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8화
3. 미궁
마신(魔神)이 지배하는 차원에는 미궁이 존재한다.
그곳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희생자나 다름없어서다.
미궁은 곧 미노타우르스의 영지다. 그곳에 들어가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그는 그 미궁으로 들어가야 한다. 반항하면 그는 죽을 것이다. 허무하게 죽기 전에 발악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마신이 지배하는 차원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항상 수련한다. 언젠가 자신도 미궁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가야 할 미궁의 이름도 중요하지.’
미궁의 수준은 그 미궁의 이름에 따라 구분된다. 그중에서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세 살 애새끼도 구분 가능한 것이 존재했다.
마신에게 하사받은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미궁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가장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Bagdongtaeg.
괴이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미궁은 마신에게 이름을 받을 정도로 큰 성과를 낸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이었다.
“빌어먹을.”
그곳에 들어가게 된 인간은 욕지거리를 날렸다.
그 이름이 적힌 검은색의 금속 막내는 이내 빛이 사라졌다.
빤스런? 불가능했다. 군인정신으로 무장해야 할 최정예라고 불리는 군인조직조차도 빤스런하는 세상에서 태어났던 마신은 결코 빤스런을 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꽈악.
그가 금속 막대를 움켜쥐었다.
부르르!
손이 떨릴 정도로 힘을 줬다. 마음 같아서는 부수고 싶었지만 부서질 리가 없었다.
금속 막내는 끝을 제외한 부분은 반들반들하고, 그 어느 문양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끝에는 선명하게 미노타우르스의 머리가 존재했다.
이것은 쇠창살 없는 감옥이며, 수갑이다. 그리고 또 증표였다.
그 뿔! 거칠기 짝이 없게 표현된 황소의 표정! 눈동자와 흰자위의 구분만 있을 뿐, 칠흑과도 같은 검은 것!
‘기분 나쁜 생명체다.’
이 검은 막대야말로 자신이 이 미궁에 들어선 이유이기도 했다.
‘제비뽑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내가 추첨에 걸리다니.’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마계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운으로 정해지고 있다. 살려면 제비뽑기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당첨되면 미궁으로 보내진다. 운 나쁜 놈들이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것이 미궁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버텨냈다. 그동안 운이 좋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철커덕!
검을 허공에 끼워 넣자마자 웜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새까맣기 그지없는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들어갔다.
눈을 뜨자 거대한 미궁의 입구가 보였다. 그 앞에는 이미 이번 적법자들을 안내하고 있는 마수들이 보였다.인간형 마수 중에서도 지능이 높아서 미노타우르스의 심부름꾼이며, 집사이며, 메이드이기도 한 에레쉬키갈(Ereshkigal)이다.
앞에서 보면 안이 훤히 비치는 검은색 실크만 두르고 있는 아름다운 미녀였다. 특히 핑크색의 입술처럼 연한 색조를 띤 미녀였기에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육감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체형은 제각각이라 하나하나가 그들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등은 올빼미 털로 뒤덮인 마수였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검은 눈동자와 긴 검은색 생머리는 단아했다.
그는 에레쉬키갈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저렇게 아름다워 보여도 실로 공포스러운 존재다. 마수란 그런 것들이다.
그녀들의 왼손은 사람과는 정반대로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손바닥이 위로 가는 게 그녀들에게는 정상이다. 그 왼손으로는 불타고 있는 향로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전혀 화상을 입고 있지 않았다.
향로 마법사이기도 한 것이 에레쉬키갈이라 불리는 마수다. 그들은 미궁의 관리자들이기도 했기에 미궁에 들어서는 적합자들에게 많은 걸 알려주고 있었다. 생각 없이 산 적합자들도 제법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인간 외에도 마수도 있다.
인간들은 훌륭한 필멸자지만, 그들만으로 미궁을 장식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그리고 마신의 차원에는 마수들이 더 많았다. 수많은 마수가 마신 성현의 아래에 있었고, 그들은 미궁에 스스로 도전하기도 했다.
마신의 왼팔인 미노타우르스들의 미궁에 도전하여 그 눈에 들어간다면, 출셋길에 오를 수 있다.
필멸자로서의 그릇이 너무 작고, 마력도 가지지 못한 인간 따위는 마신의 지배력도 많이 받지 못해서 억지로 추첨을 통해서 미궁에 가지만 다른 마수들은 아니다.
그들은 오직 마신을 위한 병졸이며, 신도였다.
“증표를 확인하겠습니다.”
검은 웜홀을 타고 왔음에도 에레쉬키갈은 차분한 음성으로 그에게 말했고, 인간은 이를 보여주었다.
에레쉬키갈의 손이 그 증표를 잡으며 인간의 손에도 닿았는데 그 손은 조금 뜨거울 정도로 따뜻했다.
‘웃.’
이상한 기분에 인간이 움찔거렸다. 이에 에레쉬키갈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여우 같은 미소였다.
검은 막대에 진보라색의 빛이 훑고 지나갔다.
“…확인을 마쳤습니다. 미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으신가요?”
“설명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알고 있다고 해도 혹시 놓칠 수 있는 게 있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추첨에서 벗어나 살아왔다. 그 덕에 미궁에 대한 걱정을 덜고 살았다.
“마신의 오른팔인 마신장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 듯이 마신을 위해서 영토의 기반을 다지고 나면 마신의 왼팔인 미노타우르스가 본격적으로 그 차원에 개입을 시작합니다.”
마신장이 모은 것을 통해서 어떤 검은 군대를 소환할지도 결정하고, 혹은 다른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검은 군단이 아닌 레플리카 네임드 마수나 독특한 능력을 지닌 마수를 투입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에는 그 전쟁의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경험을 파악하기 위해서 수많은 괴물과 야수 그리고 지성 종족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적합자가 있는 것입니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미궁에 녹여내기 위함입니다.”
잔혹한 말을 차분하게 말하는 에레쉬키갈(Ereshkigal)은 마수 그 자체였다. 마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신을 모독한다면 험한 꼴을 당할 것이고, 미궁에 들어갈 적합자가 받아야 할 것을 못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재량권이 있는 게 미궁의 관리자, 등 뒤가 올빼미인, 향로 마법사인 에레쉬키갈이다. 그들은 하찮은 마수가 아니다.
되레 그런 불이익을 받은 필멸자가 미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훌륭한 정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적합자가 미궁에서 노력할수록 이 미궁의 지배자이신 박동택 미노타우르스는 마신을 위한 그릇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인간, 라온은 참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짓눌려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에레쉬키갈이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추첨 적합자라니.’
그들은 가장 하찮은 존재다. 미궁에 녹여지는 게 가장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족속들이다. 마신을 위한다면 미궁으로 죄다 내몰려서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살아있는 쓰레기였다.
“따라오세요. 적합자는 장비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에레쉬키갈이 미궁의 입구 옆에 있는 통로로 향했다.
라온이 에레쉬키갈을 따라가자 그 공간에서 보라색의 빛이 터져 나왔다. 어두운색이었지만 조명 자체는 밝았고, 곳곳에 펼쳐져 있어서 사물을 판단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창이요. 도끼 창입니다.”
그 말에 허공에서 도끼 창이 날아왔다. 이곳에는 염력 마법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자인 에레쉬키갈의 마음대로 움직였다.
“평범한 도끼 창입니다. 그대를 위한 것이지요. 방어구는? 인간들은 강철을 선호하지요.”
“예. 풀 플레이트 아머를 원합니다.”
“중보병의 교육을 받으셨군요.”
그는 평범한 풀 플레이트 아머도 착용했다. 혼자 착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상관없었다. 더 단단한 게 중요하다. 평범한 인간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미궁에 들어서는 인간은 특전이 존재합니다.”
에레쉬키갈이 품에서 긴 양피지를 쏟아냈다.
그 양피지는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도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글자를 눈으로 인식하지 않았는데도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신기한 양피지였다.
“저는…….”
인간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미궁에 잡아먹히는 미래를 이겨낼 것 같지는 않았다.
에레쉬키갈이 섬뜩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 * *
박동택.
그의 이름은 위대한 이름이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다름 아닌 마신(魔神) 성현(Seonghyeon)으로부터 하사받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거대한 황소의 뿔은 검디검었다.
마신이 지닌 지배력에 오랫동안 노출되어서 모든 것이 검었다. 눈의 흰자위조차도 검었다.
“으음…….”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본래는 황토색이었던 털도 검게 변했고, 짧았던 털도 길어졌다. 방어력을 위해서는 더 많은 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걱! 서걱! 서걱!
가만히 앉아있는 박동택의 뒤로 가위질이 이어졌다.
말의 머리를 한 마수였다. 코를 벌름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가위질이 대단히 능숙했다.
특히 큰 가위는 사람용이 아니었다. 마수 미용을 위해서 존재하는 가위였다. 미노타우르스를 위한 가위였다.
본래는 단모(短毛)였던 미노타우르스들은 마신의 왼팔이 되며 털이 길어졌고, 이 때문에 자주 몸에 있는 털을 짧게 자르는 편이었다.
그 덕에 미노타우르스를 위한 미용사들도 많았다.
보통 일용직 노동자 계급을 위한 개인 마용사는 없지만, 박동택 미노타우르스의 개인 미용사는 있었다.
그게 권력이다.
마신에게 지배당했다고 해도 그들 또한 의식주가 있고, 마음이 있었다. 자유의지를 건들지 않고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야말로 마신의 가장 강력한 힘이고, 가장 근원이 되는 힘이다.
자연스러운 세뇌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화시킨 것이 마신 성현의 위대함이다.
“오늘도 완벽하군.”
박동택이 자신의 가죽을 만졌다. 가죽이 워낙 두꺼워서 인간과는 달리 살과 근육과 따로 도는 것이 미노타우르스의 가죽이었다. 짐승의 가죽이었다.
깔끔하게 결을 정리하고 난 뒤에 말의 머리를 한 마수가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를 칭송했다.
“하찮은 재주를 부린 것뿐입니다. 마신으로부터 이름 석 자를 받으신 분의 털을 관리하는 건 제 일생에서 황금처럼 빛나는 시대나 다름없습니다.”
가장 아름다울 때다.
미용사의 사탕발림에도 박동택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저 품에서 종이 화폐를 건넸다.
그곳의 앞면에는 성현의 얼굴이 크게 있고, 뒷면에는 마계 상위 차원의 독트라신 행성이 그려져 있다.
100% 모두 개발이 완료된 행성의 모습은 행성 밖으로도 수많은 우주 건축물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 행성을 본떠서 만들어진 화폐의 뒷면은 웅장했다.
마계 화폐는 마계에서만 쓰이는 것이다. 하지만 마신은 그 외의 그 어떤 화폐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금부터 시작해서 은이나 동 따위도 모두 산업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화폐로 삼을 것이 없었다. 무게 또한 그러했다.
이를 받은 마수가 크게 감사를 표했다. 이를 가볍게 여기며 박동택은 밖으로 나섰다.
우우우우웅!
부유석이 움직이며 단번에 위로 솟구쳐올라 왔다. 3m에 달하는 거구가 우뚝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미궁이 그의 시선을 가득 채웠다.
이 미궁이 바로 박동택의 미궁이다. 마계의 상위 차원에 마련된 그의 땅에 지어진 거대한 미궁이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싸움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미노타우르스에게 끝없는 경험을 주고 있었다.
마신의 왼팔이라고 불리는 미노타우르스의 지혜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력을 가지지 못한 인간부터, 하찮은 고블린에 다른 세계에서 끌려온 영혼이 담긴 언데드 등, 수많은 것들이 미궁에 존재했다.
‘자, 나를 위해서 노력해라. 그리고 죽어라. 수많은 경험을 나에게 제공하라!’
그것들은 살아서도 정보를 쌓을 것이고, 죽어서도 정보를 쌓을 것이다. 그리고 박동택은 미궁을 통해서 가만히 앉아서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게 마신의 왼팔이라 불리는 미노타우르스의 진짜 무서움이었다. 사지에 달려들지 않아도, 직접 그 일을 하지 않아도 직접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응?’
즐거워하던 박동택 미노타우르스가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가 엄청난 속력으로 자신에게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