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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리아스는 수도에 모인 병사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먹어라! 마셔라! 승리를 누려라!”
신제국의 시민들이 식량과 술을 계속해서 옮겼다. 수많은 이들이 무용담을 전했고, 이를 다시 다른 이들에게 말하였다.
원한다면 신제국의 황제와 술 한 잔을 나눌수도 있었다. 창남과 창녀도 불러들였다. 용기를 내는 것도 멋진 추억이었지만, 심약한 이들은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그런 이들까지 챙겼다.
“받아라!”
“감사합니다!”
병사는 감히 세파리아스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저 징집병의 신분으로 식량을 옮기는 보급병이어서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라, 병사. 넌 차원 전쟁에 참여한용사다.”
“제가 한 건 그저 식량을 옮기는 일뿐이었습니다.”
“그 식량이 없다면, 기사는 싸우지도 못했겠지. 배가 고프면 오우거조차도 빌빌거리는 것이 현실이다. 넌 보급의 중요성을 모르느냐? 보급관이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더냐?”
“그것은 아닙니다! 매번 들었습니다! 자신감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파리아스가 모닥불에 앉아있는 다른 병사들도 한 번 스윽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 집중하고 있었다. 한 명은 너무 마셔서 뒤집힌 상태였다.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모두 하나되어 싸우는 것이 인간이다. 심지어 병사가 아닌 시 민들조차도 전쟁에서 활약했다고 볼 수있다. 그들이 만든 방어구부터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까지! 모두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예.”
병사들이 냉큼 대답했다.
“여기에 창녀는 없군. 내가 제법 많이 불렀는데, 여자를 즐기지 못했나?”
“아닙 니 다. 충분히 즐겼습니 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지미! 넌 창녀랑 안 즐겼잖아.”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웃었다. 창녀랑 즐기지 않는 남자라면, 그것뿐이 다.
“남창도 있다.”
“벌써 했습니다.”
“부리나케 달려가는 걸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황제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급하고 저열한 음담패설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심지어는 마을 우물에 대한 주제도 흘러나왔다. 세파리아스는 모든 주제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 있는 작은 언덕을 바로 밀어버리라고 말해 놓겠다. 내가 잊을 수 있으니…….”
세파리아스가 병사의 천에 숯검정으로 슥슥글을 썼다. 그다음에 옥새를 쿵하고 찍어줬다.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수도의 관리에게 보여줘라. 글이 망가져도 옥새가 찍혔으니, 알아서 해줄 것이다. 욕심은 부리지 말고.”
“가감사합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기도 했다.
얼굴이 못생긴 어떤 이에게는 땅과 노예를 줘서 결혼을 시켜줬다. 노예라도 여자면 감지 덕지다. 노예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고, 든든한 버팀목이 있으니 뛸 듯이 좋아할 것이다.
어떤 이는 그림을 팔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는데, 세파리아스는 그렇게 하고 싶은 이들을 모아서 하급 관리로 전출시키도록 했다. 적당한 돈을 받으면서 그림을 팔아서 살아가도록한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은 세파리아스가 모두 정리했기에 실수 하나 없었다. 술을 잔뜩 마셨음에도 그는 담담하게 모든 병사들과 술을 나누었다.
심지어 시민들과도 술잔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신제국의 시민들이 가지는 마음은 화산폭발 같은 격동적인 추억이 되었다. 그 폭발하는 마음은 세파리아스에 대한 무한한 충성으로 번져갔다. 세파리아스를 욕하는 이들이 있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손가락질할 것이다.
‘정치는 쇼다.’
쇼도 못 하는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격이 없었다. 대중의 속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반푼이다.
‘드낙 때문이기도 하지.’
드낙만큼 쇼를 잘하는 놈도 없었다. 심지어 놈은 쇼를 진심으로 즐기고, 버러지 같은 노동자 계급을 위해서 많은 걸 베푸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세파리아스는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즐기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쇼’를 하고 있었다.이건일이었다.
가장 피곤한 목요일 밤 밤늦게 샤워를 하며 콧노래를 부르는 아내를 바라보는 중년의 남성처럼. 이건 그저 의무이며, 해야 할 일에 불과하다.
‘공포로 지배하는 게 편하긴 편했지.’
전체의 90%가 죽이면 말도 못 하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나머지 10%만 잘 관리하면 된다. 공포정치는 쉽다. 이를 조절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그저 뒷배에 엘프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었다. 깨달으면 이미 늦은 법이다. 현실은 그를 기다리지 않고 계속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파리아스는 실패를 통해서 많은 걸 깨달았다. 그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생쇼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천재가 벽을 마주하면 자멸하지만, 세파리아스는 죽고 다시 태어난천재이기에 전과 후가 확실하게 달랐다.
“크아아아아아!”
거대한 오크 술통을 단번에 비워낸 천상십이수극대전사(天上十二手極大戰士), 전쟁속의 영광 브누아 예레미아스(Benoit Jeremias)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맙소사! 도수가 그렇게 높은걸!”
“불붙이면 불이 붙는다던 걸 저렇게……!”
병사들과 기사들이 그들을 중심으로 원을 만들어 둥글게 모여있었다. 그 중심에는 기사와 브누아 예레미아스가 술 대결을 하고 있었다. 덩치를 봐서 기사는 큰 술잔, 브누아는 오크 술통을 원샷 때리고 있었다.
“꺼어억!”
크게 트림을 한 기사는 기어코 뒤로 쓰러졌다. 브누아가 빈 오크 술통을 들어 올려 찢어버리며 승리의 포효를 하자 이를 지켜보는 이들도 고함을 크게 내질렀다. 그냥 소리만 질러도 재미났다.
세파리아스는 7일 밤낮을 술을 마시며 보냈다. 그러면서 둘이서만 술을 홀짝이는 청기사왕(이ue Knight king)과 적기사왕(Red Knight king)을 발견했다. 그들의 주변에는 술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마셔댔는지 안주로 먹은 것들의 잔해도 수북이 쌓여있었다.
인조 생명체에게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먹고 마시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었다. 배가 부르다는 감각도 느낄 수 없었고, 배가 고프다는 감각을 지울 정도로만 먹고 마실 수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배가 터질 것 같은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번 축제는 의미가 깊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곯아떨어진 곳에서 이제두 명의 인조 생명체는 진지하게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거기에 세파리아스가 참석했다. 두 명이 벌떡일어났다.
“내 술잔을 받으러 오지 않더군?”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다른 이들이 더욱 원하는 것 같아서 가지 않았습니 다.”
그들은 외부인.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었다. 세파리아스와 술을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마음이 대단히 절절하여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농담이다, 앉아라.”
세파리아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에게 가지 않은 것도 다른 이들이 싫어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즐기기는 많이 즐겼느냐?”
“예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많은 이들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 다.”
“특별히 관심을 가진 자들이 있더냐?”
“마법사들의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오러블레이드 때문이겠지.”
대인 마법의 끝판왕. 그게 바로 오러블레이드다. 마력을 응축하여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파괴적인 근접 마법이다.
그것은 신제국이 가져야 할 전쟁기술 중 하나다. 최소한 영향무력을 배울 수 없는 기사들이 가져야 할 무력 수단이다. 또한, 엘리트 마법사의 기준이 될 마법이다.
“황제께서는 많이 즐기셨습니까?”
“그래.”
그는 짧게 대답했다. 전혀 즐기지 못한 건 아니다. 술을 마시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전에는 그러지 못했나 보지?”
“꽁꽁 얼어붙어서 필요할 때만 해동되어 전투만을 겪었습니다.”
“오러블레이드를 사용 가능한 인조 생명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 다.”
마도 기술 중에서도 극도로 위험한 물건이었다.
“흥, 그 힘을 알고도 안 쓰는 게 웃기는군.”
“다른 자들도 이를 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이지요.”
그 말에 세파리아스는 더욱 분개했다.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초월자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이고 그 살을 발라 먹었는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를 들은 청기사왕과 적기사왕 또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거대한 신념이 그들을 불살랐다. 죽음만이 그 신념을 꺼트릴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차원 다리를 건설한다. 이미 확답도 받아냈다. 지하 연합 또한 진행하겠지만, 우리가 최대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30년 뒤에 전쟁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거, 이건 이거다.”
드낙이 있는 한, 차원 방위는 걱정 없다.
그게 세파리아스의 본심이었다. 그는 파수병, 자신은 돌격병이다. 분담이 잘 되어있다.
세파리아스는 확실하게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과 현격히 다를 정도로 먼곳이었다.
이에 기사왕 두 명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세파리아스를 끝까지 따를 생각을 가졌다.
前자치왕국. 現 상위국.
돌아가는 내내 격렬한 대립이 이루어졌다.
“도렌 국왕을 계속 그대로 놔둘 것이오? 세리안 국왕! 반드시 철퇴를 내려야 하오. 경제적으로 압박을 해야 합니다. 반드시!”
“금권정치는 권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인 것을 그대도 알지 않습니까. 가문도 변변찮은 이들이 계속해서 기득권층에 유입되고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때입니다.”
아크온과 길게이가 세리안을 설득하려 밤마다 세리안의 막사를 찾아왔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크온과 길게이는 금권정치를 시작했고, 도렌은 기본소득을 시작했기 때문이 다. 완전히 반대되는 스텐스였다.
두 개로 분열된 정치체제나 다름없었기에 강렬한 대립에 휩싸였다. 둘 중 하나가 쇼한 것이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둘 다 진지하게임하고 있었다.
도렌은 아래 사람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그들이 지닌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하려고 했다. 세금은 밑으로 흐르게 된다. 반면, 아크온을 비롯한 길게이는 정반대였다. 돈이 돈을 벌듯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려고 틀을 짜게 되었다.
“금권정치에는 나도 관심이 크오. 허나 도렌국왕과의 교류는 계속할 것이오.”
세리안은 중립을 유지했다.
“유감입니다.”
“하지만 계속 관계를 유지하겠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 니다. 결코 도렌 국왕의 편만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양측 모두와 관계를 다졌다. 그녀는 그럴 힘이 있다. 대국이 소국 하나와 교류하는 건 병신같은 짓이다. 힘이 있기에 최대한 많은 국가와 교류하는 것이다.
‘둘 다 장단점이 있지.’
금권정치는 돈만 많으면 권력도 쥘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더 많은 이권을 소유할 수 있다.
도렌 쪽은 인건비가 높아질 것이 분명하기에 상품을 팔기 좋다. 아래 사람이 돈이 많으면 경제는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다른 국왕들이 지배하는 땅은 앞으로 크게 달라질 것이고, 거기에 맞춰서 자신의 땅을 다스리며 이득을 최대한 취하는 게 세리안의 목표였다.
“찍찍.”
그들이 떠나가고, 조용해진 막사에 쥐 소리가 흘러나왔다. 세리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불청객이 따로 없었다.
“입구가 있는데, 왜 바닥에 있느냐?”
그 말에 검은색 털을 지닌 뿔 쥐가 붉은 숨결을 내뱉으며 땅 속에서 튀어나왔다.
버둥버둥!
입구를 작게 뚫어서 완전히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뱃살이 어찌나 쪘는지, 전사로 보이지 않았다. 뿔 쥐는 흙을 더 파고 나서야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었다.
“세리안 국왕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뭐 하는 놈이냐?”
“쉐도우 위스퍼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름은?”
“쉐도우 위스퍼지요.”
뿔 쥐는 능글맞았다. 자신의 이름조차도 말하지 않는 모습에 세리안은 손사래를 쳤다.
“꺼져라.”
축객령이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제안?”
“앞으로 30년 뒤에 악마가 침공하지 않습니까. 그때가 될 때까지 또 경주가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태평하게 정치싸움을 하는 게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놈……. 주둥이를 참으로 함부로 굴리는구나.”
이에 뿔 쥐가 냉큼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신제국과 상위국의 현상태를 비교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만…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오히려 그 모습이 간사해 보였다. 뿔 쥐의 종족성은 이미 중급 권속 악마에 올라섰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그런 놈들이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간악할 정도로 더러웠다. 금수저가 만 원에 벌벌 떨며 ‘어떻게 해, 어떻게 해.’를 외치며 노래를 부르는 꼬락서니였다. 꿀밤을 쥐어박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