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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52화 (1,051/1,239)

1052화

그래서 드낙은 단호박처럼 거부했다. 게제라스의 말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게제라스는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전쟁에 참여했고, PTSD를 앓으며, 끝없이 대우를 받아야 하는 차원 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예산에 대해서 논하였다.

“절 은혜도 모르는 이라고 욕할지는 모르겠으나, 삭감을 해야 합니다.”

그가 봤을 때, 이미 죽어 바스러지고, 사회에서도 대단한 생산성을 보이지 않는 참전용사들과 그 유족들은 사회를 좀먹는 벌레는 아니었지만, 너무 큰 파이를 먹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너무 기분을 냈다고 생각하는군.”

드낙은 실로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게제라스 총리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돈이 없다는 소리였다.

돈이 없으면 계속 화폐를 제조해서 풀 수밖에 없고, 그게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너무 거대하고, 복잡했다.

‘엘프 화폐까지 끼어들었으니.’

난리도 아닐 터다.

호황이라 닥치는 대로 이끌고 가고 있었지만, 걱정은 게제라스 총리가 해야 한다. 최대한 국가가 화폐의 유동성을 지켜야 했다. 그러려면 국고가 든든해야 했다.

“게다가 도렌 국왕이 자신의 영토에만 기본 소득제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돈은 대부분 필수소비재를 사는 데 소모되지만, 결국은 돈을 주는 일이다. 빚도 아니고, 갚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건 대단히 위험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 어떤 행동도 없이 돈이 들어오는 일이기에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럼 농업 골렘이나 축산 골렘도 다 부숴야 하냐? 공짜로 만들고 있는데?”

한 번 만들면 우월한 마도 기술 탓에 고장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런 골렘이 만들어내는 생산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밤낮없이 일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지구인들을 포획하면서 그들로부터 제대로 된 현대과학을 통해서 비료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해에만 시장 경제체제를 위해서 170조의 식량을 버리는 미국 같은 짓거리를 안 하는 이상, 다종족 연합은 10년 이내에 식량을 해결할 수 있었다.

현대 과학과 마도 기술을 총집합해도 식량 해결이 난해한 점은 인구 증가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결국 또 식량이군.’

드낙은 확 짜증 나는 걸 느꼈다.

전쟁이 예정되어 있다. 인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식량의 증가와는 달리 다종족 연합의 인구 증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현대지구는 1950년대에 24억에 불과한 인구를 지녔지만, 60년 만에 75억이 넘었다. 하지만, 다종족 연합은 그것보다 더하다. 지하 연합과 엘프 그리고 오크 때문이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 현대지구보다 더욱 빨랐다. 그것도 전쟁특수 상황으로 더 많은 이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전쟁 이후 출산율은 21배 더 증가한 상태다. 미친 듯이 낳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오크는 공동육아가 기본이기에 애를 낳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다. 빌딩같이 큰 건물에서 아이들이 함께 자란다.

전쟁 이후의 평화를 노래하는 시대였으며, 굶어 죽는 슬럼가의 건너편에서는 돈 잔치가 열리는 세상이었다.

부의 분배를 위해서 노력해도 거기에 닿지 못하는 이들은 언제나 수두룩하게 빽빽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드낙은 게제라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참전용사들과 그 유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의 반절만 돌려도 더 많은 이들이 최소한의 행복을 가진 채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래도다.”

“산 사람이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전쟁이 예정되어 있는데 인구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만, 지금의 인구 급증에서 할 수 있는 건 해야 합니다.”

“미래를 담보로 잘 사는 꼴이다. 지금이 힘든 게 낫다.”

“그때는 또 그때 고민하면 됩니다. 드낙 님의 역량을 생각하십시오. 우리 다종족 연합은 계속 팽창하고 있습니다. ‘큐브’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완성된다면, 마력 자원의 혁명이나 다름없습니다.”

계속 큐브를 쌓아가며 소형화시킨 폭풍의 요람을 끝도 없이 쌓는 드워프 제국의 탑이다.

그런 미래를 게제라스 총리가 말했다. 드낙에게 애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래의 일로 어찌 지금을 이렇게, 저렇게 말하겠냐?”

오늘 거래한 주식이 내일 오르느냐, 마느냐를 논하는 것과 같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지금 피 흘리는 게 낫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그게 옳다. 역사는 항상 다음 세대가 판단하는 것이니까.”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 총리가 더욱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상처를 입어왔다. 도저히, 현재 사는 이들의 고통 어린 삶을 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자기가 죽고 나서 그 꼴을 보고 싶었다.

물론 그건 그만의 생각이었다. 드낙은 그의 수명이 다할 때, 바로 신으로 끌어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끝없이 드낙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현실과 이상은 다릅니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대를 위해서 노래하는 건 아름답다. 하지만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결국, 그들을 위해서 돈을 주는 건 현재를 사는 이들의 혈세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누구도 죽은 이를 위해서, 죽은 이의 유족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표를 던지는 이는 없었다. 잔혹한 현실이다. 그 대신에 국방비를 높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지나간 걸 보는 건 사치고,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는 놈이었다.

그 현실이라는 놈과 맞서 싸우려면 매일 같이 묘지에 꽂는 생화 대신, 매년 놔둬도 썩지 않는 조화를 놓아야 한다.

그 끔찍한 것이 현실이란 놈이었다.

돈이 없어서 자신의 동생조차도 보러 가지 못하는, 노년에 폐지 줍는 늙은 영웅의 뒷모습을 위해서 돈을 주는 이들은 없다. 오늘 살 담배가 더 가치 있었다.

“그들은 명예롭지만, 계속된 혜택은 결국 다른 이들이 빚을 지게 만들고, 굶주리게 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는데 어찌 그들에게 돈을 주겠습니까? 슬럼가를 타파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합니다.”

“송전탑을 비롯한 전선을 위해서라도 그들에 대한 지원을 소폭이라도 감소시켜야 합니다.”

게제라스 총리의 말에 드낙이 쓴웃음을 지었다.

게제라스 총리는 최소한 1할이라도 감소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걸 드낙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사람 욕심이 그렇지.’

지금 당면한 이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들이 중요한 법이다.

“그렇기에 내가 너를 중용하고, 국제 연합 도시의 총리직에 세웠다. 해결해라!”

드낙이 고함을 지르며 일어섰다. 게제라스 총리가 그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네 재능은 여기서 끝나는 거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정말로 한계인가? 게제라스?”

“그건…….”

그가 입을 우물거렸다.

게제라스에게 모든 수단을 동원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과 교류하고 그들과 사업을 했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속에서 빚을 지기도 하고, 은혜를 베풀기도 했다.

빚조차도 그들과의 교류였으며, 빛처럼 반짝이는 진주와도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전력을 다하고 나서 말해라. 그리고 나 또한 제대로 움직여보겠다.”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식량부터 해결한다. 내가 나서겠다.”

드낙이 식량과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선포했으며,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현대지구의 인구 증가보다 더욱 빠른 다종족 연합의 식량난을 해결하고, 슬럼가의 모든 부랑자들을 고용하거나 굶주리지 않게 만들 생각이었다.

‘하나부터 착실하게 해결해 보자.’

드낙은 그대로 다시 앉았다. 게제라스 총리에게 손을 까딱거렸다.

“여기 앉아봐. 정말 개쩌는 걸 말해 줄 테니까.”

그가 다가와서 소파를 마주 보며 앉았다.

“식량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근본적인 걸로 접근한다면?”

“그야… 땅…이 아닙니까?”

“땅이지.”

드낙이 손을 튕겼다. 딱 소리가 났다.

“…중립신이 만든 행성 에너지는 다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행성은 자연적으로 커지지 않는다. 중립신이 남은 것을 깡그리 털어갔기 때문이다. 간을 보다가 드낙이 바쁜 것 같자 바로 깡그리 긁어서 가버린 것이다. 중립신은 막판에 바짝 베팅해서 재미를 보고 사라졌다.

“그래도 조금은 남아있긴 하지.”

“그걸 이용해 볼 생각이십니까?”

게제라스 총리가 흥미로운 눈을 했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간을 보다가 결국 테라에 녹아있는 자신의 힘을 회수한 중립신은 정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단한 놈이었다.

그 덕에 드낙은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행성은 더는 커지지 않는다. 드낙은 아직 신의 반열에 올라가지 못했기에 ‘행성’을 상대로 한 권능을 행성에 부여할 수도 없었다.

다만 미련이 남아있었다.

‘언젠간 행성 하나에 몰빵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도시 하나를 끝도 없이 발전시키듯이 행성 하나만 무지막지하게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드낙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은 적어도 대신(大神)으로 거듭나야 가능할 것이다.

“다른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산을 없앤다.”

드낙이 손을 놀렸다.

마법이 순식간에 펼쳐지며 세계의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대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옛 제국의 땅이 클로즈업되었다.

수많은 지형이 게제라스 총리의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시선을 끄는 건 옛 남부 왕국과 옛 제국의 사이에 존재하는 대산맥이다.

“이걸 싹 밀어버리고, 곡창지대로 쓰면 한 해에 얼마나 많은 곡식이 나올 것 같나?”

“허!”

게제라스 총리가 감탄했다.

머리가 깔끔하게 씻긴 듯한 기분이었다. 보통 산맥 지형을 바꾼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고, 환경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니다. 이 세상엔 악마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초월자의 힘으로 산맥을 밀어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겠지. 하지만 다른 이들까지 돕는다면?”

“가속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 흙과 돌을 서쪽 바다로 옮겨서 간척사업을 벌이면 더 넓은 땅을 얻을 수 있겠지.”

대륙 땅을 더 넓힐 생각도 가졌다.

행성 테라는 하나의 대륙만 있는 판게아 지형이었다. 대신 바다의 양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행성 하나를 모두 개발해야 한다.”

드낙이 눈을 빛냈다. 이 행성에서 쓸데없이 소모되고 있는 자원을 모조리 통제할 생각을 가졌다.

‘무슨 무슨 이론에 따르면, 행성에 있는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소유하게 되면, 뭔가 시대가 바뀐다고 했다.’

풍력부터 시작해서 수력을 비롯한 행성에 존재하는 모든 자원을 극한의 효율로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태양 에너지도 존재했다.

‘그 막대한 에너지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모든 종족이 연합하여 힘을 더해야겠지.’

드낙이 냉철한 눈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닿기에는 길이 멀었고, 그사이에도 필멸자들은 수명이 다해서 죽어간다.

모든 것을 다 함께 가져가야 한다. 모든 이들을 반신이나 반마로 만들어 수명을 증가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드낙이 말하는 미래를 마주한 게제라스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까마득하다.’

당장 지금만 해도 아직 전 대륙에 존재하는 마력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엘프들의 마도 기술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는 ‘폭풍의 요람’은 일정 범위 내의 마력만 끌어당기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 대륙에 이를 설치해야 했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생산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과학을 통해서 그 외의 자연에너지까지 이용하려면 끝도 없었다. 아무리 발전해도 그게 가능할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너무 먼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하하. 그렇겠지.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도 않다.”

드낙은 게제라스의 엄살에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드낙은 수많은 탐욕과 비리를 척결하며 끝없이 선순환을 만들어낼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부자들처럼 수천조를 은행에 처박아두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계 전체를 개발해야 한다는 건, 그만큼 포부가 있어야 하고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엘프조차도 타락하고, 비리를 저지르고 게으름을 피운다. 인간도 말할 것 없다. 오크 또한 범죄자가 존재했다.

그 모든 분쟁에서 생기는 손해를 감당하며 막대한 발전을 이룩해야 했다.

‘범죄자 따위에게는 그 어떤 자원도 필요 없다.’

결단을 내릴 것이다. 지금은 범죄자의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교도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것도 미래에는 없앨 것이다.

그들이 삼시 세끼 처먹는 식량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현대 다종족 연합의 검거된 범죄자들의 숫자만 해도 500만 명에 달하고, 그들이 먹는 식량만 해도 하루에 1,500만 인분이 나간다.

‘그걸 슬럼가에만 투입해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범죄자들을 노예처럼 부려서 다른 자원을 생산하고 있어서였다. 단순히 그들 노동력을 싸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명은 정해 두셨습니까?”

드낙이 한 말들을 기록한 게제라스가 물었다.

이에 드낙이 답했다.

“100억 식량 프로젝트.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행성 100% 개발도 프로젝트명을 정해서 다른 곳에 전달하도록 해라.”

“예!”

게제라스 총리가 크게 목소리를 드높였다.

당장 드낙이 농사일을 하겠다고 했다.

아래 사람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 실로 절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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