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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안은 때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능글맞은 뿔 쥐의 모습은 화가 날 뿐이었다.
“본론이나 말해라. 왜 온 것이냐?”
세리안의 거친 언행에 쉐도우 위스퍼 소속의 피 숨결 검은 뿔 쥐는 본론을 꺼냈다.
“신제국을 견제하는 데 협력을 원해서 왔습니다. 상위국도 여전히 신제국을 견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네놈들이랑 무슨 상관이냐?”
세리안 불파겐은 불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말하는 모습이 자기들 없으면 신제국과 부딪히고 견제하고 싸우는 게 힘들 거라 여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말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건방진.’
“기고만장해서는 너희 지하 연합이 언제까지 그 위세를 가지고 있을 것 같으냐?”
“위세? 다종족 연합의 종족 중에 지하 연합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 합니다. 적어도 국왕께서는 저희 다종족 연합이 강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크나큰 영광입니다.”
세리안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뿔 쥐가 냉큼그림자로 변해서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 불파겐의 살기는 뿔 쥐의 감각을 서늘케 만든다.
그 겁쟁이 같은 모습에 세리안이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겁을 먹었는지 모르겠군. 내가 잡아먹 기라도 하나?”
세리안은 일어나서 술 한 병을 가져왔다. 이에 뿔 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실례했습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거렸다. 사자와 같은 세파리 아스와 드낙과는 다르게 착 가라앉은 생머 리였다. 누가 본다면 분명스트레이트파마를 한 거라며 질투할 정도일것이다.
쪼르르륵.
세리안이 술을 마셨다.
늦은 밤에 마시는 술은 잠을 깨운다. 화기가 몸속을 나돌며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웠으며, 알코올 향은 코를 뻥 뚫리게 하였다.
‘지하 연합은 잘보이지 않지.’
그들의 도시를 찾아가도 어차피 지하이기 때문에 규모를 한눈에 볼 수 없다. 체감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 걸 체감할 수 있다면, 보통내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이들은 지하 연합의 규모를 잘못알고 있다. 쉐도우 위스퍼를 이용할 수 있는 소수의 이들만이 지하 연합의 강함을 알고 있는 상태다. 평범한 시민이 쉐도우 위스퍼에게 찾아가서 지하 연합의 규모를 묻는다면 대답을 들을수 없었다.
“지하 연합의 위세는 아직 대중에게 약하다. 그렇기에 크게 놀 수는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른 종족과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다른 종족에게 질투와 시기하는 마음 또한 가지고 있다.
“고블린 상단과 자주 교류한 상위국은 더더욱, 지하 연합을 높게 쳐주지 않고 있다.”
세리안의 부정적인 말에도 뿔 쥐는 거침없었다. 예상된 바였다.
‘꺼림칙하니까.’
분명 1등과 교류하는 건 이득이다. 하지만 문제인 것은 그 1등도 교류하면서 이득을 본다는 점이었다. 서로 덩치가 다르고, 수준도 차이가 났기에 그 격차는 점점 복리처럼 크게 벌어질것이다.
게다가 세리안과 다이앤타는 드낙으로부터 업을 받고 있다. 세리안은 이번 논공행상을 통해서 반마의 격에 올라섰다.
그들은 밖으로 출정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신제국과 영차영차 하며 같이 하고 싶은데, 세파리아스와 뿔 쥐들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간을 보는 걸 수도 있고.’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교류를 하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성장동력이 내수라면, 자신을 뛰어넘는 성장동력은 외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 연합은 훌륭한 수출국이 될 수 있다.
“초월자께서 논공행상 영상이 모든 이들에게 보급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때가 되어서 따로 이야기하지.”
세리안이 즉답했다.
그녀는 뻔한 대답을 했고, 뿔 쥐 또한 뻔한 대답을 했다. 그다음에 이루어질 상투적인 말도 예상했다.
‘협상을 뒤로 미룬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인가. ‘때’를 맞추는 것이다. 내 몸값이 가장 비싸질 때까지 확답을 줘서는 안 된다.
물론 자신의 가치가 낮다면 대체재가 많다면 냉큼 대답하며 고개를 조아리고, 4대 보험이고 나발이고 편의점 야간 시간에 일하며 우직하게 버티다가 3년 뒤에 바로 뒤통수쳐서 못받은 돈을 싹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더 뜯어낼 수 있는데 안뜯는 사람은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뿐이 다. 부자일수록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주는 돈을 아까워하기 마련이다.
상위국은 최대한 협상을 끌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뿔 쥐가 괜히 밀약을 맺으러 온 게 아니다.’
다른 이의 견제를 배제하고, 담판을 짓기 위해서다. 이를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상위국은 상대적으로 이득을 챙겼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 가치를 지닌 건 수학뿐이다. 다른 이와 마주 보면서 만들어내는 것들은 하나같이 상대적 가치를 지닌다. 이를 타파하려면 그럴싸한 걸 제시해야만 한다.
“신제국은 차원 다리를 건설할 것인데, 그들이 독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뿔 쥐들도 차원 다리를 건설할 생각인가?”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다리는 그 효율성을 극도로 끌어올리지만 건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당연히 해야죠 어떤 세계에 닿을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땅은 언제나 옳은 법 아닙니까?”
차원 다리는 엘프들의 마도 기술로 만들 수 있었기에 너도나도 참가할 생각을 하고 있다. 테라의 땅을 넘어서서 다른 땅에 자신들의 깃발을 세우는 건 권력자들에게 매력적인 일이다.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매력적이다.
더 많은 영토는 더 많은 힘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보들이 살아도 땅이 크면 엘리트 국가도 제칠 수 있다. 그만큼 소비와 생산은 인구에 비례한다. 비누를 팔아도 100명에게 파는 것과 10억 명에게 파는 건 큰 차이가난다.
“아마 이대로 진행된다면, 세 번째 혹은 그 이하로 다른 세계로 가는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겁니다. 그전에 다른 세력은 재미를 보기 시작할 겁니다. 후발주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지하연합과 함께하는 게 더 옳은 방법 아닙니까?”
세리안이 술잔을 매만졌다.
‘요놈들 봐라? 왜 이렇게 절박한 거지? 내가 모르는 것이라도 있나?’
그녀의 눈이 좁아졌다. 정보가 너무 적었다. 쉐도우 위스퍼의 정보 단가는 굉장한 수준이라, 다른 국가의 첩보 조직은 그 수준이 낮았다. 돈으로 해결하면 편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지금 드러나고 있었다. 지하 연합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상당히 당혹스러운일이다.
쉐도우 위스퍼는 드낙을 위해서 투명성을 가지고 있다.
‘지하 연합에 대한 정보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는데…….’
자신이 모르는 게 생겼다. 즉, 뿔 쥐들도 이제 딴마음을 품고 있다는 소리 였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나 본데, 뿔 쥐들도 예전 같지 않군.”
뿔 쥐의 눈이 휘었다.
“다종족 연합에 속한 종족 모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흥, 남이 다 한다고 따라 하는 게 얼마나 꼴사나운지 모르는 건 아니 겠지?”
뿔 쥐는 세리안의 비난에도 어깨를 으쓱할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평등해졌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절박하게 상위국의 국왕을 찾아온 겁 니다.”
세리안이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갈아놓은 포도를 술잔에 집어 넣었다. 달달하고 새콤한 증류주를 마시자 뇌가 팽팽 돌아갔다.
‘그 말대로지.’
지하 연합은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 만, 빠르게 따라잡힐 것이다. 인구가 많아도 어쩔 수가 없다.
‘엘프가 있으니까.’
순백이니 뭐니, 종족명을 바꾸긴 해도 결국에는 엘프다. 게다가 고인 물을 스스로 정화하겠다고 공표까지 해버린 상태였다. 그들은 진실로 뿔 쥐들의 대항마가 될 것이다.
당장 지금만 해도 세력을 가진 지도자라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차원 다리를 건설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차원과 관련된 지식을 탐구했던 엘프들이 기록해 놓은 다른 차원에 대한 좌표 또한 적혀 있다.
신제국은 그중에서도 인간이 있는 차원 좌표를 이미 배당받고, 점찍어 두었다. 경쟁자들은 신제국이 찍어놓은 곳에 굳이 차원 다리를 또 놓지는 않을 것이다.
엘프의 순기능은 지하 연합과의 격차를 줄이는 데 아주 좋은 수단이다. 다른 기업을 해킹해서 한 번에 기술격차를 뛰어넘는 걸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소리니까.
‘이런 상황이 와서 절박하게 상위국과 교류하고 싶은 건 아닐 거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뿔 쥐가 그걸 말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상위국이 뭘 해줬으면 하는 거지?”
“차원 다리 건조. 협동해서 만들었으면 합니다. 지분은 50대 50입니다.”
세리안의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신제국을 상대로 확실하게 격차를 두겠다?”
“예.”
노골적이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되레 세리안은 그것이 그림자처럼 여겨졌다. 그 그림자에 가려진 것을 보고 싶었지만 마땅찮았다.
지하 연합은 숨기려면 숨길 수 있다.
‘다른 거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좋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세리안은 확답을 내줬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다.
“무엇입니까?”
“지하 연합의 식량은 여유가 있는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럼 나는 그쪽으로 재미를 좀 보고 싶은데.”
뿔 쥐가 고개를 갸웃했다. 상위국은 난민들이 많지만, 노동자 계급이 높았다. 즉, 가장 많은 농사꾼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땅이 워낙 넓어서 단순히 골렘만 농사를 짓고 있지 않았다.
상위국은 개간되지 못한 땅을 계속해서 인력까지 투입해서 개간하여 식량으로 재미를 보고 있었다. 해마다 어마어마한 농지 증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쉐도우 위스퍼의 정보력을 생각하면 그것이 ‘덫’이라는 걸 깨달아야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건 제법 일국적인 생각이었다. 여기에 있는 뿔 쥐는 그 정도의 판단은 불가능했다.
“도움을 주도록 상부에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그게 된다면, 바로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감사합니다.”
뿔 쥐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쏘옥 들어갔다. 출렁거리는 엉덩이가 탐스럽게 움직이다가 들어갔다.
세리안의 몸이 움찔거렸다.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은 욕망을 애써 참았다.
웅성웅성.
수많은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복장은 제각각 달랐다.
로니는 사람들이 길게 나열한 줄에 서서 무료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그는 추레한 농부의 옷을 입고 있었고, 창고에 박아뒀다가 꺼낸 것인지 먼지 냄새가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내 그의 차례가 다가왔다.
얼굴이 낯이 익었다.
“보급관님?”
로니가 아는 척을 했다.
“로니잖아? 현역으로 안 뛰고 전역하나 보군.”
“징집병 주제에 무슨 현역으로 또 뜁니까? 등수로 따지면 하위권인데요.”
“밥벌이하는 게 중요하지.”
“죽기는 싫습니다.”
그 말에 보급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징집병주제에 보급관과 친분이 있다는 것부터 로니는 남다른 놈이다.
“자네는 다른 징집병보다 처우가 훨씬 나아. 방어전 전선에 투입되었으니까.”
“죽다 살아났죠. 그 돈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야죠.”
“거기 가서도 잘 지내. 검 들고 다시 여기 오지 말고.”
“아까는 현역으로 뛰라면서요?”
두 사람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곧 보급관이 말했다.
“방어전 전선에서 살아남은 징집병은 당연히 모병 대상이니까. 또,특진해서 시작하니까, 안 하는 게 병신이지.”
“제가 병신입니까?”
“그런 말은 아니고…….크흠.”
보급관은 말을 내뱉고 나서 후회했다.
“전쟁을 겪어보니까, 지독하더라고요.”
“같이 입대했나?”
“예. 돈도 주고, 나라를 위한 길이라니, 가야 죠 하하하.”
“마을에서 몇 명 같이 왔었나?”
“…이제 저 혼자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전쟁은 잔혹한 법이다.
보급관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그에게 서류를 건넸다. 서류는 몇 장이나 되었다. 로니는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그날을 떠올렸다.
一와아아아아!
一멋지다! 자치 왕국의 건아들!
一평화를 지켜줘!
꽃잎이 떨어지고, 나라를 위해서 싸우러 가는 이들에게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었다. 하지만 이제 그와 어깨동무하며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소꿉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그 혼자였다.
그에게 있어서 ‘군(軍)’은 ‘전쟁(戰爭)’은 자신의 불알친구 셋을 앗아간 끔찍한 것에 불과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친구들이다. 심지 어 그는 아직 그들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그들이 언제 고향으로 돌아올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두둑하게 챙겼군!”
누군가가 돈을 받고 가는 로니를 향해 말했다. 그 속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로니는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집어넣었다. 그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