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71화 (1,070/1,239)

1071화

* * *

신제국의 광산은 모두 국가 소유다. 그렇기에 그곳의 구조는 대단히 단순하다.

소요 사태를 막기 위한 울타리가 곳곳에 겹겹이 둘려 있으며, 범죄자들은 그 길을 잘 모른다. 광산의 수입에 따라서 미로의 재질이 달라진다.

울타리 미로, 목책 미로 등등.

다양한 재질의 미로가 존재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건 간수들과 병사들이다.

만약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 일단 도망치는 게 먼저다.

‘흥분한 범죄자들에게 표적이 되면 죽음뿐이다.’

살아남으면 신성력으로 치료하겠지만, 그마저도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울 수는 없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깁스를 한 채로도 운전하겠다고 병신 짓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 이후로 운전대를 잡으면 식은땀이 뻘뻘 난다.

인간은 정신력이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간수 노릇과 병사 노릇을 하려는 인간은 귀중했다. 더 큰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도망쳐서 농성을 준비하는 것이 옳았다. 한 번 둑이 무너지면 다른 곳을 틀어막을 수 없다.

도망치더라도 언제고 다시 잡아들이면 된다.

댕댕댕댕댕!

거친 소리와 함께 너도나도 병영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가지고 있는 무기를 흘리기도 했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헉헉! 제기랄.”

달리던 간수가 진땀을 뺐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울타리 미로는 짜증 났다. 그렇다고 울타리를 부술 수도 없었다. 물을 먹인 단단한 나무라서 도끼질로도 몇 번을 내려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여유도 힘도 없다. 울타리는 몇 겹으로 되어있었고, 시간을 벌기에 충분하도록 단단히 건설되어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돈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 기득권이 돈을 저축 안 하고 유동성을 위해 계속 쏟아내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돈 잔치에 인부조차도 거기에 휩쓸려서 그럴싸한 울타리 장벽을 만들 수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범죄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무기를 꺼내라!”

병영은 지반이 높은 곳에 있었기에 능히 수백을 상대로도 대처할 정도로 수비력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물자를 꺼내고, 인원을 배치하는 순간은 빈틈투성이다.

운 좋게도 범죄자들은 그렇게 뛰어난 전술 지휘관은 아니었다. 그들은 먼저 다른 범죄자들이 있는 갱도로 달려 나갔다.

“너도? 나도? 야! 나도!”

뛰쳐나오면서 마주치는 이들은 빙긋 웃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일하던 범죄자들 또한 바로 합류했다. 광부 질을 하는 것보다는 이때를 틈타서 기회를 쟁취하는 게 먼저다.

혹시 모른다. 성공적으로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병사를 죽이는 건 무섭지만, 배에 올라타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

수틀리면 해병대처럼 빤스런을 치면 된다. 범죄자에게 죽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언제든지 도망친 이들을 다시 잡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불을 피워라! 메시지 마법 제단을 가져와라!”

봉화를 피워서 인근에 알리고, 분해해 놓은 마법 제단을 완성시킬 준비를 했다.

마력을 담은 물건은 담긴 마력이 서서히 사라지기 때문에 항상 켜놓을 수는 없었다. 대신 단단히 봉인하여 쓸 때만 쓴다.

이 봉인 양피지는 한 번 찢으면 다시는 사용할 수 없다.

범죄자들이 무장한 병사들과 경무장한 간수들을 상대로 소요 사태를 내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싸고 저급한 종이가 아니라 오래 유지 가능한 양피지로 봉한 것이다.

거기에 조립까지 해야 하니, 시간이 걸렸다.

“이 새끼야! 봉화 한두 번 피우냐! 이런 병신 같은 새끼가, 쳐 돌았나! 뚜껑을 닫아야지!”

“예? 그럼 연기가 못 나가잖습니까.”

“쓰레기 새끼야. 평범하게 불을 피워서는 아무리 피워도 한계가 있어. 잔뜩 모아놨다가 뚜껑을 열어야 한다! 연기를 모아서 피우는 게 봉화다!”

나무 뚜껑이 봉화의 굴뚝에 놓였다. 연기가 스멀스멀 빠져나왔지만 조금만 빠져나왔다. 흙과 벽돌로 구워진 봉화의 내부에는 연기가 충분히 자리 잡을 정도는 됐다.

시간이 되자 나무 뚜껑을 치웠다.

전과 확연히 다를 정도로 많은 양의 연기가 크게 뿜어져 올려왔다. 멀리 있어도 보일 정도로 자극적이다.

외부에서 공작해 온 것이라면 원시적인 봉화가 메시지 마법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메시지 마법은 정상적으로 기동됐다.

그때까지 범죄자들은 서로 똘똘 뭉치는 데 집중됐고, 그 이후에는 장비를 최대한 갖추는 데에 열중했다.

[…무슨 일인가? 봉인된 마법 제단을 통해서 연락을 취하다니.]

[소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급히 병사를 지원해 주십시오.]

[위치는?]

마법이었기에 어느 광산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를 알려주자 곧 경기병을 보내겠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성에서 보내는 것이기에 며칠은 걸린다. 폭도들을 쓸어 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터다.]

[예, 감사합니다. 저희는 수비를 하며 지원군을 기다리겠습니다.]

[공에 눈이 멀지 않아서 다행이군. 매뉴얼대로 하도록 하라.]

[예.]

메시지 마법이 끊겼다. 전기의 보급은 도시와 성에는 이루어졌지만, 이런 오지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딱히 인프라에 상관없이 사용 가능한 마법이 더욱 유용하고, 자원도 덜 들어갔다.

“야이, 녀석들아!”

“소, 돼지도 일을 열심히 하면 살려는 준다! 이놈들아!”

거짓말이다. 가축의 고기 맛을 본 사람이라면 저 말이 간사한 혓바닥의 헛소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병사들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

그저 군율에 따라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범죄자들은 이를 보고 상대가 겁에 질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실전 하나 겪어보지 않은 게 병사들 아닌가. 간수들은 더하지.”

“지금이 기회라니까! 우린 병사들이 쓰던 무기까지 있잖아!”

“곡괭이도 사람 머리를 내려찍으면 강하다고!”

“어이어이, 너무 그렇게 잔혹한 말을 내뱉지 말라고, 지려버리는 놈들이 있을 수 있어!”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그들은 확실히 자신감이 넘쳐보았다.

자신들이 그렇게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며 짖어대었는데도 상대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우리한테 기세가 있다.’

범죄자 중에서 뒷골목에서 깡패짓을 일삼던 범죄자가 눈을 빛냈다. 패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게 기세다. 한 번 밀리면 거기서 끝이다.

구심점(求心點)이고 자시고, 난전이 이루어지는 패싸움에서는 뭐가 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가끔 아군끼리 싸우기도 한다.

아수라장 속에서 상대 얼굴을 보고 주먹과 단검을 휘두르기보다는 나한테 덤비는 새끼들에게 죄다 칼빵 놓는 게 먼저다.

“중요한 건 기세여.”

그렇기에 깡패 새끼에게 있어서 싸움에서 중요한 건 기세였다. 헌데 저놈들은 기세를 드러내지 않았다.

“패배자 새끼들이지. 여기서 버티다가 사람들 오면 그때 우리를 칠 것이야! 그러기 전에 공격해야지.”

“근데 병사들인데. 우리 피해가 크지 않을까?”

“하긴, 그래도 훈련한 놈들이야.”

“싸우면 누군가는 죽을걸.”

당장 내 목숨이 주요해지자 앞서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과 자신들의 고통을 마주했고, 축 늘어진 불알이 쪼그라들 듯이 웅크렸다.

“겁쟁이 새끼들. 이대로 도망치면 뭐가 바뀌냐? 저놈들이 가진 걸 털고 가야지! 여기가 얼마나 외딴곳인데!”

생존.

미래.

그런 것들을 읊었다. 그건 제법 효과적이었다. 여길 떠나면 당장 먹을 것부터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걸 먹을 수 있다면……!

‘내 신세도 제법 바뀔 것이다.’

탐욕이 득실거리며 일어났다. 결국, 이들은 공격하기로 했다. 밤을 노리기로 했는데, 그게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야습. 뭔가 있어 보이고 좋네.”

“이대로 광산을 나가봤자 굶어 죽기밖에 더하냐? 죽여서 빼앗자!”

범죄자 무리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그들의 감동이 요동쳤다.

“여자도 있을까?”

“없을 리가 없지! 혹, 남자여도 맛만 좋으면 그만 아니냐! 박고 싶어서 미치겠어!”

유기체를 지니고,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자손 번성에 대한 강한 욕구가 존재했다. 그것은 성욕이었다.

무시무시하다.

밤은 금방 찾아왔다. 그리고 범죄자들이 움직이기 전에 그림자 생명체가 먼저 움직였다. 그것은 모습을 드러내고, 형태를 갖추었다. 그림자로 이루어진 몸은 땅에 바짝 달라붙어서 울타리의 한 부분으로 향했다.

타닥……. 탁…….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지만, 불빛의 크기가 단번에 줄어들었다.

쑤욱.

땅에 단단히 박혀 있는 울타리가 쑥 뽑혔다. 이내 바닥에 떨어졌다.

쿵!

소리가 제법 컸다.

가장 먼저 사태를 파악한 건 당연히 정규군이다.

“울타리가 뚫렸다!”

왜. 어째서.

그런 의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싸우고, 죽이는 병사들에게는 결과만이 중요했다. 또 대처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추측보다 병사들의 몸이 무너진 울타리의 부분을 메웠다.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울타리가 뚫리면 몸으로 막으면 그만이다.

지휘관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행동했다. 곧 다른 병사들까지 그곳을 틀어막고, 더 많은 횃불이 곳곳을 밝혔으나, 그 어떤 범죄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지휘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울타리가 무너졌다는 소리를 듣고 적들이 비상한 재주 혹은 운 좋게 무너뜨렸고, 총공세를 퍼부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텅텅 비어있었다.

쑤욱!

그림자가 불룩 튀어나와서 병사 하나를 그대로 낚아채어 지나갔다.

“흐아아아아악!”

순식간에 5m 이상 허공으로 날아간 병사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안전장치 없이 번지점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공포감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섬뜩하다.

촤아악!

후두두둑!

사지가 단숨에 사라졌고 피로 얼룩진 비가 쏟아져 내렸다.

쿵!

둔중한 몸이 땅에 착지했다.

“크헉.”

큰 소리도 내뱉지 못한 채 병사가 그대로 죽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곳곳에서 범죄자들이 욕을 날리며 들이닥쳤다.

“으아아악!”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횃불이 쓰러지고, 어둠이 다시 그곳에 내려앉았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시체가 점점 쌓여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그림자 생명체는 시체를 집어삼켰다.

우걱! 우걱!

광산에서는 의문스러운 죽음으로 끝났지만, 이제는 사람까지 잡아먹기 시작했다. 강철, 옷. 무기와 방패 관계없이 모조리 집어삼켰다.

점점 그림자가 커지고, 정맥에 흐르는 검고 탁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근육이 되고, 살이 되었다.

“크흐.”

이내 숨결마저 토해내며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제 더는 로노베 후작의 그림자라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종류의 마수였다. 로노베 후작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테라’에 만들어진 마수였다.

“크허허허헝!”

괴수를 그대로 드러내 있는 괴물의 형태는 기괴했다. 아래턱은 쩍 갈라져서 코끼리의 상아처럼 양쪽으로 뻗어있었다. 그 아래로 침이 계속 떨어져 내렸다.

두개골은 없었고, 뇌수가 있었지만, 그 뇌수마저도 마치 촉수처럼 거세게 허공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듬성듬성 나 있는 가죽 털은 흉측했다. 생명이었지만, 생명체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 덩치는 꾸준히 커졌다.

휘릭!

그림자가 횃불의 불빛을 낚아채 단번에 꺼트렸다.

회색의 연기가 어둠 속에서 아지랑이 피우며 사그라들었다. 테라의 마수는 빛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동시에 테라의 마수는 공허함을 느꼈다. 로노베 후작의 그림자 조각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무를 마쳤고, 완전히 소실되고 있었다.

그 끔찍한 공허함은 굶주림과 비슷했고, 테라의 마수는 닥치는 대로 그림자를 휘두르며 빛을 없애고,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집어삼켰다.

이내 그 자리에는 시체만 가득했다.

살아있는 이는 오직 테라의 마수뿐이었다. 듬성듬성하게 튀어나와 있던 마수의 길쭉하고 굵은 털은 싹 사라졌다.

그 자리에 강철, 가죽, 검과 창 등 그가 잡아먹은 인간이 입고 있던 것들이 살가죽을 대신하고 있었다. 물론 매끈한 인간의 피부가 자리 잡은 곳도 있었다. 마구잡이로 뒤엉켜진 그러한 피부는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4m에 달하는 중형급 덩치를 지닌 놈에게 마신이 흔적이나 로노베 후작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을 이루고 있는 건 테라의 것뿐이었다.

“커허허헝!”

놈이 밤하늘에 거세게 포효하며 자신이 탄생했음을 말했다.

테라의 자원을 통하여 만들어진 순도 100% 테라산 마수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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