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38화 (1,037/1,239)

<-- 1038 -->

“초월자를 뵙습니다.”

일행이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대전사 오크도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드낙은 오크에게 공평한 초월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대해(大海)를 줬고, 녹색 도끼에 대한 신앙도 인정해 줬다.’

드낙은 오크로부터 카르마를 받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오로지 녹색 도끼를 위해서 살아간다. 동시에 필멸자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드낙은 그런 오크들을 인정해 줬다.

강인함. 동시에 전쟁에서 물러서지 않는 면모.

엘프들이 하찮다고 여겨도 엘&오 연합이 생기는 것 또한 오크들의 진정성에 있다. 오크들은 자신의 적이 있다면, 연합 속에서도 가장 선두를 책임지는 숭고한 전사들이다. 그런 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권리를 인정하고, 같은 전선에 서는 게 이득이다.

드낙은 거침 없이 그들과 악수했다.

“오크 대전사! 이름은 모르겠지만, 하하하. 여행 중인가?”

드낙은 웃으면서 마지막에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대전사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얕은수다. 물론 실제로도 여행을 온 것이 아니었다.

“아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를 다른 종족과 함께하고 싶어서 찾아다니고 있다.”

“오, 그런가? 노는 줄 알았는데,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거군.”

드낙은 이사크를 바라보았다. 눈이 딱 마주쳤다. 얼굴은 돌리지 않고 눈만 움직여서 그와 마주하는 건 조금 소름 돋는 일이었다.

“어떤 프로젝트지?”

“대해 프로젝트라고, 새로운 대예언을 마주하여 식량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바다가 지닌 식량을 삼 종족이 연합하여 더막대한 식량을 생산하고자 하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서 피라미드의 밑에 있는 이들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배신자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늙은 주술사도 새로운 것을 자주 보기를 바란다.”

“말씀 감사합니다.”

상투적인 대화만 나누었다. 드낙의 눈이 이사크에게로 향했다.

“도시 건설은 잘 되고 있나? 많이 혼란스러울 텐데. 내가 듣기로 엘프 서클 시티(Elf Circle City) 열일곱 곳 모두 야시장을 내부에 들이기로 했다며?”

“아… 예. 워낙 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드낙은 순식간에 이사크와 어깨동무를 했다.

“여행?”

“모든 필멸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에이, 그래도 시장인데 그 정도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쉴 땐 쉬어야지. 언제 내가 쉬지 말라고 했어? 그러는 게 아니야. 그냥 할 일은 하고 쉬라는 거지, 엉? 자기 담당구역 한 번 확인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좀 밀린 거 있으면 처리하고.”

“예, 예.”

“너도 잘 알잖아. 나는 지킬 것만 지키면 딱히 안 건드린다니까?”

그 말에는 거대한 모순이 존재한다. 에르하르트는 문제 하나 일으킨 적 없는 벨룸 퓨에르의 무장(武將)인데 한순간에 몰락했다. 이제그를 찾는 엘프는 거의 없다. 혹시나 드낙의 눈에 든다면 큰사달이 나기 때문이다.

오직 용맹한 에르하르트를 따랐던 전투 엘프들만이 그에게 술 한 병 들고 찾아갈 뿐이었다. 그 정도로 서열 4위의 벨룸 퓨에르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에르하르트도 잘 지내지?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미친 듯이 그냥 업만 보내고 있긴 한 데……. 잘 지내고 있지?”

“예?”

실로 무식한 말에 기가 찼다. 다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폐인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네.”

“네?”

“자살 안 한 게 어디야. 역시 용기의 에르하르트라니까. 내가 그 용기를 보고 바로 선택했지.”

“…….”

이사크는 감히 다음 말을 할 수 없었다.

“자네들은 어디에서 왔냐?”

“아! 조개 항구!”

“아아, 조개 항구. 뿔 쥐들로부터 들은 기억이 있지. 인어들을 받아들인 몇 없는 항구지.”

오크 항구는 무분별하게 지어지고 있다. 바다의 거대한 생명력은 오크의 단단한 근육으로 끌어올려 지고, 그 덕에 오크들은 풍요로움, 배가 부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자연히 많은 항구를 보유해야 더 많은 해양자원을 가져올 수 있다.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이 비슷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어를 추가하는 방안이 외부 감사를 통해서 오크들에게 전달되었다.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무에 대한 정보를 취득한 뒤에 인어가 해양자원 취득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의 결정은 강제적으로라도 인어 거주지를 항구 옆에 두도록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조개 항구였다.

드낙이 말을 이어나갔다.

“인어들이랑오크들이랑 잘 지내냐?”

주술사가 답했다.

“그렇다. 배와 함께 다니며 자원을 나눠서 받고 있다. 아주 공정하다.”

그 말에 대전사가 툭 내뱉었다.

“자기도하고.”

그 말에 이사크와 드낙이 움찔했다. 둘 다 성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 대놓고 말해서였다. 그 이상한 기류에 대전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 내가 사람을 죽였어 전쟁을 벌였어? 너도 자궁에서 나왔잖아.”

“아니, 잠깐만!”

늙은 주술사가 그를 말리려 했지만 대전사가 역정을 냈다. 몇 번이고 그런 꼴을 당해서 그런 듯했다. 오크가 그런 걸 당한다고 자신을 바꿀 리가 없다.

“방화 살인 강간도 아니고, 후손을 낳는 성행위가 뭐 어떻다고!”

대전사가 드낙을 보며 콧김을 내뿜었다.

“초월자도 누구의 자궁에서 나오지 않…….”

“이 새끼야! 작작 하라고!”

나무 지팡이가 시압 티사브의 머리를 후려쳤다. 드낙이 급히 두 오크를 진정시켰다.

“그건 그렇긴 한데. 너무 좀,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건 그렇다, 이거지.”

“오크는 원래 그렇다! 우린 상남자다!”

드낙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오크 중에는 초월자를 높이고 존대하는 이도 있었지만, 거침없이 반말하는 오크도 있었다. 그냥 지들 원하는 대로 사는 놈들이다.

죽는 것조차도 두려워하지를 않는데, 드낙을 두려워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저자신이 생각하는 자신만의 잣대를 통해서 그를 공경할지, 말지를 정한 것뿐이다.

“그래도 좀 조심해라. 문명인 아니냐. 문. 명. 인. 응?”

“알겠다.”

대전사가 대충 대답했다.

“그리고 이사크…….”

드낙이 그를 지긋이 바라보자 그의 입꼬리가파르르 떨렸다.

“에르하르트가 그렇게 폐인처럼 되었으면 그 옆에 한 명이 더 있는 게 어떨까?”

“예?”

“혼자 엘프 신이 되는 것보다는 두 명이 엘프 신이 되는 게 낫지 않아?”

“제가요?”

드낙이 피식 웃었다.

“누가 너보고 엘프 신 하래? 했으면 좋겠지만, 하기 싫잖아?”

“아닙니다.”

“그럼, 할래?”

“아닙니다.”

“그래, 쉬엄쉬엄하라고. 앞서 말했듯이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하지만 한 번 생각은 해 보h 에르하르트가 계속 우울해하면 나도 판단을 달리할 수밖에 없어.”

“예!”

드낙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익히 말했듯이 그는 지금 대단히 바빴다. 오크 대예언이 시행되자마자 드낙에게 전달됐다. 이를 위해서 드낙은 드워프와 함께 또 하나의 거대 프로 젝트를 하는 중이었다.

그 정보를 모르는 이사크가 큐브에 관해서 물었다.

“큐브라고 불리는 거대 구조물은 어떤 것입니까? 저희 엘프 없이 만드시는 것 같으시던데.”

“그렇지. 드워프의 손길이 지닌 반영구적인 힘이 필요해서. 유지하려면 마력이 너무 많이 소모되거든.”

드워프의 손길.

그것의 장점은 가히 반영구적으로 효능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중립신의 죽은 육신으로 태어난 드워프들은 그 특질이 유니크하다. 드낙은 아직 드워프와 비슷한 권속 악마를 만들지도 못했다.

‘평생 못만들지도 모르지.’

드워프는 보면 볼수록 놀라운 놈들이 다.

어떤 면에서는 엘프보다 더 위대한 종족처럼 보였다. 다른 종족과 분쟁도 없고, 스스로 전쟁국이라 불릴 만한 일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의미가 있는 역사적 전쟁에는 참전한 역사가 존재했다. 든든한 방패를 종족화시킨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권속 악마가 드낙과 피를 함께 공유하여 그에게 절대 충성한다면 드워프들은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으면서 의젓한 종족이었다.

“우주 진출이다. 폭풍의 요람을 하늘 높이 올려 더 많은 마력 자원을 획득함과 동시에 행성 방위 체계를 바로 잡는다. 적들은 우주 밖에서 행성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우주 진출.”

까마득한 일이었다. 실제로 드낙에게도 까마득한일이다.

‘그냥 드워프를 우주로 보내는 건 바보 같은 일이지.’

우주로 나아가고, 테라의 주변을 위성처럼 같이 자전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수학적계산이 필요했다. 아쉽게도 그 정도의 수학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도 기술로 해결하려 한다면 많은 마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테라의 중력에 빨려 들어갈 것 같으면 추진 력을 통해서 빠져나가고, 중력에서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나아갈 것 같으면 추진력을 통해서 다시 들어와야 한다. 이를 반복해야 했는데 동시에 자전도 해야 한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우주 진출은 어려운 일이다.

‘수학 좀 못한다고 우주 진출을 못 하다니.’

황당한 노릇이다.

우주로 이륙하고, 우주에서 이 테라로 착륙하는 것 또한 수학적 계산이 필요했다. 결국 그냥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상되는 계산을 한 뒤에 나아가야 했다.

오크 예언이나 마법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실수는 막을 수 있지만, 온전한 것은 아니 다. 가히 ‘전쟁 수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우주 세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주선 하나 쏠 때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쏘아 올리고 나서도 문제다.

그 덕에 드낙은 드워프와 함께 큐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땅에서부터 우주까지 무식하게 올라간다.’

정말 병신 같은 개소리였다. 하지만 판타지 세계는 이를 감당할 수 있었다.

드낙은 악마였고, 드워프들은 장인들이다. 게다가 드워프의 손길을 통해서 다양한 특징을 지 닌 금속을 만들 수 있다.

중력을 지탱하는 건 권속 악마로 충분히 가능하다. 권속 악마, 중력 철사-(Gravity Wire). 이를 통해서 중력을 최대한 이겨내고, 큐브를 쌓아나가 우주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모든 기초 이론을 이사크에게 말해 주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큐뷰의 외벽에 추가적으로 엘프 마법 구조물을 세운다면 더 쉽고,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어 보입니다.”

“30년 프로젝트다. 아직 그것까지는 할 생각은 없다.”

“예, 대예언을 들으셨다면 저희의 프로젝트에 관해서 판단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해도 되겠습니까?”

“해.”

드낙은 쿨하게 허락했다. 애초에 자신의 손을 떠난 프로젝트가 많았다. 그는 그대로 전쟁을 준비하며 많은 여유를 누릴 것이다. 자유 의지는 그만큼 중요했다.

이를 잘 제어하기만 하면 된다. 세상은 나쁜사람과 착한 사람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럼 난 권속 악마가 좀 많이 불안해서 이제 가봐야겠다.”

“예! 살펴 가십시오!”

엘프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허리가 폴더처럼 접혔다.

드낙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생명체지만 넝쿨과도 같은 형태를 지닌 것이 권속 악마, 중력 철사(Gravity Wire)다. 아직도 실험적인 놈이라, 꾸준히 옆에서 지켜보며 데이터를 습득해야 한다.

그가 떠나가자 세 명은 합의라도 본 것처럼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든든한 산맥을 찾아갔지 만, 허탕을쳤다.

큐브를 만드는 데 필요한 드워프 제국의 웬만한 물건은 싹 다 드낙에 의해서 털린 상태였다.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방패 가문보고 도와달라고 할까?”

“그들은 전사 드워프 아닌가? 대해 프로젝트에 필요할까 싶은데.”

“물어보면 알겠지.”

이들은 지하 32층으로 향했다. 방패 가문은 오랫동안 드워프 제국의 경비병 노릇을 해서 대단히 큰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제물도 많이 쌓은가문이다.

하는 일은 경비병에 불과하지만 그 가문의 일원이 모아놓은 돈으로 사업도 제법 벌이고 투자도 하면서 전혀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드낙의 순환 경제 체계의 말석에 올라탈 수 있었다. 지나가는 상인들에게서 돈을 받고, 최소한의 검증을 한 뒤에 바로 보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 왔군! 내가 올 줄 알았다니까!”

거친 방패는 근무를 일찍 끝내고 와있었다. 반드시 올 거라는 믿음을 지니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패! 방패! 방패!”

주먹을 힘껏 들어 올리며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는 드워프를 따라서 세 명 모두 외쳤다.

“방패! 방패! 방패!”

남의 집에 들어왔으면 그들의 법도를 존중해야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