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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티심 타우스.”
오크 전사 티심 타우스는 간단한 신원을 확인하고 공간이동 마법진에 몸을 맡겼다. 순식간에 지정된 좌표로 삼십여 마리의 오크들이 전송되었다.
지정된 좌표는 그가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조개 항구다. 개척지로 분류되고 있으며, 남서쪽에 있는 항구다. 조개 항구는 드워프와 뿔 쥐와 공을 두고 싸우기 위해서 오션 오크들이 개발한 곳이다.
티심 타우스는 제법 성공한 오크였기에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조개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티심타우스는 다시 한번 신원을 확인해야 했다.
“티심 타우스잖아?”
“주술쟁이 시우지. 잘 지냈냐?”
“말도 마라. 일하다가 코피 흘려본 적은 처음이다.”
“크하하하하!”
오크 수습 주술사, 시우지(Xyooj)의 말에 티심 타우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은 근황을 나누었다.
빠릿빠릿하게 일하는 건 오크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오션 오크는 바다를 소유하게 되면서 막대한 양의 식량을 얻었다. 인구가 폭증하는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덕에 시우지 외에도 다른 오크 주술사들이 신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이다. 서로를 흠잡아봤자, 서로만 피곤해질 뿐이다.
“조개 항구는 별일 없지?”
“인어 거주지가 생겼어.”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인어들은 바다에서 살잖아.”
시우지가 손을 까딱거렸다. 남들이 알아봤자 좋은 일이 아닌 걸 말하려는 모습에 티심 타우스가 냉큼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야이씨.”
티심 타우스가 박치기할 정도로 머리를 들이밀자 시우지가 짜증을 냈다. 그럼에도 웃음기가 피어올라 왔다. 장난을 친 것에 두 명 모두 낄낄거렸지만,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립신이 나가를 살육하고, 인어들도 제법죽였다고 하더라.”
“중립신이? 그래서?”
“그래서는? 내가 아는 건 그것뿐이야. 쉐도우 위스퍼에 물어봤는데, 어찌나 생색을 내는지, 수습 딱지 떼고 오라고 하더라고. 괜히 소문 퍼져서 좋아질 게 없대.”
“음.”
티심 타우스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재미에 불과했다. 딱히 자신과 상관없기도 했다. 음모론을 들은 기분이다.
하지만 인어 거주지가 생긴 건 자신과 큰 관련이 있었다.
“근해에서 물고기 경쟁이 일어나고 있겠네.”
“그건 그렇지. 하지만 뭐, 어쩌겠어? 그렇게 하라는데. 대전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주술사겠지. 그런 건 주술사들 머리로 결정하는 거잖아. 이 주술쟁이 놈아. 똑바로 일 안하냐?”
“전사쟁이 놈. 또 시작이군. 무조건 주술사탓이냐?”
퍽퍽.
서로 어깨를 두들겨 팼다. 오크 주술사라고 해도 우월한 스펙을 지니고 있었다. 분명 내일 멍이 들어있을 터지만 두 명의 오크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대 더 때리려고 기를썼다.
“잘 지내라고 나는 간다!”
“그래 나중에 술 한잔하자.”
티심 타우스가 손을 흔들며 언덕을 내려갔다.
그는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늙은 오크와 재회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 자 중 하나였다.
“늙은이, 여전하군. 경비병이 앉아있으면 되겠어?”
“쫑알거리지 말고 꺼져, 애송아.”
팔 하나가 깔끔하게 잘린 늙은 오크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몸 자체는 젊은 오크와 비교해도 전혀 꿇리는 것이 없었다. 단련을 계속하고 있다는 증거 다.
“손자는?”
“타투 새긴다고 난리지.”
손자 이야기에 늙은이가 냉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네놈, 전쟁에 나가서 잘 모르겠는데. 인어 거주지가 생겼다.”
“오면서 들었어. 시우지는 별말 안 하던데?”
“그딴 수습 주술사 말을 왜 믿어! 하여간 인어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보L 요즘 배 타면 오크들은 인어와 협력하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엉. 외팔이, 수고하쇼.”
“이놈이.”
노인이 로우킥을 날렸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살짝 발을 들어 올려 가볍게 막았다.
“흥, 실력은 늘었군.”
“전쟁에 나가서 실력 안 느는 오크가 있으면, 미친 오크지. 그리고 이거, 아직 못 받았지? 논공행상 수정구다.”
“이 귀한 걸 나한테 준다고?”
“큰 소리 떵떵 치고 다녀야지. 난 타투에 대해서 도움도 많이 받았으니까. 대신 공짜는 아니야.”
“내가 만든 밀주를 달라는 거겠지?”
“그래, 그렇게 독특하게 톡 쏘는 술은 처음 이란 말이지.”
“말벌 독주다. 약재도 조금 썼지.”
오크 말벌 독주는 약재를 이용해서 말벌의 독을 유지하는 술이다. 도수가 높음에도 말벌의 독을 유지하는 극도로 위험한 술이다. 인간이 마신다면 간이 부어서 죽을 수도 있다.
“큰 거하나 달라고.”
“왜? 쓸 일이 있어?”
“오크 하나한테 빚졌는데, 독과 관련된 타투가 적더라고. 그래서 은혜도 좀 갚으려고.”
“그러면 그냥 내어줄 수 있는데.”
“으, 닭살 돋게 왜 이래?”
그 말에 늙은 오크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티심 타우스는 항구로 들어섰다. 항구는 대단히 활기찼고, 인어들도 보였다. 그들은 하늘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비행 마법이다.
그는 몇 번 본 적이 있었기에 무덤덤하게 넘어갔다. 다만, 전보다 인어가 너무 많아졌다.
“어이 ! 티심 아니냐?”
파리를 죽이며 사람 키만 한 생선들을 파는 오크가 아는 척을 했다.
오크 상인은 범죄를 저지른 오크가 도맡아서 하는 편이었다. 그 덕에 오크가 운영하는 상점의 수준은 썩 좋지 않았다. 물품의 종류도 적다. 강제로 하기에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일반 시민들은 범죄자를 두려워하지만 오크는 아니었다. 자기보다 타투도 적은 오크에게 겁먹지 않는다.
“자잘한 거나 파는 걸 보니, 너도 많이 박살이 났구나. 인어한테 맞고 다니는 건 아니지?”
오크가 인어한테 맞고 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가 그런 장난을 거는 이유도 오크 상인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약하니 장난을 거는 것이다. 심심하면 장난을 친다. 그 덕에 스트레스도 제법 받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되레 다른 오크들의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친놈, 크크크. 여기, 너한테 전해달라더라, 마부탕이.”
마부탕은 조개 항구의 선장 중 하나다. 티심타우스도 배를 소유한 선장이 다.
오크 상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맡기 기도 하는데, 아주 자연스러운 문화다.
티심은 그에게 동화 한 닢을 줬다. 보관비다.
“그놈, 아직도 살아있어?”
“그럼. 죽을 놈이야?”
티심 타우스는 냄새나는 생가죽에 덮여 있는 것을 펼쳤다. 그림이다. 직접 그린 풍경화였다.
“오크 놈이 무슨 그림이야?”
“말도 마라. 난 다섯 점이나 받았어. 그놈이 랑 눈만 마주쳐도 그림을 준다고 소문이 자자해. 그렇다고 팔지도 못해! 써그럴.”
오크 상인이 주제를 돌렸다. 티심의 표정이 제법 밝아서였다.
“전쟁터에서 재미를 봤나 본데. 사지가 멀쩡한 걸 보니.”
“멀쩡하기는.”
티심 타우스는 자신의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무릎에 큰 흉터가 존재했다.
“와우, 뭐야? 이거!”
오크 상인이 깜짝 놀랐다. 그만큼 큰 흉터였다.
“장난 아니지? 인간의 회복 물약이 아니었으면 다리를 절단할 뻔했어.”
“왜? 뭐가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는 콧김까지 내뿜으며 궁금해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답할 리가 만무하다.
“공짜로 들으려는 게 정말 괘씸하네.”
“알았어, 인어들이 요즘 어업 일을 하는데 장난 아냐. 배랑 같이 다니면서 해양괴물이나 큰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고.”
그 말에 티심 타우스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너도 선장 아니냐. 내가 좋은 거 알려준 거다.”
“고맙다, 그럼 이만.”
“야!”
티심 타우스는 냉큼 발을 뺐다. 자신의 무용담은 몸값을 올린 후에 술과 함께 풀어낼 것이다.
이 무릎의 상처만 해도 보통 상처가 아니 다.
‘죽을 뻔했지.’
티심 타우스는 전투 정보가 풀리면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 놈이 ‘오버로드급’의 지도자 인조 생명체인 걸 알게 됐다. 그 싸움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데이터상으로는 대전사급과 동급인 것이다.
‘큰놈을 빨리 잡을 수 있겠는데?’
붕우가 죽어서 위태해 보이는 인간 은인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여주고 싶었다. 적어도 그렇게 해야 확실하게 매듭지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티심 타우스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며 그간소홀했던 인연을 바로잡고, 물건을 샀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강력한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먼지 냄새.’
창문을 열었다. 청소 준비를 시작했지만, 바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티심 타우스! 오크 전사!”
주술사 하나가 대뜸 찾아와서는 고함을 질렀다. 창문을 연 그와 눈이 딱 마주치자 바로 달려왔다. 어지간히 급한 일인 듯했다.
“대전사께서 부르신다.”
“나를? 왜?”
“모르지. 대예언 때문일지도”
그 말에 티심 타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언이 있을 때면 종종 불려가곤 했다. 이상하게 티심 타우스가 예언의 장면을 조금 더 볼수 있어서였다.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셈이다.
* * *
그는 대전사 시압 티사브(Siab tshav)와 마주했다.
“왜 이렇게 늦었냐?”
“아니, 오늘 왔는데 어떻게 이보다 빠를 수 있습니까?”
킁킁.
대전사는 냄새를 맡더니 바로 말했다.
“너 이 자식 술 마실 시간은 있고 내 명령을 받으러 오는 건 늦장 부리고, 아주 제멋대로구나!”
“꼬우면 더 빨리… 악!”
대전사가 바로 한 대 쳤다.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강한 한 방이었다.
몇 대 맞은 그는 서둘러 답했다.
“대예언에 제가 또 입김 한 번 불겠습니다.”
“뭔 오크 나무 썩는 소리를 하냐?”
“예? 그것 때문에 부른 거 아냐?”
“주술사들 말을 믿는 네가 난 참 부럽다.”
“아, 제기랄!”
분노하는 그 모습을 본 대전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입 닥쳐. 너 인어 거주지에서 좀 살아야겠다.”
“내가 왜요? 다른 놈 시키세요.”
“그냥 해. 하라면 하라고.”
티심 타우스가 역정을 냈다.
“전쟁에서! 이제 돌아온 오크 전사를 이렇게 대우하다니! 이게 대전사냐! 깡패지!”
“그래, 깡패 양아치 쓰레기다. 어쩔래? 어쩔래?”
그 말을 들은 티심 타우스가 몸을 날렸다. 움막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쓰러진 움막에서 티심 타우스가 퉁겨져서 데굴데굴 구르며 널브러졌다. 눈탱이 밤탱이가 된 티심 타우스를 보며 대전사가 손을 털며 말했다.
“어차피 배 타는 일이니까, 그렇게 화낼 필요 없다. 너한테 다 좋은 일이야. 전쟁에 나가서 제법 날카로워졌지만, 나한테는 아직 멀었다.”
“인어들을 내 배에 태우라고?”
“그래, 이놈아. 괜히 인어 거주지가 있겠냐?”
“다른 선장들은?”
“안 하겠다고 워낙 난리를 쳐서…….”
그 말에 티심 타우스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럼 나도 안해.”
“해.”
“안해!”
“해! 해! 해!”
대전사가 발로 티심 타우스를 두들겨 팼다. 개박살이 난 티심 타우스는 그렇게 처맞아도 우직하게 소리를 질렀다.
“안 해!! 안 한다고! 안 해!”
땀을 흘릴 정도로 두들겨 패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고문으로 굴복하는 전사가 있다면 그건 그냥 삼류전사에 불과하다. 진짜 전사는 진짜 무서운 놈들이다.
“저…….”
소강상태를 보고 있던 인어가 다가왔다.
“투스(Tus),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이렇게 소란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제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퉤!”
티심 타우스가 피가 섞인 침과 함께 이빨을 하나 뱉어냈다. 어차피 오크의 이빨은 계속 새로 자라난다.
티심 타우스는 불만스럽게 인어를 바라보았다.
‘예쁘다.’
티심의 눈에 사랑이 깃들었다. 바다색으로 물들어 있는 긴 머리카락부터 미녀라고 할 만했다. 하체는 물고기였지만 그래도 거부감이 없었다. 특히 날카로운 눈매가 더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티심 타우스라고 합니다. 선장 중에 제일이죠. 오늘부터 인어 거주지에서 살게 된 오크 1호입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대전사가 뒤통수를 때렸지만, 티심 타우스는 헤벌쭉 웃었다.
“가시죠. 제가 인어 거주지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티심 타우스가 거침없이 앞장섰다.
대전사는 티심 타우스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시압 티사브(Siab t아iav)는 무너진 움막을 내버려 두고 조개 항구에서 가장 늙은 주술사를 찾아갔다. 그 눈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대예언.’
그걸 확인해야 할 때다. 조개 항구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대예언이 이루어졌고, 그 정보가 주술사들을 통해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오늘 그걸 확인할 수 있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