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028화 (1,027/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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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에필로그 (9)

‘불파겐 혈통은 많아도 너무 많다.’

후회는 항상 하기 마련이었다. 드낙이 딱 그랬다.

‘내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잘 되면 챔피언으로서 삶을 마감할 것이라 여겼다. 초월자인 악마의 좌에 앉을 줄은 몰랐다. 그 결과 드낙은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난 놈이면 굳이 정리할 필요가 없지.’

가족경영을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내 자리를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권력자는 없었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안 할 뿐이다.

내 돈, 자식에게 증여하지 요크 타고 다니는 사회복지재단에 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코노미를 타고 다니지 않고 비즈니스를 타고 다니는 것만 봐도 화딱지가 날 것이다. 밑으로 향하지 않고, 내 대우를 위해서 위로 향하는 것들이 횡행하는 것이 복지였다. 인간은 간사하기 때문이다.

항상 이를 우습게 아는 이들이 많다. 10억의 기부금이 모이면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기견들이 한해에 안락사당하는 숫자를 보고도 ‘사람은 간사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지능이 좀 부족한 불쌍한 이들이다. 드낙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혈족 운영은 이득이 더 많다.’

에드윈 가문을 외척으로 두고 있는 아메리코 불파겐이 운송 회사를 크게 차린다면, 정부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일하는 놈만 일하는 게 큰 정부의 단점이다. 이를 줄여나가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철밥통은 주기적으로 쪼개버려야 한다.’

그래야 철밥통을 위해서 오는 게 아니라, 나라를 경영하고 싶은 이들이 오게 된다.

돈 벌려고 경찰이 된다면 그 경찰은 제대로 된 경찰이 아니다. 사람 찌르고 다니는 강도에게 결코 몸을 던지지 못한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순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 수많은 장단점 속에서 하나의 행동을 해야 하는 게 드낙의 위치였다.

‘혈족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누는 것도 장단점이 있고, 따로 분열시켜서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것도 장단점이 있지.’

그렇기에 부드럽게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할수 있어야 했다.

‘큰 줄기는 다이앤타와 크레시 미르로 나누는 것.’

혈족 중에는 개망나니도 하나 나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엘리트끼리 묶어버려야한다.

뱀의 머리가 아니라 용의 꼬리가 된다면 자중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못 된다면 드낙이 처리하면 그만이다. 망나니짓만 일삼는 놈에게 불파겐의 이름을 줄 수는 없다.

‘사자의 머리가 될 놈은 내가 정한다.’

아메리코 불파겐이 그러했다.

‘의외로 꿈을 찾아가고 있는 자식들이 많을것 같다.’

드낙은 다음 자식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케이샤가 낳은 둘째인 아니발 불파겐(Anibal B니pagen)에게 가기로 했다. 첫째는 불파겐의 성씨를 이어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가지 않았다.

스스스.

신기루처럼 드낙이 사라졌다. 이를 본 아메리코 불파겐은 팔뚝에 돋은 소름을 손으로 슥슥 쓰다듬었다.

“아아악! 엄마! 제발!”

안젤리카가 옆구리를 꼬집자 아메리코가 비명을 지르며 본색을 드러 냈다.

“어머 니라고 부르랬지. 그리고 왜 그렇게 거침없이 날뛰는 거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르는 거냐!”

꿀밤이 휘둘러졌다.

휘익!

아메리코가 회피 기동을 시작했다. 그도 귀족적인 교육을 받았다. 또한, 에오윈 가문은 무인 가문이었다.

퍽!

피하려고 피했음에도 안젤리카의 동체 시력은 대단했다. 괜히 기사로 활동한 게 아니었다.

“꿁!”

괴상한 소리를 내는 아들을 보며 안젤리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메리코 불파겐은 가진 열정에 비해서 경박한 것이 드낙을 쏙 빼닮았다.

* * *

케이샤 킹슬레이와 그 자식들은 당연하지만 국제 연합 도시에 있었다. 불파겐의 우월한 피를 이어받은 첫째는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킹슬레이 가문에서 키워지고 있었기에 첫째만 이곳에 없었다.

잔인하다 하겠지만 가진 자들은 어린 시절어머니의 부드럽고 따스한 살 내음을 자식에게 주기보다는 지금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지키는 일에 몰두한다. 그게 더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0억을 위해서라면 감옥도 갈 수 있는 게 사람 마음이다. 가진 자들은 실제로 종종 그런 선택을 하곤 한다.

자식 하나를 그렇게 자신의 가문에 보냈지만 케이샤 킹슬레이는 우울감에 젖어 있지는 않았다.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았기 때문이다. 또한, 둘 중 하나는 가업을 잇고 싶어 하는 마음이 대단히 높았다.

케이샤가 화장품을 바라보았다. 손바닥만하고, 크림을 넣는 통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화장품을 사용했다. 이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이 세계에서도 화장품은 대단히 애용되는 편이었다. 가격이 비싸지만 최근에는 단가도 많이 낮아졌다. 박리다매라는 상업 방식이 큰 이득을 준다는 것이 골렘 사업을 통해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규모가 막대했지만 그에 정비례하여 이익이 손에 들어온다.

화장품 사업도 마찬가지다. 대량으로 만들면서 케이샤는 엄청난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만큼 세금도 내지만 이익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온갖 시제품들이 깊이 있게 다루어지는데 그건 퍽 재미난 일이었다.

남자인 아니발 불파겐(Anibal Bulpagen)이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그는 화장까지 한 채로 케이샤의 앞에 앉아있는 채로 케이샤의 말을기다렸다.

“이거니?”

“네, 어머님.”

“오래 준비한 것치고는 너무 단출하구나.”

“이미 많은 종류를 팔고 있는데 제가 거기에 더 많은 걸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 다.”

케이샤가 웃음꽃을 피웠다.

“화장품은 항상 툭 튀어나와야 해. 다른 그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빛나야 하지. 그런 의미에서 잘 선택하긴 했다. 다만, 이거 하나가 얼마나 빛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겠지.”

그때 드낙이 툭 내뱉었다.

“뭐 하세요?”

둘 다 깜짝 놀랐다. 드낙의 얼굴을 보고 진정했지만, 당황스러운 표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드낙은 순식간에 마법을 이용해서 의자를 끌어와 착석했다. 팔짱을 끼고 사람 좋게 웃었다.

“초월자를 뵙습니다.”

아니발 불파겐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했다. 몇 번이나 봤지만 드낙은 자신의 아버지 같지 않았다. 케이샤의 남편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드낙은 굳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래서야 강제로 ‘아버지처럼 대해라’라고 말하는 깡패나 다름없었다.

‘역효과가 날뿐이지.’

“오냐. 빨리~ 빨리 앉어~ 아빠 목 부러지겠다.”

드낙은 짧게 말하며 앉으라고 촐싹거리며 재촉했다.

“예.”

아니발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앉았다. 그는 이제 겨우 열세 살이다. 제대로 된 처세술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특히 이 차원계의 지배자가 저렇게 촐싹거리면서 말에 운율까지 담아서 노래 부르듯이 말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케이샤도 순수하게 미소를 짓고 있어서 그 미소가 전염된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아니발에게 눈총을 주지 않은 까닭은 드낙은 생각보다 가정적인 남자이기 때문이다.

‘귀찮지만 이렇게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거지.’

또한, 전쟁이 끝난 직후라서 마음도 풀어져있는 게 드낙이었다. 너무 딱딱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화장품 사업이 매우 잘 된 탓도 컸다. 가진것이 있으니, 손을 빌리려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드낙이 주는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주면주는 거고, 말면 마는 거다.

그렇기에 여유가 있었다. 케이샤는 ‘드낙의부인’이라는 것도 이제는 별로 큰 가치도 없다고여기고 있었다.

‘부인이 한둘이어야지.’

희소가치도 떨어졌고, 무엇보다 지금 시대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돈과 내세력.’

상단 따위가 사병을 거느리고 경비업체를 만들어서 거느리고 다니는 시대였다. 거기에 있어서 지배자의 부인 타이틀도 대단하긴 하지만 케이샤는 사장도 되고 싶었다. 실제로 지금 그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그녀는 불파겐의 부인이 되기 전부터 화장품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자식도 이를 지켜보았기에 자연스럽게 케이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남자가 화장하고 다니 니 말 다 했다.

“아니발이 만든 화장품을 오늘 감평하려고하고 있어요.”

“그래요 저도 있어도 되죠?”

“볼일이 있어서 온 게 아니세요?”

“맞는데, 아들이 뭐 하는지도 보고 알고 있어야 아버지 아니겠어요?”

드낙의 말에 케이샤가 고개를 까딱이며 이해했다. 그러고는 바로 검은색 통을 열었다. 거기에 담긴 건 액체와 가루가 뒤섞인 보기 흉한 것이었다. 액체는 투명했지만 초록빛을 내고 있었고, 가루 같은 건 진한 초록색이었다.

“이런 걸 바른다고?”

케이샤가 혼잣말을 하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드낙도 마찬가지 였다.

“너무 걸쭉한데?”

조금 만져보며 혹평했다.

케이샤는 손에 묻힌 것을 만지작거리더니 더욱 비판적인 태도를 지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속에 있는 가루가 너무거칠어. 이래서야 피부에 상처를 줄지도 모르겠어.”

다만 그래도 아들이라서 그런지 손목에 조금 발라보고는 장점도 말했다.

“나무 수액이지? 보습엔 좋은 것 같아. 이건 좀 괜찮네. 근데 남자들만…….”

좋게 가더라도 마지막에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까칠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아들이라도 어림없다. 화장품은 구매력으로 명확하게 그게 결정된다.

“아들! 가격은 얼마로 생각했는데?”

“동화 39닢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머!”

케이샤가 깜짝 놀랐다. 정말 싸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을 통해서 삼나무 수액을 온실에서 꾸준히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건비가 그렇게 들지 않고, 대량으로 삼나무 나뭇잎말린 것을 넣어 섞을 뿐이라괜찮습니다.”

가루가 제대로 빻아지지 않은 건 빻지 않고 나뭇잎 말린 걸 그냥 넣어서였다.

“근데 이걸 밖에서 바르고 다닐까?”

케이샤의 말에 아니발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통이 왜검은색입니까?”

“밤에 쓰라고?”

“네, 그리고…….”

아니발이 품에서 통 하나를 더 꺼냈다. 그건 똑같은 크기와 규격은 아니었다. 조금 더 납작하고, 넓었다. 뚜껑도 조금 더 반질반질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기존의 것은 광택도 나지 않습니다. 하품냄새가 나죠. 하지만 싸고요. 반면 이 프리미엄나이트 보습크림은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납니다.”

이를 열자 곱게 빻은 가루와 크림이 눈에 들어왔다.

“수액을 마법으로 농축시킨 겁니다. 이렇게 손으로 덜면 피부 온도에 맞춰서 묽어지며 수 액처럼 변합니다.”

“와.”

드낙이 감탄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즉 1g의 크림이 피부에 발라지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5~10g의 수액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소리였다.

“피부흡수율에 따라서 크림이 수액으로 팽창하여 흐르는 정도를 맞췄습니다. 다른 크림과는 다르게 잠에서 깨어나도 촉촉합니다.”

“…….”

케이샤가 진지한 모습으로 프리미엄 나이트보습크림을 받아서 손등에 바르고 유심히 지켜봤다. 크림의 곁 부분에 수액이 아주 조심스럽게 삐져나오며 피부에 흡수되었다.

“흐르지도 않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표본을 통해서 평균을 잡았습니다. 나중에는 프리미엄 나이트 스트롱 에디션과 프리미엄 나이트 소프트 에디션으로 나눌 생각입 니다. 피부흡수율이 높은 사람은 스트롱 에디션을 쓰고 소프트 에디션은 흡수율이 낮은 사람이 사면 됩 니 다.”

“거기에 그냥프리미엄 나이트도 있고?”

“예.”

하나로 세 개, 네 개. 다섯 종류로 팍팍 늘릴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공장 다섯 제품…….’

드낙은 생수 공장이 생각났다.

물은 똑같은데 브랜드는 열다섯 종류가 넘는다. 그게 요즘 생수 시장이다. 이를 모르는 지능 낮은 현대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우월하고 똑똑하며 교양있으며 과거인들과 비교하면 교양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드낙조차도 어리석은 자에 불과했다. 브랜드는 신뢰할 수 있기에 그 브랜드를 믿고 돈을 주고 사는 것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드낙은 거지새끼나 다름없었다.

서로서로 헐뜯는 충분한 근거가 존재하는 혼란스러운 시대가 현대라는 걸 모르기에 자신들의 말이 무조건 바르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일이다.

결국 정답은 없었다. 이를 깨우쳐야 하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다.

드낙은 칼을 뽑느니 마느니 하지 않았다. 크레시미르니, 다이앤타니 그런 이름조차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지원해 줄 테니, 화장품 사업에서 오우거가 되지 않을래요?”

그 간사한 혓바닥을 놀리며 좋은 말만 입에 담았다. 그만큼 방금 보여준 상업성은 대단했다.

드낙의 뇌리에는 그게 강하게 때려 박혔다.

한 공장 다섯 제품! 돈을 쓸어 담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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