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4화
신나게 생각하고 있던 드낙은 기척을 느꼈다.
‘음?’
‘악마’는 그런 종족이다. 전투를 위해서 존재하는 초월자다. 싫어도 그 감각을 낮추는 건 불가능했다. 억지로 육신을 약화시키더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별을 파괴하며 살아가는 초월 종족이란 건 결국 그런 것이다.
“나와라.”
“뜨나아아악!”
뿔 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등에 수십 개의 뿔이 솟아나 있는 위풍당당한 피 숨결 검은 뿔 쥐였다. 그들은 이미 중급 권속 악마에 속한 종족이다. 신흥 종족답게 끝없이 발전하고 있었다.
“오른쪽 팔에 그건 뭐지?”
“확장 장갑입니다. 무게는 가볍게 하고, 금속의 용량을 늘려 더 많은 마법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아티팩트 기술입니다. 전신 갑주 곳곳에 응용하고 있습니다. 억압한 지구인 과학자로부터…….”
뿔 쥐가 신나게 떠들어대었다.
그들은 드낙이 신나게 떠들어대는 것들을 현실화하려는 ‘연구’도 하고 있었다. 많은 자금이 그곳으로 쏟아부어 지는 이상, 뿔 쥐들은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길도 결국에는 옳은 길이 될 수 있고, 그들이 달리는 걸 멈추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발전하게 된다.
하나의 기술은 다른 기술이 발전하여 접목되기 전까지 정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컴퓨터의 발전이 영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처럼 모든 것은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나가 막히면 다른 것이 그곳까지 오기 전에는 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뿔 쥐들의 마구잡이식 연구는 옳은 길을 가고 있었다.
용병 지구인 과학자와 기술자까지 포섭했으니, 승승장구였다.
그 끝은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드낙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신앙은 진짜다.’
뿔 쥐들은 오직 드낙을 위한 종족이다.
이번에 온 것도 드낙과 관련된 일 때문이었다.
“도렌 국왕이 움직였습니다. 매우 공격적으로 ‘뉴에이지 시티’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아마 도렌 국왕이 움직이면서 다른 이들도 같이 움직일 공산이 큽니다. 한 번 거부했는데도 또 수작질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그런가. 빠르군.”
드낙이 웃었다. 그는 손이 근질근질한 걸 느꼈다.
가장 먼저 도달한 구시대의 인간은 도렌이었다.
그는 알까? 이 뉴에이지 시티가 가지는 진짜 의미를. 그 무서움을.
‘현대인 대부분이 모르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식량 가격의 유지를 위해서 수확하지 않고, 뒤엎어버리고, 종자를 관리하여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개도국에 어마어마한 돈을 가져가는 놈들이 지닌 힘이다.
식량은 보이지 않는 무기이며, 가장 값싼 전략무기이기도 했다. 모두가 업신여기지만, 정작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도렌은 거기에 눈이 닿았는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시민들을 생각하니까.’
시민들은 먹어야 한다. 식량 소비는 곧 도시의 발전도를 보여주는 척도나 다름없었다. 많이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더 큰 도시라 할 수 있다.
먹거리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는 건 그만큼 번영했다는 뜻이다.
결국 식량은 도시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하다. 밭을 경작하지 않아도 돈을 주고 사 먹어야 도시는 유지될 수 있었다.
‘거대한 유동성.’
현재에 존재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그 식량을 전 세계로 퍼다 나르는 시작점이 될 곳이 바로 뉴에이지 시티였다. 운송비까지 생각한다면 일자리만 해도 어마어마하고 쉽게 할 수 있다.
누구도 하기 싫은 귀찮은 일이 물류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아는 상관없지.’
인력은 충분하다. 매일 식량을 나르는 일을 할 인력은 이미 많이 확보해 뒀다. 그러니 혼란은 적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화가 되기 전에 도렌이 움직였다. 도렌이 움직이면 다른 놈들도 움직일 공산이 크다.
국왕 하나가 움직이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하물며 뉴에이지 시티에 대단한 관심을 가졌다니.
‘그건 전과는 방향이 다르다.’
그들은 전에도 목소리를 냈다. 뉴에이지 시티가 지니는 가치 때문이다. 돈 되는 사업이 분명하고, 거기에 발을 걸치면 무조건 이득이다.
관리직에 특히나 관심이 갈 것이다. 하지만 드낙은 이를 일갈했다.
가르친 후에 그들은 도시를 떠나야 할 것이다.
잔혹한 일이지만 명성을 쥔다고 해도 드낙은 강제로라도 그들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 예외는 두겠지만, 기본 방침에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도렌 국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 팔을 뻗고 있었다.
‘기분이 나쁜가? 아니, 오히려 반대다.’
뿌듯하다.
“곧 도렌이 찾아오겠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도록. 그냥 놔둬라.”
“예.”
뿔 쥐가 물러갔다.
드낙은 날카로운 눈빛을 내뿜었다. 도렌에 대한 건 뒤로 미뤄두고 드낙은 테스트에 본격적으로 손을 보기 시작했다.
“시에라 불리는 소녀의 스토리를 퍼뜨릴 준비를 해라.”
“언제 하면 되겠습니까?”
“그녀가 랭크 100위권 내에 들어설 때. 그게 아니라면 퍼뜨리지 말도록.”
“예.”
시에라는 소녀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녀의 스토리는 충분했다. 고아에 동생들도 많다. 그들 모두를 짊어져야 하는 장녀였다.
중요한 건 대중에게 먹힐 만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실력이 있어야 했다. 그게 안 된다면 모든 가정은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암중(暗中) 지도자로 써먹어야지.’
더 중요한 건 시에가 지닌 정치력이다.
어렸을 때부터 촌장의 비자금 운용을 한 것은 놀랍다. 불법이지만 드낙은 이를 용인했다.
어린아이가 세상의 풍파를 정면에서 마주했을 때,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이용한 촌장은 평생 죽을 때까지 땡볕 아래에서 일하다 죽을 것이다.
끝없이 잡아들여도 끝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악인(惡人)이다. 드낙의 처세가 그러했다.
소비 주도적 경제는 악인을 계속 만들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활화산처럼 폭발하듯이 증가하고 있었다. 교류가 많아지고, 분란은 일어난다. 누군가가 잡아채면 다른 이는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범죄자는 결코 박멸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종족 연합은 인건비가 싼 범죄자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서 많은 이익이 생기고 있었다.
악인을 만들고 악인을 처벌하여 선인에게 이를 나눠준다.
그 선순환을 만든 것이 드낙이었다. 시에는 굵은 떡잎이고 그녀는 뉴에이지 시티를 잘 운영할 것처럼 보였다. 드낙에 눈에 들어온 이상 그녀는 승승장구할 것이다.
실력만 받쳐준다면……!
분명 소녀는 암중 지도자로 드낙을 위해서 검은 정치력을 퍼뜨릴 것이다. 이는 뉴에이지 시티의 빛을 더욱 밝히는 어둠이 될 터였다.
‘가만히 랭킹 100위 안에 들도록 방관하는 건 나라고 할 수 없지.’
그가 실로 간사하게 웃었다.
“인내심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겠다.”
그 첫 번째 작업이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 * *
랭크 시스템에 인내심이 중요한 가치로 추가적으로 설정됐다. 다분히 시에를 위한 행동이었지만 누구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말이 굉장히 그럴싸해서다.
“뉴에이지 시티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바로 인내심이다. 가벼운 결정을 내린다면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겠지. 지도자의 덕목은 인내심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전쟁의 시대는 갔다! 지금은 신중하게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 행정력의 시대다! 이를 위해서는 끝없이 엉덩이에 앉아야 할 인내심이 필요하다! 관리직의 시대인 것이다!”
그 덕에 시에의 랭크는 일취월장했다. 그녀의 장점이 곧 랭킹 시스템의 높은 가치나 다름없었다.
드낙에게 있어서 시에의 간사한 면모는 써먹기 좋았다. 다른 이들은 몰라야 할 거무튀튀한 짓을 자주 하는 것이 드낙이다. 필요하다면 해내야 했고, 시에라는 말은 실로 거기에 잘 어울렸다.
‘다른 후보자도 뿔 쥐들이 속속들이 찾아내겠지.’
드낙이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100위권에 들어서며 스타트 스타라 불리는 훈장을 받았을 때, 드낙은 시에를 따로 불렀다.
“초월자를 뵙습니다! 차원의 지배자를 만난 것에 제 일생일대의 영광입니다!”
작은 체구를 지닌 소녀가 목소리를 드높였다.
“랭킹 100위에 턱걸이한 걸 축하한다.”
“가, 감사합니다.”
그녀가 실로 멍청하게 굴었지만 드낙은 오히려 그런 어리석은 모습을 연기하는 시에가 마음에 들었다.
‘하늘 위에 하늘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
태양을 향해서 날개를 펼친 그리스 신화의 뭐시기가 죽은 것처럼, 출세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욕망은 피해야 했다.
초월자인 드낙과 영차영차 해서 출세한다? 딱 타죽기 좋은 생각이었다. 이를 피하고자 소녀는 멍청함을 내세웠다.
“촌장의 비자금을 관리한 것처럼은 안 보이네? 이거 광산에서 광질하는 촌장을 다시 불러와야 하나?”
“네?”
“다 알고 있으니, 쓸데없는 내숭은 부리지 말라는 소리다.”
시에의 몸이 덜덜 떨렸다.
쉐도우 위스퍼에 대한 온갖 괴소문은 인간이 판단하기에 어폐가 있을 정도로 허무맹랑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검은돈에 손을 대었고, 실제로 그 덕에 마을에서 그나마 먹고살 수 있었다.
지은 죄에 비해서 얻은 게 적었다.
“떨지 마라. 촌장은 지하갱도에서 광질하도록 했지만 넌 아니다. 넌 아직 어리지 않느냐. 실수를 바로 잡고 새사람이 될 수 있겠지.”
“그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단, 조건이 있다.”
소녀가 드낙을 찬양했다.
“다종족 연합의 위대하신 초월자를 저는 믿나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날아가는 새와 달리는 들짐승이 오직 위대하신 초월자를 위해서 오늘을 살아가듯이 저 또한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아부는 됐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초월자님을 찬송하게 해주소서! 부디 초월자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해주소서!”
광신도처럼 굴었다.
소녀는 그게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 듯했다.
드낙은 그 모습을 보며 조금 싫증이 났다. 하지만 마음을 바로잡았다. 결국 이 먼지 같은 필멸자는 자기 뜻대로 움직일 것이다.
“네가 할 일은 간단하다. 앞으로도 너에게 유리한 포인트 분배가 시작될 것이다. 최대한 랭킹 시스템을 올리고, 최연소로 지도자에 당선되어라. 그리고 관리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라. 이 도시의 축이 되기 위해 노력해라. 네가 성공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소녀가 알을 꽉꽉 채운 연어처럼 크게 소리를 꽥 질렀다. 대단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 뒤에 뉴에이지 시티가 혼란을 빚을 때마다 내 뜻을 대신해서 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종종 어두컴컴한 길을 혼자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심해라. 나는 널 절대 버리지 않는다.”
“예!”
이에 드낙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소녀가 입을 꽉 다물었다.
“네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한은.”
“예!”
그 말을 끝으로 드낙은 뉴에이지 시티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행해지는지만을 들으며 평야의 작업을 도우며 도렌과 다른 세력의 지도자들을 기다렸다. 도렌이 움직이면 다른 이들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법이다.
‘뭐가 몰라도 도렌이 움직이니까 따라서 움직이는 거지.’
바보 같은가? 아니다. 도렌이 그만큼 잘 성장한 탓이다.
실제로 상위국의 국왕 네 명 모두 동시에 드낙과의 만남을 원했다. 그래서 드낙이 회의실 하나를 지정했고 그곳에서 서로 마주할 수 있었다.
원탁이었지만 드낙의 의자가 더 높았다.
“오랜만이다. 잘들 지내고 있지?”
“산맥을 깎아 평야를 만들고 계시는 드낙 님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 고민하며 지냈습니다.”
“도렌 국왕의 이야기를 듣고, 제가 아주 경솔하게 굴었던 것 같습니다.”
도렌부터 시작해서 다른 국왕 모두 드넓은 평야에 대해서 ‘또 한 번’ 야욕을 드러냈다. 전에는 드낙이 확 질러버려서 하룻강아지처럼 도망쳤지만 도렌이 용감하게 다시 나오려고 하자 거기에 올라탄 것이다.
‘도렌 녀석.’
드낙이 그를 힐끔 보며 웃었다.
혼자서 독식하지 않고, 다른 국왕들과 함께 다시 그를 찾아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드낙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아니었는데, 도렌 때문에 그게 다시 엎어졌고, 필요한 일이 되었다.
“이미 한 번 약속한 것인데 이를 뒤집으러 오다니, 사자라 할 수 없는 거 아냐?”
“왕이 어찌 사자로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왕이라면 능히 여우의 탈을 쓸 줄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좋다.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자.”
드낙이 능글거리게 웃으며 그들과 함께 자리를 가졌다.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