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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 1.
인류와 외계 종족들 사이의 분쟁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이었음에도 대단히 성공했다. 거기에는 게임성도 한몫을 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을 통한 ‘인연’이 있었다. 우주 전쟁 1을 모르면 교우관계도 힘들 정도였다.
박호훈은 돈이 없어서 pc방에서 친구들 하는 걸 매번 구경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친구 중에서 용돈이 없는 건 그가 유일했다. 폐지를 주워서 팔고, 음식점에서 빈 병을 받아와서 돈을 벌어 PC방에 갔었다. 구경만 해도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다 알 정도로 오래 구경했었다.
‘오랜만에 해보네.’
달칵, 달칵. 마우스를 만졌다.
“연습 게임은 세 판이다!”
“알았다.”
드낙은 세파리아스에게 멀티 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모든 것이 번역되어 있었는데, 그만큼 구시대의 유물 같은 게임이었다. 이 게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 즉시 카피하고, 언어 패치를 시행해서 이곳까지 가져왔다.
‘초보만 원하는 우주 전쟁의 멀티. 그걸 맛보여주지.’
10년, 20년이 지나도 초보만 원하는 방이 수두룩하게 빽빽한 것이 우주 전쟁의 멀티였다. 영혼의 싸움보다는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걸 좋아하는 게 대다수의 우주 전쟁 유저들이었다. 패배하는 걸 두려워할 정도로 너무나도 고여버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드낙은 자신의 닉네임을 고민 끝에 결정했다.
Boxer.
‘이거 안 하면 간첩이지.’
세파리아스는 자신의 이름을 그냥 썼다.
[5… 4… 3… 2… 1…….]
게임이 시작되었다. 세파리아스의 종족은 당연히 인간이었다. 반면 드낙은 자르그를 선택했다.
‘놈. 진짜 우주 전쟁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우주 전쟁은 척 봐도 온갖 고급 유닛이 존재한다. 서서히 성장하며 대규모 싸움의 화끈한 맛을 보고 싶었다. 인구수가 200인데 꽉꽉 채워서 싸우지 않는 건 죄악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드낙은 그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았다. 그저느긋하게 돈을 모아서 일꾼 하나를 소모해서 건물 하나를 짓고, 자르굴링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자르굴링은 일꾼을 생산하는 것과 같은 비용인데도 하나의 알로 두 개의 유닛을 생산할수 있는 사기적인 유닛이었다. 한 개 구매하는 값으로 두 개를 먹는, 혁명과도 같은 유닛이다.
‘정찰도 성공했다. 가깝다……!’
드낙의 표정이 단번에 좋아졌다. 그대로 자르굴링을 보냈다.
‘무조건 성공하는 거지.’
자르굴링이 빠르게 달려갔다. 스피드업을 하지 않았지만, 기본 속도가 준수했다.
‘응?’
드낙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입구에 올라갔는데 건물이 이를 막고 있었다.
‘심시티를 모를 텐데? 입구를 막았다고?’
황당했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세파리아스는 귀족 교육을 받은 자였고, 당연히 ‘축성술’에도 조예가 있었다. 인간이 외적을 막기 위해서는 좁은 길목에 성을 지어서 길목을 차단해야 한다. 가장 어리석은 자라도 그건 알 수 있었다.
조금은 비효율적이지만, 그래도 일꾼이 돈을 캐는 것을 모조리 건물 짓는 데 사용했고, 군인도 하나 뽑아놓은 상태였다.
다다다다다다!
6연발짜리 총을 쏘는 군인의 점발사격에 자르굴링이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드낙은 일단입구 아래로 내려가서 후퇴했다.
‘세파리아스가 제법 할 줄 아는걸?’
하지만 게임은 게임이다. 드낙은 서둘러 일꾼을 뽑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세파리아스에게 자르굴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위협을 느끼고 군인을 더 뽑을 게 틀림없었다.
그 덕에 싸움은 중반으로 넘어갔다. 드낙은 중구난방으로 멀티를 확장했다. 신체스펙이 좋아지니 전과는 다르게 확실하게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건 세파리아스도마찬가지였다.
무를 수련한 세파리아스의 집중력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었다. 세파리아스는 시야 또한 뛰어났다. 효과음을 통해서 들려오는 경고음도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미니맵 또한 꾸준히 볼 수 있었다. 남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시작부터 남다르다고 봐야 했다. 캠페인을 하면서 익숙해진 것도 컸다.
그 속에서 드낙은 세파리아스가 AI 같다고 느꼈다. 병종이 난잡하고 다양하기 짝이 없었다. 초반에 쓰는 기본 유닛부터 시작해서 기계나 차량, 전투기와 수송기까지 닥치는 대로 생산해서 썼다.
반면 드낙은 척추뼈를 사출하는 독뼈괴물과 자르굴링을 사용하며 중반에 중앙싸움을 유도했다. 다른 생산거점을 곳곳에 지어 두고 자원을 취득하고 있었기에 중앙에서 싸우고 빠지 고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상대적인 이득이다.
드낙은 욕심을 부렸다. 수송 괴물을 통해서 적의 본진에 들어가서 세파리아스의 본대를 분열하게 하였는데, 세파리아스도 본격적으로 수송기를 통해 게릴라를 시작하게 되어서였다. 적이 사용한 전술을 자신의 것으로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성장하는 괴물이다.
이를 마주한 드낙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게 다가 상대는 온갖 유닛을 마구잡이로 쓰는 놈이다. 상성 자체가 통하지 않았고, 대처가 다양했다.
“…….”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지면 안 돼! 지면 안 돼!’
드낙은 마치 한국인 수천 명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감각마저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진다? 아마 앞으로 한국어는 고사하고 중국어 내지는 일본어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게임은 후반까지 넘어갔다. 거기서 드낙의 난잡한 생산거점 전술이 빛을 봤다. 자원 취득량이 아득하게 높았다. 모아놓은 자원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세파리아스가 게임을 나가버렸다.
“세파리아스, 나름 잘하는데?”
드낙이 냉큼 다가왔다. 사실 세파리아스가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다. 변수가 많았지만세파리아스는 일단 버텨냈고,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인간을 선택했기에 소비를 잘할 수 있었던 거지만…….’
세파리아스는 벙커와 공중으로 띄울 수 있는 건물을 톡톡히 이용했다.
“이걸 스포츠로 삼는다고?”
“그래, 어때?”
“나쁘지 않은 취미가 될 것 같군.”
세파리아스는 멀티를 하면서 ‘상대적’인 싸움이 계속해서 벌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실로 훌륭한 교훈을 줄 것 같았다. 전쟁은 상대적이고, 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패배할 수 있었다.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게 이 게임이었다.
절대적인 가치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 외로 재미도 있었다. 변수가 많아서다. 부수고, 파괴하고, 죽이는 광경도 일품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즉, 손해보다 이득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연습 두 판째 갈까?”
“더해볼 필요도 없다.”
세파리아스는 곧장 일어났다. 그는 드낙이 자신을 봐준 걸 잘 알고 있었다. 화면이라고 해도 상대의 역량을 모를 정도는 아니다. 그런 꼴에 놀아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흥미로운 여흥이었다.”
연습 게임이었기에 승리도, 패배도 없었다. 그건 연습이니까. 연습 게임의 승패를 두고, 떠드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프로답지 못하다.
“겁먹었나 보네. 뭐, 이해는 하지. 내가 너보다잘하잖아.”
“무슨?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거냐?”
“하하하하. 내가 모를 줄 알고? 질 것 같으니까, 안 하는 거잖아. 쿨병걸린 척하기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쿨병 걸린 애들이야.”
코피 터지면서 뭔가를 해본 적 없는 것들. 시니컬한 분위기에 심취해 있지만, 정작 진짜 심해 속으로 들어가 살아있으면서도 숨 쉬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들. 드낙은 그런 놈들이 가장싫었다.
용돈 없이 배가 고파서 슈퍼에서 껌을 훔쳐서 끼니를 때웠던 박호훈은 걷지 않으면, 발버둥을 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젊을 때 대학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과는 반대로 편의점, 공장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해. 하지만네놈 뜻대로는 안될거다.”
“좋아”
세파리아스는 바로 싸우지는 않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 먼저리플레이를 통해서 꼼꼼하게 검수 작업을 시작했다. 재미를 위해서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게임을 하는 프로게이머다운자세였다.연구하는 것이다.
‘오.’
드낙은 조금 감탄했다. 이런 게임에 진지하게 임하는 세파리아스의 모습은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 어떤 승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세파리아스는 놀리기 좋아 보였다. 연구를 끝낸 세파리아스가 입을 탁 열었다.
“하자. 연습 두 판째.”
그 뒤로 연습 두 번을 꽉꽉 채웠다. 세파리아스는 자르그 종족으로 실전에 임했다. 드낙은 자연스럽게 인간을 선택했다.
[5, 4, 3, 2, 1.]
진짜 실전, 그 한 판이 시작되었다. 드낙은 일꾼으로 미네랄을 캐면서 음흉하게 웃었다. 자신이 닉네임을 Boxer로 한 이유는 지금을 위해서였다.
일꾼 여덟 마리를 뽑으면서 병영을 짓고 곧바로 보급고를 하나 지은 뒤에 군인을 생산 누르고 출발했다. 정찰은 이미 성공한 상태였다. 거리가 멀었지만 상관없었다.
반면, 세파리아스는 앞마당에 생선 거점을 짓고 있었다. 그가 생각했을 때, 자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그르는 강해질 수 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두 개의 생산거점으로 많은 자원을 일꾼으로 캐면서 중반에 승부를 볼생각이었다.
“응?”
세파리아스의 눈이 좁아졌다. 적 인간 일꾼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놈들은 곧바로 벙커를 짓기 시작했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순식간에 판단해서 곧바로 자르그의 일꾼 괴물을 보냈다.
‘군인을 죽여야 한다!’
벙커 안에 들어간다면 큰일이 날 것이다. 하지만 드낙은 이를 보고 고소하게 웃었다.
‘세파리아스는 순식간에 이 게임을 파악했다.’
단순하다면 단순하기 때문이다. 보급이 중요하지 않은 전략 게임은 사실, 실제로 전쟁전문가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쉬워 보일 수밖에 없다. 그 덕에 세파리아스는 수십 가지에 달하는 전략과 전술을 이미 수립한 상태였다.
그가 봤을 때도 군인이 벙커 안에 들어간다면 앞마당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대적인 전쟁에서 자신의 피해는 상대에게는 더큰 이득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정표를 하나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 다.
세파리아스로서는 반드시 막아야 했다.
두다다다다다!
6연발 점사 소총을 한 번 쏜 군인이 허겁지겁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컨트롤 싸움 속에서 드낙이 웃었다.
사실, 이 게임에는 아주 화가 나는 것이 존재한다. 인간이 만들었기에 인간 일꾼의 체력이 다른 일꾼보다 무려 20이나 더 많다는 점이 다. 보면 볼수록 ‘왜?’라는 생각이 날 정도로 인간 일꾼의 체력은 대단하다.
게다가 세파리아스의 일꾼 괴물은 군인을 잡고 벙커에 못 들어가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결과.
드낙의 인간 일꾼이 되레 딜러가 되어서 괴물 일꾼을 잡기 시작했다. 결국 막아내긴 했지만, 괴물 일꾼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반면 드낙은 살아남은 일꾼을 되돌려서 다시 채광을 시작했다.
깔끔하게 군인 군대를 만들어서 화염방사병과 의료병을 앞세워서 순식간에 세파리아스를 6분도 되지 않아서 밀고 들어갔다.
“졌다!”
세파리아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웠다.
“한 판 더 할래?”
드낙의 악마 같은 속삭임에 세파리아스는 콧김을 내뿜었다.
‘제대로 간다!’
세파리아스는 이번에도 자르그를 선택했고, 드낙은 인간을 선택했다. 그리고 드낙은 이번에도 벙커 러쉬를 시작했다.
“또 이걸 한다고? 정신 나간 망자 놈아!”
“응, 또 당했죠?”
“한 판 더.”
세파리아스는 그다음에도 벙커 러쉬를 해버리고 말았다.
“우냐?”
서걱!
내리 세 판을 똑같은 전술로 진 세파리아스가 그대로 컴퓨터의 본체를 무처럼 베어냈다. 드낙이 깔깔깔 웃는 소리가 터져나갔다.
그 이후로 세파리아스는 우주 전쟁 1을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다만, 다른 이들이 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실제로 해보니 패배해도 재미가 있었다. 인간이란 모든 것에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위대한 상상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드낙은 신제국의 다른 이들에게도 의견을 묻고, 캠페인과 멀티를 경험하게 하였다. 대체로 호평을 들은 건 멀티였다. 캠페인은 호불호가강했다.
‘다시 세파리아스에게 물어볼까?’
내친김에 성공할지 말지도 물어볼 생각이었다. 근데, 그전에 관리가 와서 드낙에게 말했다.
“신황제께서 찾으십니다. E 스포츠 관련해서 궁금하신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겠다고 전해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