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6화
돈 가진 이들은 돈을 보고 달리지 않는다. 더 높은 명예를 좇는다. 늙을 때 불멸을 쫓았던 진시황제처럼, 다른 가치를 좇게 된다.
그들에게 돈, 자원은 쌓는 물건이 아니었다. 되레 쓰는 물건이다. 자신의 명예와 업적을 위해서 거침없이 쏟아붓는 것이다.
그렇기에 백설 산맥의 윗줄기부터 시작되는 거대한 산맥인 대산맥을 평야로 만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억지로 코를 꿰어서라도 참가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 세워지는 농업 도시 ‘뉴에이지 시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살게 될 곳이기에 치안, 법,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드낙은 이에 대해서 싹둑 잘라버렸다.
[그냥 하지 말아라.]
그렇게 계획서에 적고 끝냈다.
그런 단순 무식한 한 마디로 이해하고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거기에 이들에게는 명확한 목표도 있지.’
30년 혹은 40년 뒤에 개시될 악마와의 차원 전쟁이 약속되어 있었다. 더 많은 힘, 더 많은 군사력을 보유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자원을 탐닉하고 축적하여 나중에 있을 일에 대비해야 했다. 그래야 그때 더 많은 공을 세워서 더 높이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끝없는 경쟁이다.’
드낙이 그렇게 만든 건 아니었다.
그가 그들에게 준 것은 자유다. 자신이 무엇을 할지 자신이 정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가 만들어낸 경기는 그 어떤 제한도 없었다. 그렇기에 끝도 없이 경쟁할 수 있었다. 단순한 식량부터 시작해서 군사력까지도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당장 크게 군대를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군사 경쟁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서히 세금도 둘로 쪼개야 하고.’
세력에 따라서 지방세처럼 세력 세금을 따로 둘 필요성도 있었다. 중앙으로 오는 세금이 반토막이 나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결국, 자유처럼 보이는 이 경쟁도 세금이 드낙에게로만 향한다면 환멸을 느낄 수 있었다.
경제적 자유가 있어야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었다. 밑의 사람은 식량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으로 경제적 자유를 어느 정도 실현하는데, 웃대가리는 그런 게 없다면.
‘향샹심이 사라질 수 있지.’
자기들끼리 해 처먹는다고 해도 그것이 나쁜 효율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용서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보상을 받을 때다.’
공신 대접을 해줘야 할 때였다.
이기적이지만 드낙은 자신과 함께해 온 이들을 저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다른 대중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안 가게 할 생각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었다고 깝죽거린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갑질하고 싶어서 지배하고자 하는 놈들은 싹이 나면 바로 쳐낸다.’
사회에서 그대로 격리시킨다. 평생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노동력을 제공하며 단순 반복 노동을 하며 살아가야 할 터였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 모든 범죄자는 자신들이 먹고 싸고 자는 행위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피땀 흘려서 어떻게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드낙이 그런 세상을 만들었다.
남의 인생에 피해를 끼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세상은 드낙에게 있어서 정말 말 같지도 않은 것이었다.
‘사람의 목숨. 그 가치를 꾸준히 높여야 한다.’
개인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는 세상을 만들려면 그만큼 독해져야 한다. 이들 모두 그걸 알면서도 드낙에게 물음을 하려고 왔다. 대단한 지배욕이었다.
‘무려 100억 식량이다.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드낙은 짜증을 냈지만, 그들 처지에서 생각하면 눈이 돌아갈 만했다.
무려 100억 식량 프로젝트다. 그걸 관리한다면? 말도 안 되는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원금을 1%만 따로 챙겨 먹어도 어마어마하다. 하물며 사업을 자기 세력에 맡긴다면 더더욱 큰 이득을 챙길 수 있다. 비리 없이 만들어도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고, 업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왔을 터다. 하지만 하나가 걸렸다.
‘세팔이 녀석은 왜 참가를 안 했지.’
그게 궁금했다. 이에 드낙은 그들로부터 눈을 다시 돌려서 대장 쥐에게로 향했다.
대장 쥐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대장 쥐, 신제국은 왜 참가를 안 했지?”
이 정도의 고깃덩어리였다. 못 먹어도 고다. 간이라도 봐야 했다. 찔러는 봐야만 한다. 그만큼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뉴에이지 시티는 신제국으로부터 멀지도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인데도 무슨 병에 걸린 것처럼 무시하고 있었다.
‘움직여야 기회가 생기는데 움직이지도 않았다.’
“관심이 없었고, 차원 다리를 세울 준비를 행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토목 공사까지 겹쳐 있었기에 여기까지 손을 대지는 않겠다는 말 같았다.
“참나.”
어차피 전쟁이 벌어지는데 그새를 못 참고 벌써 차원 다리를 만든다는 말에 드낙이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못 말리는 놈이다. 전쟁광 놈!’
숭고한 신념이지만, 피 냄새를 너무 풍기는 것이 세파리아스의 신념이고, 신제국의 목적이었다. 버릴 건 버리는, 그 날카로운 면모 또한 소름 돋을 정도였다.
그만큼 세파리아스는, 신제국은 전력으로 내달리며 ‘외계(外界)’를 노리고 있었다. 진지하게 신들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려 하고 있었다.
“너희는? 식량에 욕심이 생겨서 왔느냐? 도렌! 네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식량 욕심 때문에 온 것이 맞습니다. 슬럼가와 고아들 그런 이들을 모아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더라도 관리할 사람, 교육할 사람은 필요합니다. 저의 아래에 있는 이들은 모두 인성이 고루 갖춰져 있습니다.”
“모든 관리가 그렇지 않소! 쉐도우 위스퍼 덕분에 도렌 국왕의 아래에 있는 자들만 청렴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급여도 높은 게 관리들이라, 청렴이란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곳곳에서 도렌 국왕의 근거를 최대한 방해하려고 했다. 그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돈 냄새는 물론이고, 향후 한 줄기 큰 사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가장 큰 이점은 이 프로젝트를 드낙 님께서 시작하셨다는 점이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절대 실패할 수도 없었다. 실패라는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역량을 쏟아부을 것이다. 잘못되더라도 초월자가 나서서 그 구멍을 메꿔버리면 그만이다.
실패할 수 없는 사업이 있다. 거기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토목 공사, 지방 발전 등등의 사업을 잠정 중단하더라도 엘리트들을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기 영토는 나중에 살피면 된다. 드낙의 프로젝트는 누가 채가면 다시는 거기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그 경쟁적인 모습에 단번에 시끄러워졌다.
드낙은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거야.’
자신이 바랐던 광경이었다.
‘기득권.’
사회를 지배하는 소수의 무리가 담합하지 않고, 서로 경쟁하는 것만으로도 밑의 사람들은 편해질 수 있다.
갑질을 하기도 전에 자신과 비슷한 놈끼리 경쟁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아름다울 지경이다.
드낙의 시작은 소시민이었다. 아파트 소장의 눈치를 보며 야간 아파트 경비 아르바이트한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소장이 바쁠 때는 그만큼 편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소나기가 올 때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밖에 시야가 나쁘니 가서 붉은빛을 내뿜는 교통 봉을 휘둘러야 했는데, 소장이 바쁠 때는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었다.
‘지금 상황과 비슷하지.’
갑질할 여유도 없다. 누가 더 높이 올라서는지가 중요했다.
통일하기 전에는 서로서로 어루만지고, 아끼던 것도 통일 이후에는 사냥이 끝난 사냥개를 삶아 먹듯이 공신을 죽여버린다.
계속해서 일이 있다면, 그렇게 충신을 죽이지는 않을 터다.
‘계속 경쟁해라. 그리고 발전해 나가라. 더욱 위대해져라.’
그런 이들을 휘하에 두고 드낙은 이 차원을 멋들어지게 가꾸어나갈 것이다. 엘리트는 엘리트다워야 한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게 둘 수는 없지.’
또 다른 의미의 피라미드라고 할 정도로 실력 있는 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과 다른 세상에서 경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어느 정도 나누어줘야 한다.
‘소비주도를 통해서 제물이 넘쳐흐르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만, 그만. 진정해라.”
드낙의 말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제 그가 답했다.
“엘리트들의 공급이 계속 늘어나는 건 나도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을 위한 직책이 있어야겠지. 그들이 자신의 실력을 펼칠 곳도 분명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실력 없는 자들은 자신을 비관하지 않겠느냐.”
“그럼, 뉴에이지 시티는 실력 없는 자들로 꾸밀 생각이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드낙은 고개를 저으며 날카롭게 아니라고 말했다.
“3:7.”
“예?”
“3:7의 법칙을 사용할 생각이다.”
“그건 무슨 법칙입니까?”
처음 듣는 용어에 당황한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팍스 아메리카!
미국의 경우를 이곳에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 드낙이었다.
어리석은 자도 노력만 한다면 일단은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 명의 엘리트가 나머지 일곱 명의 어리석은 관리와 함께 도시를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원래는 1:9지만 그래서야 골병든다.’
게제라스 총리같이 헌신적인 관리는 드물다. 거기에 그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는 괴짜였다. 괜히 가문에서 내쳐진 게 아니다.
‘그렇기에 3:7이다. 그 정도는 얼추 해내겠지.’
대단히 시험적인 일은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 미국의 단점을 보완할 생각도 가졌다. 최소한의 상식을 알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미국인은 어리석으니까.’
미국인조차도 인정하고 또 인정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일 정도로 미국인의 무식함은 도를 넘는다.
물론, 모든 나라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바보들이 존재한다. 인구가 많다면, 더욱 자주 드러나게 된다.
“세 명의 엘리트 관리와 일곱 명의 슬럼가 출신 관리로 묶을 것이다.”
“허……!”
그 말에 절로 탄식이 쏟아졌다.
‘지, 지독하다……!’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내 동료가 아무것도 모르거나 단기간의 교육을 받고 배정되었다면? 혹은 현장 지식을 대단히 쌓고 오지 않았다면? 끔찍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했다.
죽은 지식을 가지고 기업에 입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놈이 내 후임이고, 내 동기고, 내 상사가 될지도 모른다.
“히끅.”
누군가가 딸꾹질을 한 번 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상이 몸을 헤집었다. 공포가 서렸다. 이 세상의 모든 문인은 빡빡하게 공부한다. 귀족이 되지 못한 자이기에 그것만 부여잡아야 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3:7의 법칙대로면 실력이 없는 자도 관리가 될 수 있습니다.”
공부한다고 관리가 될 수 있는 문인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되레 지금이 더 경쟁률은 낮았다. 그런데도 항상 관리가 되지 못한 문인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경쟁이 발생하고, 싸움이 일어난다. 드낙 때문에 본격화되지 않을 뿐, 그 경쟁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도시에 그런 식으로 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서 공부하겠습니까? 살아있는 지식을 배운 이들에게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세 명을 배치해 준다는 것 아니겠냐.”
“……?”
“왜? 한 명이 아홉 명 감당할래?”
“예?”
“한 명 할래? 세 명 할래?”
그제야 이들은 드낙이 원래 1:9의 법칙을 뉴에이지 시티에 적용하려고 한 것을 알게 됐다. 무서운 일이다. 제대로 된 엘리트가 하나. 나머지 아홉은 덜떨어진 놈들이다.
모두 감히 입을 열지 않았다. 머리를 굴리며 계산기를 두들기기 바빴다.
‘문인 관리는 최소 5천 명은 뽑을 것이다.’
그마저도 최소다. 적어도 8천 혹은 그 이상이 있어야 한다.
경찰까지 생각한다면 1만~2만이 넘는다. 이를 3:7의 법칙으로 조정한다면 답도 안 나온다. 되레 쓴소리가 나오고 사건이 터질 것이다.
더 깊게 고민하기도 전에 드낙이 냉큼 본론을 꺼냈다.
“하지만 그래서야 그대들이 힘들겠지. 그렇기에 관리 한 명에 준 관리를 두어 그들을 곁에 두어 많은 걸 가르쳐줬으면 한다.”
엘리트의 밑에서 수학하다 보면 깨닫는 바도 많을 것이고, 살아있는 지식을 깊게 체득할 터였다.
그게 드낙의 진짜 흉수였다.
‘팍스 아메리카는 무슨. 개똥이나 먹어라.’
그건 그저 이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입을 턴 것에 불과했다.
“각각의 세력에서 특별공시를 시행해라. 똑같이 나누어서 뉴에이지 시티 관리로 쓰겠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베테랑 경찰과 일반 경찰을 둬서 그들의 노하우를 가르쳐 뉴에이지 시티를 안정시켜라.”
“그 뒤에는 어찌 됩니까? 대체 됩니까?”
“원한다면 계속 뉴에이지 시티에서 일하도록 해주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엘리트 곁에 뉴에이지 시티의 시민이 한 명씩 붙어서 교육을 받게 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경쟁자가 이를 챙겨가면 일단 이득이 생긴다. 그 이득은 세월의 힘을 빌려서 눈덩이처럼 불어날 터다.
“하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수작질을 하라고 온 세력의 지도자들이 냉큼 답했다.
“뜨나아아아악!”
대장 쥐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하 연합의 행정과 법률은 게제라스 총리의 제도를 재구성했기에 바로 현장에 투입할 관리도 여럿 두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며 드낙은 차가운 눈을 했다.
그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의외로 천한 핏줄, 형편없는 배경 속에서도 인간은 반질반질 빛을 내는 별이 될 수 있었다. 문관의 경우 더더욱 개천의 용이 될 수 있다.
‘뉴에이지 시티는 그 발판이 될 것이다.’
없는 이들이 문관으로 진출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고, 그 새로운 역사의 선두 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