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36화 (1,03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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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엘프들의 열일곱개 도시에는 하나같이 야시장이 있었다. 굳이 깨끗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지원은 해주도I, 그빛을 잃지 않게 하고 싶었다. 동시에 어둠 또한 그대로 유지되었다.

엘프는 진정으로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기로했다. 그곳에서 나오는 핏물은 그들이 스스로 감내하기를 결의하였다.

그 덕에 대전사, 시압 티사브는 오랜만에 추억에 젖었다.

‘정말 오랜만이군!’

우중충한 건물들과 사람들이 즐비했다. 나무 상자를 뒤집어 앉은 채 어디서 잡은 새를 통째로 굽고 있는 게 보였다. 눈 밑이 검었는데 딱 봐도 마약에 쩔은 인간 방랑자다.

또 그 옆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온 통이 있었다. 냄새가 지랄 맞았다. 이를 끓이고 있었는데, 그것만 봐도 헛구역질을 할 자가 제법 되었으나, 이곳은 아니었다.

‘이게 엘프 야시장이지.’

엘프와 교류하기 위해서 온 이들이 도시 밖에 머물면서 만들어낸 풍경이다. 그게 100%아니, 120% 재현되어 있었다.

‘이래도 되나?’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질서해 보였다. 그들에 대한 불안감은 아니었다. 엘프들의 결심이 너무 대단해서 무서워 보일 정도였다.

오크가 지나가자 부랑자 중 하나가 툭 내뱉었다.

“거시기 발딱 선 놈이 또 이곳에 발을 들이 대는구나. 아아! 오늘 오크 하나가 그렇게 신앙심을 가지나이다!”

시압 티사브의 솥뚜껑만 한 손이 그 대가리를 후려쳤다.

“껙!”

부랑자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부랑자들이 벌떡 일어섰지만 감히 그와 마주하지도 못한 채, 코를 비비며 다시 앉았다.

“야, 장난친 거잖아. 왜 그렇게 아픈 척을 하고 있어. 빨리 일어나, 새끼야.”

되레 부랑자들은 쓰러진 부랑자를 탓했다. 시압 티사브가 장난을 건 것을 그렇게 심하게 받아주면 보는 이들이 불편하다는 뉘앙스였다.

대전사는 그들을 지나갔다.

‘야시장의 초입은 항상 이렇지.’

시비 걸고, 조금이라도 얻어볼 생각을 가지는 게 부랑자들이다.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흰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내고 있는 건물이었다. 목조 건물이 아니라 강철로 만든 곳이었고, 배수구처럼 연기를 빨아들이는 구멍이 바닥곳곳에 있었다. 흰 연기는 공기보다무거워서 아래로 내려갔고, 그곳으로 흘러갔다.

입구에는 드워프 하나가 나무 의자에 앉아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연신 내뱉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모금할까.’

시압 티사브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더니 은화한 닢을 튕겨냈다. 이에 드워프가 고개를 저었다.

“하나 더.”

“예전엔 한 닢이었는데?”

“요즘엔 두 닢이야. 즐기는 놈들이 많아져서.”

시압 티사브는 돈을 얹어주고 강철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흰 연기를 맡자 인지력이 높아졌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고, 시야가 넓어졌다. 갑자기 똑똑해진 기분이 들었다.

붉은 조명 속에 드워프가 손을 까딱거리며 그를 불렀다. 이내 강철로 된 큰 상자를 열었다. 시압 티사브가 거기에 들어섰다. 드워프가 무언가를 건넸다. 노랗게 빛을 내는 발광물질이다. 코르크 마개로 닫혀 있었다.

쿵!

거대한 강철박스가 문을 닫았다.

쉬이이이―!

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시압 티사브가 냉큼코르크 마개를 뽑고, 안에 있는 액체를 단숨에 마셨다.

“아! 으으으! 햐!”

드워프들의 각성제 기술발전은 실로 대단했다. 금방 다양한 각성제들을 개발했기에 괜히 장인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이들에게 마약이나 다름없었고, 오크인 시압 티사브도 몸서리칠 정도로 대단한 마약이었다.

“이거야아아아아아!”

짜릿한 쾌감도 잠시, 해독 연기에 의해서 금방 몸에서 독들이 빠져나갔다. 땀이 듬뿍 삐져나오고, 그곳에서 땟국물처럼 검은 땀이 흘렀다.

드워프들의 각성제가 얼마나 독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해독 연기가 아니면, 어지간한 생명체도 버티지 못할 맹독이다.

드워프가 비틀거리며 빠져나온 시압 티사브를 앉히려고 했지만, 그가 웃으며 말했다.

“괘앤찮다. 으르르!”

짐승 소리를 낼 정도로 말할 때마다 짜릿함이 득실거렸다.

“역시 언제나 최고야.”

드워프 각성제는 우울할 때든 심심할 때든 맞기 좋다. 무조건 하이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쾌감도 대단하다.

시압 티사브는 각성제 한 모금을 마시고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온 그의 귀에 연설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법 인기가 있는 연설가인지 영상을 띄워놓고 계속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십여 명이 이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보고 있는 종족은 다양했다.

“긴 꿈을 좇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어찌 될 거라 생각합니까?”

연설자는 동기부여와 관련된 말을 하는 듯했다.

“그 끝은 그저 허망할 뿐입니다.”

‘응?’

말이 좀 이상하여 그가 관심을 가졌다. 시압티사브가 누구인가. 조개 항구의 유일한 대전사(大戰士)다. 와이번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려고 했고, 이를 이루어냈다. 성공한 그에게는 반감이 올라오는 말이었다.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길 겁니다. 지금내 이 열정! 이 열망을 불태우고 있는데 갑자기 찬물을 끼얹느냐고 하겠죠. 하지만 진실은 다릅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삶이란 그 굴레를 타고 내려가며 계속해서 반복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꿈만을 좇는다면?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고 마는 겁니다.”

시압 티사브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움직였다.

‘병신같은소리를 하고 있어.’

모든 필멸자는 죽는다. 그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신의 반열에 오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죽는다.’

그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말처럼, 필멸자는 자신이 지닌 의미를 꾸준히 생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건 대전사처럼 끝없는 투쟁 속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과 같았다. 시압 티사브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음 세대에 있을 오크를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동시에 드워프 각성제도 먹는다. 그게 오크가 지닌 삶의 의미다.

다른 오크들도 다 의미가 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긴 꿈이든 짧은 꿈이든 거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시압 티사브였다.

‘중요한건 걷는거니까.’

그가 십여 명을 지나려고 했지만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다. 그놈은 벌거벗은 엘프였다.

‘오우, 씨. 뭐야!’

시압 티사브가 냉큼 물러섰다.

미친놈은 대전사조차도 물러서게 만들었다. 딱 봐도 정신병자 같은 엘프는 백발이 성성했고 피골이 상접했으며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는지 머리카락에 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드낙 천국! 불신 지옥! 이이이 사악한 것들아! 썩! 끄윽. 꺼어어억!”

고함을 지르던 정신병자 엘프가 트림을 크게 했다. 이내 침을 삼키더니 다시 외쳤다.

“이 썩어빠진! 것들! 엘프의 수치! 다른 종족도 썩 꺼져라! 여기는 엘프가 사는 곳이다! 위대한 종족이 숨 쉬는 곳에 더러운 숨결을 내뱉지 마라!!”

‘뭐 하는 놈이지?’

대전사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고, 서둘러물러나서 벽에 기대었다. 바깥의 소란에 창문에서 툭 튀어나온 긴 머리의 매력적인 엘프 여자가 그런 시압 티사브의 몸을 훑었다. 생명력이 가득 넘치는 야성적인 몸이었다.

“미친놈이야.신경쓸 거 없어.”

그런 엘프의 말에도 그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 문란한 곳에 불을 질러야 한다! 우리에게 빛을 주신 드낙 님을 위해서 개처럼 일을 해야 한다! 적을 죽이고! 그 살을 갈라내어 우리들의 신을 위해야 한다! 죽이고! 방화하고! 파괴해라! 노예처럼 그분을 위해서 살며 빚을 갚아야 한다! 이 어리석은 것들아!!”

행인 하나를 잡고 버둥거렸지만 단번에 밀쳐져서 쓰러지는 게 보였다.

“뭐 하는 놈이지? 말하는 게 엉망진창이군.”

“중립신과의 대전쟁에서 살아남은 엘프야. 최근 상황이 심해졌는데, 어찌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고 야시장에 와서 소란을 피운다니까. 저러다가해가 뜨면 다시 돌아가.”

“밤 내내 저런 짓을 한다고?”

“올 때도 있고 안 올때도 있지.”

엘프는 그렇게 말하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담배의 퇴폐적인 이미지가 그녀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붉은색의 실크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니 할 말 다 했다.

대전사는 힐끔 보면서 말했다.

“중립신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엘프라고?”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다가가지는 못했다. 척 봐도 정신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드낙에 대한 찬양, 일을 해야 한다는 맹신, 파괴와 전쟁 살육을 좋아하고 문란함을 병적으로 싫어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사이에 엘프가 밖으로 나왔다. 스스로 성을 선택한 엘프였다.

엘프들의 선민사상은 아주 옅어져 있었다. 노괴들의 역사는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고, 모두 파헤쳐진 상태였다. 드낙의 눈치를 봤기에 은폐조차도 시도하지 못했다.

백색 빛 엘프로 나아가며 더더욱 자신들에게 독한 잣대를 내밀었다. 그 결과 많은 엘프가 엘리트의 길을 포기하는 사례가 터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이 야시장에 들어서서 살아가는 엘프들이 가장 그 영향을 많이 받은 엘프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구름 엘프라 부르며 구름처럼 살아가는 엘프들이다. 문란하기는 이룰데 없고, 돈도 부족함이 없었다.

엘프 부랑자들처럼 살아가는 엘프 신세대들이다. 다른 점은 적당히 자기관리를 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것이다.

“내 이름은 로이시나야.”

엘프 로이시나는 사랑에 미친 엘프다.

‘이게 웬 떡이냐.’

오크 대전사 시압 티사브는 냉큼 그녀의 손을 잡았고, 엘프 로이시나는 능숙하게 팔짱을꼈다.

“근육 봐!”

그녀는 그의 근육을 느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근육이 있는 남자는 그 자체로 여성에게 웃음을 줄수 있다.

그런 분위기를 본 정신병자 엘프가 허겁지 겁 다가왔다.

“고오얀 것들! 지금 외적이 호시탐탐 이 땅을 노리고 있거늘! 전쟁이다. 전쟁!”

그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끝도 없이 내뱉었다. 시압 티사브가 인상을 한 번 쓰자 정신병자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다른 곳으로 달려 갔다.

“어쩜 저렇게 되지? 평범한 오크 전사가 아니야?”

“대전사다. 하하하!”

그렇게 말하며 시압 티사브는 어디서 얻은 건지 모르겠지만, 엘프 화폐를 한 장 그녀의 가슴골에 집어넣었다.

“으하핫!”

로이시나가 시원한 웃음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시압 티사브는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가즈아!!”

바로 주점으로 향했다.

* * *

하루를 진탕 놀고, 다음 날에 처참한 몰골로 벨룸 퓨에르 13위에 있는 행복의 이사크(Isaak)와 마주했다.

“…그 목에 그거…….”

이사크는 과거의 엘프다. 엘프의 시대는 점잔빼는 게 우월하다고 여겨져 왔다. 계속 얼리고 얼려서 젊은 나이를 지녔지만, 그 본질은 그대로다.

“키스 자국 처음 보냐?”

오크 대전사의 말에 이사크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보지. 근데, 너무 많잖아? 짐승한테 물어뜯긴 거야?”

“하하하하! 확실히 암사자들이 많더군! 엘프의 장래가 아주 밝아! 엘프가 아닌 줄 알았다니까! 요즘 엘프들은 정말 마음에 들어!”

“흐으…….”

이사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를 바라보는 늙은 오크 주술사 타타리브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의 눈 밑도 검었다.

“영감은 왜 그렇게 다크서클이 진해?”

“지식을 탐구했지. 엘프의 지식 중에는 오크주술사에 대한 고대 지식도 존재하거든.”

지식을 통해서 사본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직접 그 원본을 볼 수 있는 건 이뿐이다. 그는 원본을 통해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대해 프로젝트를 하자니까.”

“드워프가 손을 얹으면 하겠다.”

“다른 벨룸 퓨에르의 의견은 듣지 않아도 되는가?”

“조개 항구와 쿤텐티자 도시의 협약 아닌가?”

“이런 제기랄.”

대전사가 당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주술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사크가 그들을 다독였다.

“그렇게 실망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쿤텐티자 도시만 해도 그 역량이 대단해.”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드워프 제국이 제대로 힘을 실어줘야겠는데?”

그들 모두 그렇게까지 심각한 표정은 짓지 않았다. 결국 대예언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쓸존재는 드낙이다. 지금 이들이 하는 건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하는 것뿐이 다. 한 국가에서 시행되는 수많은 정책 중 하나인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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