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75화 (1,074/1,239)

1075화

순찰자가 마을에 도착했다.

매번 해가 지고 나서야 도착했던 순찰자가 빨리 오자 마을 사람들의 표정에 불운이 깃들었다.

순찰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불안해했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순찰자는 거기에 개의치 않았다.

일분일초가 아쉬웠다.

‘이 외딴 마을에서 신제국의 성과 도시로 어떻게 소식이 가겠는가.’

암담했다.

소식을 전한다고 하여도, 늦을 것이 뻔했다.

그때 한 청년이 거세게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표정에는 다급함이 대단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밖으로 나가려는지 가죽 배낭까지 메고 있는 모습이었다.

순찰자를 기어코 찾아가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순찰자의 목소리가 청년의 귀에 닿았다. 그 또한 뛰었다. 딱딱한 전투 로브는 달리는 와중에도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법사입니다! 마법사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법사? 어째서…….”

“헉헉. 후우. 헉헉!”

청년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 속에서 청년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신제국의 황제께서! 그분께서 대피령을 내림과 동시에 각지로 흩어진 순찰자를 위해서 종군 마법사(從軍 魔法師)를 대단히 많이 지정하여 보냈습니다.”

이 마을만 해도 대피령 때문에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이들만 마을에 남은 상태였다. 사실 제비뽑기로 마을에 남은 이들도 있었다.

‘골렘은 누가 키워?’

골렘은 마을의 금덩어리다. 나라님이 주신 귀한 물건이었다. 어떤 외진 마을은 농업 골렘과 목축 골렘에 대한 신앙까지 퍼지기도 했다.

관절 부위에 기름칠을 해주고, 일주일에 한 번은 씻어줘야 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걸 봐야만 했다. 마을에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제공해 주는 탓이다. 그걸 하루라도 굴리지 않으면 큰 손해였다.

이런 상황이니, 마을에 남을 사람이 필요했다.

청년은 용감하게 이곳에 남았다.

그곳에 마법사와 그를 지키는 호위들이 도착했으니, 놀라서 까무러치듯이 내달린 것이다.

객기를 부린 것이나, 운이 좋았다. 순찰자 또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일찍 내려왔다.

운 좋게 서로 때가 맞아들였다. 태엽처럼 잘 감겨서 맞춰졌으니, 길조다.

“순찰자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마법사는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순찰자를 대우해 줬다. 이에 순찰자 또한 깍듯하게 대했다. 아무리 이 시대에 마법사가 많아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사회적인 위치가 높은 자들이었다.

신제국은 특히나 더욱 그러하다.

신성력을 인체에 꾸준히 노출시켜서 마력의 그릇을 가지게 되어 상위 인간으로 향하는 길을 걷지 않는 것이 신제국의 인간들이다.

억제하지는 않지만, 권장하지도 않아서 마력 자원을 품은 상위 인간을 공장처럼 찍어내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인류애뿐이었다.

끝없는 인간에 대한 찬양이 신제국의 강인함이었다.

“흔적을 찾았습니다. 서둘러 이를 알려야 합니다.”

“…대단하군. 역시 순찰자의 명성이 거짓된 것이 아니었소. 하하하!”

마법사가 크게 좋아했다.

그는 종군 마법사가 되어서 기분이 꿀꿀했었다. 수도권을 떠나서 외진 마을까지 가야 했다. 더럽고, 천박하고, 미개한 지방으로 향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죄를 지어서 가는 곳이 지방이다. 적어도 마법사에게 지방은 그런 이미지였다. 유배 보내는 데 수도권에 보내는 법은 없었다.

파아아앗!

메시지 마법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마법사 혼자서 보낼 수 있는 마력은 아니었다. 기사 마차에 깃든 마력량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 마력의 빛을 바라보며 순찰자는 조용히 기도했다.

‘많은 사람이 죽지 않기를.’

피 물집이 잡힌 자신의 발바닥의 피곤함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는 핏물이 되기를 빌었다.

어떤 신의 이름도 논하지 않았다.

순찰자란 그런 존재였다.

* * *

그가 쏘아 올린 소식은 도시에서 도시로. 성에서 성으로 옮겨졌고, 가장 먼저 세파리아스의 귀로 들려왔다.

“황제 기사단의 출병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매듭지어야 한다. 우리의 땅에서 일어난 일을 다종족 연합의 초월자가 해결하도록 만들지는 않겠다.”

인간을 위하여!

다른 이종족과 한배를 탄 채로 어깨동무하는 야만적인 초월자가 성과를 내서는 안 된다. 그것도 자신의 안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눈 뜨고 구경하면 안 된다.

“황제 기사단……!”

명령을 들은 이들이 경악했다.

세파리아스가 가지고 있는 무위(武威)의 편린(片鱗)을 자신의 힘으로 삼는 것이 황제 기사단이다. 이를 흐름(Stream)이라 통칭했으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세상의 점을 찌르는 극점 찌르기(Zenith Sting)였다.

그 작은 조각에 노출되는 순간, 정신체라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세상을 찌르는 공격이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찌르는 것이다.

황제 기사단은 세파리아스와 똑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가 본 것을 그대로 행하는 장님 검사들이나 다름없었다. 오감으로는 볼 수 없는 영역에 닿은 것이 황제 기사단의 흉수였다.

‘그러나 부족하지.’

그들은 나약한 인간이다. 아무리 세파리아스의 ‘세상을 베는 검’을 비슷하게 쓸 수 있다고 해도 한계가 존재했다. 전신 갑주 속에 숨겨진 그들이 몸은 물렁하다.

“신제국의 군왕도 움직이도록 하라.”

‘신제국의 쌍창(雙槍)’이라 불리는 청기사왕(Blue Knight king)과 적기사왕(Red Knight king). 그들은 신제국의 군왕이기도 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을 대리하여 몇 가지 신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거기에 그들은 지구의 인신들……. 만신전(萬神殿)의 발키리 시스템에서 태어난 강력한 전투 병기이기도 했다.

쌍창을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은 대마법사들이었다. 마력을 극도로 응축하여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단점은 오러 블레이드 외에는 그 어떤 마법도 할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신제국에서 마법에 대해 배우고 있으며 동시에 황제 기사단처럼 ‘세상을 베는 무술’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까지 나서게 된다면 신제국의 가장 강력한 전력이 이동하는 것과 같았다.

“만약 다른 곳에서 똑같은 흔적이 발견된다면 어찌합니까.”

몇몇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송곳과도 같은 찌르기의 형세였다.

지켜야 하는 땅과 시민이 많은 상태에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투를 벌이는 것 같은 형태를 지니는 것은 제국의 선택지가 아니다. 작은 왕국의 선택지였다.

10번의 패배에도 멸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제국이었다. 전쟁의 승패는 하늘의 뜻이기에 한 번에 모두 올인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런 우려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하나가 아닐 수 있다? 확답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지만 적이 하나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테라의 초월자조차도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더 많은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서 움직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신제국의 땅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차원 전쟁을 생각하면 시민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명예가 꺾일 것이다.”

“시민을 지키는데 7할의 역량을 쓰시고, 3할의 역량으로 적을 치소서. 그리고 차원의 다리를 건넜을 때는 7할의 역량으로 적을 멸하시고, 3할의 역량으로 신제국의 시민을 지키십시오.”

“실리를 추구하소서!”

관리들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드낙이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고는 하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 막 나갈 때도 있지.’

이곳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중에 드낙은 최대한 관여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단언할 수는 없었고, 모호하다.

이번에 세파리아스를 위해서 공적을 양보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안개처럼 애매모호한 행보를 만들려는 것이 드낙의 현 목표이기도 했다.

드낙과 뜨낙을 오고 가면서 자신이 가진 변수를 높여 예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로 인해서 잃는 것도 있지만 얻는 것이 더 많았다. 불확실한 곳에 투자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싸우지 않고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상인과 상인의 싸움에서 자원은 소모된다. 결코, 좋은 일이라 할 수 없었다. 모든 행성을 개발하여 행성이 가지는 경제력의 총량이 높아져야 하는데, 이를 까먹기 때문이다.

테라 행성 개발도를 100%로 만들려는 것이 드낙의 행보였다. 자식을 많이 낳은 것 또한 많은 곳에 친 드낙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가족한테 배신당하는 이들이 많다고 해도 가족만큼 믿을 만한 놈이 없는 게 이 세상이었다. 가계 중심의 경영은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든든한 이정표다.

곳곳에서 서서히 차근차근 실력을 쌓고 자기 사람을 만들며 활약하기 시작하는 드낙의 자손들을 생각한 세파리아스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번에도 욕심을 부르겠지.’

혹은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게 지금의 드낙이다.

“…….”

세파리아스의 고민이 길어지자 대전에 있는 관리들이 안절부절못했다.

인류가 낳은 최강의 인간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다. 그의 고민이 길어진다는 건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수를 내다보고 있단 소리였다.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시키려고 해도 부질없었다. 결국 받아들이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나랏일 하는 재미로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표정이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좋다. 그대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 발이 느린 황제 기사단은 시민을 지키도록 하고, 제국의 쌍창을 보내라. 나는 수도를 지키겠다.”

“이를 따르겠나이다―!”

대전이 크게 울렸다. 신제국의 거대한 영토와 그곳에 살아가는 시민의 숫자를 생각하면 관리의 숫자가 많은 게 당연했다. 거기에 대신들의 7할이 덩치가 산만했다. 하나같이 기사 가문의 일족들이다.

문인은 할당제를 통해서 3할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문인이 없다면 제대로 국가가 돌아가지 않는다. 자동차를 이루는 부품 중에 브레이크가 없으면 말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신제국의 쌍창이 움직였다는 소식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시민들에게 정보를 내어줌으로써 신제국이 할 일을 똑바로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동시에 황제 기사단이 흩어졌으며 신제국의 황제는 기사의 명예보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수도에 남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국은 넓습니다. 신제국의 신민들이여! 제국의 적을 찾아가서 죽이는 것보다 우리 시민을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것이 제국의 황제께서 생각한 뜻입니다!]

곳곳에서 선전했다.

야수를 죽이는 것보다 늑대 떼로부터 신민을 보호하는 것이 대중들에게는 더 잘 먹힌다. 전쟁하는 놈보다는 전쟁을 억제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이가 더 멋져 보이기 마련이었다.

누구도 자기 자식을 전쟁 통에 보내기 싫어한다. 아무리 신제국이라고 해도 그렇다. 거기에 이번에는 명분도 없는 전쟁이다.

차원 다리를 건설하여 밖의 세계에서 막대한 돈을 벌겠다는 신제국의 명분은 이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국을 지키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일반인에게는 얻는 것이 적었다. 오히려 손해가 막대하다. 당장 한 달 저금한 것이 전부인데, 일하지도 않고 대피를 해야 하니까.

국가적 손실이고 나발이고, 내가 배가 불러야 하는 게 민초의 삶이다.

세파리아스의 카리스마가 아니었다면, 당장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어떤 소득도 아직까지 약속해 주지 않은 탓이다.

“씨발. 그래도 당장 돈 나가는 것 없이 지원해 주고 있다지만, 돈을 줘야지. 다른 곳은 기본 소득이라도 주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왜 아무것도 없어?”

“아니꼬우면 그쪽으로 가든가. 씹새끼야. 괴물처럼 개조된 인간이 되고 싶어서 환장했구만.”

“뭐?”

제국의 신민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여기서 세파리아스의 카리스마를 볼 수 있었다. 반반만 되어도 진짜 신제국을 떠날 이들은 없었다.

후르르르르르르르릅!

술병을 단번에 비워낸 꼬질꼬질한 남자가 코를 비볐다. 그러고는 냉큼 술집에서 자리를 비웠다. 남자는 곧 작은 창고에 들어섰다.

“찍찍.”

쥐새끼 소리가 들리자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무릎까지 꿇었다. 이에 남자의 그림자가 득실거리며 뿔 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방지구나. 신제국 놈들, 감히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께는 정보를 차단하려고 공작을 벌이다니.”

“실로 그러합니다.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합니다.”

남자가 서둘러 말했다. 그의 앞에 금화가 떨어졌다. 이를 허겁지겁 챙겼다. 지능이 조금 부족해도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효자였다.

그런 이들이 뿔 쥐들의 타깃이기도 했다. 누가 봐도 머저리 놈이었기에 사람들이 방심하기 때문이다.

분노한 뿔 쥐의 퉁퉁한 뱃살이 거세게 흔들거렸다. 야생에서도 겨울에는 살이 푸둥푸둥 찌는데, 문명사회에 들어섰으니 비만 뚱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꿀꺽.

인간 남자가 침을 꼴딱 삼켰다. 까만 털에 뒤덮인 저 뱃살. 저 뱃살을 만지고 싶어서다. 분명 말랑말랑할 것이 틀림없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