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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46화 (1,04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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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에필로그 (13)

크레시 미르는 세파리아스가 있는 신제국으로 향했다. 그곳의 수도는 밤이 되었음에도 불빛이 줄어들지 않았다. 화려한 빛으로 가득했다.

얼마나 많은 소비가 이루어지는지, 밤하늘의 별빛조차도 가릴 정도로 화려한 빛으로 가득한 곳이 신제국의 수도였다.

공산주의에서 자유 시장 경제를 드높이듯이 신제국 또한 전쟁, 또 전쟁을 외치면서도 끝없는 경제 성장을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 당연히 드낙의 경제체제 때문이다. 게다가 드낙은 ‘국가 기업’과도 같은 형태로 엄청난 사업을 국가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으며 세수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국가가 기업처럼 사업을 벌이는 것은 세파리아스가 보기에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저산업 부흥을 위해서 기업의 부채를 무이자로 사들이는 게 아니라 국가가 공격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중앙집권적 체제를 선호해야만 하는 세파리아스는 드낙이 하는 걸 자신에게 맞게 살짝만 변경하면 그만이었다. 세파리아스에게 있어서 현재의 경제 체제는 실로 마음에 쏙 들었다.

‘자본의 힘.’

단순히 밀을 판매해도 가격으로 중소기업을 싹 밀어버리고, 자신의 입김이 닿는곳에 취직시킨 뒤에 압도적인 독점 지배력을 갖춘다.

국가가 기업이 되는 셈이고, 그 기업의 총수는 세파리아스인 셈이었다. 드낙은 대체로 자유 시장에 맡기는 편이지만, 세파리아스는 아니었다.

또한, 국가에 속한다고 신제국의 관리들이 철밥통인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야 세파리아스라고 할 수 없다. 드낙은 자비로웠지만 세파리아스는 아니다. 드낙은 적당히 하면 되지만, 세파리아스는 아니다!

그런 사회 풍토임에도 신제국의 시민들은 진정으로 세파리아스를 위해서 일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신념이 존재했다. 신제국에는 인간을 모두 휘어잡을 정도의 큰 목표가 존재했다.

그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념을 지닌 인간은 어마어마한 동력을 지닌 기계다. 자신마저도 갈아 넣을 수 있다. 나를 죽여서라도 성과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신념이다.

순찰자, 기사. 그런 것들을 경험한 세파리아스는 시민들의 정신 무장에 대단한 공을 들이는 편이다. 특히 수도가 폐허가 된 것은 신제국시민들의 정신을 무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크레시미르가 수도에 들어섰다. 이미 수도는 복구된 지 오래였다. 엘프 정보탑이 우뚝 서 있었고, 도시의 밖에는 거대한 엘프 건축물인 폭풍의 요람이 고고하게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마력은 수도로 향하고 있었다.

크레시미르는 순찰을 하는 경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조금만 의심스러워도 몸을 수 색하고, 몽타주를 마법으로 각인한 뒤에 이것 저것을 묻기도 했다. 대부분이 풀려났지만 그런 행위만으로도 치안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크레시미르 왕자님을 뵙습니다.”

경찰들은 변장한 크레시 미르를 검문하기도 했는데, 그는 증표를 내보여주고, 마법을 풀어서 자신을 확실히 확인시 켰다.

신제국의 내성에 도착했을 때는 세파리아스의 말을 전하려고 그를 기다리는 관리 한 명이 있었다. 이미 연락이 간 것이다. 그 속도는 가히 전시(戰時)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치안확보를 하던 경찰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를 아는 이들이 밑에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크레시미르는 경찰의 재량권이 상당하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 또잠깐 빠져나와서 다른 일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치안이 잘 확보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방을 위해 꾸준히 검문하면서 시민들이불편하긴 해도 범죄를 저지를 놈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간단한 검문으로 큰 위기를 예방할 수 있었다. 시민으로 보여도 그 속은 검은 놈일 수 있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문관이 일을 봅니까?”

“예, 일이 재밌어서……. 하하하. 그리고! 위대하신 혈통을 모시는 일에 어찌 밤낮을 가리겠습니까?”

문관이 쾌활하게 웃었다. 야근을 함에도 피곤한 기스벅이 없었다. 무언가 다른 휴가나 휴식방법이 있는 듯했다.

“신황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무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 다.”

관리의 안내를 받았다. 이미 아는 길이었지만, 세파리아스의 호의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세파리아스가 그를 반겼다.

“손자가 이런 늦은 밤에는 무슨 일인가? 중요한 일이 아니면 이렇게 오지는 않을 텐데.”

세파리아스는 크레시 미르를 잘 알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족함이 없는 후손이 다. 때를 가릴 줄 알기에 이런 늦은 시간에 온 건 일이 있을것이다. 게다가…….

“도렌 국왕의 아래에서 지도력 수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예, 밑에서부터 올라가며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현실감각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높게 올라가면 밑이 세세하게 안 보이기 마련이었다.

“여기에 온 걸 보니, 그만둔 것이냐?”

“예, 제가 배울 점이 적었습니다.”

세파리아스가 흘흘 웃었다.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천한 하위 계급에게서 배울 점은 적어야 했다. 그들은 선택받지 못한 인간들이다.

“다행이구나.”

그 말에 크레시미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세파리아스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신제국의 아래에서, 힘을 기르고 싶습니다. 저 자신의 무력을 높이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영향무력을 배우고자 하는 건가?”

“예.”

이에 세파리아스가 조언을 해주었다.

“굳이 힘들게 무력을 얻을 필요가 있겠느냐? 다이앤타처럼 너도 악마의 길을 걸으면 되지 않느냐.”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이앤타는 태어나면서 가진 것이고, 크레시미르는 후천적으로 요구해서 가지게 된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세파리아스에게는 그게 그거였지만 크레시미르는 그걸 자신감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듯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아무래도 좋은 왕은 되지 못할 듯했다. 저런 것에 연연해하는 것만 봐도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남을 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은근히 크다면, 지배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죽는 왕만큼어리석은 것도 없다. 크레시미르는 그런 어리석은 왕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실로 실망스러웠다. 다만, 그는 세파리아스에게 왔다.

‘힘을 가지게 된다면, 서 있는 위치도 달라지는 법.’

보는 것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지는 법이다.

“오늘은 쉬어라. 내일부터 진짜 무(武)란 무엇인지, 그 탑을 쌓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게 될것이다.”

“감사합니다.”

세파리아스가 크레시미르의 어깨를 두들겨주고, 이내 주물렀다. 그 행위에는 강력한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크레시미르가 신제국의 뿌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선택한 일이었다.

다음 날 신제국은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소란스러움에 크레시 미르는 눈을 떴다.

‘나 때문인가?’

괜히 미소가 나왔다. 이런 먼 곳에서도 자신의 명성이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크레시미르는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부터 그는 새사람이 된다. 목욕하고 밖으로 나와서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던 차에 노크 소리가 났다.

“크레시미르 불파겐 왕자님! 드낙 불파겐님께서 오셨습니다!”

“헉?”

크레시미르가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문을 열자 방 내부에 있는 햇살이 문을 넘으며 어둠 속에 가려진 드낙의 모습을 비쳤다. 드낙은 크레시미르와 포옹하며 웃었다.

“하하하 상위국에 있던 네가 왜 세팔이한테 있느냐?”

“제, 제가 궁금하셔서 오셨습니까?”

“아니, 나도 따로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네가있다길래.”

“아…….”

‘그래서 난리였구나.’

초월자가 나타났으니, 난리가 날 만했다. 크레시미르가 오밤중에 왔을 때도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었다. 오늘 아침과는 확실히 비교해 보니 달랐다.

크레시미르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드낙은 이를 듣고 그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잘하고 있다.”

“가, 감사합니다. 아버지.”

드낙은 고생하라며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었고, 식사도 내친김에 크레시미르와 함께했다. 그사이에 크레시미르는 드낙에게 질문했다.

“무슨 일로 신제국에 오셨습니까?”

“응? 흐흐흐.”

드낙은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다. 크레시미르는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않고, 식사를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왕자가 돌아가고, 드낙이 움직였다. 그의 목丑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아니었다.

‘신제국, 그자체를 노린다.’

그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만신전(萬神殿). 300명이 넘는 인신(人神)들의 집합소.

현대 지구를 잡아먹고, 지배한 그들은 팽창을 시작했다. 우주 낙원의 건조가 그 시작이었고, 지금은 수십 대에 달하는 우주 낙원이 곳곳을 누비며 차원을 침공하고, 식민지로 만들고 있었다.

현대 지구의 달에는 인신들의 회의소가 존재했다. 대단히 비밀스러워야 하는 만신전의 회의는 달에서 논의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달은 신들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걸 막는 요새나 다름없다.

그곳에는 오랜만에 인신들이 모두 모였다. 이렇게 많이 모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지구의 우월한 생산성을 생각한다면, 인신들은 이미 성공한 인생이나 다름없었다.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신들의 땅을 노린 것과는 다르게 여신, 프레이를 따르는 인신들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패배했고, 이제 이곳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폈다.

굳이 힘이 있다고 해서 신들의 땅을 다시 향하는 건 잠깐 재미난 상상이었지만, 상상으로 끝낸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많은 인신이 한자리에 모인 건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오랜만이군, 레이어스.]

프레이는 일찌감치 와있었고, 뒤늦게 도착한 광기의 인신 레이어스를 반갑게 맞이했다.

[프레이, 이렇게까지 많이 모을 필요가 있나? 게다가… 카실레안까지 부르다니. 그는 지금 최전선에서 언데드와 싸우고 있을 텐데?]

그 말에 프레이가 눈을 부라렸다. 정신체였음에도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레이어스 기억을 못 하는 것이냐? 아니면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워서 잊어버린 것이냐? 그가 부활했다. 그런데 이렇게 늦은 시일이 되어서야 다 모이다니. 만신전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그녀가 혀를 찼다. 하지만 다른 인신들도 그녀에게 불만을 품었다.

[그래도 카실레안까지 부르는 것은 너무한것 아닙니까? 죽었을 것이라 여겼던 죽음이 전차원계로 검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 말에 프레이 또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딜레마나 다름없는 말은 그만하시오. 전선은 뒤로 내빼면 되는 것 아닌가.]

죽었던 죽음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전의 역사와는 또 다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전에는 ‘죽음’이 신들의 땅에서 활약했다면 지금은 정말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덕에 전술의 신 카실레안은 끝없는 언데드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 카실레안을 불러들였으니, 패배는 불보듯 뻔했다. 그런 걸 감수해서라도 그는 이 회의에 참석해야만 했다.

카실레안은 무려 여덟 개에 달하는 차원 다리를 건너 현대 지구의 달에 도착했다. 정신체였기에 순식간에 당도할 수 있었다.

빛이 터져 나오며 전술의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정신체는 흉터와 상처로 가득했다.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전술의 신 카실레안은 만신전의 인신 중에서 단기간에 성장하여 전투력 1위로 측정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수많은 전쟁에서 전공을 세우고 있으며, 끝없이 칭송받고, 대우받아야 할 인신이다.

[먼 길을 오느라 고생했다, 카실레안. 전황은어떤가?]

[끝없이 쏟아지는 언데드의 군세를 막는 하루뿐이지.]

노머니가 담백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프레이는 노머니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변명하기 시작했다.

만신전에서의 서열은 프레이가 높았지만, 카실레안은 만신전에 없어서는 안 될 용장?胃將)이다.

[죽음의 군세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건 나도안다. 그러나 그들은 목표가 없는 질병에 불과하다.]

[여신이시여. 제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 어떤 자도 양면 전쟁은 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언데드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불렀다.]

프레이의 말에 카실레안은 환멸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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