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74화 (1,073/1,239)

1074화

* * *

드낙은 어둠을 느꼈다.

‘식물은 죽이지 않고, 벌레만 빼먹을 정도로 편리한 초월의 힘이 적용됐다.’

육체 또한 흙을 오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림자를 다루는 힘 같은…….’

드낙은 섬뜩함이 들었다.

‘혹시, 뿔 쥐들이 날 배신한 것인가? 지나친 억측이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들의 신앙심이 아직도 느껴지고 있었다. 뿔 쥐들은 온전한 초월자라 할 수 있는 악마의 권좌에 앉았기에 신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려면 더 많은 업(業)이 필요했다.

그 과정 속에 있어도 악마의 권자에 올라섰기에 신앙심이 자신으로 향하고 있는 걸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하 연합뿐만 아니라 인간 중에서도 드낙을 믿고, 신앙심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뿔 쥐의 배신이 예정되어 있다면 드낙이 모를 리가 없었다.

‘편안하다.’

마음을 다스리고 드낙은 다시금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뿔 쥐들이 노력해도 찾지 못한 흔적들이다. 드낙이라고 별수가 있을 리는 없었다.

‘무식하게 돌아다녀 봐야겠는데.’

보통 놈이 아니다.

“새로운 몬스터일지도 모르지.”

중립신이 죽었다. 그가 만약 자신의 죽음을 대비해서 테라의 멸망을 원했다면, 몇 가지 안배가 있을 수도 있다.

회의적이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 했을지 의문이다.’

중립신은 승리를 확신했다. 그를 죽인 건 실로 천운이었다. 그러니 중립신이 거기까지 생각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주 넓은 곳까지 수색을 해야 한다.”

“그 말씀은……?”

“신제국은 전쟁을 수행하듯이 많은 돈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나대로 놈을 쫓겠다.”

“예? 어떻게 찾으실 생각이십니까?”

“벌레가 없는 곳. 그곳을 찾으라고 전하라.”

드낙은 금방 움직이지 않고,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잠깐 고민했다. 이에 그를 따라온 이들이 숨죽이며 이를 지켜봤다.

“내가 명령했다고 해서 세파리아스가 그걸 따르고 말고는 그의 자유다. 알아들었느냐. 여기는 그의 나라다. 이를 반드시 전하라.”

“예.”

“상위국에 있는 순찰자들은 모두 신제국으로 향했으니, 벌레가 없는 곳을 찾는 건 쉬울 것이다. 종종 도시나 성, 큰 마을에 내가 들를 것이니 정보 갱신을 부탁한다.”

“예!”

드낙이 떠날 것 같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모습이 절로 보였다.

‘요 녀석들 봐라?’

기분이 상한 드낙이 그들에게 바짝 다가섰다.

“허헉!”

갑작스러운 드낙의 행보에 깜짝 놀란 문인이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꽥 내뱉고 말았다.

“누가 소리를 내었는가?”

“흐읍…….”

문인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대단히 격정적으로 행동하는 터라, 연극이나 개그 프로라고 오인할 정도로 경박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이들의 표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동공이 부르르 흔들렸다.

“누가 이렇게 중요할 때 소리를 내었느냐 말이다.”

드낙은 눈으로 뻔히 그를 보고 있음에도 다시 한소리를 하자 다른 이들은 결국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문인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 날 죽이려는 건가…….’

눈에 공포감이 서렸다. 하지만 드낙은 그를 일으켜 주며 옷까지 털어줬다.

“하하하하. 어지간히도 긴장을 했나 보구나. 내가 아무리 초월자가 되었다 한들, 어찌 사람을 그토록 함부로 다루겠느냐. 너무 겁먹지 마라.”

“예, 예!”

드낙은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세상을 속이고, 파동의 세계로 진입하며 모습을 감췄다. 그가 떠나자 문인이 콧김을 내뿜었다.

“어찌 그럴 수가 있소!”

“아, 아니……. 그것이 아니라…….”

“지금 이럴 때인가! 우리들의 황제! 신제국의 위대한 태양께! 이를 서둘러 알려야 하지 않겠나!”

“가세! 가세!”

“어어, 이 사람들!”

우르르 다시 기사에게 몰려갔다. 다시 한번 메시지 마법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보고를 받은 세파리아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한발 늦었구나.”

가던 길을 멈추었다. 가 봤자 더는 의미가 없는 건 아니나, 드낙이 이미 대부분 해결해 버렸기에 효율이 떨어졌다.

“죽여주십시오!”

그와 동행한 이들이 한 번에 무릎을 꿇으며 고함을 질렀다. 대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전쟁을 위해서 지금까지도 노력하고 있는 국가가 신제국이었다. 다분히 그 웃대가리는 무인들이 많았다. 그들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그 숫자만 물경 3천에 달했기 때문이다.

세파리아스가 이끌고 온 이들의 기사들이다. 드낙에게 선수권을 빼앗겼으니, 이는 신하의 죄였다.

그 누구도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세파리아스가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일어나라. 그대들을 탓하지 않겠다.”

“예!”

죄를 하사받은 기사들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것과 같았다. 바위처럼 듬직하다. 그게 신제국의 무서움이었다. 그들의 적이 될 이들은 저 인간찬양의 기사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보내라. 순찰자들을 움직일 때가 왔다. 벌레가 없는 지역을 찾아내면 바로 보고를 해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군대를 일으켜서 성과 도시를 지켜라! 중, 소 마을에 대피령을 내릴 것이다.”

경제적 피해는 크겠지만, 인적자원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물질적인 자원은 신제국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능히 가져올 수 있지만, 사람은 못 데려온다. 신제국보다 훨씬 좋은 낙원이 많은 탓이다.

이 땅에 사는 이들은 그냥 이 땅에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크게 이주하려고 하지 않는다. 적당히 살 만하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인구를 지키는 일은 신제국의 가장 중요한 기치 중 하나였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천 명의 군대가 궐기하면 하루에 3,000인분을 만들어 먹여야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는 보통 식충이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세파리아스는 군대를 일으켰다.

‘병사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평화란, 군인들의 피로 쌓아 올리는 피 묻은 성배다.’

병사를 일으키는 것이 두려운 위정자라면, 존재할 가치조차도 없었다. 시민은 전쟁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병사들도 그 이전에는 시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인간의 손에 의해서 먹고살 수 있었다.

이제 그 권리를 누린 책임을 행하여, 시민들에게 특권을 줘야 한다.

싸우지 않을 특권. 전쟁 속에서도 안전해질 수 있는 특혜.

그것이 시민들이 오늘을 위해서 끝없이 자신의 세금을 군비에 지출하도록 허락한 이유였다.

팬티 입고 도망치는 해병대보다는, 나와 내 가족이 낸 세금만큼 자신을 지켜주는 병사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란 것이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대피령을 통해서 큰 경제적 손실을 보겠지만, 세파리아스는 이를 감수할 수 있었다.

“인근에서 가장 큰 성으로 향하겠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바로 알 수 있도록 최대한의 마력을 사용하여 광범위한 탐색 마법을 펼친다! 이를 미리 준비하도록 해라!”

세상을 벨 수 있으나, 이동 속도가 느린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신이지만 육신을 지닌 탓도 있었고, 아직 신의 권능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무의 재능이 너무나도 뛰어난 탓에 되레 신의 권능을 잘 다루지 않는 것이 세파리아스의 맹점이기도 했다.

‘이동에 쉬운 신의 권능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드낙이 수많은 능력과 권능으로 덕지덕지 붙여서 쌓아 올린 탑이다. 반면 중립신은 단 하나. 전초극(戰超克)의 권능만 지닌 인신(人神)이었다.

그 인신은 훗날, 대신의 권좌에 오른다.

배신당하기 전까지가 중립신의 최고 전성기였다. 그 어떤 인신도 대신의 좌에 올라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 입장에서는 중립신처럼 하나의 권능만 가진 채로 업(業)의 소모를 최소화하여 격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

‘아니면 아예 권능을 만들지 않든가.’

무식한 짓이라 할 수 있었지만, 나름 해볼 만한 도박이다.

‘소모’하지 않으면 ‘소비’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드낙은 업을 사용할 때마다 격을 뛰어넘는 시간이 늘어나는 걸 알면서도 다양한 권능을 다종족 연합에게 베풀고 있었다.

그건 세파리아스가 보기에 확실히 ‘베풂’이다. 적선이며, 희생이다.

보통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신의 격에 오르면서 확실히 느껴진다. 내가 가진 업(業)의 크기가…….’

업(業)이 쌓이고 또 쌓이고 있었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신(大神)의 격이 분명하다.

문제는 언제까지 업을 쌓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혹은 중립신만 알고 있는 조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권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권능의 순수함일지도 모를 일이지.’

어찌 되었건 중립신이 권능을 하나만 가진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는 신에 오르고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권능 하나 만들지 않고 있었다. 만약 만든다면 이동과 관련된 권능을 생각하고 있었다.

드낙과 차이가 나도 너무 심하게 나고 있었으며, 보통은 정신체로서 살아가는 일반적인 신과 다르게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신체를 지니고 있어서다.

신이 되어도 세파리아스는 신을 죽일 생각을 가질 정도로 초월자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그가 육체를 포기하고, 정신체로 살아갈 리가 만무하다.

“가겠다. 드낙이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한다. 인구 피해가 많이 생긴다면, 차원 침공 대계획은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예!”

신제국이 엉덩이를 뗐다.

수많은 경기병이 내달리고, 중기병 또한 각각의 성과 도시로 흩어져서 주둔했다.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들 또한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동하여 거점을 수호했으며 마법사 또한 예외는 없었다.

물약을 담은 보급 부대가 밤길을 밝혔다.

그 속에서 가장 헌신한 것은 백설 산맥을 오크에게 내어주고, 신제국으로 거처를 옮긴 순찰자들이었다. 그들은 드낙의 말을 믿고 벌레가 없는 곳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어이……. 존 씨. 정말 여기서 더 들어갈 거야?”

종종 현지의 약초꾼들과 함께 가기도 했는데, 겁이 날 정도로 험한 곳까지 서슴없이 향했다.

“이 근처에 트롤이 산다고 하던데…….”

“흔적을 많이 남기는 놈이 트롤입니다. 오히려 늑대보다 쉬운 놈입니다.”

“헉헉. 아무래도 더는 못 따라가겠으니, 이거라도 받게.”

불혹을 넘긴 약초꾼이 저급한 종이를 꺼냈다.

드낙의 소비경제는 깊은 마을까지 닿았지만, 나이가 든 이들은 이를 거부하기 일쑤였다. 물건을 고쳐 쓰고, 바꿔 쓰고 있었다. 결코, 새로 사는 법이 없었다.

쓴 종이도 잉크를 씻어서 새로 쓸 정도로 알뜰하게 살아가는 곳이 산골 마을이다.

그 꼬깃꼬깃한 종이가 순찰자에게로 건네졌다. 그곳에는 이 근처의 지도가 대충 적혀져 있었다. 척도는 엉망이었지만, 어떤 위험이 있는지. 어떤 약초의 군생지가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이런 걸 받아도 됩니까? 대대로 내려오는 돈줄이 아닙니까.”

이에 약초꾼이 손으로 코를 비비며 씩 웃었다.

“순찰자의 명성은 어렸을 때도, 지금도 많이 듣고 있지. 따뜻한 집 대신에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늑대를 사냥하는 이들 아닌가. 언젠가 내 기회가 된다면 그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고 생각했지.”

“…감사합니다. 이번 일에만 쓰고,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그래, 그래. 알아서 하게나.”

약초꾼이 돌아갔다. 순찰자는 벌레가 있는지 없는지를 유심히 살피며 움직였다.

상대는 초월자조차도 뿌리친 괴물이다. 모든 걸 쏟아부어야 했다. 그 공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지만, 순찰자는 용감하게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찾았다.’

드낙도, 세파리아스도 찾지 못한 흔적에 순찰자가 닿았다.

벌레 한 마리 없었고, 생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기울어져 쓰러져 있었다. 깊은 곳에 있는 흙은 파헤쳐진 지 오래되지 않았다. 손으로 만져보지 않아도, 색만 봐도 저 흙이 촉촉하단 걸 알 수 있었다.

순찰자가 조용히, 조심스럽게 땅을 팠다. 제법 깊게 팠음에도 지렁이 하나 보이지 않았고, 수풀 몇 곳을 뒤졌지만, 개미도 없었다. 개미구멍이 있는데도 오가는 개미가 없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이처럼 철저하게 확인 검증을 마친 뒤 순찰자는 서둘러 도망쳤다.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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