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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힘들겁니다.”
이스핀의 말에 두 사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마음을 들켜서였다.
“하지만 잘 생각을 해보십시오. 앞서 말했다시피 뒷골목을 치우면 어차피 새로운 놈들이 거기에 섭니다.”
작은 권력 투쟁이다. 무주공산에 들어서서 그곳의 주인이 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단한 번도, 그 어떤 성공도 거두지 못한 실패자에게 있어서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왕관이나 다름없었다.
뒷골목 따위가 그림의 떡일 리는 없었고, 가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도박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도박은 저놈만 제치면 그만이라는 흉흉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 위에서 조율할 밤의 지배자가 필요한 법이죠.”
그 역할이 바로 세탁쟁이였다. 도박 자금을 거대한 보육원을 통해서 세탁하는 그의 힘은 도박꾼들에게는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보일 것이다.
보육원은 나라에서 지정한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기에 죽인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납치하여 협박한다고 해서 그가 될 수 있는 것도아니었다.
결국 그는 끝없이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도시에서 밤낮 구분 없이 형형히 빛을 내는 엘프 정보탑 때문에 금화 거래는 무조건 출처가 계속해서 기록된다. 그 범위는 도시와 도시외곽까지 뻗어있었다.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그 흔적이 남게 된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파견 엘프들이 그토록 고국을 그리워한 이유이기도 했다. 끔찍한 수준으로 굴렀기 때문이다. 드낙이 요구한 바를 해결하려면 갈아 넣는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엘프 스스로 엘리트주의에 빠져서 원하는 결과를 실제로 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 도시에는 폭풍의 요람을 통해서 엘프 정보탑이 상상 이상으로 돈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금화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검은 돈을 많이 회수할 수 있습니 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세탁쟁이에게 검은돈이 모였다. 경찰에게 빼앗길 바에는 세탁쟁이에게 수수료를 받고 교환하는 게 마음 편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두 사람은 가슴이 웅장해지는 걸 느꼈다.
‘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걸 인정하는 건 어려운일이다.’
도렌은 그걸 해냈다. 그리고 이를 이스핀에게 맡겼다. 끝없는 범죄자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 내부에서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품을 수 있는 범죄자는 품고 그 덕에 나오는 추가 역량을 다른 곳에 투입한다.
빛과 어둠의 투트랙 전략이나 다름없었다. 범죄자가 벌어들이는 돈은 다시 도렌의 주머니로 들어가 신세계를 설립하는 데 힘을 보탠다. 그로 인하여 범죄자는 자기 돈에 의해서 서 서히 자신의 영역이 줄어드는 걸 느낀다.
이를 계속 반복하다 보면 결국 범죄자들은 위축된 곳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에서 격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범죄자중에서 성공한 범죄자는 어떻게 합니까?”
“엘프 정보탑으로 금화를 추적하기 때문에 쉽게 표적 하여 그 성공에 묻은 죄를 물어 모두 회수하면 됩니다.”
“악독하군요, 하하하.”
다이앤타가 기분 좋게 웃었다. 나쁘지 않아보였다.
“중범죄자는요?”
“당연히 처벌합니다. 그런 놈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같은 범죄자한테도 죽기 일쑤죠.”
사람을 죽이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와 연결된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린다. 그 공간은 그와 친했던 이들, 그와 교류했던 이들은 순식간에 알아차릴 정도로 민감한 ‘인연의 공백’이다. 복수는 복수를 부르듯이 결국 범죄자를 죽이는 범죄자는 객사하기 쉽다.
“제가 말하는 건 그런 놈들이 아닙니다. 도박꾼 고리대금, 장물 도둑. 소매치기 등등, 그런 놈들을 말하는 겁니다. 물론 위험한 놈들을 처리하고 다니는 놈들도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처벌하는 무지막지한 놈들이 있긴 있다. 그들은 청부살인을 하면서 악의 단체와 악의 단체 사이에서 돈을 뜯고 그들의 세력 성장을 방해한다.
“뿔 쥐는?”
“쉐도우 위스퍼의 역량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보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다분히 정치적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확충과 세력의 고착화가 진행되 면서 다른 세력을 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최소한의 도움을 줄 뿐이다. 평범한 시민을 죽이는 흉악범의 정보 제공만 하는 정도 였고, 그 외에는 ‘영향력 있는’ 이들을 조사하는 데 힘을 쓰고 있었다.
한 가족의 가장이 실종되면 6일 이후에 수 사가 들어가지만 권력자가 실종되면 단 몇 시간 만에 수백 명이 동원된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상론에 눈이 멀어서 외치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을 정면에서 박살을 내는 모습이다.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겠군. 노리는 것은 상위국 내에서의 도약인가?”
크레시미르는 견적을 냈다. 범죄자들은 굵고 짧게 사는 놈들이 많다. 운이 따라주면 상상이상의 성공을 거둔다. 브레이크가 사라진 스포츠카처럼 질주한다. 그런 놈들이 번 것을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이스핀의 수법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아 보였다.
‘문제는… 따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범죄자라는 속성은 야만인데, 어떻게 그들의 머리 위에 있을 수 있습니까?”
크레시미르는 생각으로 그쳤지만, 다이앤타는 직접 물었다.
이에 이스핀이 손목을 돌렸다다.
“그건 제 태생이 뒷골목 깡패이기 때문입니다. 놈들의 속성을 가장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이스핀 브컥작이 모두 그들을 제어하고 있지는 않지 않습니까.”
“세탁쟁이도 범죄자였습니다. 제가 한 것은 범죄자 중에서 그나마 인간 같은 놈을 뽑아서 냄새나는 의자에 앉힌 것뿐입니다.”
사람 하나만 잘 고르면 된다는 말이 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스핀같은 사내를 발굴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세탁쟁이와 같은 이들이 몇이나 있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들을 ‘브라더스’라 칭하고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가족 같은분위기입니까?”
이스핀이 킬킬거렸다.
“그렇게 가족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가족 같지요. 범죄자에게는 그게 중요합니다.”
알수 없는 말이다.
“뿔 쥐들도 이를 알고 있다면 태클을 걸지 않았습니까?”
“전 공신 중 공신이며, 인간 중에서 드낙 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뿔 쥐의 조언은 받더라도 제 행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명장의 부관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그 반사이익을 받아 큰지위에 오를 수 있다. 이스핀이 딱 그 짝이었다. 드낙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라 할 정도로 차이가 났지만, 그의 위치는 상당하다.
이스핀과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결국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물리적으로 그 어느 것도 얻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큰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세상을, 인간들의 처세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은 것과 같다.’
손바닥을 뒤집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경우에 이를 접목하여 손바닥을 뒤집듯이 생각을 달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조언하기는 쉽지만, 현실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건 어렵다.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을 읽을 때는 가슴이 웅장해지지만, 그 책을 덮는 순간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드는 이유도 이와 같았다.
누구나 아는 조언을 말하는 건 쉽 다. 내일 태양이 동쪽에서 뜰 것이니 그곳을 바라보라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 이를 접목하여 절대적인 성공에 대해 조언을 하는 건 불가능한일이다.
사람마다 흐르는 시간이 다르고, 사람마다 자신이 있는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내성 밖으로 나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투박하고, 절대적 진리처럼 여겨지는 조언이 아니라, 진짜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을 맛볼수 있었다.
‘빛의 왕과 왕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나라.’
범죄자는 성공해도 돈을 다 빼앗기고, 그 큰돈은 다시 나라의 세수로 돌아가 평범한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다. 어둠조차도 빛으로 만드는 ‘현실’이다. 어둠의 존재인 범죄자에 대한 그 어떤 인권도 존재하지 않은 빛의 세계였다.
“난세금관리원포기할래.”
다이앤타가 툭 내뱉었다. 마치 오빠에게 투덜거리며 조언을 얻고 싶어 하는 여동생의 모습처럼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무식하게 끄집어냈다. 분위기가 그러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서로 진실한 마음을 확인하기 힘들 것이다.
“오!!?”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난 지도자로서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 대국적인 시야는 있지만 도렌 국왕이 지 닌 시야를 따라갈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 나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아.”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이앤타 불파겐은 도렌 국왕과 정반대되는 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도렌의 처세를 확실하게 이해했지만 그로 인하여 절망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평생 가도 그처럼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기에, 이런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세금관리원을 그만둬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오빠가? 왜? 잘하고 있잖아.”
다이앤타의 말에 크레시미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배가 아플 정도로 큰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그래 난 그 누구보다도 잘 해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의미가 없다는 거야. 며칠 만에 A급소리 들으면서 세금관리원의 책무를 다했지만 거기서 내가 얻은 건 몇 없어. 그저 배운 걸 다시 확인했다는 것뿐이지.”
세금관리원으로 더 해봤자 시간에 비해서 배운 건 더 적을 것이다. 크레시미르는 이미 완성된 성군(聖君)이나 다름없다. 그에게 필요한 건 아랫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다.
“나한테 필요한 건 힘이다!”
그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크레시미르는 태어나고, 자라나면서 수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자신을 갈고 닦았다. 남을 위해서 노력했다. 100점을 받기 위해서 어린 나이에도 피땀을 흘렸다.
그런 크레시미르가 성군의 자질이 없다는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크레시미르는 백성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에 익숙하다. 귀족들을 위해서 헌신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런 그에게 세금관리원으로 시작하여 밑에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라는 소리는 바보 같은 일이다. 너무나도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수학교육과를 나온 사람에게 초등수학부터 다시 배우라는 것과 같았다. 이미 걸었던 길을 또 걷는 셈이었다.
“…반면 넌 나와는 다르다. 너에게 있어서 손바닥 뒤집는 건 이 세금관리원 일을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투성이지.”
“하지만 나는…….”
“내 길이 아니라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당연해. 너와는 맞지 않는 길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야말로 네가 알아야 하는 길이야. 그 길을 걸어봐야지만 알 수 있으니까. 너와 정반대의 길을 넌이해할수 있어? 못하겠지.”
그렇기에 걸어봐야 한다. 직접 걸어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간접체험으로는 체감할 수 없을 만큼의 벽이 존재했다. 매달 용돈을 65만 원 받는 대학생이 진짜 서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
다이앤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듣고 보니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레시미르가 자신을 위해서 시작한 일은 다이앤타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었다. 세금관리원으로서 활동하며 수많은 실수와 사건을 터트린 ‘외청의 대악마’다이앤타는 황당하게도 세금관리원으로 살아야지만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내 엄마도 범죄자들을 제어할 수 있을까?”
“세리안 국왕이 이 일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지. 다만, 놔두고 있는 건 용납할 수 없어서겠지.”
범죄자는 처벌받아야 한다. 그 대전제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말을 다른 주제로 돌린 다이앤타는 이 내 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을 내쉬는 입꼬리는 웃는 것처럼 올라가 있었다.
“어쩔 수 없네. 이 빌어먹을 세금관리원 일을 계속하는 수밖에. 그럼 오빠는 어디로 갈 거야?”
“신제국. 그곳의 기사단에 소속되어 공부해볼 생각이다.”
크레시 미르와 다이앤타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다. 다이앤타는 도렌의 영토로 돌아갔고, 크레시 미르는 신제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