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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65화 (1,064/1,239)

1065화

“다시 한번 뉴에이지 시티에 야욕을 드러낸 이유부터 들어보지.”

“이미 지하 연합이 말씀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당사자에게 한 번 더 듣는 게 그렇게까지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리안 국왕의 물음에 드낙이 짧게 답했다.

그녀와 그는 부부 사이였지만 공은 공, 사는 사였다. 공사 구분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조직이라 할 수 없다.

아무리 드낙의 자식을 낳았다곤 하지만 자식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희소성도 많이 없었다. 거기에 다이앤타는 아빠 껌딱지나 다름없었다.

악마로서 가야 하는 길을 탈선해서 크레시미르가 걸어가려고 했던 길을 걷고 있는 게 다이앤타 공주였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말단 공무원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녀의 세금 관리원 경력은 드낙을 크게 기쁘게 했다.

아기 때문에 벽을 올라타고 사람을 공격하려고 했던 것이 다이앤타였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그 모습은 실로 만족스러웠다.

이렇듯 자식이 이미 어미의 둥지를 떠났는데, 자식 때문에 혹은 그의 아내라서 그녀를 대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모든 이들이 이를 알고 있었다.

그 덕에 세리안은 상위국의 국왕으로서의 영향력만 보유하고 있었다. 드낙의 왕비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다. 트로피 하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녀가 상위국 국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드낙의 입김이 컸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불파겐 가문은 세파리아스를 따라가야 하는 게 옳았다. 둘로 나눈 것은 드낙의 세리안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녀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공적인 자리에서는 드낙이 그은 명확한 선을 지키고 있었다. 차원을 지배하는 초월자에게는 그 어떤 협박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남은 것은 정(情)에 호소하는 것이나 드낙은 그런 것에 휘둘릴 자가 아니었다.

‘결국 본론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 수밖에 없어.’

정면승부뿐이었다. 가장 하기 싫은 일이었다.

부딪치면 손해가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기득권은 기득권과 최대한 영차영차 하며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자위하며 서로 타협하며 살아간다.

거기서 죽어 나가는 건 그 밑의 사람들이다.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충분히 기득권이었다. 드낙으로부터 나라를 받았고, 그곳을 통치하는 국왕이었다. 하지만 그런 국왕들은 지금 드낙과 부딪치게 됐다.

‘어쩔 수 없으니까!’

도렌 국왕은 속으로 끓어오르는 열망을 참았다. 드낙이 만들려는 ‘뉴에이지 시티’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였다.

단순한 식량 계획이 아니었다. 그저 밭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괴이할 정도로 컸다. 거대하게 자리 잡은 산맥을 싹 밀어버리고 평야로 만들고, 도시를 짓고 그 평야를 지배하는 거대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말이 도시지, 그 도시가 관리하는 땅의 넓이는 비정상적이다!’

대단히 넓은 평야는 그 자체로 국력이다. 유럽의 프랑스는 평야 하나로 끝도 없이 유럽의 대장 노릇을 했다.

드낙이 계획한 것이 실현되어가는 걸 보며 도렌 국왕은 몇 번이나 비명을 질렀는지 모른다. 그와 반대로 다른 국왕들은 드낙의 으름장에 도망쳤고, 자신들의 땅을 다스리기 바빴다.

지배자가 된다는 것은 놀고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과거 중세 영주들은 일하다가 수명이 대단히 짧아질 정도였다. 곳곳에서 자신에게 법 판결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서였다. 지역 유지를 믿지 못하는 탓이다.

이를 피하고자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엘리트 계층에게 조금 분할하는데, 그로 인해 중산층이 탄생하기도 했다. 게으른 지주 덕분에 엘리트의 떡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끝없는 발전을 하려면 인재가 많아야 하고, 그 덕에 그들 또한 교육열에 많은 걸 바치고 있었다.

드낙이 이를 원하기도 했고, 예전처럼 끼리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하기에는 다른 세력의 성장세가 무서웠다.

도태되면 그걸로 끝이다.

특히 지하 연합과 경쟁해야 하는 인간이었다. 똑똑한 인간이 그들과의 경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하에 사는 종족과 맞대결을 피할 인간이 아니다. 같은 종족끼리도 나라와 민족을 나누어 경쟁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세리안 불파겐이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도렌 국왕에게서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냐.”

“이곳에 본래 있었던 제국의 대산맥이 사라지고, 뉴에이지 시티가 자리를 잡아 이 세계의 식량 지분을 크게 가져간다는 소리였습니다.”

그녀는 거듭 입을 놀렸다.

“관세를 매기려고 해도 어려움을 많을 것입니다. 애초에 이 도시가 자리 잡는 이유는 식량의 자유화라는 위대한 목표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량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세상은 거세게 변화할 것이다. 모두의 상상을 초월하겠지.”

드낙이 그 말을 받았다. 그가 그리는 세상은 이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였다. 하지만 그런 세계에 손을 턱 얹은 놈이 있다.

‘도렌.’

기분 나쁜가? 아니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라 할 수 있고, 견제로 여겨질 수 있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탐욕을 부리고 있지만 그건 자기 보호를 위한 것이다.

‘계획도시이기에 계산하는 건 쉬웠을 거다.’

알고자 한다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도렌의 권한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그건 드낙이 그렇게 해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이 일하지 않으려면 다른 이들의 권한을 높여야 한다. 회장을 대신하기 위해서 사장이 생겼고, 사장을 대신하기 위해서 부사장이 생겼다. 자연히 그 권한은 평사원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더 큰 책임과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그 권한 또한 많다는 점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잘 알겠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뉴에이지 시티에서의 사업을 하나만 주십시오.”

도렌 국왕의 말에 다른 상위국의 국왕들이 반대했다.

완벽하게 타협하지 않고 온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렌의 간곡함에 여기에 왔지만, 디테일한 건 하나도 정해지지 않았다.

늦으면 늦을수록 드낙은 더 강고해지는 탓이다.

“무슨 소리인가. 도렌 국왕. 상위국의 국왕이 여기에 네 명이나 모였는데, 어찌 사업 하나로 그 무서움을 피하려고 하는가?”

“맞는 말이오. 실로 맞는 말이오.”

“적어도 사업 네 개를 받아야…….”

“우리들의 초월자께서는 네 개는커녕 한 개도 안 주려고 했습니다. 근데 어찌 네 개의 사업을 받으려고 하십니까?”

도렌이 정중히 답변했지만 모두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끝도 없이 승승장구했으니까.’

폭풍과도 같았던 드낙의 질주가 이제야 끝이 났다. 호수의 잔잔한 물결처럼 변했고, 이제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땅과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중립신이라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드낙이 겨우 멈춰 선 것이다.

그 속에서 많은 재미를 봤다. 누구보다도 성공한 것이 여기에 있는 네 명이었다. 세리안과 도렌은 말할 것도 없고, 아크온과 길게이도 마찬가지다.

그 거센 파도에 한 번 타봤기에 또 타고 싶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드낙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자식과 같이 잡담하기를 좋아하고, 와이프와 햇볕을 쬐며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게으름뱅이였다.

물론 그 속에서도 업무를 착실하게 해결하고는 했지만 ‘지배자’에 걸맞은 수준의 격무는 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결정을 그들이 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권력의 분배.

그 맛을 한 번 맛보았기에 더욱 성화인 것이다.

그 작태를 보며 드낙은 아무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다. 그리고 저런 야망이 없으면 그들은 여기까지 달려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월 300만 원에 만족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월 600만 원을 받아도 부족하다 여기는 이들이 있었다. 사람마다 그 욕망이 달랐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 욕심이 끝이 없다. 그 욕심은 장작이며, 활활 타오르는 화덕이다. 보통 인간과는 달랐다.

그 덕에 드낙은 조금 편하게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들이 대신 많은 결 해결해 주고 있었다. 그게 바로 드낙의 처세였다. 모든 걸 혼자 한다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행성 하나를 관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잘’ 관리하는 건 더욱 힘들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많은 것을 나누었고, 권력자들은 실제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 세파리아스 불파겐조차도 드낙의 처세에 들어왔다. 그 정복욕은 밖으로 향할 뿐, 드낙에게 향하지 않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싸울 것이냐? 빨리 정해라. 하나냐, 네 개냐!”

그 외침에는 경박함마저 가지고 있었다. 드낙이 뜨낙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그건 실로 효과적이었다.

특히 요즘 뜸한 모습이라 더욱 경기를 일으켰다.

“하나입니다!”

그 말에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네 개는 무슨…….’

욕심을 부려도 정도가 있다.

도렌 국왕이 미리 그림을 그린 것을 훑어보고도 사업 네 개를 달라고 하는 건 욕심이 배 밖으로 나오다 못해 욕심을 위해서 수천만을 죽이는 일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주체못할 욕망을 지니고 있단 거다.

적어도 이 자리에 그런 놈은 없었다.

이 모든 게 연기였다.

‘옛날 버릇 아직도 못 고친다는 거지.’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갈등을 만들 생각이냐? 그게 너희의 몸값을 올리는 건 맞는 소리지만, 나한테만은 그렇게 하지 마라. 점점 귀찮고, 짜증이 난다. 알겠느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관행이라서…….”

서로 부딪힘으로써 서로에 대한 위협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가늠하는 것이다.

상인들의 부딪힘과 비슷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보면 똑같은 제품이라도 전부 가격이 다르다. 마진을 서로 보며 가격대를 조정하고, 담합하지 않아도 적당히 가격대가 형성된다.

적어도 너무 많이 내리지는 않는다. 저놈도 이 가격대. 이놈도 이 가격대라면 나도 그들과 비슷한 수준에 파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마찰이 필요했다. 조금은 거친 기름칠인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였다. 밀고 당기기는 지긋지긋하고 싫었다.

최대한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다. 현대의 사고방식이 요구되었다.

“서서히 바뀌어야겠지.”

드낙이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이어서 모두 눈알을 굴렸다. 앞으로 거센 파도가 몰아칠 것이고, 거기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위에서 치고 올라오는 유능한 인재들을 확실하게 제어해야 했다.

감당하지 못하고 그들을 도축하려고 한다면 드낙이 응징을 내릴 터였다.

다만 그들이 기득권이라는 건 여전히 큰 메리트였다.

“도렌 국왕. 이들을 어떻게 설득했는가? 적어도 세리안 국왕을 설득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텐데?”

상위국의 국왕이라고는 하나, 드낙의 아내이며 신제국의 황제가 그녀의 아버지였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업이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기름칠 된 태엽처럼 잘 감긴다. 오류 하나 없이 착착 돌아가는 수익 구조였다.

그녀의 포트폴리오를 본다면 너도나도 투자하고 싶을 정도일 것이다. 단순 혈통만 해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1억을 벌고 싶으면 3억이 있으면 된다.

유명한 말이었다. 돈이 돈을 만든다는 말을 이토록 강렬하게 표현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자본은 많을수록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면 돈을 적게 쓴 것이다.

그렇기에 세리안을 설득하는 건 어려웠을 터다. 그녀가 가진 자산이 실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미 벌여놓은 것도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위국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었다. 수틀리면 아빠 찬스를 노리면 된다.

세파리아스는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상위국에 자신의 영향력을 떨칠 수 있어서다.

밖으로 뛰쳐나가 신을 죽이려고 하는 세파리아스에게 세리안은 훌륭한 방어 기제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세리안이었다.

도렌이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제법 공을 들였을 것이다.

“비료 공장이에요.”

그 대답은 도렌이 아니라 세리안이 했다.

“대륙 중심의 야지를 밀어내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짓고 있고 아직도 계속 더 증축하고 있죠. 그것도 들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비료를 생각했고, 제법 유의미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

“흐흠.”

드낙이 제법 흥미로운 소리를 냈다. 도렌이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뭐 뉴에이지 시티를 운영하는 데 이들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자신이 관리해야 할 것을 양도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 대신 일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

당장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드낙이 원하는 바가 실현되지 않는다.

드낙은 뉴에이지 시티를 팍스 아메리카식으로 발전시킬 생각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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