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3화
4. 뉴에이지 시티
드낙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끄덕.
‘그것이 바로 철학이니까.’
최근 드낙은 집필에 재미를 두고 있었다. 이 세계에 필요한 것은 사상과 생각 그리고 수많은 것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었다.
‘지식이 적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험이다.’
그렇기에 드낙은 집필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수많은 것들에 대한 ‘왜?’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적은 것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것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드낙은 제대로 된 철학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에게서 배울 것은 많았다.
남들은 할 수 없는 수많은 질문을 할 수 있어서였다.
우주 낙원에는 제대로 된 도서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은 오로지 식민지 지배를 위해 존재하는 군사시설이었다.
군인들은 자극적인 것을 원하지, 철학서를 원하지 않는다. 그 덕에 드낙의 집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 말은 벽돌 옮기는 김 씨도 알고 있는 간지 나는 말이다.
그곳에 깃든 진리를 풀어쓰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정신적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모든 사물은 존재한다. 사과 또한 떨어지면 항상 바닥에 떨어지지. 모든 것에 질문하는 것. 그게 바로 철학이다.”
드낙은 수많은 것들을 난잡하게 써내려 나갔다.
‘뿌듯하다!’
다른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최대한 현대에서 들었던 것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악법도 법이다? 그거였던가? 플라톤이 말했었지.’
아주 가슴 아픈 스토리가 깃들어 있었다. 옳은 소리를 해도 기득권이 아니라면 목이 댕강 잘린다는 참혹한 스토리였다.
‘제자들 몇 명으로는 어림도 없지.’
결국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드낙은 그 모습이 절절하게 생각났다. 그는 지식인의 아련한 눈을 했다.
‘아주 위대한 철학자가 그렇게 죽다니!’
살면서 철학서라고는 학교 다닐 때 교과서뿐이었지만 드낙은 크게 감명받았었다.
굉장히 재미있었다. 마치 자신이 고학력자가 된 기분이었고, 전문가가 된 기분이었다.
끝없는 경쟁, 수북이 쌓여있는 과업을 공부하고 이어나가는 의사를 이기는 안아키에 매료되는 사람처럼 변해갔다.
그 대단한 의사가 잘못되었고, 내가 바로 바른 판단을 하고 있다는 기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황홀하다. 힘든 고생길 없이 얻어낸 황금으로 빛나는 트로피였다.
다만, 결국 취미는 취미였다.
“오늘도 금속활자로 찍어서 곳곳의 학자들이 볼 수 있게끔 하라.”
“뜨나아아악!”
뿔 쥐가 고함을 내지르며 대단히 조심스럽게 이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드낙을 쳐다보려고 했지만 이미 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악법도… 법이다?”
뿔 쥐의 붉은 눈동자가 활활 타올랐다.
보는 것에 따라서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분의 모든 말씀은 곧 진리로다!’
뿔 쥐가 그림자가 되어서 모습을 숨겼다.
* * *
드낙은 오늘도 뉴에이지 시티로 향했다. 그곳은 아직 완성된 곳이 아니었다.
공사는 현재진행형이었고, 세상 곳곳에서 밑바닥 계층이 잔뜩 모여있었다. 제대로 된 식량을 얻는 게 불가능한 자들이었다.
‘결국 경쟁이니까.’
그가 한 일이 그렇다. 상업을 진흥시키고, 소비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 속은 경쟁이 깊게 뿌리 박혀 있었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이다.
인구가 끝없이 팽창한 것만 봐도 드낙의 계획은 성공적이다.
‘끝없이 싸워야 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드낙이 한 일이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산맥을 하나 싹 무너뜨려서 평지로 만들고, 그곳에 하나의 도시를 만들었다.
농업 도시이며 뉴에이지 시티라 불리는 현대 도시였다. 그곳의 지하는 지하 연합의 것도 아니었다.
‘지하철이 다녀야 하니까.’
모든 것은 발전하면서 점점 집중된다. 집중되면 효율적이고 더욱 거대해질 수 있었다.
도시가 시골과는 다르게 끝없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덩치가 커서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기술과 과학이 발전한 덕분이다.
‘여기에 현대 도시를 만들어서 큰 인구 집중으로 식량 해결을 도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랑자들, 고아들, 버려진 이들을 이용해야 했다.
드낙은 이미 가진 자들에게 뉴에이지 시티를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늘은 특히나 더 중요하지.’
모든 이들이 모였다. 그 숫자는 가히 100만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그만큼 버려진 자들이 많다는 것에서 드낙의 출산장려정책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알 수 있었다.
피자 조각은 여덟 개인데 그걸 먹을 사람은 열 명이 넘는다면 못 먹는 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농업 골렘과 목축 골렘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식량이 아무리 증가해도 인구 증가를 버틸 수 없다니.’
통계학자라면 깨닫고 있었겠지만, 드낙은 통계학자가 아니었다. 인구 증가의 무서움을 이곳에 모인 이들의 숫자를 보고 또 한 번 크게 깨우쳤다.
자신의 책임감이 통렬하게 치고 들어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다.’
그 첫걸음.
‘기본 능력 시험이다.’
부랑자들, 버려진 자들로 만드는 사회였다. 물론 외부 인력이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배우지 못한 자들이 도시를 운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문인과 경찰, 병사와 학자. 그들 또한 많이 데려왔다.
‘그렇다고 오래 머물게 할 수도 없지.’
그들은 뉴에이지 시티를 정상화한 후에 떠나게 될 것이다. 실력이 있으면 야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는데 소박한 꿈만 가지고 있다?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이 도시를 운영하게 될 버려진 자들이 그들을 스승을 모시고, 대우해 주고 싶다고 해도…….’
드낙의 명령으로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니까.’
드낙이 그리는 그림은 팍스 아메리카였다.
기회가 끝도 없이 있는 곳. 그런 곳을 만들 생각을 가졌다.
살면서 모든 이들은 기회를 잃기 마련이다. 그들은 끝없이 추락해서 바닥에 떨어질 것이고 그때 그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이 뉴에이지 시티에 올 기회를 얻게 될 터였다.
‘노력한 만큼 다시 일어설 힘을 줄 수 있는 현대 농업 도시.’
그게 바로 이곳의 목적 중 하나였다. 수많은 목적 중 하나다.
‘고아는 계속 생기니까.’
모든 이들의 수명을 무한대로 만들 수는 없다. 신성력을 통해서 최대한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직은 힘든 일이다. 전쟁을 앞두고 있고 드낙은 인구를 폭증시켰기 때문이다.
그건 개개인의 삶을 봤을 때 악한 일이었다. 전체를 봤을 때는 선한 일이지만 신성력이라는 고품질 자원을 소수만 누리도록 만들게 했다.
‘죽는 이들이 있으면 홀로 남게 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지. 기회를 잡으려다 넘어져서 실패한 자들도 언제든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자들이 오게 될 곳이 이곳, 농업 현대 도시 뉴에이지 시티다.
“기본 능력 시험은 시작하고 있나? 그 어떤 편법도 있어서는 안 된다.”
“예! 이미 시뮬레이션을 했고, 유의미한 결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대대적으로 시행할 생각이며 시험을 친 자와 치지 않은 자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격리될 것입니다.”
기본 능력 시험은 간단하다.
먼저 신체의 재능을 파악한다. 그 뒤에는 지능을 검사한다. 한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능력을 수치화하는 작업이다. 그 질문지는 제법 길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렇기에 한꺼번에 진행할 수는 없었다.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의외의 수혜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낙이 직접 이곳에 온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다.’
실패한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잔혹한 자본주의 시대에서 살았단 것이 박호훈이었다. 적어도 드낙은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실패자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게 해주는 도시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그는 만족할 수 있었다.
“순위표도 뽑아야 한다. 남녀의 구분은 없다.”
“예!”
랭크 시스템도 도입했다. 물론 이것은 극비로 여겨지는 수치였고, 도시의 시민권자들에게는 열람이 금지되어 있다.
‘경쟁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랭크 시스템을 도입한 건 지도자를 뽑기 위해서다.
그 숫자는 하나가 아니다. 인구 대비를 통해서 늘어나고 줄어날 것이다. 현재로서는 적어도 수천 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가 모든 것을 결정할 터였다. 민주주의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 똑똑할수록 민주주의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 벌써 랭크 시스템에 이름이 올라와 있나?”
“예. 간단한 예비 시험을 치렀습니다.”
“어떤 거였지? 들은 게 없는데…….”
“분명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내가 잠깐 흘려버린 것 같군. 하하하!”
드낙이 크게 웃어 보였다. 이에 이를 말하는 문인 또한 웃어 보였다. 실로 간사한 웃음이었다. 이 차원의 절대자 앞에서 그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자는 몇 없었다.
대표적으로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다.
당연히 문인은 그런 자가 될 수 없었다. 그 비굴함은 당연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실생활에서 알 수 있는 노하우 혹은 요령을 몇 가지나 알고 있는지 쓰라는 간단한 질문지를 통해서 얻어낸 작은 데이터입니다. 실제로도 최대 2점에 불과한 점수를 가진 질문이었습니다.”
“아주 미미하겠군.”
“그래도 랭크 시스템의 첫 시작입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관리자를 뽑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드낙은 가장 위에 있는 자의 인적 사항을 훑었다.
‘시에.’
성은 없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들이 바글바글하다. 자연스럽게 철이 들 수밖에 없었다. 또 어떻게든 돈을 벌고, 마을에 도움이 되어야 했기에 아는 것도 제법 된다. 주워듣기만 해도 어린아이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소녀가 그러했다. 거기에 어른들 또한 시에가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에는 힘없는 소녀고, 말을 잘 듣는 소녀였다. 똑똑하기도 하고 입도 무겁다.
‘흥미롭군.’
거기에 그녀는 알게 모르게 마을의 비리를 지키는 첨병이 됐다. 촌장의 하수인이란 뜻이다. 그걸로 제법 재미를 봤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를 몰랐다.
간사하다.
‘실력이 있다는 뜻이지.’
생후 6개월 된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거짓으로 드러낸다. 부모님이 자신이 웃는 걸 좋아하기에 웃음을 지어낼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한 거짓말이다.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데 거침없는 자는 드물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다른 이들보다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지.’
드낙은 가볍게 생각했다.
그는 이미 초월자에 올라섰다. 그것도 악마(惡魔)다. 행성을 파괴하는 존재가 행성을 가꾸고 있었다.
그가 숨기고 있는 악마로서의 전투력은 감히 신조차도 죽일 수 있을 정도다. 별을 파괴하며 업을 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악마에게 이는 당연하다.
신이 초식동물이라면 그는 육식동물이다. 하지만 그는 초식동물처럼 행성을 가꾸고 차원을 지키는 파수병이 됐다.
그런 것에 비하면 시에라는 후보자는 ‘뉴에이지 시티’의 수많은 지도자 중 한 명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정치가의 면모지.’
뉴에이지 시티는 투표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도시라 할 수 있었지만, 드낙은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시민들에게 그 권리를 풀어줄 생각을 가졌다.
“오늘 시험은 뭐지? 첫 시험이 뭐라고 했더라?”
“밧줄 달리기 훈련입니다.”
“시에라는 애는? 몇 번째지?”
“땅이 넓고, 지원도 대단히 많아서 한 번에 치릅니다.”
드낙은 장소를 묻고 그곳으로 단번에 이동했다.
허공에 나타난 드낙은 시에를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왜소하고 작았다. 머리카락도 훈련을 위해서 짧은 단발로 자른 상태였다. 주근깨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의 소녀였다.
하지만 그 눈. 그 눈은 지나칠 정도로 타오르고 있었다.
‘향상심. 성공에 대한 갈망.’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내 훈련하는 걸 지켜봤다.
밧줄 달리기 훈련은 다섯 명이 서로의 허리를 묶는다. 거기서 이제 달리기가 시작된다. 끝까지 달려야 하고, 운이 좋지 않으면 동료에 의해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에는 가장 큰 짐 덩어리였다.
“1번은 왜 이렇게 느리게 달리는 거냐!”
“우리 할머니가 너보단 빠르겠다!”
주변에서 시끄럽게 굴기도 했다. 교관들의 목적은 단순하다. 최대한 빨리 이 시험을 끝내는 것에 있었다.
‘못 배운 것들의 지도자가 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들은 교육을 받겠지만, 이미 나이가 제법 든 이들도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뉴에이지 도시였다.
거기에 표까지 받아야 한다. 어린 나이에 여기에 온 그들은 자신의 엘리트 성을 증명해야 한다.
시에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은 반짝반짝 빛나는 사금과 같았다.
2시간 28분.
시에의 조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소녀가 버텨냈으니까.’
그것뿐이다. 저런 어린 소녀도 버티는데 같이 묶인 놈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토를 해도 일어났다.
그 저력을 본 드낙은 빙긋 웃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스타가 항상 멋있기만 한 것도 아니지.’
대중이란 항상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싶어 한다.
부자가 돈이 없어서 세금을 내는 변명을 들은 대중은 무슨 생각을 할까? 뻔하다. 반면 가난한 자가 성공하는 스토리에는 깊게 매료되기 마련이다.
저렇게 어렸을 때부터 촌장의 비리 파수꾼으로 살았고, 달리기 훈련에서도 열정이 대단했다.
‘낮은 성적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지.’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표를 싹쓸이할 것이 분명했다.
‘너도 황희정승처럼 만들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