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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61화 (1,060/1,239)

1061화

자욱하게 퍼져나가는 흙먼지 속에서 미노타우로스가 흉포하게 고함을 지르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물론 상대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미 박동택의 대저택 건물을 파손시킨 것만으로도 그 흉포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밑도 끝도, 위도 아래도 보지 않는 광인이다.

그렇기에 서로는 강하게 부딪쳤다. 상대는 미노타우르스의 주먹에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벽에 부딪혔는데 괴이한 소리가 났다.

철퍽!

“음?”

괴이한 현상이었으나 미노타우르스에게는 아니었다. 그저 전의를 잃었을 뿐이다.

상대가 그 정도로 대단한 놈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에 상대가 거세게 웃었다. 다만 벽에 부딪힌 놈은 아니었다.

되레 그 뒤에서 들려왔다.

“우하하하하! 여전히 주먹이 험하군!”

흙먼지가 걷어졌다. 마신장과는 다르게 미노타우르스는 즉시 마법을 펼칠 수 없었다. 그것은 ‘오우거’가 지닌 그릇에 마신의 힘이 담겨야 가능한 기적이다.

마수(魔獸), 베르델레트에 속하는 모린 나이그는 침략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그는 냉큼 물러난 상태였다. 용의 꼬리를 지니고 있다고 위풍당당하게 날아다니지만, 엄연히 그는 전투 마수 종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신을 대신해서 관리 노릇을 하는 미노타우르스가 더 잘 싸울 것이다. 거기에 체격도 미노타우르스가 더 크다. 중형급 크기를 지닌 생체 괴물이 바로 미노타우르스였다.

“오, 오르쿠스(Orcus)! 집행자 계급에 속하는 마수 종족이라 하여 이건 큰 무례다! 감히 마신께 이름을 하사받은 미노타우르스의 집을 파괴하다니!”

그가 발악하듯이 외쳤다.

오르쿠스라 불리는 마수 종족은 빙긋 웃었다.

보기만 해도 거칠어 보이는 검은 멧돼지 털을 지닌 인간의 모습을 지닌 게 오르쿠스였다.

앞가슴에는 털이 없지만 뱀의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다. 무두질해서 입은 옷이 아니라, 앞가슴의 피부만 뱀의 가죽으로 되어있었다. 그 덕에 젖꼭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앞가슴의 뱀 피부에서 거무튀튀한 액체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액체는 곧 레서 오르쿠스(Lesser Orcus)가 되어 그 옆에 섰다.

오르쿠스와 똑같은 모습을 지닌 분신으로 변했다. 동시에 무기도 쥐고 있었다. 그 무기는 제각각 달랐다.

반면 오르쿠스라 불린 마수는 무기 하나 쥐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걸어 다니는 군대.’

오르쿠스라 불리는 마수 종족은 무기를 쓸 이유가 없다. 그들 몸에서 레서 오르쿠스라 불리는 분신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레서 오르쿠스를 토해낼 수 있느냐가 마수 오르쿠스의 강함을 결정한다.

그 숫자는 수백부터 수천 혹은 만(萬)에 이를 정도다. 그 정도는 되기 때문에, 종족 자체가 태어나자마자 ‘집행자’로 임명된다.

다만, 아무리 그래 봤자 결국은 머릿수에 불과했다. 마신장(魔神將)을 꺾고, 마신의 오른팔을 자처할 수는 없었다.

드낙조차도 마신장과의 전투에서 백만에 달하는 자신의 신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집행자가 대체 왜…….”

베르델레트가 입을 쩍 벌렸다. 그만큼 엉뚱한 일이었다.

베르델레트인 그만해도 충실한 일등 시민이다. 박동택 미노타우르스 또한 말할 것이 없었다.

집행자들은 대개 마계를 돌아다니며 위험한 범죄자들을 잡는 자들이다. 또는 매우 중요한 일에 긴급 투입된다.

무인인 탓에 그 성향이 대단히 거칠기 짝이 없었다. 본인들의 가치를 알았기에 무식하게 나가는 놈들이다.

그런 놈이 이런 곳에 찾아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당황스러웠다. 그건 박동택도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놀라움은 다른 것에서 오고 있었다.

“2급 집행자, 온도르(Ondor)! 미친놈이……. 네놈은 지금 여기에 있을 자가 아니지 않으냐! 임무에 지쳐 쓰러져갈 정신으로 살아야 할 2급 집행자가 감히! 여기서 놀고 있는 것인가!”

그 분노가 실로 대단했다.

1급 집행자는 사실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지도 않았다. 만(萬)의 레서 오르쿠스를 토해내는 오르쿠스 종족의 빛이며, 태양인 그들은 충분한 공을 세웠고, 영원토록 행복과 평온,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었다.

그 덕에 사실상 2급 집행자가 가장 바쁘다고 할 수 있다. 수천의 레서 오르쿠스를 토해낼 수 있는 것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온도르는 9,999마리의 레서 오르쿠스를 토해낼 수 있다. 딱 1마리가 부족해서 1급에 오르지 못한 자였다. 물론 충분한 공을 세워서 갈 수도 있지만 지겨워서 스스로 뛰쳐나온 오르쿠스였다.

그렇기에 모르는 자가 없었다.

“하하하하!”

마수 오르쿠스, 이름은 온도르인 자가 크게 웃어 보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군대는 계속해서 뽑혀 나오고 있었다. 단 한 번에 소환 가능했지만 이렇게 늦장을 부릴 때도 있다.

그게 ‘멋’이니까.

‘미친놈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습관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온도르가 그만큼 열정적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온도르를 모르는 마수는 없었다. 오르쿠스는 집행계급을 받은 마수 종족이고, 제법 자주 보인다.

“그야 시일이 급한데 이런 곳에 있으니까 그렇지! 다른 미노타우르스도 모두 참석했는데 네놈만 오지 않아서 하루가 미뤄졌다!”

“다른 미노타우르스라니?”

그 말에 오르쿠스가 히죽 웃었다. 실로 재미난 표정이었다.

‘이거 고소한데? 미노타우르스가 앞일을 모르는 표정을 짓다니.’

영상으로 남겨두고 싶을 지경이었다.

“똑같은 명령서를 받은 미노타우르스만 열다섯이 넘어간다.”

“설마……. 그 미노타우르스 모두 마신께 이름을 받은 자들은 아니겠지.”

“말해서 입 아플 일은 없군. 직접 말했으니…….”

이에 박동택이 다시 명령서를 펼쳤다. 하지만 그냥 오라는 소리밖에 없는, 평범하다 못해 가기 싫을 정도의 명령서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냐?”

“마신의 인장을 보고도 늦장 부리더니, 꼴 좋다.”

“마신께서 직접 대업을 구상하고 계시다고? 하지만…….”

그가 말끝을 줄였다.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마신은 대규모 전쟁을 하지 않은지 어언 50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마신의 세력은 거대했다.

남들은 대전쟁이라고 할 만한 것도 그들에게는 그냥 가벼운 전쟁일 뿐이었다. 이름 받은 미노타우르스조차도 참전하지 않는 전쟁일 뿐이었다.

끝없이 들어오는 카르마만 해도, 현상 유지를 택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업을 받아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믿을 수 없었다. 의심이 생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강제적으로 날 끌고 가려는 거지? 이 정도 큰일이라면 언질이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게 없다. 어째서냐?”

“내가 그걸 어찌 알겠나. 다만, 오지 않는 미노타우르스를 데려갈 뿐이다. 궁금하면 가라.”

박동택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싸우면 필패다. 아무리 미노타우스라도 미궁에 있는 게 아니라면 전투력이 급감한다.

미궁의 용도는 미노타우르스를 지키는 역할도 있지만, 지금 그는 미궁 밖의 대저택에 머물고 있다.

“알았다. 바로 가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뒤에 박동택 미노타우르스는 모린 나이그(Morin naig)를 보며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 조금 더 천천히 그대를 대우해 주고 싶었는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모린 나이그 또한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미노타우르스의 식당 요리사는 대단히 실력이 좋은데 주메뉴도 입에 못 대고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마수 오르쿠스, 온도르가 그를 보며 말했다.

“발 빠른 베르델레트가 여기에 있다니. 이거 잘 됐군. 회의장으로 우릴 운반해 다오.”

“차원 이동으로 가시면 될 일 아닙니까. 어차피 회의장은 마계의 상위 차원 아닙니까?”

“아니다.”

“뭐! 하지만 명령서에는…….”

“거기로 향하면 다시 하위 차원으로 가게 되어있다. 회의장은 그곳에 있다.”

몇 번이나 꼰 모습에 박동택은 더욱 궁금해졌다.

세 사람은 그대로 하위 차원으로 향했다. 하위 차원 중에서도 외곽이라고 할 수 있는 차원으로 가야 했으며 최종 목적지는 그곳에서부터 또 동떨어진 카르보른 행성으로 향했다.

* * *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베르델레트는 그만큼 빨리 갈 수 있는 마수였다.

“보통은 2시간은 가야 하는데, 대단하군!”

“그저 4시간을 2시간으로 줄였을 뿐입니다.”

상위와 하위로 나누어졌다고 해서 진짜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마신이 거주하고 있는 차원으로부터 가까우면 상위, 멀면 하위라 규정할 뿐이다.

다만 오래전부터 있었던 차원은 그 발전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옮겨준 베르델레트는 그대로 사라졌다. 박동택은 마수, 오르쿠스를 보며 윽박질렀다.

“그대도 이만 가라. 왜 계속 따라오느냐?”

“커흠. 혹시 중간에 내빼나 싶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하하! 그냥 이름 받은 미노타우르스들이 왜 그렇게 모이는지 궁금한데, 같이 갈 수는 없겠나?”

박동택은 걸음까지 멈추었다. 결국, 그도 사라지고, 그 혼자 회의장으로 향했다.

척박하기 짝이 없는 행성이 바로 카르보른 행성이었다. 그곳은 마수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곳이다. 대기의 온도 자체가 120도가 넘어가는 곳이다. 모든 것이 사막처럼 된 상태였고, 지하에서 채석하는 자원 행성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기계가 움직이고 있었고 마수들이 기계가 멈추면 점검하는 땅이다.

이런 곳에 오게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비밀스러운 계획을 추진한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실력도 확실해야 하고.’

이름 받은 미노타우르스 열 마리! 그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과잉 전력이었다.

박동택은 기대심에 부푼 채 지하에 마련된 비밀 회의소로 향했다.

마계 곳곳에는 이런 비밀 회의소가 존재한다. 그만큼 마신의 적이 많다는 뜻이다.

마신의 차원까지 굳이 찾아와서는 신앙을 부르짖고, 그들의 신의 이름을 논하는 타락자들! 그런 간악한 존재를 피하려면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창조는 어렵고, 파괴는 쉬운 탓이다.

쿠구구구궁!

그가 앞에 서자 은폐되어 있던 문이 열렸다. 강철로 되어있었지만, 색이 모래 패턴을 지니고 있었다. 내부에는 기관총 거치대가 있었고, 포대가 쌓아 올려져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검은 그림자 속에 두 눈이 반짝였다.

포대는 가짜. 진짜 경비병은 어둠 속에 있었다.

“클클클. 박동택 미노타우르스. 늦장을 부리다니, 옛날에는 전공을 너무 휩쓸어서 미노타우르스 내부에서 그렇게 욕을 먹던 자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군. 놀아도 너무 놀아서 전과 너무 달라졌어.”

어둠 속에서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과는 다르게 형편없이 작았다. 140cm에 불과한 조그만 크기였다. 일반 가정집의 문고리가 있는 곳과 비슷한 키다.

딱.

검은색 지팡이가 소리를 냈다.

마수는 새까만 관복을 입고 있었고, 장화까지 신고 있었다. 제법 잘 차려입고 있었지만, 키가 너무 작아서 멋이 나지는 않고 인형 같았다.

흑발, 흑안에 인간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였다. 그러나 미남이라 할 수는 없었다. 몸에 비해 얼굴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이등신이 아니라 1.8등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볼 또한 퉁퉁 부어있었고,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만져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정도였다. 수염 하나 없었기에 실로 귀여운 인상을 지닌 마수였다.

“으음…….”

박동택은 신음 소리를 냈다. 상대는 입구를 막을 정도로 하찮은 마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말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칠흑의 후작이 여기에는 무슨 일인가.”

“하하하. 그거야 이번 일에 나도 참여한다는 뜻이지. 가자고.”

“입구는 날 배웅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맞는데. 하하하!”

칠흑의 후작, 로노베(Ronove)는 무엇이 즐거운지 크게 웃었다.

두 명의 마수가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바닥과 벽에 질척거리는 검은 액체가 들러붙었다. 마치 슬라임처럼 가득 땅과 벽, 천장을 메웠다.

“어떻게 지냈나?”

박동택의 물음에 로노베가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투는 귀찮음이 가득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다녔지. 마신에 거역하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수많은 필멸자들은 어찌나 어리석은지……. 오래 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새로 탄생하는 우둔한 자들이라 똑같은 실수를 매번 반복해. 이제는 지겨울 지경이다.”

그는 필멸자를 죽이는 것에 대해서 떠들어대었다. 말에는 귀찮음, 하찮음이 가득했지만 제법 잡담이 길었다. 그만큼 자기보다 약한 자를 죽이는 게 재밌는 것이 로노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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