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3화
* * *
드낙이 움직였다.
그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스스로 하겠다고 공언했고, 그 음성은 전 대륙에 있는 모든 필멸자들이 알 정도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논공행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게 드낙이었다.
싸우다 죽은 이들의 가치가 그 정도로 대단했다. 게다가 평화를 이룩해 냈다. 다양한 종족이 살아가면서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세상이 이토록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드낙 덕분이었다.
이는 진실로 그러했다. 약간의 과장 홍보가 있었지만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파리아스조차도 품고 있는 게 다종족 연합이었다.
신제국의 황제를 마주한 이들은 드낙의 역량이 바다보다도 넓다는 걸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자신의 아래에 둘 수 없는 자를 두고 있는 셈이다.
세파리아스를 한 번이라도 겪고 나면 열이면 열 모두 자연스럽게 드낙을 칭송하거나 대단하게 생각하게 된다.
황당한 결과라고 하기에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지닌 존재감과 기질이 너무 크고 특별했다.
세파리아스가 위엄을 내뿜을수록 드낙에 반사이익을 얻는 셈이다.
그 탓에 드낙의 중대 발표는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다. 너도나도 그 발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던 일을 멈추는 곳까지도 있었는데 당연히 뿔 쥐들의 사업장이다.
그곳의 노동자들은 먹거리까지 제공되었다. 대학을 전공하는 똑똑한 자들도 먹을 것을 제공하면 교수의 강의에 좋은 점수를 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처럼, 뿔 쥐들은 먹거리가 지닌 힘을 잘 알고 있었다.
“크으으으! 뻑예!”
강렬한 도수의 포도주를 마시며, 노동자가 김을 펄펄 쏟아내는 만두를 한 입에 집어넣었다.
“헙! 흐! 하! 훕!”
뜨겁고 괴로워 고통스러웠지만, 그게 재미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만두를 한 입에 집어 먹고 싶어졌다. 체통을 차리기에 큰 만두를 맛나게 먹는 방법은 크게 한 입에 먹는 거다.
맛난 간식을 먹으면서 뿔 쥐들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드낙의 모습이 보였다. 마법으로 인해 저장된 영상이었다.
[사랑받는 시민 여러분.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는 초월자지만, 여러분들은 차원 전쟁에서 큰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저를 도와서 적과 싸웠지요. 지금 이 순간의 평화는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만든 것입니다.]
드낙은 그들을 먼저 치하했다. 생쇼나 다름없었지만 립서비스도 못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말은 항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입을 한 번 털고 난 다음에 드낙이 본격적으로 빌드업을 시작했다.
먼저 인구 증가에 대해서 말했다. 수많은 지표를 보여주며 말을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우상향을 그리고 있었으며, 버블 경제처럼 무지막지한 속력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인구 증가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지금의 인구를 감당하려면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합니다.]
드낙은 결코 인구 억제 정책을 펴지 않았다. 그들은 다가올 전쟁에 동원될 것이고 용감히 맞서 싸워야 했다. 악마와의 전쟁을 우습게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우습게 보더라도 더욱 덩치를 키워야 한다.
5천만 인구가 지닌 군사력과 경제력. 3억, 5억, 20억이 지닌 군사력과 경제력은 판이하다.
‘인구가 깡패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병신 머저리, 똥만 싸고 다녀도 인구가 많으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한다. 시끄럽게 떠들어대어도 물건을 안 받겠다고 하면 쩔쩔매기 일쑤다.
그렇기에 인구 증가율은 어떻게든 계속해서 유지해야 했다.
[모든 이들이 진정으로 식량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대! 전에 저는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차원 전쟁 이후에는 아무리 생산해도 못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제 저는 그들을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더 많은 식량! 더, 더 많은 식량! 모든 이들이 만족할 때까지! 식량과의 대애애애전쟁을 시작하겠습니다!]
드낙이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외쳤다. 이에 노동자들도 고함을 내질렀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두 팔을 벌려 노래하리라.
“위대한 초월자! 우리들의 신!”
그의 당찬 선언에 모두가 좋아했다. 점점 공짜로 오는 고기의 양이 줄어들고 있어서였다. 식비가 점점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었다.
[다만! 저 혼자서 해결할 일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주술사, 마법사들을 소집할 것입니다. 마법사 소집령은 한 달 이내에 이루어질 것이며 그들이 사라진 빈 공간 때문에 불편함이 클 겁니다.]
드낙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불편함은 한 두 가지가 아닐 겁니다. 마치 시대가 역행하고 있는 기분마저 들게 될 것입니다.]
그는 수많은 불편함에 대해서 노래하고, 이를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 누구도 불평불만을 그에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초월자다. 필멸자와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진정으로 그에 대한 험담과 음모를 흩뿌리고 다닌다면 쉐도우 위스퍼에게 소리 소문 없이 잡혀서 고문당해 가죽이 벗겨져 죽게 될 것이다.
신성모독에 대한 건 뿔 쥐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의 기득권층도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오히려 뿔 쥐와는 다르게 그들은 그를 잡아들여서 기록하여 ‘밑에 것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낙에게 보여줄 것이다. 계속해서 밑으로 쏟아부어 지고 있는 세금을 생각하면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세금의 뽕 맛을 못 본 지 오래된 이도 있었다. 가진 자들에게는 이득이 없는 편이다. 벌면 벌수록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도 화가 났다. 단지 그 대상이 드낙이라서 분노를 낼 수가 없을 뿐이다.
기득권조차도 드낙의 눈치를 보는데, 그 밑의 사람은 당연한 일이다.
드낙의 중대 발표에 가장 먼저 일어난 사회현상은 당연히 아티팩트 사재기 현상이었다.
“비켜!”
“와아아아아!!”
명품백을 위해서 내달리는 여성처럼, 90% 세일하는 램을 향해 질주하는 유부남처럼.
사람들은 거칠게 내달리며 하나라도 더 사려고 했다. 특히 마력이 들어있는 충전용 중급 물약은 한순간에 동날 지경이었다.
그 현상은 마법사들이 실제로 드낙이 말한 소집령을 받고, 떠나기 시작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진짜라더라. 오늘 도시에서만 100명이 소집령을 받고 떠나갔어. 그래도 텀을 두고 있긴 한데, 한 달 만에 마법사들 싹 사라지게 생겼다.”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잘 생각해 봐. 마법사가 사라진다고…….”
그 말에 그와 술집에서 대화하던 자가 잔을 멈칫한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조심해.”
“제기랄. 내 입도 제대로 못 놀리다니.”
불만을 지닌 이들은 있었지만, 크게 내뱉지는 못했다. 아무리 마법사들이 사라져서 큰 손해와 불편이 생겼다고 해서 드낙의 명분은 확실하게 존재했다.
“넌 식량 쪽에 투자를 제법 했으니까, 그렇지. 다른 사람 눈치를 봐야 해.”
“빌어먹을. 그때 내가 왜 개간사업에……. 에효! 술이나 마셔야겠다.”
무려 10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 프로젝트다.
식량으로 큰돈을 버는 이들은 드낙의 정책에 이빨을 아득바득 갈면서 신경통까지 느끼며 끙끙 앓겠지만, 그 혜택을 받을 이들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불편을 참을 만했다.
그 덕에 소수가 된 이들은 다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독재보다도 흉악한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대산맥은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곳이다. 옛 제국과 옛 남부 왕국을 구분 짓는 이 거대한 산맥은 백설 산맥보다도 위에 있는 곳이다.
그 덕에 남부 왕국에서는 대산맥과 백설 산맥을 하나로 해서 백설 산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백설 산맥도 더는 가치가 없지.’
오크들은 오션 오크가 된 지 오래였다. 남은 이들도 있지만 드낙은 그들 또한 강제로라도 해안 쪽으로 보낼 생각을 지녔다. 반항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현실이다.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초월자 만세! 만세! 만세!”
드낙의 부름을 받은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드낙을 크게 찬양했다. 마법을 배운 이들에게 있어서 드낙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다른 필멸자들처럼 드낙에게 불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완벽하게는 아니었지만, 드낙의 강대함을 스스로 체감하고 있었다.
‘나와 비교하는 것조차 모독이다.’
그렇기에 100%, 모든 마법사들은 드낙의 부름에 응했다. 다른 초월의 힘을 다루는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사들은 그러하지만, 주술사들은 조금 달랐다.
드낙의 연설과는 다르게 드낙이 오크들에게 따로 요청한 일이 있었다.
“도와다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오션 오크들은 드낙 덕분에 크게 성장했고, 거대한 나라를 세웠다. 믿을 수 없는 신세계가 열렸고, 엘프들이 만든 배를 타고 바다와 싸우는 뱃사람이 되었다. 그 덕에 새로운 타투도 생겨났다.
오크는 정말이지 바다와 잘 어울리는 종족이었다. 그렇기에 그들도 드낙의 부름에 응했다. 드낙이 조금 정치적으로 뒤에서 부탁하기는 했지만 만족했다.
‘100억 식량 프로젝트를 통해서 식량 문제를 다시 한번 해결하고, E 스포츠에 집중한다.’
드낙은 마법사와 주술사 등등 모든 이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대우해 줬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것이기에 얼굴이라도 한 번은 비춰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함께 있는 사진까지 담아서 수정구에 각인시켜 건네주기도 했다.
물론 급료도 충분히 받는다. 엄청난 이벤트인 셈이다. 그 덕에 그들의 사기는 대단히 높아졌다.
한 달에 걸쳐서 마법사들과 주술사들을 빠르게 모으고 난 뒤에 드낙은 본색을 드러냈다.
“마법사는 산맥의 동쪽 끝. 주술사는 서쪽의 끝에서 시작한다. 최대한 많은 흙을 파내서 마차에 실어라.”
본격적으로 흙을 마법이나 주술을 통해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무식하게 채광하지 않은 까닭은 이 세계는 수학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산을 파내는 건 위험한 일이다.’
거기에 대한 노하우도, 전문가도 없었다. 무리해서 사람의 손으로 산을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드낙은 간단하게 고급 인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편이 더 빠르기도 하고.’
둘로 나누어서 끝과 끝으로 보내고 난 다음에 드낙은 대산맥의 중앙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사는 괴물과 야수는 죽은 지 오래였다. 오크들의 무분별한 인구 증가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일이다.
‘멸종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 싹 털리는 것처럼, 오크들은 타투를 위해서라도 사냥을 해야 하는 종족이었다. 그들의 숫자가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괴물도 씨가 마를 수밖에 없다.
이 세계의 야만은 사라지고 있었다. 아주 빠르게.
드낙은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나는 초월자의 격에 올라섰다.’
그건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신이었다면 권능을 만들어 수많은 챔피언을 만들어 이 차원계를 지켰을 터다. 악마였다면 별을 파괴할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필멸자를 가꾸는 정원사. 다른 하나는 밭을 파헤치는 멧돼지.
그게 신과 악마의 관계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낙은 멧돼지다. 밭을 파헤치는 악마다. 포도를 탐하려고 하는 여우였다.
‘그래도 난 괜찮은 편이지.’
드낙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작은 씨앗을 바라보았다. 한 번 억누른 신격은 짓눌러졌기에 더 강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떡잎부터 남다르다.
‘이게 개화하는 날, 중립신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한 번 짓밟혔기에 더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그건 신이라고 하기에는 강하고,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약하다. 그 중간에 있는 무언가였다.
싹싹!
드낙은 손을 비비며 오랜만에 제대로 난동을 부릴 생각을 가졌다.
‘해볼까.’
그의 머리가 우드득 소리를 내며 뚝 떨어졌다. 끔찍하게 참살당한 것처럼 피가 쏟아져 내려왔다. 그것은 뼈가 되고 살이 되었으며, 이내 넓게 펼쳐졌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악마의 피는 서서히 드낙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육체 변이는 악마의 특권은 아니다.
다양한 초월자들도 육체를 변이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덩치를 크게 만들거나 작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현실에서 대단한 장점이다.
악마의 육체 변이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월한 능력이다. 육체 그 자체가 악마의 권능이라고 할 수 있어서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산을 운반하는 악마. 난 진정한 초월체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