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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72화 (1,071/1,239)

1072화

* * *

두두두두두!

팔 여덟 개 달린 야차가 두더지 게임을 하는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신제국 소속의 경기병들의 숫자는 300기에 달했다. 가장 선두에 깃발이 휘날렸다. 깃발병은 세 명이었고, 하나같이 체격이 컸다.

펄럭! 퍼러럭! 펄르러러럭!

깃발은 상상 이상으로 길고 컸다.

힘이 좋아야 깃발을 오래 들 수 있고, 깃발의 무게 또한 상당했다. 깃발의 깃대가 긴 데다가 가장 끝에 펄럭이기 때문에 보통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푸릉!”

선두에 있는 말이 신경질을 부렸다. 깃발을 잡느라 깃발병의 무게 중심이 자주 이동해서였다. 그리 숙련된 깃발수가 아니란 뜻이다.

아무리 덩치가 커도,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요령이 필요했다. 그건 몇 년을 소모해도 얻을 수 없는 노하우이기도 했다. 좋은 기수 훈련소에서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차원 다리를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하는 신제국은 훈련소마다 편차가 심한 편이었다.

“푸르릉!”

“워워!”

업혀있는 놈이 자꾸 발 한쪽을 꿈실꿈실 움직이며 옆구리를 쳐대는 것과 비슷한 불쾌감을 주고 있었다.

말들은 강철로 만들어진 생명체가 아니다.

강철마는 막대한 연금 자원과 마법 자원으로 만들어지며 광물도 많아야 했다. 보통 말보다 당연히 비쌌기 때문에 경기병들이 사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이들은 경갑옷을 입고 있었다. 아티팩트를 여럿 짊어지고 있기는 해도 최대한 빠르게 준비를 마칠 수 있고, 최대한 먼 곳에 배치되어도 괜찮을 수준의 무장만 허락됐다.

그렇기에 범죄자들이 일하는 광산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히히힝! 히힝!”

현장에서 불어오는 피 냄새에 말들이 잔뜩 흥분하며, 가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기수들이 억지로 그곳으로 이끌었다. 물론 그들의 표정 또한 썩 좋지는 않았고, 말을 모는 속도 또한 크게 느려졌다.

“잭, 탐지 마법의 상태는 어때?”

“방해는 없어. 주변에 생물체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블린 이상을 감지해 내는 탐지 마법은 잭이라는 자의 흉갑에 단단히 새겨져 있었고, 이를 가동하면 그의 몸 앞에 지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 지형은 감지해 내지 못하지만, 생명체 탐지에 특화된 탐지 마법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생명체가 없다.”

“기수장님, 순찰자에게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모르지…….”

경기병들의 기수장은 감히 판단하지 못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다만 보고서를 작성하여, 더 윗사람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이들은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들어갔다.

“땅 색깔이…….”

“지독하군.”

대지는 피를 잔뜩 스며들어서 검었다.

붉은 피가 바짝 마르면서 검게 변했는데 흙까지 검은색이 되어버렸다.

‘검은 대지에 올라섰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섬뜩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자신이 살던 세계 같지 않았다.

“저희만으로 들어가도 됩니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기수장님.”

“소득 없이 돌아갈 수는 없다.”

새는 물론이고, 벌레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다.

“피 냄새가 이렇게 나는데 어떻게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수가 있는가!!”

어떤 기수의 외침이 있었지만, 그 말에 대답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주변을 둘러보며 위협이 있나, 흔적이 있나 살폈다.

‘생존자? 그럴 리가.’

그런 단어조차도 생각하지 않았다. 무너진 울타리의 흔적은 있었지만, 시체 한 구 보이지 않았다.

들어서고 나서 5분이 흘러도, 10분을 훑어도 보이지 않았다. 무너진 천막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오직 경기병들이 돌아다니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불쾌할 정도로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평화로움보다는 불쾌한 침묵이었다.

“식량은 남아있고, 무기나 방어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합니다.”

보고를 들으며 기수장은 이를 꼼꼼히 기록했다. 수도에서 가장 먼 곳에서 활동하는 경기병답게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신제국의 경제 성장률은 분명 훌륭하지만, 차원 다리 건설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수틀리면 세파리아스가 등장하기 때문에 전쟁을 걸 놈도 없다.

세파리아스는 외계로 나아가 칼을 휘두를 놈이었다. 오션 오크조차도 건드리지 않는다. 신을 죽이는 데 눈을 뜬 놈들이다. 인간찬양으로 똘똘 뭉친 광신도들이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국가였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들은 서둘러 전략적 후퇴를 감행했다.

이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가 괴소문이 되었다. 민간에게도 정보가 풀렸는데, 혹시나 목격 정보나 관련된 뒤숭숭한 일을 들었다면 제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를 모집하라!”

인근 성에서 군대가 모집되었다.

“너, 종군 마법사가 되어라.”

“제가요?”

“거부권은 없다!”

곧 강제로 종군 마법사(從軍 魔法師)가 지정되고, 기사를 비롯하여 천 명에 달하는 군대가 현장을 다시 한번 방문했다.

출세한 기사는 준 귀족이나 다름없었고, 충분히 많은 권리와 책임을 짊어지고 있었다.

“찍찍. 돈 받은 만큼 일을 해야지.”

뿔 쥐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덩치를 최대한 크게 키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대장 쥐의 습관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뿔 쥐들의 습관이 되었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기 위해서 뿔 쥐들 또한 고용되었다.

이들은 곧장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은 검은 땅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리기도 했다. 또 땅을 파기도 했으며, 굴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 일반적인 흔적에 불과했고 특출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찍찍. 이상하다.”

“큰 발자국은 있는데, 그마저도 빠르게 소실됐다.”

기껏 찾은 것도 흔적이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뿔 쥐들은 불만스러웠고, 행동에 절로 드러났다. 입 주변에 난 길쭉한 털이 꿈실꿈실 위아래로 움직였다.

다른 뿔 쥐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중급 권속 악마에 해당하는 강대한 존재에 올라섰다.

거기에 드낙의 후손이었기에 그림자 또한 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뜨나아아아악!”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한 뿔 쥐가 크게 분노했다.

돈으로 고용되었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건 쉐도우 위스퍼가 창단된 이후로 생긴 뿔 쥐들에 대한 평판이다.

그 어떤 비밀도 알 수 있는 게 뿔 쥐들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그 위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산업화 때문에 인력 부족에 시달려서 정보 단체인 쉐도우 위스퍼에 많은 인력을 쓰지 못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그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이는 큰 평판 손실이다. 각각의 세력은 점점 자신들만의 정보 단체를 만드는 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할지도 모른다.

쿵! 쿵!

머리를 벽에 박기도 했다. 분노가 뇌를 지배했다. 워낙 신체가 우월해져 있어서 벽에 대가리를 처박는다고 피가 나지는 않았다.

“수많은 인간이 죽었다! 그런데 위대한 지하 종족이 그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아아악!!”

고작 다섯 마리에 불과했지만 뿔 쥐들의 광분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토록 노력했는데,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탓했다.

마법을 사용해 봤지만, 마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인근의 괴물이 흉수일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판단만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다면 배설물이라도 발견되어야 했다. 코끼리처럼 그냥 걸어가면서 똥을 푸덩푸덩 싸는 게 괴물이고, 야수였다.

‘그런 게 없는데도 괴물이나 일백 야수의 것이라니…….’

시무룩…….

뿔 쥐들의 입 주변에 있는 긴 털이 축 늘어졌다.

주어진 상황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컸으며, 드낙이 실망을 할까 봐 큰 분노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무엇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실패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곳의 참상을 일으킨 놈은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살아있는 우리들의 신께서 봐야 한다. 그분이라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터.”

2천 명에 달하는 죄수와 500명의 병사. 200명의 간수가 며칠 만에 사라졌다. 그런데도 특별한 흔적이 없었다.

“인간들에게 물어는 보자.”

“찍! 그놈들이 뭘 안다고……. 그래도 물어보는 건 괜찮겠지!”

뿔 쥐들조차도 판단할 수 없는 현장이다. 뿔 쥐들이 소득 없이 군대에 합류했다.

“무엇을 찾았나? 찍찍!”

혹시 몰라서 신제국의 인간들에게 소득이 있는지 물었지만, 그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휴우…….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쳐서 모두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걸 에둘러 말했다.

뿔 쥐들은 돌아갔다. 그들은 드낙에게 이 일을 바로 직통으로 보고한다고 했다.

“자, 잠깐!”

“어디서 그렇게 함부로!”

“이곳은 신제국의 영토다! 엄연히 황제가 지배하는 곳이다!”

뿔 쥐들은 순식간에 그림자로 변하면서 빤스런을 쳤다.

“난 신제국의 시민이 아니다!”

“안녕!”

뿔 쥐들을 잡을 수 있는 인력은 이곳에 없었다.

뿔 쥐는 그림자로 변하여 땅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지휘관인 기사는 그걸 잡을 수 없는데도 뛰어들었다가 꽈당 넘어졌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병사 중 누구도 기사를 보고 웃지 않았다. 항상 병사를 위해서 솔선수범하고, 돈도 제법 풀어서 병사들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최소한 동화라도 두둑하게 내는 기사였다.

의리라도 함께 끝까지 사선에 남을 병사가 이곳에 수두룩했다.

“이럴 수가! 어서 수도에 이를 알려라! 적어도 신황제께서 먼저 아셔야 한다!”

기사가 외쳤다. 그의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곳은 엄연히 신제국의 영토였다. 그런데 황제보다 더 빨리 다종족 연합의 위대한 지배자, 드낙이 먼저 깨닫는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등병이 소대장을 뛰어넘고, 중대장을 뛰어넘고, 대대장한테 정보를 찔러 넣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이

불러올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적어도 기사의 역량을 초과하는 일이 될 것은 틀림없었다.

후다닥!

마법사가 서둘러 마법 마차에 들어갔다. 빛의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메시지 마법이었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똑똑똑.

“가진 모든 보석을 사용해도 된다. 뿔 쥐들의 역량은 상상하기 힘드니…….”

똑똑.

기사의 노크 소리가 울렸지만, 마법사는 답하지 않았다. 전심전력을 모두 메시지 마법에 쏟아붓고 있었다.

* * *

드낙이 금화를 들어 올렸다.

“아아, 이것은 금화라는 것이다.”

“으오오오옷!!”

파동 이동을 통해서 곳곳을 누빌 수 있는 드낙은 민간사찰이라는 이름으로 외딴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세금은 거둬들여지고, 그만큼 또 뿌려지지만 먼 곳에 있는 마을은 여전히 발전하기 힘들었다. 최소한의 토지 자본 유지를 위해서 농업 골렘과 목축 골렘이 지급되었지만, 그렇다 하여 큰 자본이 들어와서 마을을 크게 번영하지는 못했다.

먹고살 만은 했지만, 성공하는 이들은 적었다. 그래도 꾸준히 자산이 증가할 수 있었는데, 모두 골렘 덕분이었다. 국가가 내어주는 골렘 덕분에 마을 주변의 땅은 모조리 개발되어 있었다.

온갖 것들을 키우고, 목축업 또한 열심이다.

일이 없으면 골렘의 힘으로 언덕을 깎고, 나무를 캤다. 임업 또한 중요한 돈벌이 수단이었다. 당연히 때가 되면 묘목을 심을 것이다. 그러나 부족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토지 자본의 한계.’

아무리 밭을 일구어도. 아무리 가축을 키워도. 아무리 나무를 팔아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 아무리 오진 곳이라도 농사짓는 골렘이 하나씩은 있기에 자연히 가격이 낮아졌다. 생산량이 많은 탓이다.

‘중개 상인은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그래도 이렇다.’

드낙으로서는 아쉬울 따름이다.

금화를 보겠다고 난리를 치는 이들만 봐도 그러하다. 괜히 작은 농촌 도시에서 온갖 축제를 벌이는 게 아니다. 어떻게든 사람을 모아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반면 드낙은 그냥 돈을 풀어줬다. 물론 무식하게 풀지는 않았다.

금화 하나를 걸고 카드놀이 축제를 벌여 1등에게만 금화 한 닢을 건넸다. 이를 통해서 한 가정에 행복을 주고, 지역 유지들을 불러 모았다.

“마을 인프라를 위해서 쓰도록 해라.”

“초월자 만세! 다종족 연합 만세!”

지역 유지들은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보고 냉큼 고함을 질렀다. 저 정도라면 마을 단위로 사업 하나 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도시나 성 근처에 자식을 보내서 우월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드낙의 이런 선정은 균형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윗물이 아래로 흐른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한 번 돈을 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선뜻 분배할 리가 없다.

낙수 효과는 인간의 이기심을 모르는 공산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다.

적어도 드낙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국가 산업이 많았고, 국가가 독점하는 사업이 많았다. 드낙이 직접 부의 재분배를 하고 있었으며 국고를 통하여 막대한 유동성을 만들고 있었다.

재화를 과도하게 축적하는 상인이 있다면 명령서를 내려서 사업을 하라고 권유할 정도다. 말이 권유지, 강제나 다름없었다.

‘이게 내가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드낙은 싱글벙글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자신 또한 웃어 보였다. 그에게는 푼돈이었으나, 농촌 입장에서는 큰 목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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