
“어림없다! 찍찍!”
고블린이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신제국이 코피를 흘렸다. 그것도 누가 때렸는지 모를 정도로 은밀한 공격을 받아서 말이다.
피해는 미미하지만, 흉수를 모르기에 더욱 두려운 일이었다.
“식량을 옮겨라! 꽁꽁 싸매라!”
“금주령이다, 금주령!”
식량을 많이 소모하는 술 제작은 반드시 없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인구가 전쟁에 동원될지 모르기에 이를 생각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콸콸콸!
끓는 구리를 토해내는 만티코어들의 구리 공장 또한 더욱 철저하게 움직였다. 원래 현장 일하는 사람에게 건네주던 성의 표시도 사라졌다.
“너무한 것 아니요! 땀 뻘뻘 흘리는디.”
“그래도 우야겠노.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는디. 우짜노?”
“알겠심더. 그간 받은 게 있으니, 그냥 참아보겠심더.”
“고맙데이.”
고블린 인부들을 다독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함께 해 처먹은 것이 있었다. 서로 은퇴하기 전까지는 함께 구리 만티코어 공장에서 동고동락할 것이니, 쉬이 해결됐다.
“신제국 알제? 거기서도 해결을 못 했다 하더라. 병사로 나서서 죽는 것보단 낫제?”
“알겠심더.”
탁탁.
고블린 공장장이 고블린 잡부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 믿고 간다. 끝까지 가야지. 내 은퇴하고 나면, 이 자리. 니 거다, 인마.”
공장장은 그 말을 다른 잡부에게도 해대며 구리 만티코어 공장의 허리띠를 더욱 졸라맸다.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장부를 보면 산출량이 나와 있는데, 그때 고블린 공장장은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 이 자리를 유지할지, 더 큰 곳에 갈지 정해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블린 잡부와 보는 시야가 또 달랐다.
지하 연합이 혹시 모를 어둠 속의 침략을 대비하며 군사를 일으킬 준비에 들어갔다. 동시에 뿔 쥐들 중에는 신제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자들도 있었다.
“누가 봐도 신제국이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배척한 것 아닌가? 이대로 넘어갈 것인가?”
“그럴 리가. 다른 뿔 쥐들은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다르다. 찍찍.”
“우리가 바로 초월자의 진짜 첫 번째 자손이다! 그분께서 배척을 당하셨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뿔 쥐들은 하나같이 살집이 포동포동 쪄있었다. 그 살집 위에 비단같이 부드러운 털이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누구 집 뿔 쥐인 지. 잘 먹고 다니는 듯했다.
지하 연합이 지하에서 살아가며 막대한 토목공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경제는 그 어떤 세력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상에 살아가는 이들과는 다르게 하나하나 길을 뚫고, 흙을 파야 하는 것이 지하 연합이 살아가는 지하라는 공간이었다.
무한한 토목공사를 계속해야만 하는 곳이니 소비 주도적 경제를 가장 알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제국 놈들, 드낙 님께 똑바로 하지 않으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 찍찍.”
“신제국의 황제가 의문의 흉수를 쫓다가 죽었다는 괴소문을 퍼뜨린다면 신제국이 어떻게 될까? 찍찍!”
드낙이 신제국으로부터 정보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보복을 세웠다.
드낙이 좋아하지 않을 게 뻔했지만, 신제국에 대한 경고를 해야 한다고 여기는 극렬주의자가 존재했다.
테라의 성장 총량을 위해서 분쟁을 하면 안 되지만, 그것보다 드낙에 대한 명예를 드높이고, 신제국의 건방진 태도를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는 나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다섯의 뿔 쥐가 눈을 빛냈다. 그들은 오늘을 위해서 자신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을 모아라. 신제국으로 가자.”
구멍이 나고, 금방 들키겠지만 그전에 이미 신제국은 거대한 괴소문에 휩쓸릴 것이다.
“세파리아스 불파겐. 한낱 인간에 불과하고, 이제 겨우 신격을 얻었을 뿐인 운 좋은 놈은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뿔 쥐들은 흩어졌고, 다섯에 불과했던 그들의 숫자는 단번에 수백이 되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이들은 신제국으로 향하여 괴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신제국의 황제께서 죽었다던데? 소식 못 들었어?”
뒷골목에서 퍼져나간 소문은 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처럼 번져나갔다. 성과 마을까지 그 소식이 들려오고, 태풍이 되었다.
“그가 이렇게 죽다니!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 아닌가!”
신제국의 변방에서 도시와 성을 다스리는 이들이 회동을 가졌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다른 이들도 반란을 준비했다.
쉐도우 위스퍼들 또한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었다. 들어온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反)신제국 파에 속한 뿔 쥐들의 활약은 정말 대단해서 신제국의 수도에 이 소식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쉐도우 위스퍼가 신제국에게 이 정보를 전했다.
쉐도우 위스퍼의 정보 전달 속도를 뛰어넘은 소문의 속력은 누군가가 개입했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지하 연합의 의중인가?”
“결코 아닙니다.”
쉐도우 위스퍼가 속삭였다. 그 기분 나쁜 속삭임에 세파리아스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마음에 안 드는 쥐새끼들.’
지금은 이를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수도를 떠날 수 없었다.
중앙 집중적 발전을 이룩했기에 재건한 이곳이 파괴되면 그 복구에 걸리는 시간만큼 차원 다리를 건설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지.’
“어떻게 해결할 셈이냐.”
“정보에는 정보가 아닙니까. 변방의 도시와 성에서 반란이 도모되고 있습니다. 이를 진정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버러지 같은 놈들.”
세파리아스는 그들을 욕했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라, 그 외에는 딱히 더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세파리아스는 살아있는 인간과 별반 차이도 없었다.
그가 권능을 사용하는 일은 드물고, 신성력은 더더욱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혈액 속에 녹여놓거나 신제국의 사제에게 배분한 상태다.
그걸 아는 이들임에도 세파리아스가 죽었다는 말에 현혹되어 권력을 탐하고 있었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무조건 냉철한 사람만 권력자가 되는 게 아니었다.
“반란이 일어난다면 그 책임을 지하 연합이 져야 할 것이다.”
“…제가 어찌 확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대장 쥐에게 전해라.”
함부로 대장 쥐를 논하는 세파리아스의 모습은 실로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쉐도우 위스퍼의 뿔 쥐는 더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자로 변해서 쉐도우 위스퍼가 물러갔다.
대장 쥐가 이 일을 수습해야 할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사람을 불러 말했다.
“캐슬 에로우(Castle Arrow)를 통해서 정보를 바로잡아라.”
“예! 신제국을 위하여! 황제를 위하여!”
대답한 이가 신제국과 세파리아스를 찬양하며 물러갔다. 그의 카리스마에 단단히 홀린 모습이었다.
저벅. 저벅.
세파리아스가 발코니로 향했다. 그곳에 수도의 모습이 절로 드러났다. 차원 낙원의 공세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복구가 되었고, 번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상황이 끝날 때까지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지켜야 한다.’
1억 명이 살아가는 도시였다.
자식을 낳는 것만으로도 돈을 쥐여주고, 아이를 키우는 데 많은 공공 설비를 만들어 전쟁에 소모할 인간을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게 신제국이었다.
그들 제국 신민의 출산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돈이 없으면 더 낳고, 돈이 있어도 아이에게 들어갈 돈이 적으니 마구 낳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모두 전쟁의 화마에 들어가 명예를 낳고 죽게 될 것이다.
세파리아스의 눈이 명예욕으로 활활 타올랐다.
‘몇 명이 죽든 상관없다. 인간을 위해서 끝까지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